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에 오셔서 사셨던 그리스도 (우리를 체휼 하셨던 분) (Touched with Our Feelings)
제 9 장 교회 공식 출판물로부터 발췌된 기록들(1916-1952)
1915년은 성육신에 관한 재림교회의 교리적 변화가 있었던 해는 아니다. 하지만, 이 해에 엘렌 화잇이 사망하였다. 그녀의 죽음과 함께 1844년과 관련된 선구자들 그룹의 마지막 사람이 사라지게 되었다. 엘렌 화잇은 그녀의 마지막 생애동안에도 계속적으로 경고의 기별을 울렸다: “우리는, 구주께서 우리를 인도하신 방법과 과거 역사에 나타난 그의 가르침을 잊는 것 외에는, 장래에 대하여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1)
1916년과 1952년 사이의 나왔던 문서들 중 현존하는 기록들은 예수께서 아담의 타락한 인성-다른 말로, 타락한 본성-을 취하셨지만 한번도 죄를 짓지는 않으셨다는, 예수의 인성에 대하여 교회가 언제나 가르쳐온 입장에 대하여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교회 정기간행물로부터 발췌된 기록들)
교회 공식 정기간행물로부터 발췌된 200여개의 기록들은 이 전통적인 입장에 대하여 일치된 의견을 나타내고 있다. 목사들, 교수들, 편집자들, 행정자들, 여러 대총회장을 포함한 대총회 행정위원들 모두는 다 같은 입장을 고수하였다.
1917년 9월 6일, 조셉 스티드(Joseph E. Steed)는 Review and Herald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이 시험받을 때에 도와주실 수 있고, 또한 인간의 중보자로서 일하시기 위하여, 인간으로서의 경험을 하셔야만 하였다… 이미 밝혔듯이, 구주께서는 죗된 육체에 태어나심으로 육체의 모든 타락성에 의하여 지배를 받는 인간이 되셨고, 그 육체에 계실 때에 그는 다른 인간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처럼 죄와의 투쟁 속에서 고통을 당하셨다.”(2)
오웬(R. S. Owen)의 증언도 또한 흥미롭다: “육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업은 육체 안의 죄를 정죄 하시는 것이었다. 죄는 우리의 죗된 육체 안에 거하며, 그리스도께서는 죄의 집에서 거하심으로 죄를 정죄 하셨다. 그러나 그는 죄의 불법적인 요구에 굴복하지 않으셨으며, 죄의 초청에 한번도 응하시지 않으셨다. 그는 인간이 비록 육체에 거하나 하나님을 위하여 살 수 있도록 역사하는 힘을 하나님께로부터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3)
같은 달에, 뤼피(J. A. Rippey)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발간된 Signs of the Times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다윗이 가지고 있었던 것과 같은 육체를 예수께서 취하셨다는 것보다 더 정확하게 이 문제를 설명하는 것은 없다. 다윗은 누구였는가? 이새의 아들이었다. 이새는 누구였는가? 룻의 아들이었다. 룻은 모합사람이었으며, 모합은 롯의 딸들 중에서 난 아들이었다. 창세기 19:36, 37. 그리스도의 조상들의 성품에 대하여 연구해보면 그들이 지상에서 가장 큰 어두움 가운데 있었으며, 죄의 가장 깊은 곳까지 갔었던 사람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 이 땅에 태어나셨을 때에, 그는 4000년간 타락되고 연약하여진 죗된 육체를 취하셨다. 그는 다른 계열을 통하여 오실 수도 있으셨다. 그러나 그는 인간이 죄 속에 빠져 절대적인 절망에 빠져버린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로 하여금 승리의 삶을 살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가장 연약한 상태를 취하여 이 땅에 오셨다. 그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셨다’ 히브리서 4:15. 그는 단순히 시험만을 받으신 것만이 아니었다. 그가 받으신 시험은 격렬하여 그는 시험받으심으로 고통을 느끼셨다. 2장 18절. 비록 예수의 육체는 조상들의 육체 가운데 나타난 모든 정욕을 포함하고 있었지만, 그는 죄에 한번도 굴복하지 않으셨다.”(4)
1927년 3월 22일, 윌칵스(L. A. Wilcox)는 Signs of the Time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포함한 기사를 실었다: “우리가 유전 받은 성향을 극복하는 것이 가능할까?” 윌칵스는 먼저 예수의 계보를 들어 답한다: “나는 그것(예수의 족보)이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그것을 통하여 예수께서 어떻게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셨는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본성의 성질 속에 더렵혀진 유전적 압박이 우리 속에 갇힌 사자가 철창을 뚫고 나가려고 하는 것처럼 강렬하였다. 4천년 동안 인류의 육체적인 힘과 정신적 능력, 도덕적 가치는 급격히 저하되었으며,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연약한 상태의 인성을 취하셨다. 이 길만이 그가 타락의 극치를 달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5)
윌칵스는 그의 논증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엘렌 화잇이 쓴 시대의 소망을 인용한다: “만일 우리가 어떤 점으로든지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것보다 더 혹심한 투쟁을 당한다면 그는 우리를 도우실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구주께서는 온갖 연약성을 지닌 인성을 취하셨다. 그는 시험에 굴복할 가능성을 가진 인성을 취하셨다. 우리는 그가 당하지 않은 것들을 하나도 질 것이 없다.”(6)
윌칵스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인자가 되심으로, 인간의 아들인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가 나처럼 되셨다는 것은 나도 그분처럼 될 수 있다는 증거이다. 내가 그의 거룩한 본성의 참예자가 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하여 그는 나의 인성에 참여하셨다. 우리가 고난들을 격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도 압도적인 힘으로 공격해 오는 시험들을 당하셨음을 아는 것은 우리에게 큰 힘을 더해준다. 죄는 예상치 못할 시간과 방법으로 유전적으로 연약하여진 상태에 있는 그리스도를 공격하였다. 그는 우리와 같은 죗된 성향과, 타락된 피와 유전된 연약성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능력을 사용하여 승리하셨다. 그는 나를 위하여 승리하셨다. 그는 나를 위하여 이루셨던 그의 승리를 값없이 주시는 선물로서 내게 주시고자 제안하신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 안에서, 또한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을 통하여 나는 정복자 이상 될 수 있다.”(7)
