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에 오셔서 사셨던 그리스도 (우리를 체휼 하셨던 분) (Touched with Our Feelings)
제 5 장 [A. T. 존스(Alonzo T. Jones) – 1850-1923] (1)
열정적인 설교자였고, 여러 잡지의 편집인이었으며(2) 여러 저서들의 저자였던(3) A. T. 존스는 1890년대 재림교회의 대표적인 지도자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1850년 4월 21일에 오하이오의 롹힐(Rockhill)에서 태어났다. 그는 20살부터 3년 동안 군복무를 하였으며, 이러한 경험을 통한 극기의 정신과 강직함이 그의 인간관계에서 나타났다. 대부분의 그의 동료들은 자유시간을 오락으로 보냈지만, 그는 성경과, 역사, 재림교회 서적들을 읽기를 더 좋아하였다. 그는 이렇게 함으로 장래에 설교자로서, 작가로서의 일에 필요한 기초적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군복무를 마치고, 그는 재림교회에서 침례를 받았다. 그 후 웨스트 코스트에서 목사로 부름을 받았다. 1885년 5월 그는 엘렛 와그너 곁에서 Signs of the Times의 부 편집인으로서 1889년까지 일을 하였다.
비록 그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성격의 소유자들이었지만,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설교하는 일에 아주 밀접히 협력하였다. 엘렌 화잇의 후원과 함께, 그들은 1888년 미네아폴리스 대총회에서 역사적인 발표를 하였다. 그 결과, 대총회는 그 두 사람에게 2년 동안 전국을 돌며, 야영회와, 목회자 수양회, 학교와 교회들에서 이 문제에 대하여 가르치도록 하였다. 엘렌 화잇은, 1891년 오스트레일리아로 가기 전까지, 여러 번 그들과 같이 야영회에 참가하였으며, 그들의 메시지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믿었다.
1892년 와그너가 영국으로 간 후에, 존스는 1888년 기별을 고수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그는 대단한 열심과, 교회 지도자들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이 일을 행하였다. 그의 성경연구 책자들이 잘 알려지면서, 1890년대에는 대총회 기간마다 가장 좋은 시간을 할애하여 “셋째 천사의 기별”의 여러 국면에 대하여 가르치도록 하였다.
그는 종교자유에 대하여 큰 관심을 보였고, 그래서 1889년 America Sentinel 잡지의 총 책임자로 임명받았다. 1897년에는 대총회 운영위원으로 선출 받았으며, 같은 시기에 Review and Herald의 편집인장이 되었다. 그리고 1901년 대총회 때에는 캘리포니아 합회의 합회장으로 지명 받았으며, 1903년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그 후 존스는 워싱톤에 있는 대총회의 종교자유부의 책임자로 부름을 받았다. 처음에 그는 그 제한을 받아들였으나, 곧 거절하고 베틀크릭으로 가서 켈로그(Dr. J. H. Kellogg) 의사와 함께 일을 하게 되었는데, 겔로그의 영향 아래서 그는 대총회와 대립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그 결과 그는 교회직원으로서 일을 할 수 없게 되었고,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적대심이 커지면서, 결국 1909년 출교 당하였다.
그가 출교 당하기 전, 그 때 당시 대총회장으로 있었던 A. G. Daniells는 1909년 대총회 기간 중에 그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도하였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존스는 그 제한을 거절하였다. 그 때부터, 비록 안식일을 지키며 재림교회의 대부분의 교리를 믿었었지만, 그는 교회의 외변에 남아있었다. 그의 전기 작가인 George R. Knight는 이렇게 적었다: “그가 비록 조직된 교회에 대하여 적의감를 가지고 있었지만, 존스는 재림교회와의 교제를 갈망하였던 것 같았다.” (4) 그는 1923년 5월 12일에 대뇌의 뇌출혈로 죽었다.
(존스의 기별이 아직도 믿을 수 있는 것인가?)
