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ect Page

우리 속에 오셔서 사셨던 그리스도 (우리를 체휼 하셨던 분) (Touched with Our Feelings)

 

 

제 12 장 새로운 그리스도론에 대한 반응(1970-1979)

 

신신학의 영향력은 자라나고 있었다. 비록 전통적인 그리스도론의 지지자들은 갑작스러운 변화로 인하여 초기에는 조금 당황하였으나, 결국 그들은 주로 교회의 공식 매체들을 통하여 더욱 강력하게 항의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Review and Herald에 기사를 냄으로 그들의 생각을 알렸으며, 그 후에는 대총회의 성경연구부(Biblical Research Institute)를 통하여, 그리고 안식일 학교 과정책과 여러 책들을 통하여 전하였다. Movement of Destiny가 출판된 이후인 1970년도는 교회의 선구자들의 역사적인 가르침에 대한 깨우침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던 때였다.

 

(Review and Herald의 반응)

 

1966년 니콜(F. D. Nichol)의 죽음 이후, 그의 부편집인으로 있었던 우드(Kenneth H. Wood)가 Review and Herald의 편집장이 되었다. 그의 지도력아래서, 1966년부터 1982년 사이에, Review는 역사적인 가르침에 대한 연구를 쉬지 않았다. 1980년부터 엘렌 화잇 유산협회장으로서, 또한 이사로서 우드는 전통적인 입장을 지지하는 기사들을 편찬하는데 최선의 격려를 아끼지 아니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하나로서 우드는, 1970년에는 재림교 전통적인 그리스도론을 강력히 지지하는 데이비스(Thomas A. Davis)를, 1971년에는 더글라스(Herbert E. Douglass)를 초청하였다. 그들은 여러 기사들과, 책들, 안식일 학교 공과들을 통하여 조직적으로 교리에 관한 질문들과 Movement of Destiny에 나타난 가르침들을 반증하였다.

 

데이비스는 Review에 부름을 받기 전에도 전통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매일의 기도력을 1966년에 출판하였었다. 그는 적기를 “천지의 원자를 우주에 수놓으셨던 전능한 창조주께서 스스로 죗된 인간의 혈육을 취하셨고, 그가 만드신 작은 혹성을 그의 거처로 삼으셨다. 얼마나 놀라운 겸손인가? 만약 그가 죄 없는 아담의 형상을 취하셨더라도 그의 희생은 무한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훨씬 더 나아가 수 천년 동안 죄로 인하여 낙후된 인간의 형상을 취하셨다.”(1) 1971년 데이비스는 그의 책 Romans for the Every-day Man(2)을 통하여 그의 확신을 확고히 하였다.

 

더글라스도 재림교의 새로운 신조에 대하여 강한 반대의 입장을 취하였다. 그는 미국에 있는 여러 대학들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노련한 신학자요 존경받는 성경 교수로서 이름이 나있었다. 1967년부터 1970년까지 그는 아틀란틱 유니온 대학 학장으로 시무 하였었다. 그는 Review and Herald의 부편집인으로서 부름을 받은 이후로부터 역사적 포스트랩사리언(Postlapsarian) 입장의 열렬한 옹호자로서 알려졌다.(3)

 

Review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그 문제에 관련된, 간절한 일련의 기사들과 편집인 사설을 출판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첫 번째 크리스마스.. 기쁨으로 충만한 천사들은 그 중요한 극적인 순간이 이르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사랑하는 구주께서 직접 그 싸움의 현장에 나타나신 것이었다… 그는 그가 타락한 인간에게 하라고 하신 것이 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것이었다.”(4)

 

두 번째 편집인 사설에서 더글라스는 왜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죗된 본성을 취하셔야만 하였는지를 설명하였다. “구약시대 동안에 살았던 믿는 자들의 부활을 포함하여, 구속의 경륜 안에 있는 모든 다른 단계들은 오직 시험의 무대에 우리와 같이 참여한 그리스도의 승리에 달려 있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우주가 보는 앞에서, 인간이 소유하고 살아야만 하는 것과 똑 같은 상황 속에서 정복하지 못하셨다면, 어떤 인간도 정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없다.”(5)

 

그 시리즈의 마지막 기사에서, 더글라스는 예수의 모본 안에서 인간은 시험을 정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인간의 대리자로서 그는 인간이 죄 없이 살 수 있음을 보여주셨다.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우리도 또한 승리할 수 있다’ (시대의 소망 영문 389). 예수께서는 인류가 사용할 수 없는 것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그의 믿음만이 죄를 승리한 그의 비밀이었다. ‘그리스도의 승리와 순종은 인간에게 속한 것이었다… 우리가 그의 인성 안에 인간이 사단과 쟁투를 벌일 때에 사용할 수 없는 능력을 부여할 때, 우리는 그의 인성의 완전성을 파괴하게된다’ (Seventh-day Adventist Bible Commentary, Ellen G. White Comments, vol. 7, p. 929).”(6)

 

편집인 사설에 더글라스가 발전시킨 개념들 중 하나는 그에게 아주 소중한 것이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에 사는 마지막 세대와 관련된 것이었다. “예수의 믿음은 예수의 성품을 형성한다; 이것이 재림교의 마지막 세대들에 의하여 이룰 그리스도와 같은 삶의 놀라운 모본에 참여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목표이다.”(7)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마지막 세대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연결된 인간의 의지가 이기심과 죄에 대한 모든 시험들을 물리칠 수 있을까 망설이는 모든 의심들을 영원히 지워버릴 것이다.”(8)

 

1971년부터 1974년까지 여러 해 동안 더글라스는 그리스도의 타락된 인성과, 그가 인성을 취하신 이유에 대한 크리스마스 사설들을 실었다.(9) 사람들이 왜 이러한 기사를 썼는가 물었을 때에 더글라스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분명히 이것은 진리가 쓰여지는 것을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에게 활력점이 되었다… 나는 단순히 우리 교회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그 견해와, 내가 매일 성도의 교제를 나누고 있는, 아직도 그들의 생활과 생각 속에서 그러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대총회의 여러 형제들에게 따듯한 지지를 보내고 싶었을 뿐이다.”(10)

 

(성경연구부의 반응)

 

1970년 제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 성경주석 7-A가 출판된 직후, 대총회 성경연구부는 그 책의 부록 중 하나를 개정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것은 1972년 2월 Ministry 잡지에 특별 부록을 실음으로 이루어졌으며, 다음과 같이 시작하였다:

 

교리에 관한 질문들의 출판과 함께 성육신 하실 때의 그리스도의 인성과, 특별히 인간의 죄에 대한 투쟁 속에서 그 본성과 인간의 본성과의 관계에 대한 큰 관심이 일어났다.

 

교리에 관한 질문들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성육신 하실 때의 그리스도의 본성’이라는 제목의 부록B에서 이탤릭체로 인한 강조와 소제목을 이용한 해석들 등을 최대한 줄임으로 그 증언들이 독자들의 스스로의 능력과 양심에 의하여 이해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한하였다.

 

“현재 양식 안에 있는 내용들은 대총회의 성경연구부에 의하여 검토되었으며, 앞으로의 발표에 큰 도움을 줄 양식으로서 공인 받았다… 이 내용을 읽는 독자들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간의 조화와, 그리고 그를 오직 신으로서만 또는 전적인 인간으로서 만들려는 현존하는 위험들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성육신에 포함된 신비적인 요소들은 계속적인 연구가 필요 되는 분야이다.”(12)

 

성경연구부는 이탤릭체들을 제거하였으며, 문서의 내용을 재정립하였고, 몇 인용구들을 지웠다. 더 중요한 것은, 여러 제목들과 소제목들을 신학적인 경향을 갖지 않도록 다시 쓴 것이었다. 예를 들어서, 제목III에서 그리스도께서 “죄 없는 인성을 취하셨다”(13)라고 쓰여진 것은 “인성을 취하심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는 그 인성 안의 죄와 악한 성향에 참여하지 않으셨다”(14)고 그 인용구절의 내용과 더 화합되게 바뀌어졌다. 이렇게 함으로, 부록B의 저자들과의 논쟁을 피하면서, 성경연구부원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그들 나름대로의 결론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중립적인 내용을 제시할 수 있었다.