후에 Review and Herald의 편집자(1911-1944)이자, 엘렌 화잇 유산관리 위원회의 공동 설립자이며 초기 이사회의 회원이었던, F. M. 윌칵스는, 그리스도께서 타락된 인성을 취하셔야만 하였던 이유를 아는 것이 왜 중요한지 설명한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근거는 그가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으며, 인간의 형상 안에서 사단을 정복하셨고, 인류와 하나님 사이에 죄가 만들어 놓았던 틈을 그가 다시 연결하셨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바 된 인류를 위하여 겪으신 경험들을 통하여 그는 완전한 구세주가 되시었다… 그는 그의 모든 시련과 시험받으심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혹독한 시험을 겪으셨다. 그는 어떤 인간도 경험하지 못한 시험을 당하셨으나, 죄에 굴복 당하지 않으셨다. 그는 한번도 유혹자에게 정복당하지 않으셨다. 그는 모든 시련들을 승리하셨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심과,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그는 원수의 모든 공격을 저항하셨다. 그는 우리가 시련을 겪을 때에 주시는 연민과 함께, 승리의 유산을 우리에게 남겨주셨다. 그가 신성의 능력을 의지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그가 사용하신 모든 방법들은 우리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되어져 있다.”(8)
이러한 가르침은, 교회의 여러 간행물들의 편집인들만의 의견은 아니었다. 교회의 높은 지위에 있었던 지회장들, 부지회장들, 대총회 회장들도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가르침은 그리스도론 문제에 대하여 재림교회가 이룩한 가장 큰 믿음의 표현이었다. 여기서는 그 모든 개인들의 글들을 인용하기보다는 전체적으로 가장 대표적인 저자들의 글들을 인용하였다.
이 기간동안에는 W. W. 프레스코트가 단연히 가장 유능하였으며, 많은 업적을 남긴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는 1915년부터 1937년 사이에 대총회 부회장으로서 일하면서 여러 기사들을 통하여 교회의 가르침을 전파하였다. 이 문제에 관한 그의 해석은 이미 언급하였으므로, 다시 다루지는 않겠다. 후에, 1950년부터 1954년까지 대총회장으로 있었던 W. H. Branson도 여러 정규간행물들에 발표된 그의 글들을 통하여 같은 믿음을 표시하였다.(9)
여러 번 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죗된 인성의 연약성을 이해하시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직접 경험하셔야만 하였다… 그렇게 하심으로, 그는 우리의 뼈 중의 뼈와 살 중의 살이 되셨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그에게로 들어올리기 위해서 먼저 인간에게로 내려오셔야만 하였다.”(10) “그는 천사의 본성을 취하셨던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본성을 취하셨다. 그는 ‘그의 형제들과 같이’ 되셨다.”(11) “거룩한 하나님께서 인간과 함께 사시기 위하여 오셔서 인간의 육체 속에 거하시는 것은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었다.”(12)
스위스의 수도인 베른에 위치한, 남유럽지회의 두 회장들은 그 때 당시 미국에서 가르치고 있었던 그리스도론을 유럽에 전파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다. 올선(A. V. Olson)은 그리스도께서 취하신 타락한 인성에 관한 그의 확신을 먼저 시사하였다: “예수께서는 그의 어머니의 본성을 유전 받으셨다…”고 그는 썼다. “다른 인간들처럼 혈과 육 안에 만들어진, 예수라고 일컫는 자는 실제적으로 그들 가운데 사셨다.”(14) “그러한 이유로, 둘째 아담은 첫째 아담과 육체적으로 같지 않았다. 육체의 크기와 생명력의 저하와 관련되어 그리스도께서는 유전의 법칙에 의거한 우리의 ‘타락된 육체’를 취하셨으며 (시대의 소망, p. 112, 영문), ‘퇴폐된 상태의 우리의 본성을’ 취하셨다 (Signs of the Times, June 9, 1898).”
역시 남유럽지회의 회장(1954-1958)이었으며, 후에 대총회 부회장이었던 M. V. 켐블(Campbell)은 어떤 사람들이 예수의 본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가하려고 할 때에 이렇게 그의 견해를 표출하였다: “구세주께서는 이 세상에 오실 때에 천사들과 같이 다른 세계에서 오는 외계인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그는 출생을 통하여 잘 알려진 선조를 따라 인간 가족의 일원이 되셨다. 그는 다른 아기들처럼 무력한 아기로 태어났다… 예수께서는 첫째 아담처럼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아담은 창조되어졌을 때에 죄로 향하는 성향이 없었으나, 그리스도께서는 ‘죗된 육체의 형상’ (로마서 8:3)안에 오셨다. 그의 신성은 그의 인성을 감소시키지 않았다. 신성은 인성을 채웠으며, 인성 위에 넘쳐흘렀고, 인성을 둘러쌓았으나, 인성을 파괴시킬 수는 없었다. 구주께서는 유전과, 환경과, 악마의 강한 유혹들을 통하여 죄의 영향을 받으셨다… 죄를 극복하실 때에,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그는 오직 그의 가장 연약한 제자도 사용할 수 있는 무기만을 사용하셨다.”(16)
(유럽 재림교인들의 문헌들로부터 발췌된 기록들)
앞에서 언급한 두 유럽지회 회장들-둘 다 미국인이었음-의 증언들은 세계적으로 영어를 쓰는 재림교인들의 믿음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1874년 유럽 대륙에 이 기별이 처음 소개된 이후로 그들이 믿고 있었던 일반적인 교리는 무엇이었는가?(17)
우리가 아는바와 같이, Signes des Temps (Signs of Times) 잡지는 1876년 바셀에서 J. N. 앤드류스에 의하여 창간되었다. 그런데 이 잡지에 1938년까지 그리스도의 타락된 인성에 관한 기사가 한번도 실리지 않았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분명히 이러한 그리스도론은 그 때 당시 재림교회 가르침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았다.(18) 그 이유는 아마 유럽대륙에 사는 재림교인들이 이 문제에 관한 대부분의 신교도들의 일반적인 견해를 따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점에 관하여 Signes des Temps의 편집자는 이렇게 말한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공정성에 따라 그리스도께서는 창조 당시의 아담과 같은 상황, 즉 죄로부터 깨끗하지만, 유혹에 넘어갈 수 있는 상태에 처하셔야만 한다.”(19)
그러므로, 영어를 쓰고 있는 나라들에서 가르쳤던 전통적인 재림교회 그리스도론은 유럽대륙에서 완전히 불분명한 가운데 있지는 않았으나, 엘렌 화잇의 책들과 기사들이 번역되기까지 그 도입이 늦어졌던 것을 알 수 있다.