그가 후에 교회와 분리된 사실 때문에, 오늘날 어떤 재림교인들은 존스의 기별에 대한 신뢰성에 의심을 던진다. 실제적으로, 일반적인 법칙으로는, 같은 믿음 안에 끝까지 남아 있지 않았던 사람들의 기별은 그 신뢰성을 모두 잃게 된다.
그러나 존스의 경우, 그가 교회로부터 분리된 이유는 믿음과 연관된 것이 아니었고, 교회조직과의 갈등 때문이었다. Georgy R. Knight는 이렇게 적는다: “그의 인생에 대하여 여러 해 연구한 끝에, 나는 1890년대의 거장 존스가 그의 믿음을 포기하였다고 믿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면으로-그의 자존심과, 완고한 소신, 그리고 극단성을 고려하여 볼 때- 그가 다른 일을 행하였다고 믿기 어렵다. 그의 미래에 대한 열쇠는 그의 마음에 아주 가깝게 있었던- 성령의 능력이 믿음으로 그의 생활을 바꾸게 하는-그 기별에 있었다. 그는 진리에 대한 올바른 이론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는 그것을 실행하는데 실패하였다.”(6)
엘렌 화잇은 기별과 기별자의 다른 점을 강조하여 이와 같이 말한다. 그녀는 이 두 면에 대하여 충분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그 기별을 하늘로부터 감동 받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존스와 와그너가 부딪혀야만 하였던 반대 때문에, 그녀는 그들이 실망하고, 결국에 “원수의 유혹에 넘어가게” 되지는 않을까 우려하였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경고하였다: “만약 그들이 그렇게 될지라도, 이러한 사건들이, 그들의 기별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었다거나, 그들이 행했던 모든 사업이 실수였다고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7)
불행하게도, 후에 그 기별자들에 대한 엘렌 화잇의 우려가 실제로 일어났던 것을 고려해 볼 때 이 증언은 더욱 더 가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비록, 상황에 따라서, 특정 문제에 대하여 시정을 요구하였던 적은 있지만, 존스와 와그너가 전하였던 기본적인 기별의 근원에 대하여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다.(8)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엘렌 화잇은 존스가 1893년 대총회 때에 발표한 24편의 성경공부를 읽은 후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존스 형제에게 이 때를 위한 기별이 주어졌음을 안다. 하늘이 보낸 이 기별을 막지 않고 받아들이는 모든 이들은 이 진리 안에 있는 영의 역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9)
아더 화잇(Arthur L. White)에 의하면 존스는 또한 교회의 지도자들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1888년 대총회 이후 존스와 와그너에 대한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의 진정한 자세는, 그 후 10년 동안 대총회 기간을 통하여 그들에게 주어졌던 성경강의 초청에 의하여 가장 잘 반영될 것이다. 대총회 기간 행사들의 계획과 강연자를 선택하는 것은 대총회 행정위원들이 맡고 있었던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교회 조직은 여러 능력 있는 설교자들을 구비하고 있었다. 그 선택은 교회 지도자들의 의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었다.” (10)
1891년부터 1899년까지 와그너와 존스가 여러 대총회 기간들을 통하여 발표한 여러 번의 성경 강의를 보면, 얼마만큼 그들이 인정받고 있었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다: 1891년에 와그너가 17번, 1893년에 존스가 24번, 1895년에 존스가 26번, 와그너가 19번, 1897년에 존스가 11번, 1899년에 와그너가 3번, 존스가 7번 발표하였다. 만약 그들의 강연이 교회의 믿음과 상치되는 것이었다면, 그들은 셋째 천사의 기별에 대한 그들의 관점을 발표하도록 초청 받지 않았었을 것이다.
(존스의 그리스도론)
존스는 처음에는 그가 편집장으로 있었던(11) Review and Herald 잡지를 통하여, 그리고 후에는 “셋째 천사의 기별”(12)이라는 제목아래 1893년과 1895년 대총회 기간을 통하여, 또한 마지막으로 1905년 그의 마지막 임기 기간에 출판된 “그리스도인 완전에 이르는 거룩한 길(The Consecrated Way to Christian Perfection)”(13)이라는 소책자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하여 대담하게 발표하였다.
