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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에 오셔서 사셨던 그리스도 (우리를 체휼 하셨던 분) (Touched with Our Feelings)

 

제 6장 윌리엄 워렌 프레스코트 – William Warren Prescott (1855-19440

 

미네아폴리스 이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성공적으로 전한 사람으로서 윌리엄 W. 프레스코트를 언급하는 것은 중요하다. 1890년대 동안 그는 와그너와 존스, 엘렌 화잇과 친밀한 관계에 있었다. 그들처럼, 프레스코트도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그의 그리스도론의 기초로 삼았다.

 

그는 1855년 뉴잉글랜드에서, 밀러운동의 열정적인 지지자였던, 경건한 부모아래서 태어났다. 윌리엄은 그의 청년기를 메인주에서 보냈으며, 1877년 Dartmouth 대학을 졸업하였고, 헬라어와 라틴어 교수로서 일을 시작하였다. 1877년부터 1880년까지 그는, 처음에는 Northfield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후에는 버먼트주의 Montpelier 고등학교에서 교장으로 시무 하였다. 한동안 그는 신문 잡지계에 투신하였으며, 후에 The State Republican of Montpelier이라는 잡지를 친히 발간하였다.

 

1885년은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해였다. 그는 이때 처음으로 재림운동에 가담하였으며, 그 후 베틀크릭 대학교의 지도자로서 선출되어 1894년까지 그 직무를 담당하였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그는 네바레스카의 유니온 대학, 워싱턴주의 왈라왈라 대학 설립을 도왔으며, 교회지도자 양성을 위한 학교 설립도 시작하였다.

 

그는 교육자로서 또한 성경교수로서 명망이 높았기 때문에, 1894년 대총회는 그를 남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유럽 등지에 보내어 교육사업을 고무시키도록 하였고, 또한 여러 신학교에서 목사들을 교육시키는 일과, 야영회를 지도하도록 하였다. 그가 오스트레일리아에 머무는 동안에는 아본데일 대학 설립을 도왔으며, 영국에서도 교육사업의 발판을 놓는데 큰 몫을 담당하였다.

 

1901년 회의 때, 프레스코트는 대총회 부회장으로, 또한 출판사 위원회의 회장으로, 또한 Review and Herald 잡지의 편집장으로 선출되었다. 1909년, 그가 임기를 끝냈을 때에, 그는 Protestant Magazine의 편집장이 되었다. 그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7년 동안 심도 높은 연구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 잡지의 목적은 “교회 안의 잘못들을 배제하며, 복음의 진리를 드높이는데 있었다.”(2)

 

(1888년 기별의 열정적인 지지자)

 

프레스코트는, 1888년에 와그너에 의하여 전해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을 손쉽게 받아들였다. 1930년에 나온 보고에 의하면, 미네아폴리스에서 전해진 기별을 지지하였던 사람들 중에서 프레스코트가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었다.(3) 그러나, 프레스코트는 그 회의 때 압도적으로 나타났던 신앙적 상태에 충격 받고 그 회의도중 한동안 자리를 떠나있어야만 하였다.(4)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1893년 대총회 기간동안 와그너와 존스를 지지하는 공식적인 입장을 서슴없이 밝혔다. 대총회 보고서에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그의 확신에 대하여 명백히 적고 있다. 여기에 예수의 인성에 관하여 단호하게 일어선 인물이 있다.

 

“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죗된 육신-우리가 그 안에서 죄를 지은 육신-을 취하셨지만, 그는 그 육신을 취하사,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의 충만함을 힘입음으로서, 하나님께서 그를 그 죗된 육신 안에서 죄 짓지 않을 수 있도록 하실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비록 죗된 육신을 취하셨지만, 성령과 그 안에 거하는 능력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가 죗된 육신 안에서 범죄하지 않도록 보호하셨던 것이다.”(5)

 