 

공식적인 발표에서, 그 때 당시 성경연구부의 부장이었던 하이드(Gordon Hyde)는, 우려하는 마음으로, 커져만 가는 새로운 그리스도론의 영향력을 지적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모든 사람들이 교리에 관한 질문들 안에 강조된 논점들을 기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우리 중 한 두 성경학자들과 몇 반대 그룹의 지도자들이 포스트랩사리언(Postlapsarian) 입장이 강조하고 논쟁하는 부분들에 대하여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교리에 관한 질문들의 입장이 압도하고 있으며 교회의 중요한 요직에 있는 지도자들에 의하여 주장되어지고 있다… 그러나 지난 3-4년 동안, 몇 Review의 편집인들의 사설들과, 몇 반대 그룹의 간행물들을 통하여 이 문제들의 부활에 대한 제시가 있었다.”(15)

 

(더글라스(Herbert E. Douglass)의 안식일 학교 교과를 통한 반응)

 

더글라스가 Review and Herald에 그의 사설을 실었을 당시, 그는 “그리스도 우리의 의”라는 제목의 1974년 첫 기 안식일 학교 교과를 준비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16)

 

예수의 인성 문제는 “의로운 예수”(17)라는 제목 하에서 다루어졌다. 기초 성경절은 로마서 8:3절이었고, 서론에서 다음과 같은 엘렌 화잇의 증언이 인용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인류를 도우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을 때에 존재하였던 인류의 죄들과 연약함을 지셨다. 인류를 대신하여, 타락한 인간의 연약성을 지신 채로, 그는 인간이 당할 수밖에 없는 모든 면에서 사단의 시험을 받으실 것이었다.”(18)

 

첫 두 부분에서 예수의 신성에 대하여 충분히 설명한 후, 더글라스는, “예수는 인간이었다” (빌립보서 2:5-6); “상호간의 이해” (히브리서 2:17); “시험받으신 예수” (히브리서 4:15; 12:3, 4); “죄 없는 삶” (로마서 8:3; 요한복음 16:33)이라고 붙인, 마지막 4 소제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인성대하여 설명하였다. 각 성경절에 대한 설명은 주로 엘렌 화잇의 증언을 인용하였다. 새로운 해석이 엘렌 화잇의 증언들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글을 인용하여 그 해석을 반증하는 것이 적합하였다. 빌립보서 2:5-7절과 요한복음 1:14절에 관련되어 다음과 같은 전통적인 증언이 인용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성을 취한 것처럼 가장하지 않으셨으며, 실제로 인성을 취하셨다… (히브리서 2:14). 그는 마리아의 아들이었고, 족보를 따지면 다윗의 혈통이었다. 그는 인간, 심지어는 인간 예수 그리스도라고 불리었다.”(19) “4000년 동안 인류의 육체적인 힘과, 정식적 능력과, 도덕적 가치관은 저하되었으며, 그리스도께서는 퇴락된 인류의 연약성을 취하셨다. 그렇게 하심으로서 그는 타락의 절망의 구렁에서 인간을 구하실 수 있었다.”(20)

 

예수는 죄 없으셨다. 왜냐하면 그가 죄 없는 육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죗된 형상의 육체”속에서 죄 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더글라스는, 예수께서 “누구든지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온전히 의지하는 자들은, 하늘에 법을 순종하는, 죄 없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예수께서 보여주셨다고 결론 짓는다.(21)

 

후에 다시 다루겠지만, 더글라스는 예수께서 죗된 육체에 오신 이유를 특별히 강조한다. 그는 그리스도론과 소테리올로지[Soteriology:그리스도를 통한 구원론-역자주] 간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참으로 이 문제가 바로 모든 논쟁의 핵심이라고 생각하였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관한 서로 다른 의견들의 문제를 풀기 위하여 대총회 지도자들은 특별한 위원회가 소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 위원회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문제를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그리스도론에 관한 그들의 결론을 알아보기 위하여 이 위원회의 보고서를 검토할 것이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위원회의 그리스도론)

 

이 위원회는 특별히 위랜드(Robert J. Wieland)와 쇼트(Donald K. Short)의 문서를 검토하기 위하여 소집되었었다. 그래서 이 위원회는 “위랜드와 쇼트 문서 검토 위원회”라고 알려졌다.(22) 1950년대 초,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이 두 선교사들은 대총회에 교회를 위협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개성과 사업에 관한 새로운 해석에 관하여 처음으로 경고한 사람들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그들의 견해를 문서로 제출하라는 요청을 받았으며, 그들은 타이프라이터로 쓴, 1888년 재검토라는 제목의 소책자를 만들었다.(23)

 

그 위원회의 일들을 용이하게 처리하기 위하여, 필요 되는 특정 자료들을 모으도록 세 개의 임무가 위탁되었다. 그 위원회의 첫 번째 모임은 1974년 10월 25일에 열렸으며, 두 번째는 1975년 2월 17일부터 19일까지, 세 번째와 마지막 모임은 1976년 4월 23일부터 30까지, 캘리포니아의 팜데일에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온 중요한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1975년 2월 17일 모임의 보고서는, 위원회가 위랜드와 쇼트 형제들의 의견에 대하여 어떤 방법으로 부분적인 합의점을 제시하였는가 하는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먼저 그들은 존스와 와그너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한 기별과, 그리고 예수의 인성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에 대하여 특별한 공헌을 하였다고 인정하였다. 그러나 그 위원회는, 엘렌 화잇이 존스와 와그너가 한 모든 말들을 승인하지는 않았다고 결론 지었다.(24)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논쟁에 들어가기를 거절하였다.

 

근본적으로, 이러한 논지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팜데일 위원회의 보고 가운데 논의된 것들이었다.(25) 한편,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온 몇 재림교 신학자들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였는데, 그들은, 성경에 의하면 그 의미는 단지 칭의에만 적용되는 것이며 성화와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포드(Desmond Ford)와 살롬(Alwyn Salom)을 포함한 오스트레일리아 교회들의 19명의 대표들은 그 문제를 의논하기 위하여 팜데일 합회에 초대받았다. 그 두 사람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그들의 견해를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분명하게, 어느 누구도 그 두 가지 주제가 직접 연결되어 있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부분에서, 보고서는 위원회의 결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1. 그리스도는 진정한 신성과 인성이 연합된, 신인이셨고, 또한 신인이시다.

“2. 그리스도께서는 실패와 영원히 잃어버림 바 될 수 있는 위험 속에서 시험의 모든 영역을 경험하셨다.

“3.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인류가 사용할 수 있도록 주신 것들만을 사용하여 시험을 극복하셨다.

“4.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법에 온전히 순종하셨고 죄 없으셨다.

“5. 그의 삶과 대속의 죽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으로 하여금 믿음으로 죄 용서를 받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도록 하셨다.

“6.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위치가 변할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이 은혜 안에서 자라나면서 유전적으로 물려받거나 후천적으로 길러진 죄에 대한 성향을 극복할 수 있다.”(26)

 

이 보고서는 그리스도의 인간의 타락된 본성에 참여하심과 그의 죄 없는 삶을 동시에 강조하면서, 전통적인 해석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엘렌 화잇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회의에 참가하였던 사람들이 이 해석에 모두 찬성하였던 것은 분명히 아니다. 사실 “타락 전” (prelapsarian)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의 수나 “타락 후” (postlapsarian)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의 수는 비슷하였다. 그래서 이 회의 보고서는 이 문제에 대하여 어느 한쪽 입장만을 지지하지 않고 단지 이 문제에 대하여 조화된 의견을 갖게 되기를 촉구하면서, 이 문제를 양쪽 모두 인내의 정신아래서 계속 연구해나갈 것을 장려하면서 끝을 맺었다.