이 연구가 미치는 모든 범위 안에서 존스가 설명한 기별의 세부 항목들을 모두 언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서는 그의 그리스도론의 주요 개념만을 규정짓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먼저, 존스는 언제나 그리스도를 신으로서 나타내었다는 것을 확실히 집고 넘어가자. “그의 본성은 온전히 하나님의 것과 같았으며, 이것이 바로 신의 본질의 특징이다.” “그는 신이셨다.”(14) 존스는 말하기를, “히브리서 둘째 장에 인간의 것으로 나타낸 그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히브리서 첫 장을 필히 이해해야 한다”고 하였다.(15)
그의 1893년 발표에서 존스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한 와그너의 가르침을 비준하였다. 그는 “예수께서 우리와 같은 육체와 피를 취하셨다고” 확언하였다.(16) 그리고, 그의 열 번째 연구를 통하여 그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리스도안에 “의의 두루마기를” 엮어 그를 받아들이는 자들로 입을 수 있게 하였는지를 설명하였다. 존스는 말하기를: “그 의복은 인간의 몸 안에서 엮어졌다. 그 인간의 몸-그리스도의 육체-는 베틀이다, 그렇지 않는가? 그 의복은, 그가 우리와 같은 육체와 피를 취하셨으므로, 그리스도 안, 즉 당신과 내가 있는 그 육체 안에서 엮어졌던 것이다. 당신과 나의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취하셨던 그 육체가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과 나로 입기 원하시는 그 의복을 짜셨던 베틀이며, 그는 지금 우리가 그 옷을 입기를 원하신다.” (17)
가장 완전하고 세부적으로 주어졌던 연구는 1895년 대총회 기간 중에 발표된 것이었다. 26편의 연구 중, 6편이 성육신의 교리에 바쳐졌다.(18) 이 발표를 통하여 존스는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한 문제는 “3-4년”동안의 집중적인 연구의 주제가 되었었고, 또한 그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주제 안에서 “계속해서” 인도하셨다고 하였다.(19) 존스는 그가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하여 새로운 논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믿었다.
증거 자료들에 의하면, 그가 1892년 영국에 도착하였을 때에 와그너는 그리스도론으로 잘 알려진 영국 성공회 감독이었던 에드워드 얼빈의 글을 존스에게 보냈다. 존스는 그 글을 읽었으며, 그 글로부터 영향받은 논점들과 표현방법들이 그들의 1895년 발표에 나타나 있음을 분명히 볼 수 있다.(20)
예수의 인성에 관한 존스의 이해와 그리스도인 생활에 대한 실제적 적용은 네 가지 주개념으로 요약될 수 있다.
1. 그리스도의 타락된 인성
존스는 그리스도께서 타락하고 죗된, “죗된 육체의 모양”을 취하셨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러한 유형의 표현들이 1895년 발표에 90번이 넘게 사용되어졌다.(21)
존스는 단지 이 기별의 진실됨을 확증하는 것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원하였다. 그 결과, 그는 그리스도의 인성과 모든 인간들이 갖는 공통적인 근원에 대하여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그는 히브리서 2:11절을 지목하여 읽었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이 구절을 기초로 하여 존스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의 인성 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모두가 나왔던 그 사람에게서 나왔다…. 한 사람이 모든 인성의 근원이요 머리이다. 또한 우리들처럼, 그리스도의 유전학은 아담으로부터 시작한다. 모든 것은 그 육체를 따라서 한 사람에게서 나왔다. 그러므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의 본성은 완전한 우리의 인성이었다.”(22)
“이것이 실제로 어떤 인성이었는가?” 존스는 조사하였다. “이 세상이 아는 그 한 육체는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가? 당신과 내가 가지고 있는 그 육체이다. 이 세상은 다른 인간의 육체나, 그리스도의 재림의 필요가 창조되었던 이후부터 존재한 어떤 다른 육신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오직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육체만 알며, 지금 그러한 것처럼, ‘말씀이 육신이 되셨을 때’, 그는 우리의 것과 똑같은 육체를 취하셨다는 것은 확실한 진리이다. 다른 것이 될 수는 없다.”(23)
