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에 오셔서 사셨던 그리스도 (우리를 체휼 하셨던 분) (Touched with Our Feelings)
제 4 장 엘렛 J. 와그너(1855-1916)
1884년 엘렛 와그너가 처음으로 예수의 인성에 대한 문제를 발표하였을 때는, 이미 엘렌 화잇이 그 주제에 대하여 명백하게 자신의 의견을 나타낸 이후였다. 그때 당시에는 어느 누구도 예수께서 성육신 하실 때에 타락한 인성을 취하셨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었다.
만약 와그너가 이 사실을 재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면, 그 이유는 이 진리가 전체적으로는 구속의 경륜을, 구체적으로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이해하기 위하여 없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와그너의 목적은 엘렌 화잇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였던 것이 아니라,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는 의에 관한 자신의 기별의 기반으로서 그녀의 그리스도론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첫 번째 언급[1884-1888])
1884년, 그는 Signs of the Times의 부 편집인으로 임명받자마자 예수의 인성에 대한 일련의 글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이 글들을 통하여 그는 그리스도께서 죗된 인간이 갖는 같은 조건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으며, 자신을 완전히 의롭고 성스럽게 유지하셨다고 강조하였다.
“정죄 받음과 용서받음”이라는 제목으로 1884년 7월 3일에 발표된 그의 첫 번째 기사에서, 그는 “그리스도께서는 죄 없으셨으며, 법이 그의 마음속에 있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의 생명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었다. 그는 우리의 본성을 취하셨으며 (히브리 2:16, 17); 그 위에 ‘우리 모두의 죄악’ (이사야 53:6)이 놓여졌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는 우리가 있는 곳에 오셨어야 하였으며, 다른 말로, 그는 잃어버린 바 된 죄인의 입장을 취하셔야만 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사야 53:12)으로 그는 범죄의 죗가를 겪으셔야만 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고난받으심은 그리스도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셨다’ (베드로전서 2:22).” (1)
“그리스도 안에서 새 피조물”이라는 기사에서, 와그너는 이렇게 적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죄 없는)를 만드셨다. 그는 모든 일에 ‘그의 형제들과 같이’ 되셨으며; 단지 외관상이나, 육체적으로만이 아니라, 우리가 죄를 지는 것처럼 죄를 지셨다. 그가 지신 죄는 그의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것이었다. 그는 ‘죄를 알지도 못하셨으나,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다’ (이사야 53:6). [‘죄를 알지도 못하셨으나’는 고린도후서 5:21에서 인용된 것이다. – 역자주] 비록 그가 지셨던 죄가 우리들의 것이었지만, 이 죄악들은 그의 것으로 여겨졌으며 그를 죽으시게 하였다 (이사야 53:5).” (2)
“법 아래”라는 제목의 세 번째 기사에서, 와그너는 예수께서는 “그가 구원하시기 원하시는 자들과 똑 같은 상태에 자신을 두셨다”고 재차 강조하였다. 이 말이 결코 예수께서 죄인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이 아니었지만 죄인으로서 취급당하셨다. “그는 세상의 죄악들을 자신의 것처럼 지셨다.” (3)
와그너에게 “율법 아래 나신 것”(갈라디아서 4:4)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께서 법의 영향권아래 있었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그가 죄인처럼 법의 정죄아래 있었다는 의미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법을 어기고 사형선고를 받은 자들을 대신하여 서셨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법의 정죄로부터 고통 당하신 것이다.
1888년 초에 발간된 “갈라디아서의 복음”이라는 소책자에서, 와그너는 그리스도의 육체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갈라디아서 4:4, 요한복음 1:14, 그리고 로마서 8:3을 강조하였다. 이 성경절들을 이용하여 그는 결론적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죗된 육체의 모양으로 태어나셨다”고 말하였다.(4) 빌립보서 2:5-7, 로마서 1:3, 히브리서 2:9, 16, 17, 고린도후서 5:21에 대한 주석에서도 그는 그리스도의 인성이 죗된 인류의 것과 같았다고 하였다.