전통적인 그리스도론은 라틴 유럽 교회들을 위한 신문이었던 Revue Adventist에 처음 언급되었다. 그 기사는 1923년 11월 15일에 실렸다. 이 기사는 프랑스 합회의 전 회장이었던 Tell Nussbaum이 쓴 글이었다.(20) “예수, 하나님의 아들이자 인간의 아들”이라고 제목을 붙인 이 기사는 그리스도의 개성과 사업에 관한 재림교회의 가르침을 요약하고 있다. 여기 그 기사로부터 발췌된 문구가 있다:
“예수께서는 능력으로, 거룩한 성령을 통하여, 또한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언하셨다. 로마서 1:4. 우리의 연약한 육체 가운데 오셨으며, 죄 질 수 있는, 법 아래 태어나셨으나 그는 죄짓지 않으셨다. 그곳에서 죄는 정복당한 것처럼 보였으며, 인간은 타락한 본성으로부터 다시 거룩함을 이룰 수 있는 상태로 되돌려짐을 당하였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찾을 수 있으며, 예수께서 믿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계속 주시는, 하나님의 삶을 살 수 있었다.
“그의 후세대들에게 그의 완전한 본성을 물려주기 위하여 예수그리스도께서 목적하신 것은 성취되었다. 그러나 이 사업은, 우리가 지금 하늘에 계신 그 분을 보는 날까지 완결되지 않을 것이다 (요한복음 17:22). 오늘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베푸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에 의하여 걷게 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영이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케 하셨다. 우리에게 그 능력을 주시기 위해서 그는 죽음으로서 죄에 승리하셨다.”(21)
이러한 언급이 대부분의 유럽 대륙 재림교인들이 믿고 있었던 사상을 대표할 수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저자의 의도는 확실히 재림교회가 믿고 있는 바를 전파하는 것이었다. 같은 의도를 가지고 있는 기사가 1925년과 1926년 사이에 Revue Adventiste에 실렸다.(22) 이 기사들은 “한 시금석: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 안에 오시다(A Touchstone: Jesus Christ Come in the Flesh)”라는 의미 있는 제목으로, 소책자 형식으로 후에 다시 인쇄되었다.(23)
이 기사의 저자는 그 때 당시 프랑스 합회의 합회장이었던 궤닌(Jules-Cesar Guenin)이었다. 그는 엘렌 화잇을 포함한 재림교회 선구자들이 설립한 그리스도론에 대하여 완벽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글들을 많이 참고하였다. 이 주제에 대한 서론으로서 그는 요한일서 4:1-3을 인용한다: 하나님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를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이며,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않는 영은 적그리스도이다.
그런데, 궤닌은 묻는다: “성경이 말하는 ‘예수께서 육체로 오셨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그는 성육신에 대한 주 성경절들(빌립보서 2:5-8; 요한복음 1:14, 로마서 8:3, 히브리서 2:14-18; 4:15)을 언급한 후에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이 교리는, 전에도 그러하였으며, 지금도 그러한 것처럼, 교리의 교리로서, 사도적 또한 복음적 말씀의 극치이며, 진정한 기독교 신앙의 시금석으로서 큰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24)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문제를 제시함에 있어서 궤닌은 그의 미국 동료들의 입장을 지지한다: “인류의 구원은 신이 인간으로 됨으로서만 가능하였다. 우리의 것과 같은 육신으로 옷 입혀지셨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의로운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질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도덕적인 투쟁을 겪으셨고, 우리가 갖고 있는 똑 같은 위험을 감수하셨다.”(25)
그리스도께서 겪으셔야만 하였던 시험들에 관하여서는, 궤닌은 다음과 같은 엘렌 화잇의 증언들을 인용하였다: “만일 우리가 어떤 점으로든지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것보다 더 혹심한 투쟁을 당한다면 그는 우리를 도우실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구주께서는 온갖 연약성을 지닌 인성을 취하셨다. 그는 시험에 굴복할 가능성을 가진 인성을 취하셨다. 우리는 그가 당하지 않은 것들을 하나도 질 것이 없다.”(26)
더욱이, 궤닌은 그리스도께서 광야에서 받으신 시험에 관하여 개신교 신학자인 E. de Pressense의 글을 인용한다: “구세주께서는 자유에 대한 극심한 시험을 당하셨다. 그렇지 않았다면 도덕적 운명은 성취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그의 겸손하심의 신비를 온전히 받아들여 한다. 만약 우리가 죄 없음(sinlessness)을 그분께 적용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지구상에 현존하는 상태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며, 그의 인성은 단지 환상에 불과하게 되고 그의 무관한 신성을 보여주기 위한 투명한 막과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우리와 같지 않은 존재라면, 그는 더 이상 우리와 함께 있지 않다. 도덕적 투쟁의 감동적인 드라마가 설명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환상으로서 취급되게 된다. 우리는 더 이상 이 주제에 관한 시험과 투쟁에 대하여 말할 수 없게 된다.”(27)
죄에 대한 예수의 승리로부터, 궤닌은 다음과 같은 실제적인 교훈을 얻어낸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자들이 죄에 대하여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죄를 정복하셨다. 그러나 또한 그는 그렇게 하기 원하셨으므로 죄를 정복하신 것이며, 그렇게 하기까지 그는 오직 믿음과 기도로서 투쟁하셨고, 고통 당하셨다. 믿는 자들도 이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여 승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일이다.”(28)
이러한 성육신의 교리는 궤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재생시키는 속죄적 종교의 핵심이 되었으며, 이 교리를 거절하는 것은 바로 기독교의 모든 효능과 실제적 가치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 되었다.(29)
1942년 Revue Adventiste에 실린 두 아담에 관한 기사에서, J. C. 궤닌은 예수께서 우리의 육체를 전적으로 취하셔야 한다는 사실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어떤 신자들과 특정 신학이 고려하는 것처럼 만약 예수께서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가 전승자로서, 인류의 연약함을 체휼하실 수 있는 ‘큰 대 제사장’으로서, 또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다는 증거로서, 새로운 인류의 아버지가 되실 수 있었겠는가? 예수께서는 단지 죄를 멸하시고 죄인들의 범법함을 속죄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던 것이 아니었으며, 그는 거룩한 의지에 대한 완전한 순종의 모본을 보이시고, 이렇게 하기를 전심으로 바라는 모든 자들이 순종할 수 있다는 증거를 보이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이렇게 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죄 없이 절대적인 거룩한 삶을 사셔야만 하였다.”(30)