 

결국 이 회의는 이 두 해석 중 어느 쪽이 바른가를 결정짓기 위한 것이었기보다는 단지 이러한 두 가지 의견이 교회 안에 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되어버렸다. 어떤 사람들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그리스도의 인성”과 같은 기초교리에 관하여 서로 다른 의견이 교회 안에 존재하는 것은 재림교회가 심각한 신학적 위기에 직면한 증거라고 여겼다. 지오프리 J. 팍스톤은 그의 책 “재림신조의 흔들림”은 팜데일 회의에 외부로부터 참가하였던 사람들의 의견을 명확히 나타내고 있다. (27)

 

내부로부터 보았던 한 재림교 신학자 아더 레로이 무어는 1980년에 “신학적 위기”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였던 그의 박사논문에서 같은 결론을 맺고있다. (28) 무어는, 포드의 팜대일 연설에 힘을 입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개혁주의자들”(그가 부르는 대로 말하면)의 새로운 해석을 조직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29)

 

(팜데일 회의에 제출되었던 포드의 논문)

 

1976년 4월 팜데일 회의에 참가하였던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온 대표자들 가운데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아본데일 대학에서 가르쳤던 영향력있는 신학자 데스몬드 포드가 있었다.

 

여러 해 동안 포드는 교회가 원죄설을 거부함으로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교리를 무효로 만들었다고 이 교리에 대한 그의 의견을 퍼뜨리고 있었다. 그는 “그러므로… 세 가지 이설을 만들어 내었다,”고 말하면서, 이 이설들은 “(a) 복음이 칭의와 함께 성화를 포함한다는 것과; (b)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아담의 인성을 취하셨다는 것과; (c) ‘마지막 세대’는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완전한 성품을 이룩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적고 있다. (30)

 

이러한 생각이 미국 전역에 걸쳐서 퍼지게 되었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이 문제에 관하여 공식적인 의견을 세우기 위하여, 포드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협의회에서 이 문제를 발표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포드는 팜데일 회의에서 3가지 논문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첫 번째 것은 “바울적 표현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범위와 한계”였고, 두 번째 것은 “성육신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관계”, 세 번째는 “엘렌 화잇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였다. (31)

 

포드는 “교리에 관한 질문들”(32)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입장을 취하였지만, 그의 입장은 더 명확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담의 죄 없음을 취하셨지만 그의 능력은 취하지 않으셨다. 그는 우리의 연약함을 취하셨지만 우리의 죗됨은 아니었다. 아담처럼 그는 죄질 수 있었지만 죄 짓지 않으셨다.” (33)

 

이러한 그리스도론을 통하여 포드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오직 주입된 의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순수한 법적인 변화만을 의미한다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한 그의 교리를 발전시켰다. “이것을 입기 위하여, 그러나 다른 방법으로,” 그는 적기를, “성화가 포함되지 않은 칭의만이 신약이 말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이며, 이러한 의는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선물이다”고 하였다. (34)

 

이러한 ‘순수한 법적인 의’에 관한 가르침은 결국 포드와 그의 신봉자들로 하여금 복음주의적 재림신앙을 형성하게 하였으며, (35) 이러한 가르침은 구원에 필요 되는 순종의 중요성을 하락시켰으며, 앞으로 올 심판의 두려움이 없는 구원을 제시하였고, 1844년의 예언적 중요성을 모두 거절하게 되었다.(36) 이러한 극단적인 결론은 그들의 가정과 논리적인 화합을 이루고 있지만, 그러나 그들은 전통적인 재림교 그리스도론과 또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한 1888년 기별과 근본적으로 반대적인 입장을 이루었다. 또한 이러한 교리에 관한 반대는 신속히 일어났다.

 

(허버트 E. 더글러스가 전통적 그리스도론을 다시 확인하다)

 

그의 첫 번째 안식일 학교 교과였던 1974년 첫 기 안식일 학교 교과서 발행에 이어서 더글러스는 1977년 제 이 기 안식일 학교 교과를 준비해 주기를 부탁 받았다. 그는 교과 제목을 “예수, 인간의 모본”이라고 붙였으며, 이 제목은 그 전 교과의 제목인 “의로운 예수”와 연결되는 후편이었다.

 

이러한 원고들은 언제나 교회의 교리적 문제들이 잘 화합하고 있는지를 관리하는 세계적으로 조직된 위원회에 제출하여 심사를 받게 되어있다. 이 두 번째 원고는 실제로 몇 사람들의 반대를 받았으나, 대총회 안식일 학교 부는 그러한 비판에도 불고하고 그 원고 인쇄를 승인하였다. (37)

 

이 교과의 주요는 개요부분에 인용되었던 엘렌 화잇의 증언으로 요약되어질 수 있다: “우리는 의와 거룩하심의 완전함 속에서 온전하신 인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는 우리 믿음의 창조자이시며 완성자이시다. 그는 인간의 모형이시다. 그의 경험은 우리가 겪어야 할 경험의 척도이다. 그의 성품은 우리의 모본이다. 우리가 그를 바라보고 생각함으로 그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38)

 

전통적인 재림교 그리스도론에 충실하였던 더글러스는 반복하여 말하기를 “나사렛 목수였던 예수는 ‘유전의 대 법칙의 결과’를 받아들임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는 ‘인류의 연약함 아래 있었으며…. 실패와 영원히 잃어버림을 당할 수 있는 위험 속에서 모든 인류 자녀들이 싸워야 할 그 싸움을 싸우셨다.’” (39) 계속적으로 엘렌 화잇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더글러스는 죄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가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재차 언급하였다. “우리 중 한 사람으로서, 그는 순종의 한 예를 보여주실 것이었다… 그는 우리가 겪어야 할 모든 시험을 견디셨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은 능력을 자신을 위하여 사용하시지 않으셨다… 그의 삶은 우리도 하나님의 법에 순종할 수 있음을 증거 하는 것이다.” (40)

 

“만약 신이 인간의 겉모양만을 취하여 이 땅에 왔다면, 그의 행동은 사단의 비난의 답을 주지 못하였을 것이다. 문제는 하나님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 죄를 저항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41) 그의 확신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그는 다음과 같은 엘렌 화잇의 증언을 인용한다: “그리스도의 승리와 순종은 진정한 인간의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잘못된 견해로 인하여 많은 잘못된 결과들을 만든다. 만약 우리가 그의 인성에 인간이 사단과 대항할 때에 사용할 수 없는 능력을 부과한다면 우리는 그의 인성의 온전함을 파괴할 것이다.” (42)

 

안식일 학교 교과 외에, 더글러스는 레오 반 덜슨과 함께 여러 다른 과제들에 관하여 예수-인성의 표준이라는 제목으로 일종의 주석을 편찬하였다. (43) 더글러스에게는 예수께서 단지 “인간의 모본”뿐만이 아니라 “인성의 표준”이었다 – 다른 말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도 성취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더글러스는 이 주제를 1975년에 출판된 그의 책 완전, 불가능한 가능성 (Perfection, the Impossible Possibility)에서 이미 논한바 있다. “하나님의 은혜의 진열장”이라는 장에서 더글러스는 그가 여러 번 인용하였던 엘렌 화잇과 다른 선구자들의 가르침을 재확인하고 있다. 그는 또한, 그처럼, 예수께서 타락한 인성에 참여하심이 단지 그리스도론적인 사실만이 아니라 중요한 구원론적 사실임을 주장하였던 카알 바스와 에밀 부르너와 같은 뛰어난 신학자들도 언급하고 있다. 더글러스는 기독교인의 완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죗된 인성에 참여하셨다는 것을 인정하는데서 가능하게 된다고 믿었다.

 

더글러스는 명확하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엘렌 화잇은 예수의 승리를 절대로 과소평가하지 않았으며, 그리스도께서 아담의 타락 전 인성-즉 죄의 퇴락성과 연약함에 방해받지 않는 인성-을 취하셨다는 대 기독교적 이설을 지지할 수 있는 어떠한 구실도 남기지 않았다.” (45)

 

물론, 이 운동의 시작부터, 무엇이 재림교 그리스도론의 토대인가를 재확인하는 일에 있어서 더글러스는 혼자가 아니었다. 리뷔우 엔 헤랄드(Review and Herald)의 편집장이었던 케넷 우드와 같은 다른 음성들도 또한 들렸다.