와그너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낮추신 사건을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주제로 여기지 아니하고 그의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하는 격려의 기별로서 나타내었다. “성경에서 가장 큰 격려의 말씀들 중 하나가 바로 그리스도께서 육적으로 죗된 조상들을 따라 인성을 취하셨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조상들의 생활을 연구할 때에 우리는 그들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연약함과 정욕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도 그들의 유전적인 이유로 인하여 그들의 죗된 행동을 정당화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모든 면에서 그의 형제들과 같이 되시지 않았었다면 그의 죄 없었던 생애는 우리에게 아무런 희망적 의미를 주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예수께서 우리와 다른 종류의 인간이었다고 가정할 때, 그의 죄 없었던 생애를-역자 주] 놀라움으로 바라볼 수 있지만, 이 놀라움은 단지 우리를 절망적인 자포자기에 빠지게 할뿐이다.” (5)
와그너는 “바울이 선언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를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시게 하였다”고 언급하였다. “나는 단지 성경적인 사실을 말할 뿐이지 성경을 설명하려하는 것이 아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나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육체로 임하셨는고 죗된 육신의 모양을 취하셨는지 알 수 없다. 나는 흠 없으시며 거룩하신 구주께서 어떻게 죄로 인하여 타락된 인류의 연약함과 죄인으로 취급당하심과, 죄인으로서 죽으심을 견디셨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단지 이렇게 함으로서만 그가 인류의 구세주가 되실 수 있었다는 성경 말씀을 받아들일 뿐이며, 그가 죄가 되셨으므로 내가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를 입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나는 이러한 지식 안에서 기뻐할 뿐이다.” (6)
그리스도께서는 “인류를 그의 영광의 보좌로 이끌어 오시기 위하여 인류가 빠졌던 가장 낮은 곳까지 임하셨으나, 그는 자신의 신성을 끊으셨거나, 또는 그의 거룩하심의 어느 한 면도 잃어버리시지 않으셨다.” (7)
이것이 바로 와그너가 예수의 인성에 관하여 쓴 첫 번째 글의 중심사상이다. 이러한 사실들이 그리스도의 신성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와그너는 그 위에 기반을 세우고, 그 위에 1888년 미네아폴리스 대총회 때 발표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을 설립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임하셨고”)
앞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와그너가 미네아폴리스 회의 때에 강연한 내용이 적혀있는 문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회의 바로 직후에 Signs of the Times에 발간된 그의 글들은 그가 미네아폴리스에서 했던 강연을 대표하는 것임에 분명하다. 그 회의는 1888년 11월 4일에 마쳐졌으며, 와그너는 1889년 1월 21일 초에 “육신으로 임하신 하나님”에 관한 첫 번째 글을 출간하였다.(8) 이 글 전체가 1890년에 “그리스도와 그의 의”라는 제목으로 발간된 책자에 다시 인쇄되었다.(9)
와그너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논하는 것으로 이 책을 시작하였고, 계속해서 오직 성경만을 인용하여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놀라운 역사”를 제시하면서 그리스도의 인성을 설명한다. 그는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면서도 인간이었다. 원래는 오직 신이었으나 그는 인성을 취하셨고 단지 죽을 수밖에 없는 보통 인간으로서 사셨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요한복음 1:14절을 인용하면서 첫 장을 시작한다. (10)
와그너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 자진하여 당하신 굴욕은 빌립보서 1:5-8을 통하여 바울이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 와그너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서, 어떻게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셨는지 우리는 이해할 수 없으며, 이것을 추측하는 것은 전혀 무가치한 일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성경이 나타내는 그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뿐이.”고 적었다. (11)
“말씀이 육신이 되셨”을 때에 일어난 사건의 의미를 명백히 하기 위하여 와그너는 로마서 8:3,4절을 인용한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모양을 취하셨다면 그가 취하신 것은 죗된 인간의 것이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죗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오셨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리스도께서 죄 없는 존재가 아닌, 죗된 인간의 육체 즉 모든 타락한 인류가 가지고 있는 모든 연약함과 성향을 가지고 있는 육체를 취하신 것은 다음의 성경절로 나타내어졌다: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다윗은 인성의 모든 정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에 대하여 말하기를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편 51:5)고 하였다.” (12)