이러한 성육신의 교리를 비 재림신자들에게 설명하기 위하여 궤닌은 Signes des Temps에 일련의 기사들을 실었다.(31) 이 기사를 통하여 62년만에 처음으로 이 잡지에 재림교회의 그리스도론에 관한 글이 실리게 되었다. 이 기사들의 내용은 그 제목만을 보고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육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인류의 소망”; “예수께서 죄인이셨는가?” 이 기사들을 통하여 그는 “한 시금석: 육체로 오신 예수”라는 소책자에 소개된 가르침을 반복 설명하였다.
다른 저자들도 그 때 당시 재림교인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믿었던 가르침을 제시하였다. 영어로 된 기사에서 번역되어져 Revue Adventiste에 실려졌던 하워드(James Howard)의 글들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시험에 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 “죄에 대한 유전 받은 성향은 확실히 강력한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는 조상들의 ‘형태와 공통점’을 유전 받았다. 그녀는 죗된 육체 속에 태어났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도 인성을 유전 받았다.”(32)
이와 같이, 잠시 제네바를 방문중에 있었던 B. E. Beddoe가 1928년 7월 11일 “우리의 구속의 대가”라는 제목으로 한 설교에 대한 보고에 따르면, 그는 예수의 인성에 관하여, 우리와 같이 “육체의 성향과 죄로 이끄는 정욕을 아시는”분으로 나타내었다. 그리고, “그가 죄를 지을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조금도 주저함 없이 “물론이다”고 대답하였다.(33)
마지막으로, Chrles Gerber(34)가 쓴 전도용 소책자들-그 때 당시 수 천 권이 분포되었으며, 후에 합쳐져서 Le Chemin du Salut (구원에 이르는 길-The Path to Salvation)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던 전도지들-에 썼던 것을 다시 반복 인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35) “성육신의 신비”를 다루는 장에서, 그는 재림교 그리스도론을 확증하였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본성을 취하셨으며, 우리와 동일하게 되었던 그의 아들을 주셨다.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인자가 되실 것을 동의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셨다 (갈라디아서 4: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요한복음 1:14).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로마서 8:3).”
“이것은 기적이요, 신비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고, 인간이 되셨다. 하늘이 지상으로 낮추어졌다. 야곱의 사닥다리가 이 땅을 하늘로, 하늘을 땅으로 연결시켰다. 예수께서 인간으로 되셨다… 그는 배고픔과 목마름으로 고통 당하셨고, 우리처럼 실신하셨다. 그는 ‘범사에 그의 형제들과 같이’ 되었으며, 우리가 당하였던 것과 같은 시험을 당하셨고, 눈물을 흘리셨으며, 결국 돌아가셨다.”(36)
(안식일 학교 교과에서 발췌된 기록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안식일 학교 교과는 공식적인 재림교회 가르침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다.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준비하였으며, 전 세계 안식일 학교 위원회가 심사하여 출판한 안식일 학교 교과는 재림교회 믿음의 가장 큰 권위를 나타낸다. 매번 예수의 인성에 관한 문제를 다룰 때마다 그 공과에는 언제나 전통적인 가르침에 의한 주석이 뒤따랐다. 1916년부터 1952년까지의 기간 사이에 출판된 교과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아주 적은 부분만을 할애하였기 때문에 그 문제에 관한 모든 언급들을 인용할 수 있다. 첫 번째 언급은 1921년 제1기 과정책에 나오며, 성육신의 문제에 관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원래의 타락하지 않은 인성이 아니라, 우리의 타락한 인성을 취하셨다. 이 두 번째 시험을 통하여, 그는 전에 아담이 있었던 곳에 똑 같이 서셨던 것이 아니라, 이미 언급한바와 같이, 그는 엄청난 시련들과 맞서야만 하셨다. 즉, 승리의 명성과 함께, 결과적으로 우리의 본성의 중심에 자리잡은, 인간의 거룩한 소망 즉 완전한 거룩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엄청난 능력으로 무장된 악과 그는 맞서야만 하였다. 환경의 불리함과, 엄청난 위험들, 또한 만날 수밖에 없었던 반대의 맹렬함을 고려하여 볼 때, 우리는, 유혹과 시험을 받고, 아담 안에서 실패되었으나 그리스도안에서 현실화된, 죄 없는 영역으로 들어올려진 인성에 관한 큰 도덕적 성취의 위대함과 실제성에 대하여 올바른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37)
같은 해, 다른 교과에서는, 그리스도의 제사장직분에 관한 히브리서의 1,2장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달았다: “첫 장에서는 아들로서, 또한 하나님, 구주로서 소개되어졌고, 신성과 영원성이 강조되었던 그분께서는, 두 번째 장에서는 우리의 인성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모든 제한성을 가진 인자로서 우리와 만나신다. 그는 세상적이고, 개인적인 이름으로 알려졌으며, 죽음을 맛볼 수 있는(히브리서 2:9) 분이었으며,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되시며,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이셨던 것처럼, 진정으로 인간이 되실(17절) 분이셨다.”(38)
1921년 제3기 교과에서도 이 문제에 관한 똑 같은 개념이 명백히 나타난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여자에게서 나셔서 (갈라디아서 4:4) 우리의 죗된 육체를 취하셨을 때에 (로마서 8:3), 영원한 생명이 인간의 몸 속에 임하셨다 (요한일서 1:2).”(39)
1928년 제1기 교과는 에베소서에 기초하여 만들어졌다. 여기 에베소서 2:15절에 대한 주석이 있다: “육적이고 자연적인 인간은 하나님께 대한 그의 적대심을 없앨 수 없다. 이것은 그의 본성의 한 부분이다. 이것은 그의 본질의 모든 조직과 뒤엉켜져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우리의 혈육의 본성을 취하셨으며 (히브리서 2:14), ‘육체를 따라서는 다윗의 혈통’이셨고 (로마서 1:3); ‘그는 그의 육체 안에서 그 원수 된 것-육신의 생각-the carnal mind(로마서 8:7, KJV), the mind of the flesh(로마서 8:7 ASV)-을 만나셨으며 또한 그것을 폐하셨다. 그는 육체 안에서 죄를 우리를 위하여 영원히 정복하셨다.