프레스코트의 연구 중 가장 자세하고 완성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가 오스트레일리아를 방문하던 기간 중에(1894-1895) 발표된 요한복음 1:14절에 관한 연구이다. 그의 방문을 고려하여 특별히 여러 야영회가 마련되었으며 그는 주 연설자로서 참가하였다. 1891년 후반부터 그곳에 머물고 있었던 엘렌 화잇도 그 모임들에 참석하였으며, 그녀는 프레스코트의 강연을 듣고, 후원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연구의 전부가 오스트레일리아 잡지였던 The Bible Echo에 실려있다.(6) 이 글을 통하여 프레스코트는 그리스도께서 죗된 육신을 취하셨음을 강조하였다. 프레스코트는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인성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다고 25번 언급하였으며, 그리스도께서 아담이 죄짓기 전의 인성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시지 않으셨다고 특별히 두 번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는 제목 하에 발표된 그의 중요한 성경연구 안에 나타난 4가지 주제를 요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1. 성육신, 기초진리

 

프레스코트는, 원문에 가장 충실되게 번역된 American Revised Version을 더 선호한다는 언급으로 그의 연구를 시작한다: “the Word was made flesh” 대신 “the Word became flesh.” 그는 이렇게 적는다: “그를 통하여 모든 것들이 나타났고, 지금은 그가 나타났다. 아버지의 모든 영광을 가지고 있었던 그가 지금은 그 모든 영광을 벗어버리고 육신이 되셨다. 그는 그의 신성의 존재의 형태(mode)를 버리셨으며, 그 대신 인성의 존재의 형태를 취하사 육체로 임하셨다. 이 진리는 모든 진리의 기반이다.”

 

2. “죗된 육체”에 성육화 되시고

 

이점을 증명하기 위하여, 프레스코트는 히브리서 2:14절을 언급한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전에 나온 모든 작가들이 언제나 킹 제임스 성경을 인용한 반면 그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American Revised Version을 사용하여 이 성경절을 인용하였다-역자주] 이 성경절을 통하여 프레스코트는 다음과 같이 추론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똑 같은 육체-죄의 육체, 우리가 그 안에서 죄를 지은 그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그는 죄를 짓지 않았으며, 그 안에서 우리의 죄를 지셨다.” 그리고 프레스코트는 그의 청중들에게 다음과 같이 도전한다: “이 점을 무시하지 말라. 당신이 이 점에 대하여 전에 어떠한 관념을 가지고 있었던지 상관없이, 이 점을 말씀 안에 있는 그대로 지금 보라. 그리고 이렇게 보면 볼수록 그렇게 하신 하나님께 더욱 더 감사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담의 경우를 들면서, 프레스코트는 그가(아담)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으며, 그의 후손들도 그렇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육체로, 육체 안에 오셨으며, 여자로부터 법 아래 태어나셨고, 성령으로 태어나셨지만 육체 안에 태어나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때 당시 어떠한 육체를 그가 취하실 수 있었겠는가? 그것뿐만 아니라, 문제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들이 당한 어려움가운데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에 있기 때문에, 그 육체가 바로 그가 취하시려고 계획하신 육체였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업은 인간을 멸하시거나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시는 것이 아니었고, 인간(마음)을 재-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복구하시는 데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속사업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러한 일을 행하려 오셨고, 그렇게 하기 위하여 그는 그가 타락하기 전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타락한 후의 세상에 오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구덩이에서 꺼내시려고 오실 때에, 그는 그 구덩이 옆에 와서 내려다보며, ‘이리로 올라와, 그러면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고 하시지 않으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있는 바로 그곳에 내려오셔서 우리를 만나신다. 그는 그의 육체를 취하사 인간의 형제가 되신 것이다.”

 

3. 타락 후 아담의 육체

 

그의 글을 통하여 프레스코트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되는 이 점을 계속해서 반복하였다: “그는 오셔서, 인류가 죄로 인하여 스스로 취하였던 죄의 육체를 취하셨으며, 그들을 위하여 구속 사업을 행하셨고, 죄를 육신에 정하셨다…  인간을 그들이 빠져있는 곳에서 구속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인류가 타고난 그 육체를 취하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프레스코트는 아담과 예수가 당하였던 시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가 시험 당하셨던 육체는 바로 죗된 육체였으며, 아담이 실패했던 그 육체가 아니다.” 프레스코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수께서는, 그(예수)로 하여금 이 땅에 오게 하사 죗된 육체에 거하시도록 하실 수 있는, 또한 그의 임재로 죗된 육체를 영광스럽게 할 수 있는 거룩함을 가지고 계셨으며, 그가 죽음에서 부활하실 때에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이렇게 하셨다. 그의 목표는 그의 임재를 통하여 죗된 육체를 정결케 하심으로, 우리 안에 오사 우리 안에서 죗된 육체를 정결케 하시고, 우리 안에서 죗된 육체를 영화롭게 하시는 것이다.”