와그너에게는, 히브리서 2:16-18의 성경절들이 이러한 입장을 확인해주고 있다. “만약 그(그리스도)가 모든 면에서 그의 형제들과 같이 되셨다면, 그는 그의 형제들처럼 모든 연약함을 견디셔야 하였으며, 모든 유혹을 받으셨을 것이다.” (13) 바울은 고린도후서 5:21절을 통하여 이 문제를 더 넓게 설명한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와그너는 덧붙여 이렇게 말하였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하나님의 흠 없는 양께서 죄로 되셨다. 죄 없으셨으나 죄인으로 취급당하셨을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죗된 본성을 그 안에 취하셨다. 그는 우리가 의롭게 함을 얻을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하여 죄가 되셨다.” (14)
와그너는 갈라디아서 4:4, 5, 히브리서 2:18, 4:15, 16을 다시 한번 인용한 다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까지 읽으면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죗된 인간의 경지까지 내림으로 인하여 그의 성품을 경시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15) “그러나 그와 반대로,” 그는 “우리는 우리를 그의 흠 없는 상태로 끌어올리시기 위하여 자진하여 죗된 인간으로 자신을 낮추시고, 가장 험악한 상태에서 그러한 인성을 가지고 계셨던 우리 복된 구주의 ‘신성의 능력’을 단순히 찬양할 뿐이다”고 말하였다. (16)
비록 그가 육체의 연약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신성은 한 순간이라도 악한 성향을 품지 않았으며, 한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인간이 받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당하셨지만, 그는 그가 하늘을 떠났을 때처럼 흠 없이 그의 아버지의 보좌로 돌아가셨다.”(17)
그리스도의 죄에 대한 승리의 비밀은 바로 이러한 논리에 있다. “그는 ‘연약함에 둘러있었으나,’ 그 안에 언제나 신성의 능력이 거하셨기 때문에 ‘죄짓지 않았다.’ 만약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고,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에베소서 3:17, 19) 되면, 이제 이와 똑 같은 능력이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18)
“인간의 육체가 유전 받아야 할 모든 것들로 고통 당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이 모든 것들을 알고 계시며, 자신을 그의 자녀들과 매우 가깝게 동일시하시고, 그들에게 이르는 모든 문제들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시며, 얼마만큼의 신성의 능력이 이러한 유혹들을 물리치는데 필요한지 아시고, 만약 우리가 ‘사악함과 세상의 정욕들’을 거절하고자 진정으로 원한다면 그는 우리에게 ‘우리가 구하고 생각한 모든 것들보다 더 풍부한’ 능력을 주실 수 있으시며, 또한 주시고자 갈망하신다.” (19)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얼마나 큰 소망가운데 사는가!”라고 와그너는 외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말하기를: “나는 나에게 힘을 주시는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20)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임하심”에 대한 논증이다. 와그너에 의하면, 죄의 힘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죗된 육신의 모양”안에 “임하셔야”만 하였다. 육신 안의 죄를 정복하심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그의 힘을 받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죗된 인성 안에서 죄 없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였던 바로 그 거룩한 능력은 그리스도를 영접한 모든 죄인들로 하여금 죄의 유혹을 물리치며 죄의 힘을 정복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렇듯, 와그너의 그리스도론은 그를 자연스럽게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 이끌었다. 그리스도의 사업은 그의 개성과 분리될 수 없다. 와그너가 1888년에 발표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기별은 실제적으로는 그의 그리스도론의 현실적 적용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타락한 인성과 동일시하였기 때문에, 우리 안에 이루어지는 그의 사업은 단지 서류 상의 변화와 죄의 용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불의”(요한일서 1:9)에서 깨끗하게 됨을 포함한다.(21) “그리스도께서 그의 의의 두루마기로 우리를 덮으실 때에, 단지 죄 위에 망토를 씌우는 것이 아니라 그 죄를 없이하신다…. 그는 실제적으로 우리를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며; 만약 우리가 죄로부터 깨끗함을 얻었으면, 우리는 용서받았고, 의롭게 되어졌으며, 큰 변화를 경험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진정으로 다른 사람이요…. ‘새로운 피조물’(고린도후서 5:17)이 되는 것이다.” (22)
와그너의 공헌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원칙을 재림교회 안에 재인식시킨 것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론을 구속의 사업에 적용한 것이었다. 루터에게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단지 서류상의 변화만을 의미하였었다. 콩코드 신조(Formula of Concord)를 통하여 이러한 시점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모든 의는 우리밖에 존재하며,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안에 거한다.” 한편, 와그너에게 의롭게 함을 받는다는 의미는,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를 그의 온전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요한복음 1:12) 사람 안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능력을 통하여 의롭게 만드시는(로마서 5:19)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행동을 포함한다.