히브리서 2:14-18절에 의거하여 존스는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육체와 피에 참여한 똑 같은 방법으로 육체와 피에 참여하셨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천사의 본성을 취하지 않으셨고, 아브라함의 본성을 취하셨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의 본성은 단지 인간의 본성이었다….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어떤 경우인가? 모든 경우에. 그렇다면 그의 인성 안에는 그와 우리와 다른 점이 하나도 없어야 한다.”(24)
존스는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당신은 우리의 구원이 바로 거기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아는가? 당신은 그리스도께서 오신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는 것을 아는가? 그는 우리가 시험받았던 바로 그 곳에 오셨으며, 우리가 시험받았던 그 몸을 취하셨고, 우리는 살아있는 구세주께서 유혹의 세력과 대립하셨던 곳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25)
2. 육체에 죄를 정하사
존스는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시험들에 대하여 설명하기 위하여 히브리서 4:15절을 인용한다: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존스는 명백하게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만약 그가 나와 모든 일에 같지 않게 시작하셨다면, 그는 모든 일에 나처럼 시험받지 못하셨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인류들과 같은 입장에 있었으며, 같은 본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시험받을 수 있는 세상의 모든 인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험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 안에서 모든 인류의 모든 연약함이 만났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모든 영혼들은 모든 시험에 대한 승리와 유혹의 세력으로부터의 쉼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은 진리이다.”(26)
존스는 그의 14번째 연구에서 모든 인간은 아담으로부터 유전되어졌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언급한다. “인류 안에 있는 죄에 대한 성향은 아담으로부터 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 모든 시험을 당하셨으며, 아담과, 아브라함과, 다윗으로부터 내려온 그 육체 안에서 모든 면에 시험을 당하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 안에-그리스도 자신 안이 아니라 그의 육체 안에- 나와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죗된 성향이 있었다. 그러므로, 죗된 육신의 모양 안에서, 그는 죄를 육체에 정하셨던 것이다.”(27)
그러므로 존스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육체 안에 있는 모든 죗된 성향은 그의 육체에도 있었으나, 그가 그 모든 성향을 정복하셨으므로, 한번도 이 성향이 드러나도록 용납되지는 않았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죗된 성향에 대한 승리를 얻을 수 있다.(28)
이 문제를 확실히 하기 위하여 존스는 “죗된 성향이 존재함과 그 성향의 행동을 다르게 분류하여”(29) 설명한다. 유전의 대 법칙에 의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처럼 모든 면에서 시험받을 수 있도록 되셨으나, 그는 그의 육체 안에 가지고 있었던 그 모든 시험들에 굴복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존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는 범하졌던 죄들의 구세주이시며, 죄를 짓게 하는 성향의 정복자이시다. 그의 안에 우리의 승리가 있다.”(30)
존스는, 만약 신이 죄에 시험받지 못할 육체를 취하셨다면 그것은 더 이상 신비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놀라움은 하나님께서 죗된 육체 안에서, 죗된 육체를 통하여 그 일을 하실 수 있다는 데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신비이다-하나님께서 죗된 육체를 취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죗된 육체 안에 거하셨던 그리스도 안에서, 죄가 죄를 나타내는 대신 그의 임재와 능력과 영광이 나타나도록 하시기 위하여, 온 우주 앞에 그가 죗된 육체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31)
3. 아담의 본성: 타락의 전인가 후인가?