(가려 뽑은 책들 가운데서 발췌된 기록들)
1916년부터 1952년 사이에 성육신의 교리에 관하여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여러 책들이 교회에서 운영하고 있던 여러 출판소들을 통하여 출간되었다 (Review and Herald Publishing Association, the Pacific Publishing Association, the Southern Publishing Association). 이러한 출판소들을 통하여 출판된 책들은 독서 위원회에 의하여 그 내용이 재림교회의 믿음과 교리에 맞는지 사전에 검토되고 승인을 받아야만 했던 책들이다.
1. W. W. 프레스코트의 “그리스도론 (The Doctrine of Christ)”
1920년에 출판된 The Doctrine of Christ를 통하여, 프레스코트는 만약 그리스도께서 그가 구원하시려고 오신 자들의 “혈육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그는 그들의 구세주가 되실 수 없으셨다고 주장하였던 것을 상기해 보자. 프레스코트의 마음속에는 이 진리야말로 복음의 가장 핵심적인 진리였다.
2. 맥가이어(Meade Macguire)의 “승리의 생활 The Life of Victory”
1921년 맥가이어의 책 “승리의 생활”이 출판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대총회 청년부를 창립한 사람이었다. 그는 성공적으로 가정 선교와 목회부의 서기로서의 직무를 수행하였다.(41) “죄의 무서운 본성”에 관하여 다루는 장에서, 맥가이어는 바울이 로마서 7:23절(“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에 내세운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이 유전된 죄의 법에서 구원받는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곧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인성을 취하셨다. 그는 유전 받은 죄의 법 아래에 있는 육신 안에서 죄를 정복하셨다. 그는 지금 우리의 지체 속에서 그와 같은 죄 없는 삶을 사시고자 제안하신다. 그의 임재는 죄의 법의 힘을 완전히 좌절시킬 수 있다.”(42)
다른 장에서 맥가이어는 다음과 같이 적는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셨을 때에, 그는 죗된 본성 위에 내려진 사형선고를 인정하셨다. 그는 우리의 본성, 아담의 본성, 사울의 본질을 취하셨으며, 이러한 본성은 마땅히 죽어야 한다는 사실에 관하여 하나님 아버지와 동의하셨고, 그는 자진하여 십자가를 취하사, 죽기를 피할 수 없는, 죽어야만 하는 타락한 본성을 지셨다… 이러한 큰 희생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만약 우리가 우리의 퇴락된 본성을 그의 십자가로 가지고 나와 그곳에 못박기 원한다면, 당신과 내 안에 있는 아담의 본성을 없앨 수 있는 길을 예비하셨다.”(43)
3. 에드워드슨(Christian Edwardson)의 “믿음에 관한 사실들 (Facts of Faith)”
1942년 에드워드슨은 성육신과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문제를 다른 각도로 취급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가 바로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라고 지적한 요한이서 7절을 논한다. 그는 천주교회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정하지 않기 때문에 교황권이 적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는 주장에 대응하여 다음과 같이 적는다:
“이러한 문제는 이 성경절에 나온 한 단어를 소흘히 취급함으로서 일어나는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부정하는 자가 아니라, 예수께서 그가 구원하시려고 오신 인류가 가지고 있는 것과 똑 같은 종류의 육신 안에 오신 것을 부정하는 자이다. .. 이러한 핵심적인 차이점이 진정한 ‘복음의 진리’를 판가름하는 시금석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타락된 인류와 만나시기 위하여 끝까지 내려오셨는가? 아니면 조금만 내려오셔서, 우리가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그리스도와 연결될 수 있고, 죄인들을 개인적으로 접촉해야만 하는 그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성인이나, 교황, 또는 사제들의 중재가 필요하도록 하셨는가? 바로 이점이 신교도와 로마 천주교의 다른 점이다.”
에드워드슨은 인간의 구속의 비밀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한다: “죄로 인하여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으며, 그들의 타락된 인성은 거룩한 의지에 대립되었다… 우리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인간은 죄로부터 구원을 얻을 수 있고, 순결과 능력의 근원으로 다시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결 매개체가 되시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신성과 인간의 인성 모두를 취하셔서 그의 신성의 팔로 하나님과 연결되고, 그의 인성의 팔로는 인류를 감싸서 그 둘을 그분 안에서 연결될 수 있도록 하셨다. 이러한 인성과 신성의 연합이 바로 복음의 ‘신비’이며, 타락됨 속에서 인류를 들어올리는 능력의 비밀인 것이다.”