 

(케넷 우드, 전통적인 그리스도론을 재확인하다)

 

현재 엘렌 화잇 유산협회 회장인 케넷 우드는 1966년부터 1982년까지 리뷔우 엘 헤랄드 잡지사 편집인이었다. 그는 1977년, “예수, 인류의 모본”이라는 제목 하에 발행된 안식일 학교 제 이기 교과와 병행하여 발행한 세 편집인 사설을 그가 쓰기 전까지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문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나타내지 않았었다.

 

그 첫 번째 사설은 1977년 5월, 허버트 더글러스가 쓴 교과공부와 비슷한 시기에 출판되어졌다. 우드는 그 공과를 “높은 가치를 지닌”것으로 평가하였다. “이 안식일학교 공과들은 그리스도께서 잃어버린 인류를 구원하는 일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완전히 구비하고 있었다고 강조한다. 그의 완전한 죄 없음만을 제외하고는 그리스도는 인류와 완전히 같은 상태에 있으셨다 (엘렌 화잇 서신 17, 1878을 보라).” (47)

 

또한, 우드는 “모든 기독교인이-제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을 포함하여-이러한 해석과 또한 다른 영감 받은 증언들에 대하여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48)고 말한다. 이것은 팜데일 회의에서 증명되어졌다. 회의 참석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죗된 인성을 유전 받으셨다는 의견과 그렇지 않다는 의견 즉, 죄 없는 인성을 취하셨다는 두 의견으로 갈라졌었다. (49)

 

우드는, 재림교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그리스도를 드높이는 특별한 사명을 의탁 받았다고 믿었다.  “그들이 이 일을 행하고 있는가? 마땅히 해야될 만큼은 하고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아마 너무 많은 교인들과 사역자들이, 그리스도를 ‘전적인 인간’(그리스도는 오직 인간만은 아니셨다; 그리스도는 또한 신이셨다)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하는 염려 때문에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하여 논하는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몇 교인들과 지도자들이 역사적 재림주의의 그리스도, 즉 우리가 마땅히 살아야 할 방법으로 사셨던 그리스도, 우리가 시험받는 것처럼 시험받으셨던 그리스도, 우리가 승리해야 할 것을 승리하셨던 그리스도, 그의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 사시겠다고 약속하신 그리스도에 관하여 설교할 때에 불편함을 느꼈었다.” (50)

 

우드는 그의 만족감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그러므로 대총회 안식일학교부가 이번 기 과정공과를 통하여 세상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오랫동안, 또한 집중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끈 것을 기뻐하자.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업과 삶에 관한 이번 기 교과의 결과가 모든 믿는 자들에게 더 큰 이해를 줄 것이며, 이로 인하여 열려진 영혼들의 마음속에, 셋째 천사의 기별이 큰 외침으로 이어지기 전 반드시 이해되어야 할, 성육신의 문제가 연구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51)

 

이 사설이 발간된 다음 달에 에드워드 헤펜스터의 책 “신이신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인간의 아들이신 예수의 개성과 본성에 관한 연구”(52)라는 부제와 함께 출판되었다.  이 책에 대해서는 뒤에 다신 다룰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그해에 출판된 케넷 우드의 두 사설이 이 책의 출판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주시해야 한다.

 

헤펜스터의 논증에 대하여 우드는 1977년 12월 22일 출판된 사설 “최고의 선물”을 통하여 그의 입장을 재차 표명하였다. 우드는 먼저 모든 지식을 초월하는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로 시작한다. “베들레헴의 놀라운 이야기는 바로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시어 인류에 동참하셨다는 것이다.” (53)

 

“하나님의 아들이 인류와 함께 사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는 것보다도 더  놀라운 사실은 바로 그가 죗된 인류와 함께 사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이다! 아담이 에덴에서 죄를 짓지 않았을 때에라도 하나님의 아들이 인성을 취하는 것은 거의 무한한 굴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인류가 4천년간 죄로 말미암아 연약하여진 때에 인성을 취하셨다. 이러한 결과가 어떠하였는지는 예수의 육신의 조상들의 역사 가운데 드러나 있다. 그는 이러한 유전을 지니고 우리의 슬픔과 시험을 당하시고 우리에게 죄 없는 생애의 모본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다. (시대의 소망 49)” (54)

 

두 번째 사설에서 우드는 어떻게 예수께서 죗된 인간의 육체 가운데서 죄 없이 사실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였다. 그는 분명히 이 문제는 “믿음과 이성 모두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단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거나 설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 진리를 거절하지 말아야 한다”(55)고 주장한다. “어떻게 신성과 인성이 한 개인 속에서 섞일 수 있는가”(56)와 같은 성육신의 다른 문제도 또한 신비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을 받아들인다. 

 

우드는 그리스도께서 죗된 인성을 취하셨다는 언급으로부터 끌어낸 두 가지 위험한 사상들을 경고한다. 그 두 가지 사상은 첫째 “그리스도께서는 신이 아니셨고 오직 인간이셨다”하는 것과, 둘째, “그러므로 그는 죄로 더렵혀졌다거나 또는 죄에 대한 성향이 있었다” (57)하는 사상들이다. 우드는 이러한 사상을 견제하기 위하여 엔렌 화잇의 증언을 인용한다: “‘어떠한 경우라도, 죄에 대한 성향이나 죗됨이 그리스도께 있었다거나, 그가 어떠한 경우라도 유혹에 굴복하였을 것이라는 작은 인상도 남기지 말라.’ (SDA 성경주속, 엘렌 지 화잇 주석, 5권, 1128페이지).” (58)

 

우드는, “(1) 인간의 죗된 본성을 취함이 그리스도를 더럽히거나 죗되게 만들지 않았으며 (2) 예수께서는 온전히 그의 아버지께 충성을 드렸고, 죄의 가장 근본인 반역에 대항하셨다”고 말한다. (59)

 

우드는 그의 첫 번째 언급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리스도께서 문둥병자를 만졌을 때에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라. 예수께서 그들을 만지심으로 더럽혀졌는가?… 그렇지 않다. 그 대신, 그 문둥병자가 깨끗해짐을 얻었다.” “신성이 인성을 닿을 때 신성은 더럽혀지지 않는다. 그 대신 인성이 축복을 받고, 치료함을 얻으며 또한 정결해진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태어나셨으며, 그가 죗된 인성과 결합하실 때에 “그가 이것을 받아들인다는 사실로서 유전적인 모든 더러움은 깨끗케 되었다.” (60)

 

두 번째 언급에 관하여, 우드는 반역의 어떠한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언제나 그의 아버지의 의지와 법에 온전히 화합되셨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요한복음 14:30); 또한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요한복음 5:30). 예수께서는 자신의 원을 가지고 계셨다-모든 인류가 그러한 것처럼- 그러나 그는 그것을 아버지에게 굴복시켰다-성령에 의하여 거듭나는 자가 모두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처럼.” (61)

 

예수께서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았지만 죄는 없었다고 성경에 기록되었을 때에 “우리”가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 우드는 묻는다. “그는 이교도들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아마, 그는 주로 성령에 의하여 거듭난 사람들(요한복음 3:3-8), 곧 더 이상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고 ‘육체 안’에 있지 않으며, ‘성령 안에서’ ‘영의 생각’을 하는 자들을 의미하였을 것이다.” (62) 그러므로, “영에 의하여 거듭난 자들은 그리스도의 능력을 통하여 모든 시험을 성공적으로 물리칠 수 있으며, 마음의 적과 싸우는 일에 승리할 수 있다.”(63)

 

타락한 인성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사신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따르는 자들이 죄악과의 싸움에서 어떠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가 하는 예증을 보이셨다.” (64) 글을 끝마치면서 우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을 우리가 섬기고 있는가. 얼마나 놀라운 구세주를 우리가 가지고 있는가! 승리의 삶을 살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얼마나 놀라운 능력이 우리에게 주어졌는가!” (65)

 

(에드워드 헤펜스터의 그리스도론)

 

에드워드 헤펜스터는 저명한 기독교 철학 교수였으며, 그는 신학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를 이룩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실제로 의미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여러 미국 대학교들에서 가르쳤으며, 1955년부터는 그때 당시 워싱턴 DC에 있었던  SDA 신학교에서 가르쳤다. 미시간 주, 베리엔 스프링스에 위치한 앤드류스 대학교에서 그는 조직신학과 기독교 철학을 담당하였다. 1967년 그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로마린다 대학교 종교학부에서 부름을 받았으며, 1970년 은퇴할 때까지 그곳에서 머물렀다. (66)

 

헤펜스터는 여러 해 동안 재림교회 잡지의 충실한 기고자였다. 특별히 Ministry, Sign of the Times, These Times. 재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 성경주석에서 고린도후서 부분은 그가 직접 쓴 것이다. 은퇴 기간 중에도 여러 권위 있는 책들을 저술하였다: 우리의 대 제사장(1972), 제한 없는 구속(1974), 하나님과의 만남(1975), 신이신 인간(1977), 등은 모두 워싱턴에 있는 리뷔우 엔 헤랄드 출판소에서 출간되었다. 