1900년, 런던에서 출간된 그의 마지막 책인 “영원한 언약”에서, 와그너는 이렇게 말한다: “마지막이 오기 전에,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그 때에, 지구상에는 어떤 무리의 사람들이 있을 것인데, 그들은 비록 지구에 살았던 사람들의 숫자에 비하여 적은 비율의 무리일지는 모르지만, 그들 안에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이룬 것처럼 분명히 나타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나사렛 예수 안에서 행하셨던 것을, 그에게 굴복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행할 수 있음을 온 천하에 알릴 것이다.” (23)
(그리스도론을 확립한 와그너, 1891-1902)
1890년대에 와그너는 재림교회 안에서 큰 권한을 누리고 있었다. 엘렌 화잇과 그의 동료인 A. T. 존스(Jones)의 후원과 함께 그는 여러 야영회, 목회자 수양회, 대총회 때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하여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1891년 대총회 때에 그는 16번에 걸쳐 성경강의를 하도록 초청 받았으며, 그 때 그는 로마서를 집중적으로 가르쳤다.(24) 그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주개념을 가르치기 위하여 다른 편지서들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주제에 관련되어 두 구절이 주로 사용되었다.
로마서 1:3에서 바울이 다윗의 자손에 대하여 언급한 부분을 와그너는 첫 번째 주제로 삼았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나셨”다고 말하였다. 와그너는, 그러므로, “다윗과 그 의 뒤를 이어서 예수의 조상들이 되었던, 왕들의 역사에 대하여 연구하면, 그리스도의 인성이, 사악함의 극치를 달렸던 그의 조상들에 의하여 어떻게 결함 되어졌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초청한다. “그들 중 대다수가 방탕한 자들이었으며, 잔인한 우상숭배자들이었다. 비록 예수께서 이러한 연약성을 지니셨지만,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셨다’ (베드로전서 2:22). 이것은 가장 미천한 상태에 있는 인간에게 주는 격려이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복음의 능력이 유전적 결함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5)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죗된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셨다는 성경말씀에 관하여 와그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말씀에 관한 일반적인 생각은 그리스도께서 실제적으로 죗된 육체를 취하시지 않았고 단지 그렇게 보이는 모습만 취하셨다고 하는 것이다.”(26)
이에 대한 반증으로 와그너는 히브리서 2:17절을 인용한다: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그런 후에 와그너는 갈라디아서 4:4,5절을 다시 인용한다. 바울은 말하기를: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려고.” 와그너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그는 여자에게서 난 모든 자들과 같은 육체를 취하셨다.” (27)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께서 죗된 육체의 모양으로 오신 이유를 정립하기 위하여 와그너는 로마서 8:3,4절과 고린도후서 5:21절을 연속적으로 제시한다. “전자는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시기 위하여 죗된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다고 말하였다. 후자는 비록 그리스도께서 죄를 알지 못하셨지만,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그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셨다’고 하였다.” (28)
이 모든 설명들을 통하여, 와그너는 계속적으로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인류를 죄와 죽음의 힘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한(로마서 8:2), 구속의 목적과 연결시킨다.