에드워드슨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이유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죄로부터 구출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타락된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들과 만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낮추어 우리의 본성을 취하셨다 (우리의 것보다 우위의 육체가 아니라). ‘자녀들은 혈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히브리서 2:14, 17. 이 성경절은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잘 정립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같은 혈육을 취하셨다’; 그는 ‘그’ 육체 안으로 오셨다. 이것을 부인하는 자가 바로 적그리스도인 것이다.”(44)
4. 월쉬(Mary E. Walsh)의 “로마 바벨론의 술(The Wine of Roman Babylon)”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이 책은 성경과 천주교의 가르침을 비교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쓴 월쉬는 20년 동안 천주교의 열렬한 신자였었다.(45)
무염시태설에 관한 장에서 월쉬는 다음과 같이 적는다: “마리아가 그리스도께 준 모든 것은 그의 인간적인 육체였다.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줄 수 없다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모든 면에서 인간이었던 마리아는, 그의 아들에게 거룩한 본성을 물려줄 수 없었다.”(46)
예수의 인성과 신성에 관하여 언급한 후에, 월쉬는 로마서 8:3절과 히브리서 2:14, 17, 18절을 인용하여 결론을 맺는다: “마태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계보를 보면, 예수께서 아담의 아들 또는 아브라함의 아들임을 알 수 있다. 아브라함과 다윗이 얼마나 인간적인 사람들이었으며, 죄에 대한 성향이 있었는가 하는 것은 그들의 성품을 연구하여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조상들로부터 어떠한 인성을 물려 받으셨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47)
1950년대 초기에는, 성육신의 의미와, 죗된 육신 속에서 죄 없는 삶을 통하여 어떠한 결과를 성취하셨는지에 관한 여러 다른 연구들이 출판되었다. A. B. Lickey가 쓴 “영원한 그리스도(Christ Forever)”와 W. B. Ochs가 쓴 “내가 믿는 이것(This I Believe)”은 모두 Review and Herald 출판협회에서 1951년에 출판되었으며(48), 이 책들도 이 문제에 관하여 재림교회가 과거 100년 동안 가르쳐온 전통적인 입장을 고수하였다.
이 연구를 끝내면서, 특별히 급속한 변화가 일어나던 그 시기에 발표된 두 저자의 증언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1945년부터 1966년까지 Review and Herald 편집장으로 있었으며 여러 책의 저자였던 F. D. Nichol과, 1950년부터 1954년까지 대총회 회장이었던 W. H. Branson.
5. F. D. 니콜(Nichol)의 “반대에 대한 대답(Answers to Objections)”
1952년 니콜은 흔히 다음과 같이 재림교회를 반박해온 비판에 대하여 답변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꼈다: “제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는 가르치기를, 모든 인류와 같이, 그리스도도 죗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한다. 이것은 곧 그의 마음도 ‘만물보다 심히 거짓되고 심히 부패’(예레미야 17:9) 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에 의하여 그들은 가르치기를 그리스도께서도 인간의 구세주로서의 그의 지상 봉사시기에 실패할 수 있었다고 한다-즉 그는 ‘실패와 영원히 잃어버림을 당할 수 있는 위험’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반복적으로 언급하기를,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하셨으며, ‘죄를 알지도 못하셨고,’ 실패하거나 낙담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하였다.”(50)
이에 대한 니콜의 응답은, 무엇보다도 먼저, Review and Herald에 실린 두 기사를 통하여 발표되었고, 후에는 같은 해에 출판된 그의 책 Answers to Objection(51)에 다시 실렸다. 서론은 그 때 대총회 회장으로 있었던 W. H. Barson이 썼다. 그는 서론에 이렇게 적었다: “이 책은 제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가 가지고 있는 교리에 대한 비평가들의 반대에 대하여 명백하고 설득력 있게 대답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기쁨으로 이 책을 모든 복음 전도자들에게 권하는 바이다. 이 책은 신학적 비평가들의 공격과 복잡한 혼란 가운데 있는 탐구자들의 진정한 질문들에게 명백한 답변이 되어줄 것이다.”(52)
니콜은 그의 응답을 통해서 이 문제에 관한 재림교인들의 믿음에 대한 비평가들의 지적이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단순히 “제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을 무서운 이단이라고” 정죄 하는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자 노력하였다.(53) 그는 말하기를, 실제로 “재림교인들은 이 문제를 교리적인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이 없다. 이 문제에 관하여 발표한 문헌들 중 가장 진실된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E. G. 화잇의 글들이다.”(54) 반대자들이 시대의 소망에서 발췌한 인용문들을 가지고 그들의 판단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을 때에, 니콜도 같은 방법으로 “그리스도께서는 범사에 그의 형제들과 같이 되셨다”고 확증하였다.