 

 

4. 우리 안에 계시는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신학적인 논평이후 프레스코트 이 문제의 실제적인 적용에 대하여 논한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죗된 육체 안에 거하시게 하시기 위하여, 또한 그가 세상에 계실 때에 해결하셨던 그 육체의 문제를 우리의 죗된 육체 안에서도 해결하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주신 사실을 우리가 직접 경험해보도록 하자. 그는 우리도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이곳에 오셨으며, 이곳에 사셨던 것이다.”

 

프레스코트는 이렇게 외친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의 정신이다. 이것에 반대되는 어떠한 것도 기독교 정신이 될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을 입증하기 위하여 그는 사도 요한의 글을 인용한다: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요한일서 4:2-3).

 

“이 말씀이 단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사 육체 안에 사신 것만을 인정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악영들도 이렇게 시인을 한다. 그들도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을 안다. 하나님의 영에 인도함을 받는 믿음은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육체 안에 오셨다; 나는 그를 영접하였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의 정신이요 삶인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 안의 문제는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거하시지 않는 것이다. 그들에게 그리스도는 멀리서 바라보는 구경꾼이며 단지 하나의 표본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단순한 본보기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간됨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셨으며,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 안에 거하는 것이 무엇인지 볼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하여 우리 앞에 오셔서 그러한 삶을 사셨다. 그리고 그는 돌아가셨으며, 하늘 아버지께로 승천하사 자신을 대신하는 성령을 보내사 우리 안에 살게 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육체에 계셨을 때에 행하셨던 삶을 우리가 다시 살 수 있도록 하셨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인 것이다.”

 

그리스도와 그의 성품의 아름다움에 관하여만 말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그리스도께서 마음속에 거하시지 않는 기독교 신앙은 진정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마음속에 거하시는 자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며, 그를 우리 마음속에 거하시게 함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른 어떤 것으로 만족하지 말라… ‘너의 안에 있는 그리스도는 영광의 소망이시다.’ 그의 능력과,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심이 바로 기독교 신앙인 것이다.“

 

그러므로 프레스코트는, 전통적인 기독교, 즉 인류의 육체와 피를 나누시지 않은 그리스도에 만족하며 그들을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베드로후서 1:4) 할 수 없는 기독교와, 이와 반대로 복음적 기독교, 즉 그리스도께서 “죗된 육체”(로마서 8:3)안에 오셨으며,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셨던” 그리스도와, “우리 가운데 역사 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에베소서 3:20) 그리스도를 굳게 믿는 기독교의 차이점을 계속적으로 강조하였다.

 

프레스코트는 “육신이 되신”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인생이 우리 안에 매순간 거하기를 바라며 끝을 맺는다.

 

(프레스코트의 그리스도론을 승인한 엘렌 화잇)

 

1895년 초, 존스는 “셋째 천사의 기별”이라고 불렸던 기별을 대총회 기간 중에 발표하였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과 동일 시 되었던 이 기별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화해의 조건으로서의 전적인 그리스도의 인성과 그의 완전한 신성을 기반으로 삼았다.

 

또한 이것이 바로 미국의 재림교인들의 확신이었기 때문에, 교회 조직은 프레스코트를 남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또한 유럽 등 해외로 보내어 가르치게 하였다. 프레스코트가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는 제목의 연구를 출간했던 오스트레일리아 잡지와, 엘렌 화잇의 증언으로 우리는 프레스코트가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하여 어떻게 가르쳤는지, 또한 얼마만큼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으며, 어느 정도까지 재림교회 믿음으로서 인정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멜본시 근처에 있는 아본데일 야영회에서, 프레스코트는 요한복음 1:14절에 관한 그의 연구를 발표하였다. 이 야영회에 엘렌 화잇도 참석하고 있었으며, 그녀는 1895년 10월 31일 토요일 저녁에 같은 청중들에게 설교를 하였었다. 그러므로 그녀는 프레스코트가 발표한 기별에 대하여 큰 감사를 표하는 편지를 쓸 때에 그 내용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프레스코트가 발표한 그 다음날 아침에 쓰여진 엘렌 화잇의 원고에 이렇게 적혀있다: “나는 프레스코트의 강연을 들었다. 이 연구는 사람들에게 큰 감화를 주었다… 그의 어휘는 성령의 감화를 입었으며, 능력을 힘입어 그의 얼굴은 하늘의 빛으로 반사되었다. 하나님의 임재 하심이 매 순간마다 우리들의 모임에 함께 있었다.”(7)