 

지금 우리가 연구하는 주제에 관해서, 헤펜스터는 그의 책 “신이신 인간”에 그의 그리스도론을 자세히 거론하였다. 이 책은 재림교회 신학자들 중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인간의 아들인 예수의 개성과 본성”(이 책의 부제)에 관하여 가장 조직적으로 접근한 책이다. 모든 방면의 그리스도론이 취급되었다: 인류 역사 속의 그리스도, 성육신, 예수의 탄생, 신성포기에 관한 교리, 그리스도의 지각의 중심, 그리스도와 죄, 그리스도의 죄 없는 상태, 그리스도께서 받으셨던 시험, 그리스도의 독특성.

 

헤펜스터에게 성육신은 모든 시간과 영원함 속의 가장 큰 기적이었다. 이것은 진정한 기독교의 중심적 사실이다. “만약 성육신을 믿지 않는다면, 기독교 믿음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67) 왜냐하면, “우리 믿음의 기초는 단지 그가 무엇을 가르쳤는가 하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무엇이었는지, 무엇을 하셨는지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68) “신성과 인성의 연합은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 안에 두 본성을 이루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인간이라는 말이 쓰이게 된 것이다.”(69) 예수의 초자연적인 탄생을 강조하면서 헤펜스터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즉 완전한 인간이자 완전한 신-에 대하여 강조하였다.

 

헤펜스터는 그리스도의 인성이 아담의 타락전의 죄 없는 인성이 아니었다고 믿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육신 하심으로 종속적이며, 의존적이고, 복종적인 종의 누추한 형체를 가지고 오셨다. 그는 아담이 죄 짓기 전의 완전한 본성이 아니라 연약하여진 인성을 취하셨다. 그는 능력과 뛰어남을 가진 새로운 피조물로서 이 땅에 오시지 않았다. 백성들 가운데 영예와 권력과 영화를 누리는 대신 그는 자신을 낮추셨다. 그가 걸으셨던 굴욕적인 인생은 그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완결되었다.”(70)

 

헤펜스터는 예수께서 타락전의 인성을 취하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도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그는 타락후의 인성을 취하셨다고 믿는 사람들과도 달랐다. 그는 죗된 본성을 가지고 있는 것과 죄의 결과를 물려받은 인성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분명히 “만약 죄의 전달이 자연적인 유전으로 이루어진다면 예수께서도 우리가 부모들로부터 유전 받는 것을 마리아로부터 유전 받아야 한다 (무염시태설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71)

 

헤펜스터는 죄가 유전적인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인간이 태어날 때에 아담으로부터 유전 받은 것이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죄의 상태라고 하는 것이 바로 “원죄”설이다. “죄는 개인이 온전히 하나님과 분리됨으로 나타나는 정신적인 상태이다. 우리는 이렇게 분리된 상태를 그리스도께 적용시킬 수 없다. 그는 우리처럼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로 태어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하나님이셨다. 그는 유전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것만 마리아로부터 물려받을 수 있었다. 이 의미는 곧 그리스도께서 연약하여진 육체적 상태, 즉 우리 모두가 물려받은 죄가 육체에 끼친 결과를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 없이 태어난다. 모든 사람들은 새롭게 함이 필요 된다. 그리스도는 그렇지 않았다. 여기에 우리와 그리스도간의 큰 차이가 있다.”(72)

 

헤펜스터는 원죄를 유전적인 과정에서 분리시켰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다른 인간들과 똑 같은 죗된 본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이 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경(로마서 8:3)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죗된 육체’아래 보내었다고 말하지 않고, ‘육신의 모양’이라고 하였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똑 같이 태어났다면, 바울은 ‘모양’이라고 하지 않고 ‘죗된 육체’라고 하였을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 본성의 죄 없음을 밝히 나타내기 위하여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73) “그리스도께서 육체적 퇴보의 영향 아래서 태어났다. 그는 이 모든 것을 마리아로부터 유전 받았다…  그는 육체적으로 퇴보된 인류의 영향아래 있었다. 그러나 죄는 유전적으로 전달되지 않고 인간이 하나님과 분리됨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죄 없이 태어났다.” (74)

 

시험에 관하여 다룰 때에, 헤펜스터는 “죄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은 죗된 사람이나 죄 없는 사람이나 동일하다. 아담은 죄 없는 사람으로서 시험받았다. 그는 완전한 육체적 힘과 정신적 상태를 갖고 시험을 받았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아담이 창조되었을 때처럼 완전한 육체적 상태에 있지 않았다. 그리스도에게는, 4000년간 연약하여진 육체적 상태를 유전 받음으로 인하여, 시험의 강도는 더욱 세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굴복 당할 수 있는 가능성은 아담의 것보다 훨씬 컸던 것이다.”(75)

 

하늘 아버지에 대한 그의 믿음과 성령의 능력에 의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승리할 수 있었다. “이 점에 관하여 그는 우리의 완전한 모본이시다. 우리는, 우리의 노력으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함 속에서 인간으로서 살기를 선택하였다. 어느 누구도 이것을 바꿀 수 없었다. 그는, 우리가 해야 하는 것처럼, 믿음으로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 (76)

 

결론적으로, 전통적인 그리스도론과 교리에 관한 대답의 저자들이 가르치는 그리스도론의 차이점에 관하여 헤펜스터의 노력은 높이 평가할 만한 일이다. 한번 이상, 그는 그리스도께서 아담의 타락전의 인성이 아니라 인류가 4000년간 퇴보된 상태의 인성을 취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죄를 종교적 본질에 입각한 정신적인 것으로 취급하고, 유전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를 “죗된 육신의 모양”(로마서 8:3)으로 보내어 이루려고 하신 그 사명인, “육체에 죄를 정하”는 일을 실제로는 행하지 않으신 그리스도와 있게 되는 것이다.

 

헤펜스터는 논증은 성경적이기 보다는 더 철학적이며, 엘렌 화잇의 글을 인용하지도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왜 케넷 우드가, 신이신 인간이 발간되고 난 후, 1977년 크리스마스 편집인 사설을 통하여 역사적인 재림교 그리스도론을 재확립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헤펜스터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문제를 풀기보다는 이 문제를 더욱 가설적으로 만들었다. 유전학에 관한 최근의 발견은 그의 가설과 대치된다. 성경 인류학에 의하면 인류는 전적인 존재이며, 만약 죄의 영향이 전달될 수 있는 것이라면,  죄도, 하나의 힘으로서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미니스트리, Ministry 잡지 편집인이었을 때의 J. R. 스팽글러의 그리스도론)

 

우리는 1956년 “재림주의의 새로운 이정표”가 발표되었을 때 미니스트리 잡지의 편집장이었던 알란 앤더슨이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를 기억한다. 1966년 스팽글러가 그 뒤를 이었으나, 스팽글러는 여러 해를 걸쳐서 더욱 심각하여진 그 논쟁에 방관하는 입장을 취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왜 미니스트리의 편집장이 이 문제에 대하여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않는지를 이상하게 여길 정도로 되었다.