“재림교인들이 믿는바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이것이 계시와 논리에 화합한다고 느끼기 때문에 우리는 이 믿음을 고수한다.” 니콜은 일반적인 성경구절(로마서 8:3. 히브리서 2:16, 14, 17; 4:15)에 입각하여 다음과 같이 반증한다: “반대자들은 오직 그리스도에 관해서는 ‘시험받다’라는 의미를 단지 ’해보다(tried)’ 또는 ‘점검해보다(tested)’라는 의미만을 가지고 있다는 구실로 이 성경절들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논증을 피하려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읽은 이 성경절들은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시험이 인류가 받는 것과 완전히 같은 것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음을 보아야 한다. 그렇다, 이 성경절들은 한 가지 다른 점을 지적하고 있다-그리스도께서 시험받으셨을 때에 그는 죄를 짓지 않았다. 이것은 인간에게 적용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는 크고 작은 일로 시험에 실패하였다. 이 성경절은 그리스도께서 죄를 지을 수 없었다고 말하지 않았고,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하였다. 만약 그가 그의 인성 안에서 죄를 짓는 것이 불가능하였다면, 왜 바울은 그 성경절들을 우리에게 제시하지 않았는가? 그가 그렇게 하였더라면 이것은 아주 중요한 계시가 되었을 것이다.”(53)
그리고 니콜은 계속해서 재림교인들만이 이러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결론을 내리기 전에 기라성 같은 여러 개신교회 신학자들을 지목한다: “그리스도에 관한 재림교회의 믿음은 바로 그는 진정으로 신이었으며 또한 진실로 인간이셨고, 그의 인성은 우리 앞에 있는 죄에 대한 시험과 똑 같은 시험들 아래 처해있었으며, 그는 그의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능력을 통하여 유혹들을 물리치셨고, 그렇기 때문에 그는 문자적으로 ‘거룩하며,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히브리서 7:26)라고 불릴 수 있다는 것이다.”(56)
다른 곳에 나타난 니콜의 표현들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그가 그 때 일어나고 있었던 새로운 해석의 지지자였다고 생각한다.(57) 그러나 그리스도의 시험에 관한 주제에 대하여 그가 쓴 것을 보면 이러한 생각이 근거 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가 두 아담을 비교한 글을 보라: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몸과 신경조직에 해롭고 그것들을 연약하게 만드는 죄의 영향력과, 또한 죄가 그의 환경에 주었던 영향력-‘나사렛에서 어찌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는가?’-을 포함하는 ‘죗된 육체의 형상’을 취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승리하셨다.”(58)
‘반증94’에 부가된 기록을 통하여, 니콜은 “죗된 육체”라는 표현에 관하여 설명한다: “비평가들, 특별히 성경을 칼빈주의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죗된 육체’라는 단어를 재림교회 신학이 보는 관점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재림교회 저자들이 사용하였던 것처럼, 우리가 ‘죗된 육체’라는 단어를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하여 쓸 때에 사람들은 이 말을 오해하게 된다. 우리가 그 단어를 쓸 때에 우리는 그 의미를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의 혈통을 취하셨고,’ ‘죗된 육체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고 이해하지만, 비평가들은 그렇게 믿으려하지 않는다.”(59)
니콜과 함께 오랫동안 부 편집인으로서 같이 일하였으며, 후에 1966-1982년까지 편집장으로 일했던 Kenneth H. Wood에 따르면, 니콜은 언제나 대화와 토론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오셨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Walter Martin은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이다: “대총회는 현명하게 니콜을 나로부터 분리시켰다. 그는 나에게 접근하는 것이 금지되었다.”(60)
6. W. H. 브랜손(Branson)의 The Atonement and Drama of the Ages
여러 기사들을 통하여 나타난 브랜손의 견해들은 그의 두 저서를 통하여 확립되었다. 첫 번째로, 중보(The Atonement)가 1935년에 출판되었으며, 그는 그 때까지 교회가 가르쳐왔던 바를 언급하였다.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우주의 창조자께서는 우리의 본성을 취하셨고, 인간이 되셨다. 그는 여자에게서 나셨다. 그는 ‘아브라함의 혈통’이 되셨다. 그는 우리들과 같이 되셨다.”(61)
1953년, 대총회장으로 있었으며, 아마, 이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고 있었던 그는 그의 마지막 연구서인 Drama of the Ages를 출판하였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혈육에 참여하셨다. 그는 인류 중의 한 사람이 되셨다. 그는 인간처럼 되셨다… 이것은, 그러므로 실제적인 인성이었다. 그가 취하신 본성은 천사의 것이 아니었고, 아브라함의 것이었다. 그는 ‘모든 일에 그의 형제들과 같이 되셨다.’ 그는 그들 중 한 사람이 되셨다. 그는 유혹의 영향력 아래 있었으며, 고통받는 아픔을 아셨고, 인간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화를 아셨다.”(62)
그리고, 브랜손은 왜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타락한 인성을 취하셨는지에 대한 그의 입장을 설명한다: “인성의 연약함을 그리스도께서 이해하시기 위해서, 그는 그것을 경험하셔야만 하였다. 시험받는 인간의 경험을 공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도 시험받으셔야만 하였다. 그는 배고픔과, 피곤함과, 실망과, 슬픔과, 환난을 경험하셔야만 한다. 그는 같은 길을, 같은 삶을 같은 환경가운데서 걸으셔야만 하며, 같은 죽음을 당하셔야만 한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 되신 것이다. 그의 성육신은 실제적인 인성이었다.”(63)
(결론)
우리가 연구해온, 1852년부터 1952년까지의 한 세기 동안의 재림교회 그리스도론은, 교회의 신학자들과 행정가들이 가지고 있었던 인류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개성과 사업에 관한 그들의 견해가 일치하고 있었음을 확증해준다.
비록 우리는 먼저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반(semi)-아리우스파적인 경향을 교회의 지도자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지만, 이러한 문제는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기 전에 완전히 해결되었다. 한편,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문제에 관하여는 모두 일치된 의견을 나타내었다. 처음부터, 재림교회는 이 주제에 관한 조직적인 가르침에 대하여 확실한 일치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들의 신약 연구는 그 기별의 선구자들과 그들의 추종자들로 하여금 성육신에 관하여, 예수께서 육체로 오셨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죗된 육체와 같은 육체”로 오셨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였다. 이러한 가르침은 전통적인 기성교회의 가르침에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재림기별을 처음 받아들인 초신자들을 위하여 그 기별은 계속하여 반복적으로 가르쳐졌다. 그 교리는 “진정한 기독교 신앙의 시금석,” “교리의 보석들을 엮은 황금 사슬,” 또는 “교리의 교리”라고 불렸으며, 짧게는 “재생시키며, 구속적인 예수의 종교의 핵심”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1950년대에 이르러 새로운 해석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타락한 인성을 취하신 것이 아니라 아담의 타락하기 전의 인성을 취하셨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극단적인 변화는 맹렬한 반대를 만났다. 그러므로 교회의 심장부로부터 시작된 이 투쟁의 실제적인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재림교회 그리스도론의 역사에 나타난 이 새로운 변화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떠한 가르침이 복음과 화합되며, 화합되지 않는지를 분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왜냐하면 요한에 의하면, 하나님의 영을 분별하는 일은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셨다는 개념의 올바른 이해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요한일서 4:1-3).