존스에게는 이 질문이 불필요한 것이다. “첫째 아담으로서가 아니라, 첫째 아담이 그의 자손들에게 만들어준 그 영향 아래 있었던 시기에 둘째 아담인 그가 오셨다. 둘째 아담은 첫째 아담의 후손들이 떨어진 퇴보된 상태로 오셨다.”(32) “예수는 사단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셨고, 사단이 퇴보시킨 그 상태의 인성을 취하셨다.”(33)
대표자들 중 여러 사람들이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죄인이 되지 않고 “죗된 육체”를 가질 수 있었는지 알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존스에게 꼭 대답해야 될 질문들이 주어졌다. 곧바로 그는 무염시태설에 대한 설명을 해야만 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너무나도 거룩하셨기 때문에 그가 우리 곁에 오시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본성을-죗된, 저속한, 타락한 인성-취하셨다는 것은 실현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은, 하나님을 적대하며, 인간과 하나님을 분리시키려는 반 성육신적 사상 즉 교황권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34)
이 사상에 따르면, “마리아는 흠 없고, 완전하고, 죄 없으며, 그룹(Cherubim)과 스랍(Seraphim)들보다 높게 태어나야 하고, 그리스도는 반드시 이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셔서 완전한 죄 없는 본성을 가지셔야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은 그(그리스도)를 우리들로부터 그룹들과 스랍들보다 더 먼 곳에 있게 하며, 죄 없는 본성 안에 있게 한다. 나는 죗된 본성에 대하여 아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 된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내가 가지고 있는 본성이며, 구주께서 취하셨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중 하나이셨다.”(35)
어떤 대표들은 존스가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함으로 너무 치우쳤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엘렌 화잇이“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의 형제이시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었다”고 언급한 것을 가지고 그와 맞섰다. 존스는 예수의 육체와 마음의 다른 점을 강조하여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는 죗된 육신의 모양을 취하셨지, 죗된 마음을 취하신 것이 아니다. 그의 마음을 끌어들이지 말라. 그의 육신은 우리들의 것이었지만, 그의 마음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 마음을 품으로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기록한 것이다.”(36)
존스는 설명하기를 태초에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유혹에 넘어감으로 사단의 영의 “노예”가 되었고, 우리도 그들을 따라 그렇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담이 실패한 그 자리에서 싸우시려고 오셨다. 그리고 그의 승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사람의 아들들에게 다시 돌려주게 되었으며, 사단은 정복당했다.”(37)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같은 육신을 가지고 오셨으나, 그의 마음은 모든 시험들과 죄의 유혹들을 대항하여 흠 없이 보존되었으며, 죄와 절대로 결탁하지 않은, 아무리 작은 죄악에 대한 생각의 그림자도 존재하지 않았다.”(38)
그의 논증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존스는 빌립보서 2:6,7절과 히브리서 1:3을 기반으로 예수의 인성과 신성, 즉 두 본성을 강조하고 있는 엘렌 화잇의 글을 인용하였다.(39) 그리고 존스는, 그 당시 아직 출판되지 않았었고 단지 “그리스도의 인생”이라고 잠정적인 제목만 붙어 있었던, 시대의 소망을 인용하였다: “구속의 중요한 사업을 이루시기 위하여, 구세주께서는 타락한 인류의 자리를 취하셔야만 하셨다… 타락한 인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있는 곳에서 그를 만나셔야만 하였다. 그는 연약하여지고 퇴보된 인성을 취하셨다. 그는 인간을 이해하실 수 있고 또한 죄에 붙잡혀 떨어져버린 타락으로부터 그들을 구하시려고, 화를 당한 인간의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인성이 가지고 있는 모든 가능성과 함께 인성을 취하셨다. 그는 죄에 굴복 당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인성을 취하셨으며, 자신을 지키시기 위하여 하늘의 능력에 의존하셨다.”(40)
존스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는다: “당신은 우리가 모든 일에 있어서 견고한 토대 위에 있는 것을 볼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육체를 취하셨으나 우리들의 정욕에 참가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은 모두 틀림없는 사실이며, 올바른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신성의 마음은 죄에 절대로 참여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이 마음이 거저 주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41)
어떤 사람들은 존스가 결과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했다고 느꼈다.(42) 그러나 그렇지 않다. 존스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유전 받는 죄에 대한 성향과 죄에 굴복함으로서 후천적으로 길러지는 죗된 습관을 구별하여 설명하고자 최선을 다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는 우리의 육체였으며, 우리의 육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우리 육체가 가지고 있는, 그를 죄에 굴복시키려고 유혹하였던-죗된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43) 이와 같이 예수께서는 우리의 유전 받은 성향을 그의 육체 안에서 지셨으나 능력 안에서 그는 성향을 따르지 않으셨다. 이러한 이유가 바로 예수께서 스스로 모순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뜻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정욕에 참가하셨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는 우리의 정욕을 지셨으나 그리스도께서는 그 안에 참여하지는 않으셨다.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모든 문제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는데 달려있다.(44)
4.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능한 승리
존스에게, 육체 안에서 이룩하신 죄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는 그리스도의 제자 되는 모든 사람들도 육체 안에서 죄를 승리할 수 있다는 모본으로서 이해되었다. 궁극적으로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육체에 죄를 정하시고 “육체를 좇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신 것이었다 (로마서 8:2-4).