 

다른 원고를 통하여 우리는 엘렌 화잇이 프레스코트의 기별을 어떻게 받아 들였는지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방법으로 프레스코트에게 임하셨고,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기별을 주셨다… 진리가 그로부터 풍족히 흘러 나왔으며, 사람들은 이제 성경이 그들에게 새로운 감동을 준다고 말하였다.”(8)

 

같은 시기에 쓴 편지에서 엘렌 화잇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프레스코트를 보내셨고, 그는 빈 그릇이 아니라 하늘의 보물을 가득 담고 있었다. 그는 진리를 명백 단순하게 전하였지만, 그 안에는 필요한 자양분이 풍족히 담아져 있었다.”(9) 다른 편지서에는: “1844년에 내가 들었던 기별과 마찬가지로, 프레스코트는 불타는 진리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성령의 감화가 그와 함께 있다. 프레스코트는 진리를 전하는데 있어서 그러한 열심을 전에 가져본 일이 전에 없었다.”(10)

 

“성령의 감화 아래서”(11)라는 제목으로 전달된 다른 편지서에서도 엘렌 화잇은 프레스코트와 그의 기별에 대한 찬사의 글을 싣고 있다. 단지 개인적인 편지들을 통하여 프레스코트의 기별을 언급하는데 부족함을 느낀 엘렌 화잇은, 1896년 1월 7일 출판된 Review and Herald에 보내어진 글을 통하여 그에 대한 자신의 감화를 모든 교회에 전하고자 하였다. 다음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는 프레스코트의 연구에 대한 특별한 논평이다.

 

“그날 저녁(10월 31일), 프레스코트 교수는 황금처럼 귀중한 교훈을 발표하였다. 텐트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밖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 말씀에 매혹되었으며, 우리의 믿음에 속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그 말씀들이 아주 새롭게 느껴졌다. 진리는 오류로부터 분리되었고, 거룩한 성령에 의하여 귀중한 보석처럼 빛났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선포하는 일꾼을 통하여 그의 능력을 나타내셨으며, 프레스코트 형제에게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기별을 주셨다. 성령의 역사 하심과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진리의 능력과 영이 인간의 입술로부터 흘러 나왔다. 하나님께서는 비상한 방법으로 프레스코트 형제에게 임하시고 계셨다. 우리는 구주께서 그에게 성령을 부여하셨고, 진리가 그로부터 풍족히 흘러나왔음을 확신하였다.”(12)

 

이러한 엘렌 화잇의 증언들은 재림교회 그리스도론의 역사에 큰 중요성을 부여한다. 이 증언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프레스코트 해석을 확증하고 있다. 또한 이 증언들은, 같은 시기에 쓰여졌으며, 반드시 해석되어져야 하는, W.L.H 베커에게 보내는 편지의 배경을 형성한다. 어떤 재림교 신학자들은, 앞으로 볼 것처럼, 이 편지를 인용하여 그들의 “새로운” 해석을 정당화시키려 한다. 그러나 이 시기동안 이 문제에 대하여 엘렌 화잇이 썼던 글들을 기억해야 한다. 만약 그녀가 그 기별에 대한 극단적인 반대편을 고수하고 있었다면, 프레스코트의 강연을 그처럼 강하게 옹호하지 않았었을 것이다.