 

이러한 질문이 그에게 던져졌다: “미니스트리의 편집인들은 그리스도의 본성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현재 진행중인 논의들에 관하여 할 말이 더 많지 않겠는가? 이 문제에 관하여 어느 쪽에 서있는가?”(77)

 

스팽글러의 대답은 솔직하고, 직접적이며 확실하였다. 3년간의 목회자 생활동안 이 문제에 관한 그의 견해는 바뀌어왔다. “지금도” “나는, 구주의 인성에 관한 옳지 않은 인상을 남기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이 문제에 관하여 대답하기를 꺼려한다”고 그는 적었다. (78) 그러나 그때 당시에는 아직도 대총회가 이 문제에 관하여 공식적인 투표를 하지 않았던 때였기 때문에, 그는 이 문제에 관하여 부담 없이 표현할 수 있었다.

 

교리에 관한 질문들과 미니스트리 잡지에 실진 몇 기사들이 발표되기 전에는 나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하여 깊은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나는 단지 그가 신-인간이었다고 믿었고, 전도회 등지에서 그렇게 그를 소개했었다. 목회자 초기 기간동안에는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처럼 악을 향한 성향과 경향이 있었다는 방향으로 주로 배워왔다. 나는 그리스도께서 한번도 시험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것 외에는, 그가 나와 똑같은 인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오십 년대, 교회가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하여 초점을 맞추고 있을 때, 나의 입장은 변하였다. 지금 나는 그리스도께서 시험 당할 수 있고, 실패할 수 있는 진정한 인간이었으나, 악에 대한 성향이나 경향이 전혀 없는 죄 없는 본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믿는다.”(79)

 

성경이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하여 가르친 부분들을 검토한 후, 스팽글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졌다: “예수께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 같은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을까? 그가 ‘태로부터 끊어’졌을까? 그가 태어남으로 진노의 자식이 되었을까? 그가 태어남으로 잘못된 성격을 형성하였을까? 우리의 구주께서 그가 태어남으로 취하게 된 악에 대한 강한 유전적인 성향과 타락성에 대항하여 싸워야만 하였을까? 그렇다면, 어떤 유전적인 성향과 타락성을 가지고 있었을까? 또는 비록 절대로 굴복 당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본성이 모든 종류의 성향과 타락성을 가지고 있었을까?”(80) 교리에 관한 질문들을 통하여 대중에게 알려진, 베이커 목사에게 보내는 엘렌 화잇의 편지의 몇 내용은 그의 입장을 결정지었다.-특별히 “한 순간이라도 그에게 악의 성향이 있었지 않았다”는 언급.(81)

 

예수께서 정말로 우리와 같았을까? 스팽글러만이 이 근본적 문제에 관하여 방황하지는 않았다: 리뷔우 엔 헤랄드의 부 편집인이었던 토마스 데이비스도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보았으며, 1979년 출판된 그의 책 예수께서 정말로 우리와 같았을까? 라는 책에 그의 해답을 적어보았다.(82)

 

(토마스 A. 데이비스: 예수께서 정말로 우리와 같았을까?)

 

만약, 헤펜스터의 책이 예수께서 죄 없는 인성을 취하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완성적인 연구를 한 책이라면, 데이비스의 책은 흥미로운 또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다. 초기 출판물들로 인하여 데이비스의 입장은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그의 목표는 그의 초기 입장을 다시 반복하는 데에 있지 않았다. 예수께서 정말로 우리와 같았을까? 에서 저자는 예수께서 같아지셔야 했던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하여 정의를 내리려 하였다. 이 연구의 중점은 바로 이것에 있다.

 

데이비스는 그의 독자들에게 히브리서 2:11-17절을 주의하여 볼 것을 말한다. 11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렇기 때문에 그가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신다. 12절에도 “형제”라고 재 언급하였고, 13절에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 14절에는 “혈육에 함께 속한 자녀”라고 하였다. 16절에는 예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을 도와주기 위하여 오셨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17절에서 예수께서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셨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83)

 

데이비스는 결론짓기를, “성화 된 자-하나님의 자녀라고 구별된 자들은 곧 짧게 거듭난 남녀”(84)라고 하였다. 그는 실제로 추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형제’라는 단어 안에 숨어있는 의미가 아마 성경에서 발견될 수 있는 모든 것들 중에서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가장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이 단어가 히브리서 2:11-17에서 쓰여지고 있는 방식은 성경과 예언의 신 안에서 막대한 연구분야를 제공한다.”(85)

 

히브리서 2:17절에 의하여 데이비스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예수께서는 모든 인류에게 공통적인 인성으로 성육신 되지 않았다. 그는 모든 면에서 모든 인간과 같아지기 위해서 오시지 않았다. 그가 취하신 인성은 거듭나지 않은 죄인들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의 인성은 오직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범사에 그의 형제들과 같이 되셨다는 의미는 그가 거듭난 자들과 같은 인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86)

 

이러한 입장은 과거에 다른 재림교 신학자들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신학자들 중에서 데이비스는 W. W. 프레스코트를 든다. 프레스코트는 그의 편집인 사설을 통하여 “예수께서는 성령에 의하여 거듭났으며… 어떤 사람이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고 거듭나기를 구한다면 그는 예수께서 그렇게 되셨던 것처럼 새로운 경지의 경험을 하게될 것이다”(87)라고 언급하였었다. 이러한 개념은 또한 케넷 우드가 1977년 12월 29일자 편집인 사설을 통하여 언급하였던 것이다. (88)

 

이러한 언급이 예수께서 거듭남의 경험을 실제로 했어야만 했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데이비스는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언제나 성령으로 충만하였으며, 죄에 대하여 온전히 흠 없었으며, 깨끗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그러한 거듭남의 경험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가 예수에 대하여 언급할 때에는 더 낳은 언어를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89)

 

“우리가 ‘거듭난’ 상태로서 예수의 영적, 도덕적 본질에 대하여 언급할 때에, 이것을 거듭난 인간의 영적, 도덕적 성질과 같은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는 이상적인 인간이셨다. 그는 모든 면에서 절대적으로 완전한 상태에 있었다. 인간은 거듭났을지라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연약한 점들을 없이 해야 될 상태에 있는 흠 있는 인간이다.” (90)

 

데이비스는 로마서 8:3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이 성경절의 의미는 “그리스도의 인성과 우리의 인성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두 인성이 완전히 똑 같다는 뜻은 아니다. 그 분 안에는 다른 어느 누구에게서도 발견될 수 없는 독특성이 있었다.” (91)

 

제 6장에서 데이비스는, 몇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엘렌 화잇의 증언들을 언급한 후에 그의 논증의 “중심 사상”을 다음과 같이 표명하였다: “우리는 이 모든 연구의 중심이 되는 사상, 즉 예수께서 거듭난 사람과 같은 본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개념을 인식해야 한다. 그는 ‘범사에 그의 형제들과 같이 되셨으며,’ ‘그러나 죄 없으셨다’ (히브리서 2:17; 4:15). 그의 인성이 ‘우리의 것과 같았다’(92)는 것을 명심하자. 그는 ‘시험 당하시고 증거하시기 위하여 인성의 의무를 취하셨으며,’ (93) ‘우리의 타락한 본성’을 취하셨다. (94, 95)

 

“만약 예수께서 인간이 되셨다는 사건이 가장된 연극이 아니었다면, 만약 그가 인간이 되셨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그가 인간으로서-거듭난 인간으로서-타락한 본성으로 인한 어려움을 당했을 것이라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한다. 예수께서 거듭난 인간의 본성보다 낮은 본성을 취하셨으며,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본성을 취하셨다고 주장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또한, 예수의 본성이 거듭난 사람의 것보다 더 우수한 것이었다고 믿는 것은 그를 인류 위에 올려놓는 것이며 이러한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다. 거듭난 상태는 인간이 현재 상태에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영적인 경지이기 때문에 이렇게 믿는 것은 그가 인간이 가질 수 없는 다른 유리한 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96)

 