1892년 와그너는 영국에 가서 “현대 진리” 잡지의 편집인이 되라는 부름에 승낙한다. 그는 거기서 1902년까지 머물렀다. 이곳에 있는 동안, 1897년 대총회 모임에 초청되었고 그곳에서 그는 히브리서 첫 장에 관하여 19번 강연하였다. 이 부분이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에 관한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는 장이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29) 다시 한번 와그너는 그의 그리스도론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며, 이 발표는 대총회 위원들과 교회의 그리스도론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교회와 대총회 위원들이 먼 영국으로부터 이 특별한 모임에 와그너를 초청하려고 결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살펴 본 것처럼 다시 한번 와그너는 예수의 인성에 대한 그의 원래 입장을 고수하였다. 그는 한 부분에서 바울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의역하여 설명하였다: “우리가 입으로 구주 예수께서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오신 것을 인정하고, 우리가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죽음으로부터 부활시키셨으며, 그가 생명의 능력인 것을 믿으면, 우리는 구원받을 것이다.” (30)
사람들이 이 문제를 밝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와그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담 안에서 말씀은 완전하였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은 타락한 육체로 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의 육신, 즉 죗된 육신으로 밑바닥까지 내려오셨다.” (31)
“육신으로 임하신 하나님”이라는 제목 하에 Signs of Times에 발표된 글에서 와그너는 우리의 죄는 그리스도안에 상징적으로 놓여진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얹혀졌다고 하였다. (32) 1900년에 출판된 그의 갈라디아서에 관한 성경주석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그의 몸으로” (베드로전서 2:24) 친히 감당하셨다는 것을 밑줄을 그어 강조하였다. 그는 적기를 “우리들의 죄는 상징적으로 그분께 놓여진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그의 몸 안에’ 놓여졌다고 하였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갈라디아서 3:13-역자주], ‘죄가 되시고’[고린도후서 5:21-역자주] 죽음의 고통을 당하시기까지 하셨다. ‘그의 몸으로’ 우리의 죄를 지셨다고 말씀한 그 성경절[베드로전서 2:24절을 의미함-역자주]은 그가 ‘죄를 범치 아니하셨음’[베드로전서 2:22절 -역자주]을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실제적으로 죄가 되심으로, 우리의 죄를 그와 함께, 그의 안에서 지셨으나, 죄를 범치 아니하신 사실은, 죄로부터 벗어나 무궁한 영광과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됨을 가리키는 것이다.”(33)
(결론)
이것이 와그너의 그리스도론의 골자이다. 만약 이 문제에 대한 그의 입장이 교회의 믿음과 달랐다면, 그는 1901년 대총회 때에, 그리스도께서 ‘아담이 타락하기 전의 인성’을 취하셨다는 거룩한 육체 운동의 “이상한 교리”를 책망하기 위하여 초청 받지 않았을 것이다.(34)
만약 와그너의 가르침에 반복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의 그리스도론일 것이다. 그가 1916년 임종하기 바로 전에 쓴 “믿음의 고백”이라는 책은 그의 그리스도론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로서 남아있다. 여기서 그는 또 다시 “죗된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지만 죄로부터 자유롭고, 죽음을 정복하신, “완전한 삶”을 사셨던, 그리스도의 두 가지 대립적인 삶에 대하여 설명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께서 죗된 인간을 위하여 그들에게 그의 생명을 주셨다. 이것이 바로 와그너에 의한 복음의 요약이다.”(35)
[참고문헌]
1Ellet J. Waggoner, in Signs of the Times, July 3, 1884.
2Ibid., July 17, 1884.
3Ibid., Sept. 18, 1884. See Eric Claude Webster, Crosscurrents in Adventist Christology, pp.168-171.
4Ellet J. Waggoner, The Gospel in the Book of Galatians (Payson, Ariz.: Leaves of Autumn Books, 1970), p. 60. Waggoner wrote this 71-page pamphlet in answer to an 85- page pamphlet put out by G. I. Buder entided The LAw in the Book of Galatians.
5Ibid., p. 61.
6Ibid., p. 62.
7lbid., p. 63.
8Seven articles were published in Signs of the Times. The first one was on the human nature of Christ (Jan. 21, 1889); the next four were on the divinity of Christ (March 1, 8, 15, and 22, 1889); the last two were entitled “Christ, the Legislator” and “Christ, the Redemptor.”
9This book was likewise reprinted in Australia and in England, 1892; and in Hamburg and Basel. See Froom, Movement of Destiny, p. 373. In 1989 it was translated and published in France.
10Waggoner, Christ and His Righteousness, p. 24.
11 Ibid., p. 25.
12Ibid., pp. 26, 27.
13Ibid., p. 27.
14Ibid., pp. 27,28.
15Ibid., p. 28.
16Ibid.
17Ibid., p. 29.
18Ibid.
19Ibid., p.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