 

(프레스코트, 그의 그리스도론을 확립하다)

 

1896년 전 기간 동안, 프레스코트는 Review and Herald에 출판된 일련의 글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그의 확신을 확고히 하였다.(15) 교회 신조의 대변인으로서 그는 성경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자연스럽게 그의 그리스도론을 발표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죗된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셨을 때에 어떠한 육체와 피를 취하셨는지에 대하여 어떠한 의혹을 남기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사 취하신 육체는, 여자에게서 난 모든 자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그 육체뿐이었다. 곧 죄의 육체였던 것이다.”(16)

 

“죗된 육체의 모양”이라고 말한 바울의 표현방법에 대하여 어떠한 의심도 남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프레스코트는 다음과 같은 명백한 진술을 덧붙인다: “그(예수 그리스도)는 아담이 타락하기 전의 인간의 모양을 취하지 않으셨고, 그는 인간이 타락한 그 땅에 오사 죗된 육신을 취하셨다.”(17)

 

앞에 나왔던 사람들처럼, 프레스코트도 로마서 1:3절을 인용하여 그리스도의 인성의 문제를 풀려고 하였다: “성경은 그의 탄생에 대하여 강조하기를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다고 하였다.”(18)

 

1901년 대총회 부회장으로 선출되고, 같은 시기에 Review and Herald 편집장(1901-1909)으로 임명받았을 때에, 프레스코트는 그 기회를 이용하여 예수의 인성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확고히 하려 하였다. 그는 이 주제를 가지고 3번 편집인 사설을 썼다. 그 제목만으로도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형제들과 같이,” “그리스도와 그의 형제들,” “죗된 육체 안에서.”(19)

 

세 번째 사설은 독자들의 질문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 사설들 중 하나는 로마서 8:3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자연스럽게 언급한다: “나는 이 성경절이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죗된 육신 안에’ 보내셨다고 하지 않았으며, ‘죗된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셨다고 하였다. 이것은 나에게 매우 다른 진술이라고 여겨진다.”(20) 그의 응답에서 프레스코트는 4개의 기본 진리를 명확히 내세운다.

 

1.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육체와 피에 참여하셨다.

 

먼저 프레스코트는, 예수께서 인간의 자녀들이 가지고 있는 “혈육에 속하였다”고 말하는 히브리서 2:14-17절을 언급한다. “이 성경말씀의 선언에 대한 자연적이고 논리적인 결론은 예수께서 취하신 육체와 피는 자녀들이 가지고 있었던 혈육과 같았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그 다음 성경절에서 더 강조되어졌다.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그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예수의 사명은 타락한 천사를 구출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천사로서 나타내지 아니하시고 인간으로서 나타내신 것이다. 그는 ‘범사에’ 도움이 필요한 자들처럼 되셨다. 인간의 육체는 죗된 것이다. ‘범사’에 인간들처럼 되시기 위하여 예수께서는 죗된 육체를 취하셔야만 하였다.”

 

2. 죗된 육체

 

프레스코트는 로마서 8:3절의 “죗된 육신의 형상”을 인용한 후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 말씀이 무슨 뜻인가? ‘죄 없는 육신’이라는 뜻인가?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만약 예수의 육체가 우리의 죗된 육체와 다른 것이었다면, 왜 American Revised Version의 난외의 주에 ‘죄의 육체(flesh of sin)’라고 적었겠는가? 그 말씀에 다른 의미를 덧붙이는 것은 무모하고 강제적인 해석이다.”

 

프레스코트는 계속해서 설명한다. “우리가 그 문구를 비슷한 문체로 쓰여진 다른 말씀들과 비교한다면 더 명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 그 한 예가 있다: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립보서 2:7을 보라-역자주] 우리가 ‘인간의 형상대로’라는 말씀을 읽을 때에 예수께서 실제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올바로 인식하고 있는가? 분명히 그렇다. 그분께서 ‘인간의 형상대로’ 되실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인간이 되시는 길뿐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죗된 육신의 형상’대로 보내시기 위해서는 아들께서 죗된 육체를 취하셔야만 한다는 사실이 균등 명확하지 않는가? 예수께서 ‘죗된 육신의 형상’안에 있으시면서 동시에 그의 육체가 죄 없으실 수 있는가? 그러한 해석은 어휘적 모순을 만들 것이다.”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프레스코트는 곧 이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비록 예수께서 ‘죗된 육신의 형상’으로 오셨지만, 그는 죄를 범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5:21).”