(참고문헌)
1Ellen G. White, Testimoniesfor the Church, vol. 9. p. 10. (Italics supplied.) Originally in Life Sketches of Ellen G. White (Mountain View, Cali£, Pacific Press Pub. Assn., 1915), p.196.
2Joseph E. Steed, in Review and Herald, Sept. 6, 1917.
3R. S. Owen, in Review and Herald, May 29, 1924.
4J. A. Rippey, in Signs of the Times, May 5, 1924.
5L. A. Wilcox, in Signs of the Times, Mar. 22, 1927.
6E. G. White, The Desire of Ages, p. 117.
7Wilcox, in Signs of the Times, March 22,1927.
8W. W. Prescott, in Australian Signs of the Times Jan. 7, 1924; May 4, 1936; Aug. 7 , 1936; in Review and Herald May 1, 1924; Aug. 22, 1929; Nov. 6, 1930; Feb. 27, 1936; Apr. 15, 1937; in Signs of the Times, Jan. 15, 1929; Feb. 22, 1929.
9W. H. Branson, in The Watchman, July, August, 1932; Australian Signs of the Times, act.30, 1933; Nov. 1, 1937.
10~, in The Watchman, August 1933.
11_, Signs of the Times, Nov. 8, 1936.
12The Watchman, July 1932.
13A. V. Olson was first president of the Latin Union (1917-1920), then president of the Southern European Division (1920–1946), and finally vice president of the General Conference. He was the author of Thirteen Crisis Years, 1888-1901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Pub. Assn., 1966).
14_, in Review and Herald, Aug. 6, 1942.
15_, in Ministry, January 1962. Quoted in The Incarnation of Christ, study pub- lished by Fred C. Metz, (September 1964).
16M. V. Campbell, in Review and Herald, Oct. 5, 1950.
17Our research is limited to the Southern European Division, comprising the following countries: Austria, Belgium, Bulgaria, Czechoslovakia, France, Greece, Hungary, Israel, Italy, Portugal, Rumania, Spain, Switzerland, Yugoslavia, and the French colonies in Africa.
18This particular aspect of Adventist Christology was not included in the courses of our theological seminaries. In his manual on doctrine, L ‘Histoire du Salut, Alfred Vaucher simply affirms that Jesus became human.
19Jules Boureau, in Signes des Temps, May 1950.
20Tell Nussbaum was president of the Conference of the Adventist churches in France (1910-1914). He was the father of Dr. Jean Nussbaum, known worldwide for his activity on behalf of religious liberty and as founder of the magazine Conscience et Liberte.
21Tell Nussbaum, in Revue Adventiste, Nov. 15, 1923.
22Revue Adventiste, Dec. 1 and 15, 1925; Jan. 1 and 15; 1926.
23Jules-Cesar Guenin, Une pierre de touche;jesus-Christ venu en chair (Dammarie-les-Lys: Imprirnerie les Signes des Temps, n.d.). See Seventh-day Adventist Encyclopedia, pp. 544, 545.
24Ibid., pp. 3, 4.
25Ibid., pp. 4, 5.
26Ibid., p. 5; See Ellen White, The Desire of Ages, p. 117.
27Ibid. c
28Ib.id.,p.6. –
29-,in Revue Adventlste, Dec. 15, 1925.
30-, in Revue Adventiste, January 1942.
31-, in Signes des Temps, July, August, and September, 1938.
32James Howard, Revue Adventiste, July 15, 1927.
33B. E. Beddoe, Revue Adventiste, Jan. 15, 1929.
34Charles Gerber was at the time editor in chief of the periodicals Signes des Temps (1933-1940), Revue Adventiste (1933-1939), and Vie et Sante (1939-1969).
35Gerber, Le chemin du salut (Dammarie-les-Lys: Imprimerie les Signes des Temps, n.d.).
36_, Signes des Temps, October 1937.
37Sabbath School Lesson Quarterly, senior division, first quarter 1921, p. 16.
38Ibid., second quarter 1921, pp. 13,14.
39Ibid., third quarter 1921, p. 20.
40Ibid., first quarter 1928, p. 15. All examples quoted by William H. Grotheer, Interpretive History of SDA Doctrine of Incarnation, pp. 56, 57.
41Meade Macquire, see Seventh-day Adventist Encyclopedia, p. 825.
42_, The Life of Victory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Pub. Assn., 1924), pp. 17, 18.
43Ibid., p. 43.
44Christian Edwardson, Facts of Faith (Nashville, Tenn.: Southern Pub. Assn., 1942), pp. 204, 205, in William H. Grotheer, Interpretive History of SDA Doctrine of Incarnation, pp. 58,59.
45Mary E. Walsh, The Wine of Babylon, p. 3, in William H. Grotheer, Interpretive History of SDA Doctrine of Incarnation, pp. 59, 60.
46Ibid., p. 132.
47Ibid., p. 134.
48A. E. Lickey, Christ Forever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Pub. Assn., 1951). W. B. Ochs, This I Believe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Pub. Assn., 1951).
49See The Seventh-day Adventist Encyclopedia, article F. D. Nichol, pp. 974, 975. Concurrently with his long career as chief editor of the Review and Herald, he was also the editor of The Seventh-day Adventist Bible Commentary. He authored some 20 books.
50Nichol, Review and Herald, July 10 and 17,1952.
51Nichol, Answers to Objections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Pub. Assn., 1952), Objection 94, pp. 389-397.
52Ibid., pp. 23, 24.
53Ibid., p. 389.
54Ibid., p. 390.
55Ibid., p. 391.
56Ibid., p. 397.
57See William H. Grotheer, Interpretive History of SDA Doctrine of Incarnation, pp. 70- 72; and Ralph Larson, The Word Was Made Flesh, pp. 221-223.
58Nichol, Ibid., p. 393.
59_, Answers to Objections, p. 397.
60See Larson, The Word Was Made Flesh, p. 223; Adventist Currents, July 1983, p. 18.
61Branson, The Atonement (Mountain View, Calif: Pacific Press Pub. Assn., 1935), p. 14.
62_, Drama of the Ages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Pub. Assn. 1980)~ pp. 97, 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