“죗된 육체에 계셨던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 앞에, 죄가 죄를 나타내는 대신 그의 임재와 능력과 영광이 나타나도록 하시기 위하여, 그가 죗된 육체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실이 그들 안에 이루어지기 위하여, 아들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주 예수께서 하신 것처럼 그들 자신을 구주께 의탁하기를 바라신다.”(45)
1893년 초, 존스는 죄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로부터 이러한 실제적인 교훈을 얻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의의 두루마기를 그리스도의 육체에 입히신 것처럼, “그(하나님)는 지금과 또한 마지막에, 육체가 불멸을 입을 때에 이 옷을 입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그의 안에 계셨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셔야 하며, 그의 성품도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의 성품은 우리가 겪는 시험과 고통을 통하여 우리 안에 엮어지고, 옮겨져야 한다. 옷을 짜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우리 없이는 안 된다. 이 일은 신성과 인성의 협력이 필요 되며, 이것이 바로 복음과, 셋째 천사의 기별 안에 있는 비밀, 즉 하나님과 당신과 나의 비밀인 것이다.”(46)
이와 같은 결론은 1895년에 발표된 17번 연구의 결말에도 나타난다. “그의 약속에 의하여 우리는 신성에 참여하는 자들이다.”(47) 또한 우리는 “그(예수) 안에 있었던, 우리에게 주어진 거룩한 영이시며 우리의 자연적인 자아, 즉 죗된 자아를 제어하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승리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악을 제거하시는 방법이다.(48)
존스의 글과 설교는 그리스도인들이 “생명의 성령의 법인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로마서 8:2)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다는 1888년 기별의 진리의 한 면을 정립하고 있다. 존스에 의하면,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자유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여, 어떤 경우, 죄에 대한 승리는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죄의 힘이 우리의 육체로부터 완전히 제거된다는 잘못된 완전론에 이르게 된다.
1899년 존스는 이러한 문제, 즉 1901년 대총회 때 반박된 “거룩한 육체” 운동에 대하여 글을 썼다 (후에 이 문제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온다). “죗된 육체”라는 제목 하에 쓰여진 그의 글은 그리스도인 완전에 관한 그의 언급을 확대시켜 설명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여러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심각하고 말썽을 일으키는 실수들이 나타난다. 이 실수는 사람이 개심 하였을 때 그들의 옛 죗된 육체가 없어져버린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육체로부터 구원받는 것을 그들로부터 육체가 완전히 없어진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죗된 성향과, 죗된 의식과, 유혹과 함께 옛 육체가 그들 안에 아직도 존재하는 것을 그들이 발견하게 되면, 그들은 준비되지 못한 채 실망하게 되고, 자신들이 변화되지 않았다고 생각할 것이다.”(49)
존스는 “변화 받음이 옛 정신에 새로운 육체를 세우는 것이 아니며, 새로운 정신이 옛 육체에 세워진다고 설명한다. 새로운 육체를 옛 마음에 심는 것이 아니라, 옛 육체에 새로운 마음을 넣는 것이다. 구원과 승리는 인성을 없앰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성을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는 거룩한 본성을 받음으로 얻어진다…. 성경은 새로운 육체를 받음으로 변화된다고 말하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로마서 12:2). 우리는 육체를 새롭게 함으로 옮겨짐을 당할 것이지만,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함을 얻게되는 것이다.”(50)
마지막으로, 1905년 태평양 출판사(Pacific Press)는 “그리스도인 완전에 이르는 거룩한 길(The Consecrated Way to Christian Perfection)”을 출판한다. 이 책은 히브리서를 중심으로 존스가 가르쳤던 그리스도의 인성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얻을 수 있는 성품의 완성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하늘 성소에 계시는 우리의 대 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봉사에 감사하자. 왜냐하면,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셨으며”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4:15; 2:18).