 

3. 육체에 죄를 정하시기 위하여

 

“죗된 육체”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프레스코트는 다음과 같이 계속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죗된 인간 안에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예수께서 그 안에 신성과 인성을 연합하셔야만 하며, 그가 취하신 육체는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기 원하는 그 사람의 육체와 같은 것이어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아들께서 유대에 탄생하셨을 때에 그는 육체에 장막을 치사, 믿는 모든 자들의 육체에 임하실 수 있는 길을 예비하셨으며, 그렇게 하시기 위하여 그는 후에 그의 교회의 구성원들 안에 거하시기 시작하실 때에, 거하시기 원하시는 그 육체와 같은 육체를 취하셔야만 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신학적 문제가 아니다.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태어나셨을 때에 죗된 육체에 거하시지 않으셨다면, 하늘에서 시작된 사닥다리는 아직 땅에 닫지 않았다는 뜻이며, 거룩한 하나님과 타락한 인간 사이를 연결 할 수 있는 다리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과 타락한 육체를 연결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매개체가 준비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로마 천주교가 행한 일이다. 그 교회의 신조는 우리의 기고자들과 완전히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 신조에 대한 공식적 이름은 동정녀 마리아의 무염시태적 선언이다. 우리는 이러한 교리를 거부함으로 그 영향력을 배제하고, 성경의 단순한 가르침을 고수한다.”

 

4. 그의 신성에 참여하기 위하여

 

아직 기고자들의 두 번째 물음에 대한 응답이 남아있다: “죗된 육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완전하고, 거룩하게 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재림신앙의 초신자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 의문이다. 이 질문은 역시 엘렌 화잇의 답변을 필요로 한다. 프레스코트는 “이 질문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독교 신앙의 중심을 나타낸다. 예수께서는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말씀하셨으며, 베드로를 통하여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는 교훈을 주셨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죗된 육신을 가지고 있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약 사람이 죗된 육신 안에서 거룩하고 완전하게 될 수 없다면 어떻게 성경말씀의 조건을 따를 수 있겠는가 하고 의아해 한다. 우리가 거룩함과 완전함을 얻기 위한 희망은, 바로 완전하고 거룩한 신성이 예수 안의 죗된 육체 속에 계시되었다는 놀라운 진리에 기초되어 있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가를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은 그 사실을 믿는 것에 달려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의 약속은 실현될 수 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죗된 육체가 성령께서 거하실 수 있는 성전이 될 수 있다는 진리는 우리 종교의 최고의 영광이다.”

 

“질문자들에 대한 답변에 관해서 더 많은 설명을 더할 수 있으나, 우리는 지금까지 이와 관련된 원칙들과 그리스도인 경험에 대한 그들의 관계가 명확히 설명되었기를 바라며, 우리는 독자들 중 어느 누구도 신성의 신비를 설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교황권의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굳게 믿는다. 성경의 단순한 진리를 믿어야 안전한 것이다.”

 

(진정으로 그리스도 중심적인 기별)

 

프레스코트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하나님과 동등 되심을 내려놓으시고 “단순한 인간”으로서, “인간처럼,” “범사에,” 인류의 “혈육에 함께 하심”은 “기독교 진리의 중심사상”이 되었다. 그는 재림교 기별의 초신자들을 위하여, 또한 어떻게 예수께서 “육체에 죄를 정하셨고” “죄와 죽음의 법”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로마서 8:2-4)으로 어떻게 죄인들을 구하여 내실 수 있는지, 다른 교단의 해석과 비교하며 그 사실을 강조하였다.