데이비스는 예수께서 진정으로 신-인간이었다고 믿었다. “그는 ‘타락한 인성을 가진’ 인간이었으며, 그의 인성은 ‘타락된 상태에서’ ‘죄로 인하여 더렵혀지고 저하된’ 것이었다. 그는 죗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연약하여진’ ‘인류의 연약함’ 아래 구속되어진 상태에 있었지만, 그러나 죄 속에 거하지 않았으며, 그러므로 그는 죄가 없으셨다. 그는 죄 없었으며, 죄책감도 없었고, 그의 의지는 그의 아버지와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97)

 

(윌리엄 G. 존슨의 견해)

 

윌리엄 G. 존슨은 1982년 12월 2일 어드벤티스트 리뷔우의 편집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논쟁에 관련된 그의 견해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98)

 

그는 이 논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1979년에 출판된 히브리서에 관한 그의 책(절대적인 확신: 히브리서는 우리 시대에게 말한다)을 통하여 그의 견해를 표출하였다.(99) 그는 서론을 통하여 이 책이 성경주석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이 쓰여진 목적은 단순하다: 히브리서의 ‘기별’을 확실히 조명하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위한 이 기별의 중요성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100)

 

그리스도론을 논하지 않고는 히브리서를 논할 수 없다. 그 이유는 히브리서의 첫 두 장이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존슨은 예수께서 온전한 하나님이시자 온전한 인간이었다고 생각하였다. 그의 인성에 관하여, “그 사도는 [예수께서 우리의 형제가 되심]을 우리가 확신하기를 원한다. 하늘의 대 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에 관한 그(사도)의 모든 논쟁은 만약 그가 그리스도의 인성을 설명할 수 없다면 패배할 것이다. 그래서 그는 히브리서 2:5-18을 통하여 이 점을 강력하게 논하였지만, 그는 이 문제를 계속해서 재차 다시 언급하고 있다.” (101)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이 되심”은 “가족 혈연에 의한 것”이다. 그는 “후천적으로가 아니라 출생으로” 우리와 형제가 되셨다. 비록 그의 근원이 그를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나게 하지만, 그는 우리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온 우주에게 우리가 그의 형제라는 사실을 공포하기 원하신다.“ (102)

 

제 3 장에서 존슨은 예수께서 받으신 고난과 시험을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의 진정한 상태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보았다.(103) 그러나 그는 히브리서가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한 논쟁의 중심적인 현대 질문들에 대하여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고 믿었다. “문제는 신약의 저자들이 ‘죗된’과 ‘죄 없는’ 본성에 관한 분명한 선을 긋지 않고 있으며 이 문제에 관하여 설명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게는 이것이 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의 인성과 그의 시험의 실제성-모든 시험을 통하여 그의 죄 없으심에 관한 확신, 그리고 시험 당할 때에 그리스도인들을 도우실 수 있는 그의 능력에 관한 확신으로서 충분하였다.” (104)

 

각주에 존슨은 다음과 같이 설명을 붙였다: “신약성서가운데 오직 두 절만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한 문제에 관하여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 두 성경절들은 로마서 8:3과 빌립보서 2:7절이다. 그러나 이 두 성경절들의 의미가 모호하기 때문에 논쟁하는 양쪽 모두 같은 이 같은 성경절들을 사용한다.” (105)

 

비록 존슨은 그 책을 통하여 어느 한쪽을 공공연히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글과, 그가 후에 한 언급들은, 그가 죄 없는 인성, 즉 아담의 죄 짓기 전의 본성을 더 지지하고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106)

 

(에드워드 W. H.: 인간, 예수)

 

1979년 여러 면에서 주목할 만한 한 책이 나타났다. 이 책은 에드워드 W. H. 빅의 인간, 예수이다. 빅은 재림교단 안에서 Let Me Assure You 등과 같은 여려 책의 저자로서 알려져 있다.(107)

 

인간, 예수가 재림교회 신학에 관한 연구시리즈에 나오고 있을 때에, 그는  런던 대학과 옥스퍼드 대학 졸업 후, Vanderbilt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나팅감의 포레스 피드 대학에서 종교학부를 맡고 있었을 때였다. 나름대로 빅은 예수 그리스도의 개성에 관한 여러 신학자들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사람들이 내가 누구라고 하느냐?”

 

예수의 인성에 관한 문제는 빅에게 자연적으로 부담을 주었다. 그는 제 6장에 이 문제를 논하였다: “실제로, 진정한 인간.” 그는 기독교의 근본적인 믿음과 비슷한 문제를 나열한 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언급들이 예수의 개성이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았다고 말하지 않고 있음을 보라. 그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하여 단지 그가 우리와 비슷하였으며, 이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무엇 때문에 중요한가? 한 영향력 있는 사람은 이 특성은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필요한 것이라고 제시한다. 취하지 않으신 것은 구원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인류가 구속이 중점이기 때문이다. ” (108)

 

빅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그는 그의 인성을 통하여 인류 구원의 매개체가 되었다.” (109) 게다가, “예수의 인성은 믿음의 고백이다. 이것은 초기 신자들의 믿음의 조건이었으며, 필요에 따라서 명백히 제시되었다(예를 들어서 도세티즘이 이 문제에 대하여 질의했을 때에).”(110) 그러나 신이자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정확하게 언급하는 것은 분명히 간단한 일은 아니다(“진정한 하나님이시자, 진정한 인간” 칼케돈 공의회에서 정의를 내린 것처럼). 그러나 빅은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이다’라고 말할 때에 이 ‘하나’는 어떠한 단일성을 의미하는가? 또한 이러한 단일성을 논하는 것 자체가 올바른 것인가?”(111)

 

빅에 의하면, 이러한 단일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문제를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견해로부터 연구되어져야 한다: 역사적 견해와 경험적 견해. 이러한 접근법에 의하여 빅은 성육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말로 정의를 내린다: “성육신이란 하나님께서 인성 안에 참여하심을 의미한다. 이 뜻은, 비록 예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죗된 인간의 존재적 구조 안에 참여하셨지만, 그는 이러한 참여로 인하여 정복당하지는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버림당하신 그분을 통하여 세상을 받으셨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의 비밀이다. 이것은 신자가 하나님 안에서 믿음을 구하려고 나아 올 때에, 또한 매일 매일 그의 믿음을 갱신할 때에 경험할 수 있는 비밀이다. 죄인이 하나님을 버릴 때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그 사람에게 나타내시기 위한 길을 찾으신다.”(112)

 

빅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은 하나가 된다. ‘성육신’은 객관적인 실제성을 표현한다. 예수 안에서 인성이 이해되고, 그는 첫 열매, 곧 우리의 모범이요, 묘형이며, 중재자가 되신다(한 단어로는 부족하다). 예수를 진정한 하나님으로서, 또는 진정한 인간으로서 표현하지 않는 단어는” “절대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어느 것도 예수의 진정한 인성을 타협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어떠한 종류의 혼종어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113)

 

이것이 예수의 인성에 관한 빅의 견해였다. 그는 어떤 점에서 엘렌 화잇의 정의로 돌아온다: “그의 인성의 완벽함과, 신성의 완전함은, 우리가 하나님과 화합될 수 있게 하는 견고한 토대를 우리에게 형성해 준다.”(114)

 

빅의 증언으로서 1970년대가 막을 내렸다. 이 시기 동안, 교회의 주 간행물들을 통하여 선구자들의 그리스도론은 여러 방법으로 재확인되었다. 이렇게 재 활기를 얻은 전통적인 가르침에 맞선 반대자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해답으로서 중간적인 입장, 또는 두 입장을 모두 동시에 지지하는 절충안들을 내놓았다. 이러한 경향은 1985년 6월 미니스트리 잡지가 이 두 가지 반대되는 해석을 동시에 실었을 때에 절정에 다다랐다.

 

(참고문헌)

1Thomas A. Davis, Preludes to Prayer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Pub. Assn., 1906), p. 346.

2_, Romans for the Every-Day Man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Pub. Assn., 1971).

3Eric Claude Webster in Crosscu”ents in Adventist Christology made a detailed study of the Christology of Herbert E. Douglass (pp. 347-428).