결론
George R. Knight가 말한 것처럼, “A. T. 존스는 재림운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51) 그의 말년이 어떠했던지 상관없이 그의 기별은 그 가치를 전혀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의 그리스도론은 특별히 엘렌 화잇과 와그너와 화합을 이루고 있다.
비록 그가 사용하였던 어떤 표현들이 너무 편협적이고 극단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의 가르침을 전체적으로 볼 때, 존스는 엘렌 화잇이 이 주제에 관하여 전에 가르친 것 이상의 것을 말하지 않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발표한 1895년, 엘렌 화잇은 베틀크릭 교회에 5월 1일자로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구주께서는 큰 자비를 베푸셔서 가장 귀중한 기별을 존스와 와그너를 통하여 그의 백성들에게 보내셨다. ..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일꾼들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진리를 보일 수 있도록 증거를 주셨으며, 이 기별이 바로 셋째 천사의 기별이다.”(52)
존스의 기별은 전체적으로 그 때 당시 가장 잘 설명되어진 “셋째 천사의 기별”이었으며(53) 존스로 하여금 1890년대까지 교회의 주요 지도자로 인정받게 하였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렇게 여러 번 존스를 초청하여 설교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기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화합을 이루게 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54)
이 사실이 바로 엘렌 화잇이 사람들로 하여금 존스와 와그너의 기별에 주의를 집중할 것을 요청한 이유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그녀의 경고를 유의해야 할 것이다: “존스와 와그너가 원수의 유혹에 넘어갈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된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그들의 기별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거나 또는 그들의 사업이 헛된 것이었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일이 생기고 사람들이 이러한 입장을 취하여 치명적인 기만에 빠지게 된다면,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영의 역사아래 있지 않기 때문이다.”(55)
엘렌 화잇의 염려는 슬프게도 실제로 일어났다. 그 기별자들이 실패하였기 때문에, 현재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기별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믿지 않으며, 엘렌 화잇이, 하나님의 영의 역사아래 있지 않는, 치명적인 기만이라고 지목한 새로운 것으로 이 기별을 대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예언의 확실성을 더 강조하기 위하여 엘렌 화잇은 다음과 같이 반복하여 말하였다: “나는 만약 그들 중 어느 한 사람이 실패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입증을 취할 것을 안다.”(56) 이상하게도, 우리가 앞으로 볼 것처럼, 이러한 일이 정확히 일어났다.
(참고문헌)
1The Seventh-day Adventist Encyclopedia, p. 707. See also George R. Knight, From 1888 to Apostasy, the Case of A. T. Jones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Pub. Assn., 1987).
2Signs of the Times, Review and Herald, and American Sentinel.
3The Third Angel’s Message, sermons given at the General Conference session of 1895 by A. T. Jones, published by John 0. Ford (Angwin, Cali£: Pacific Union College Press, 1977); The Consecrated Way to Christian Perfection (Mountain View, Calif: Pacific Press Pub. Assn., 1905); Lessons on Faith, a selection of articles and sermons, published by John 0. Ford (Angwin, Calif: Pacific Union College Press, n.d.).
4Knight, p. 255.
5LeRoy Edwin Froom, in Movement of Destiny, ignores almost entirely the role and message of A. T.Jones.
6Knight, p. 256.
7Ellen G. White letter 24, 1892. Quoted in A. V. olson, Through Crisis to Victol}’, pp. 315, 316.