 

프레스코트의 가장 발전된 그리스도론은 1920년에 대학과 세미나리용 교과서로 출판된 그의 책 The Doctrine of Christ에 실려있다.(22) 서론에서 설명된 대로 이 책은 조직신학적 연구가 아니라, 믿는 자들의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실제적 경험을 위한 “그리스도의 계시”이다.(23)

 

프레스코트는 그 주제를 각각 여러 과들을 포함한 18장으로 나누어 간단하게 설명하였다. 각  과들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 번째 부분에는 그 주제에 해당되는 성경주석이 나오고, 두 번째 부분은 설명이 나온다. 전체적으로 이 연구는, 넓은 의미에서, 실제적인 그리스도론이다. 우리의 목표를 따라서, 성육신 문제를 다룬 세 과의 내용 중 가장 중요한 부분들을 살펴보도록 하자.(24)

 

프레스코트에게는 그리스도께서 기독교 진리의 중심이었으며, 성육신은 “기독교 복음의 전부”와 “기독교에 없어서는 안될 절대적인 진리,”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완성되어진 진리 속에 나타나는 성숙한 표현”을 조성한다.(25)

 

사실, “말씀은 요한일서 4:2절에 말씀한대로 단지 ‘육체 안에 온’ 것이 아니라 ‘육체로 되셨다.’ 이 마지막 말은 영원한 아들께서는 그에게 새로운 존재 방식이었던 성육신화 되셨고, 전에 있지 않았던 상태로 되셨으며, 인간의 몸의 형태만 취하셨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육체적 삶 속에 나타나는 한계를, 지상에 계실 동안, 그분 자신의 존재 방식으로서 받아들이셨다.”(26)

 

프레스코트는 적기를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에 대하여 올바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믿음의 더욱 확실한 기반과 더욱 풍족한 희망 위에 서있는 것이며, 또한 야곱의 사닥다리가 침대머리까지 내려와 하나님의 천사들이 수종드는 사람보다 더 똑바로 하늘가는 길을 알고 있는 것이다”고 하였다.(27) 그가 성육신 하실 때에 “비록 우리는 이해할 수 없을 지라도, 어떤 실제적이고 근본적인 방법으로 거룩한 구세주께서는 자신을 죗된 인류와 연합하사, 자신의 몸 안에서, 또한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하여, 그 슬픔의 무게뿐만이 아니라, 죄책감을 제외한, 죄의 무게를 견디셨다.”(28)

 

그의 논증에 대한 모든 가능한 의심을 피하기 위하여, 프레스코트는 아담과 예수의 인성의 다른 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원래의 타락하지 않은 인성을 취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타락한 인성을 취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히 그(그리스도) 전에 있었던 아담이 가지고 있던 자리에 서있지 않으셨다. 그는 엄청난 불평등-승리의 위세와 함께 우리 본성의 성질 속에서 결과적으로 왕 노릇하며, 무서운 능력으로 인간의 거룩함의 이상적 상태인 완전한 거룩함을 이룩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과 싸우는 악-속에 섰었다. 처해진 상태의 불리함과, 관련된 엄청난 위험들, 그리고 만나야만 하는 반대세력의 큰 위험들을 고려하여 보면, 우리는 유혹 받고, 시험받은, 아담에 의하여 잘못 전달되어졌고 그리스도 안에서 실제적으로 죄 없는 경지까지 올려졌던 인성에 대한 광대한 도덕적 성취의 실제성과 위대함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질 수 있게 된다.”(29)

 

이제 성육신 하셨어야만 하였던 그 이유에 대한 설명만이 남아 있다. “타락한 인성을 취하심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위하여 스스로 제안하시고 받아들이신 그 문제는, 인성의 모든 불행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시고, 인성 안에서 또한 인성을 위하여, 죄에 의하여 부가된 불안전함 즉 모든 악과 화를 불러 일으켰던 지옥의 세력을 정복하시기 위하여 우리와 함께 나누신 것에 있다.”(30)

 

그렇게 함으로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허락하셨다는 것이 프레스코트의 결론이다. “그(그리스도)는 육체에 임하신 하나님이셨으며,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 이것이 바로, 신뢰를 받으시며, 죄로부터 구속하시고, 헌신을 이끌어내시며, 희망을 샘솟게 하시는 그를 받아들이는 모든 인생의 중심 속에 그리스도께서 군림하시도록 만드는 요소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나타내신바 되셨으며,  인생 속으로 들어오셨고, 인간의 필요를 경험하셨던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31)

 

“위대하심과 위엄으로부터 지상 생활의 슬픔과 격정가운데로 임하셨던 하나님 아들의 강림에 관하여 말 할 때에 우리는 단지 그 거룩한 사랑에 대하여 반밖에 표현할 수 없으며, 이 사랑의 이야기는 그분께서 인류를 하나님께 이르기까지 끌어올리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사실을 명백히 이해할 수 있을 때에만 믿을 수 있게 된다.”(32)