4Herbert E. Douglass, “The Humanity of the Son of God Is Everything to Us,” Review and Herald, Dec. 23,1971.

5_, “Jesus Showed Us the Possible,” Review and Herald, Dec. 30,1971.

6_, “The Demonstration That Settles Everything,” Review and Herald, Jan. 6, 1972.

7Ibid.

8Ibid.

9See “Why the Angels Sang,” Review and Herald, Dec. 21, 1972; “Emmanuel, God With Us,” Dec. 20, 1973; “The Mystery of the Manger,” Dec. 19, 1974.

10Herbert E. Douglass to Bruno W. Steinweg, January 1986, in “The Doctrine of the Human Nature of Christ Among Adventists Since 1950” (1986), p. 12.

11_, in Ministry, February 1972.

12Ibid.

13Questions on Doctrine, p. 650.

14Ministry, Supplement, February 1972, p. 5.

15Gordon M. Hyde, in Review and Herald, Aug. 20, 1974.

16Adult Sabbath School L£ssOtIS (Grantham, Eng.: Stanborough Press Ltd., 1973), ~t quar- ter 1974, p. 3. The references in the following five footnotes were reprinted in this source.

17Ibid.

18E. G. White, Selected Messages, book 1, pp. 267,268.

19Ibid., p. 247.

20_, The Desire of Ages, p. 117.

21_, Review and Herald, Sept. 27,1906.

22See Minutes of the Righteousness by Faith Committee, February 1975.

23Robert J. Wieland and Donald K. Short, 1888 Re-Examined, revised and updated (Leorninster, Mass.: Eusey Press, Inc., 1987).

24Wieland, Ellen G. Mite, Endorsements of the 1888 Message, as Brought by Jones and Waggoner (St. Maries, Idaho: LMN Publishing).

25Review and Herald, May 27, 1976.

26Ibid.

27Geoffrey J: Paxton, The Shaking of Adventism (Wilrnington, Del.: Zenith Publishers, Inc., 1977). See Fritz Guy in Spectrum, July 1978, pp. 28-60. See also David P. Duffie, Theological Issues Faring the Adventist Church (Grand Terrace, Cali£: 1975).

28Arthur Leroy Moore, Theology in Crisis: A Study of Righteousness by Faith (Amarillo, Tex.: Southwestern Pub. Co., 1980).

29Regarding the human nature of Christ, see Moore, pp. 242-292.

30lbid., p. 23.. note 1.

31Jack D. Walker, Documents From the Palmdale Conference on Righteousness by Faith (Goodlettsville, Tenn.: 1976).

32lbid., pp. 36-41; Questions on Doctrine; pp. 647-660.

33Desmond Ford, quoted in Gillian Ford, The Human Nature of Christ in Salvation, pp.8,9. 

34Desmond Ford, Documents From the Palmdale Conference on Righteousness by Faith, p. 36

35The periodical Evangelica, published by Andrews University students who were

Ford’s followers, is an exanlple. It systematically sets in opposition “evangelical Adventism against traditional Adventism. “

36See Desmond Ford’s paper presented at the Glacier View Conference, Colorado, in August 1980.

37Steinweg (p. 12) mentions the names of those who approved of the publication of the manuscript by Douglass: Elders Pierson, Ranlpton, Nigri, Eva, Hyde, Lesher, Dower. It was not an approval ofDouglass’ thesis concerning the fallen human nature assumed by Christ, but rather the acceptance ofits publication in the Sabbath school lessons in harmony with the spirit of the Palmdale Conference. The opposite opinion was given in the lessons of the first quarter 1983. See our chapter 13, pp. 175, 177.

38The Seventh-day Adventist Bible Commentary, Ellen G. White Comments, vol. 7, p. 970. Quoted in Herbert Douglass, “Jesus the Model Man,” Adult Sabbath School Lessons, second quarter 1977, p. 3.

39E. G. White, The Desire of Ages, p. 49. Quoted in Douglass, “Jesus the Model Man,” p.3.

40_, The Desire of Ages, p. 24. Quoted in Douglass, Quarterly.

41Douglass, “Jesus the Model Man,” Lesson 2, section 6.

42The Seventh-day Adventist Bible Commentary, Ellen G. White Comments, vol. 7, p. 929. Quoted in Douglass, “Jesus the Model Man.”

43Herbert E. Douglass, jesus, the Benchmark of Humanity (Nashville: Southern Pub. Assn., 1977).

44Herbert E. Douglass, Edward Heppenstall, Hans K. LaRondelle, C. Merwyn Maxwell, Perfection, the Impossible Possibility (Nashville: Southern Pub. Assn., 1977). See pp.

35-45.

45Ibid., p. 42.

46A. John Clifford and Russell R. Standish, Conflicting Concepts of Righteousness by Faith (Rapidan, Va. : Hartland Institute Publications, 1976) ; Robert J. Wieland, How Could Christ Be Sinless as a Baby? and Some Questions Regarding the Nature of Christ, 2nd ed. (Chula Vista, Calif: 1977); Albert H. Olesen, Think Straight About the Incarnation (Platina, Cali£: Unwalled Village Publishers, 1977) .

47Kenneth H. Wood, “Jesus-The God-man,” Review and Herald, May 5,1977.

48Ibid., p. 12.

49Report of the Palmdale Committee on Righteousness by Faith, p. 1. See Review and Herald,

May 27,1976.

50Wood .

51Ibid.

52Edward Heppensta1l, The Man Who Is God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Pub. Assn., 1977).

53Wood, in Review and Herald, Dec. 22, 1977.

54Ibid.

55~, in Review and Herald, Dec. 29, 1977.

56Ibid.

57Ibid.

58Ibid.

59Ibid.

60Ibid.

61Ibid.

62Ibid.

63Ibid.

64Ibid.

65Ibid.

66See Webster, pp. 248-346. 

67Heppenstall , p. 21.

68Ibid., p. 25.

69Ibid., p. 22.

70Ibid., p. 74.

71Ibid., p. 126.

72Ibid.

73Ibid., pp. 136, 137.

74Ibid., p. 138.

75Ibid., p. 154.

76Ibid., p. 162.

77J. R. Spangler, in Ministry , Apri11978.

78Ibid.

79Ibid.

80Ibid., p. 23.

81Ibid.

82Thornas A. Davis, Was Jesus Really Like Us?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Pub. Assn., 1979).

83Ibid., p. 22. (Italics supplied.)

84Ibid., p. 24. (Italics supplied.)

85Ibid., p. 25.

86Ibid., pp. 30, 31.

87Ibid., p. 32.

88Wood, in Review and Herald, Dec. 29, 1977. See our chapter 12.

89Davis, Was Jesus Really Like Us? p. 35.

90Ibid., p. 37.

91Ibid., p. 46.

92Ellen G. White manuscript 94, 1893.

93E. G. White, in Signs of the Times, Aug. 2, 1905.

94_, The Desire of Ages, p. 112.

95Davis, Was Jesus Really Like Us? p. 53.

96Ibid.

97Ibid., p. 97.

98After January 5, 1978, the Review and Herald was called Adventist Review. ,

99WiI1iam G. Johnsson, In Absolute Confidence: The Book ofHebrews Speaks to Our Day (Nashville: Southern Pub. Assn., 1979). 100Ibid.,p.11.

101Ibid., p. 55.

102Ibid., pp. 57, 58.

103Ibid., p. 61.

104Ibid., pp. 63, 64.

105Ibid., p. 73, note 11.

106See our chapter 14.

107Edward W. H. Vick, Let Me Assure You (Mountain View, Calif.: Pacific Press Pub. Assn., 1968};jesus, the Man (Nashville: Southern Pub. Assn., 1979}.

108-,Jesus, t e Man, p. 53.

109Ibid., p. 54.

110Ibid.,p.57.

111Ibid., p. 93.

112Ibid., p. 94.

113Ibid., pp. 94, 95.

114Ellen G. White letter 35, 1894. Quoted in The Seventh-day Adventist Bible Com- mentary, Ellen G. White Comments, vol. 7-A, p. 4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