8For example, see Ellen G. White, Selected Messages, book 1, pp. 377-379.
9Ellen G. White manuscript 1180. See Robert J. Wieland, Ellen G. White Endorsements of the 1888 Message, as Brought by Jones and Waggoner (St. Manes, Idaho, LMN Publishing, n.d.).
10Arthur L. White, Ellen White: The Lonely Years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Pub. Assn., 1984), pp.412, 413.
11Alonzo T. Jones, in Review and Herald, Feb. 18, 1896; Nov. 16. 1897; Apr. 11 and 18, 1899; Dec. 4.11.18. and 25, 1900;Jan. 1 and 22.1901.
12See General Conference Bulletin, 1893 and 1895.
13Alonzo T. Jones, The Consecrated Way to Christian Perfection (Mountain View, Calif: Pacific Press Pub. Assn.. 1905). reprinted by Upward Way, Dodge Center. Minnesota, 1988.
14Ibid., p. 16.
15Ibid.
16General Conference Bulletin, 1893, p. 207. 1
17bid.
18See General Conference Bulletin. 1895. The last 16 studies have been published by John 0. Ford, The Third Angel’s Message, Sermons Given at the General Conference of 1895, by A. T. Jones (Angwin. Calif: Pacific Union College Press, 1977).
19General Conference Bulletin, 1895. p. 330.
20See William H. Grotheer, An Interpretive Histol}’ of the Doctrine of Incarnation as T aught by SDA Church (typescript), pp. 30, 32.
21See Ralph Larson, The Word Was Made Flesh, p. 67.
22General Conference Bulletin, 1895. p. 231.
23Ibid., p. 232. “In this argument, Jones was echoing Edward Irving, who had de- clared ‘that Christ took our fallen nature, is most manifest. because there was none other in existence to take’ (Works 5:15)’. (Grotheer. p. 30).
24Ibid., p. 233.
25Ibid.
26Ibid., pp. 233, 234.
27Ibid., pp. 266, 267.
28Ibid., p. 267. See also Jones, The Consecrated Way to Christian Perfection, pp. 40, 41.
29Ibid.
30Ibid.
31Ibid., p. 303.
32Ibid., p. 435.
33Ibid., p. 448.
34Ibid, p. 311.
35Ibid.
36Ibid., p. 327.
37Ibid.
38Ibid., p. 328.
39E. G. White, in Review and Herald, July 5, 1887.
40A. T. Jones, in General Conference Bulletin, 1895, pp. 332, 333.
41Ibid., p. 333.
42See Knight, p. 139.
43A. T. Jones, in General Conference Bulletin, 1895, p. 328.
44Ellen G. White confirms Jones’s point of view. On the one hand, she said that Christ did not possess “the like passions. ..of our human, fallen natures” (Testimonies for the Church, vol. 2, pp. 202, 508); on the other, that “He had all the strength of passion humanity” (In Heavenly Places, p. 155).
45A. T. Jones, in General Conference Bulletin, 1895, p. 303.
46Ibid., 1893, p. 207.
47Ibid., 1895, p. 329.
48Ibid., p. 331.
49_, in Review and Herald, Apr. 18, 1899. Quoted in A. T. Jones and .E. J. Waggoner, Lessons on Faith (Angwin, Calif:: Pacific Union College Press, 1977), pp. 90-92.
50Ibid.
51Knight, on the jacket of From 1888 to Apostasy.
52Ellen G. White Ietrer 57, 1895. Quoted in A. L. White, p. 414.
53This name is a reference to the message of the third angel of Revelation 14, which contains essentially the message of justification by faith. But this expression very often also refe~ to the combined message of the three angels of Revelation 14.
54Ellen G. White has best defined the divine and human nature of Christ in these words: “The completeness of His humanity, the perfection of His divinity, form for us a strong ground upon which we may be brought into reconciliation with God” (letter 35, 1894).
55Ellen G. White letter 24, 1892. Quoted in A. L. White, pp. 474, 475.
56Ibid., in A. L. White, p. 4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