 

“‘그는 나타내신 바 되었다’-우리는 이 말씀 속의 ‘그’의 의미를 작거나 좁게 만들어서는 안될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그가 죄를 없앨 수 있다는 사실을 거절하게 되는 입장에 이르게 될 것이다. 만약 그가 단지 나와 같은 인간이었다면, 비록 그가 완전하고 죄 없는 삶을 살았을 지라도, 죄를 없애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요한이 ‘그’에 관하여 자기 자신의 증언들에 의하여 말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이해한다면, 우리는 어떤 광대한 개념, 그리고 ‘그가 우리의 죄를 없이 하시려고 나타내신바’ 되었다는 선언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어떠한 가능성에 대하여 이해하기 시작할 것이다.”(33)

 

(결론)

 

의심할 여지없이, 프레스코트의 사업은, 재림교회 역사와 관련되어, 여러모로 특별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뛰어난 교육자, 신학과 교수, 편집인, 능숙한 경영자, 또한 대총회 부회장으로서 프레스코트는 교육사업의 번창과 여러 교리적 해명작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특별히 그의 공로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을 미국 외에, 전 세계를 돌며 전한 것에 있다.

 

와그너와 존스처럼, 프레스코트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인정하면서도, 타락후의 아담의 인성-즉, 죗된 인성-을 하나님과 인간이 화합될 수 있는 조건으로서 강조하는, 그리스도론을 확립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다. 확실히, 프레스코트의 그리스도론은 가장 완결적이며, 가장 명백하게 쓰여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대총회 부회장으로서의 그의 권위와 능력을 따라 그는 교회의 대변인으로서의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증언들은 재림운동의 시작부터 프레스코트의 임기가 끝나는 1944년까지의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재림교회의 가르침과 믿음을 확증하고 있다.

 

[참고문헌] 

 

1See Seventh-dayAdventist Encyc/opedia, pp.1148, 1149.

2Ibid., p. 1158.

3See LeRoy Edwin Froom, Movement of Destiny, p. 373.

4Ibid., p. 254.

5William W. Prescott, in General Conference Bulletin, 1895, p. 319. At the General Conference session of 1885 Prescott presented six sermons on the topic “The Divine Human Family,” structured entirely on the basis of Christ’s fallen human nature.

6_, in Bible Echo, Jan. 6 and 13, 1896. See Ralph Larson, The Word Was Made Flesh, pp. 90-99. All the quotations in the next several pages are from these two articles.

7Ellen G. White manuscript 19, 1895. See Arthur L. White, Ellen White: The Australian Years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Pub. Assn., 1985), pp. 232,233.

8Ellen G. White manuscript 47, 1895.

9Ellen G. White letter 25, 1895.

10Ellen G. White letter 32, 1895.

11Ellen G. White letter 84, 1895.

12E. G. White, in Review and Herald, ]an. 7, 1896. See Ralph Larson, The Word Was Made Flesh, pp. 88, 89.

13Ellen G. White letter 8, 1895. Quoted in The Seventh-day Adventist Bible Commentary, Ellen G. White Comments, vol. 5, pp. 1128, 1129.

14See our chapter 10.

15W. W. Prescott, in Review and Herald, ]an. 28, 1896; Mar. 10, 1896; Mar. 24, 1896; Apr. 7,1896; Apr. 14,1896; Apr. 21,1896.

16Ibid., Mar. 10, 1896.

17Ibid.

18Ibid., Apr. 14, 1896.

19Ibid., Nov. 9,1905; Dec. 7, 1905; Dec. 21,1905.

20Ibid., Dec. 21, 1905. All the quotations in the next few pages are from this article.

21See our chapter 3.

22WiI1iam W. Prescott, The Doctrine of Christ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Pub. Assn., 1920), p. 1.

23Ibid., p. 3.

24Ibid., pp. 45-54.

25Ibid., p. 46.

26Ibid., p. 47.

27Ibid., p. 48.

28Ibid., p. 52.

29Ibid., p. 53.

30Ibid.

31Ibid.

32Ibid.

33Ib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