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부
우리는 언제나 화잇 부인의 글도 성경에 의해서 시험되어야 한다고 가르쳐야만 한다. 그런데 성경에 의해서 시험되어야 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었던 바울이 성도들에게 서신을 보냈을 때,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바울의 편지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를 확신할 수 있었을까? 바울은 성경을 연구하는 성도들에게 자신의 가르침이 진리인가를 확인하도록 권면했다. 그들은 바울의 기별을 시험하기 위해서 무엇을 연구하였겠는가? 물론 당시에 그들의 성경있었던 구약 성서를 연구하였을 것이다. 만일 그들이 바울의 서신을 구약 성서와 비교 검토하여 그 일치성을 발견한다면, 그들은 바울의 서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이다. 우리는 바울이 당시의 일반적인 가르침과 상반되는 듯한 새로운 가르침을 제시했던 것을 기억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질문은 그가 구약 성서가 증거하고 있는 것과 어긋나는 것을 가르쳤는가 하는 것이다. 바울의 가르침이 성경과 어긋나지 않는한, 그는 새로운 방향들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에 의해서 우리는 바울의 서신을 이전에 계시되었던 영감의 글, 즉 구약 성서에 비추어 시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바울의 글이 시험을 통과하여 그들에게 받아들여진 다음, 어떻게 되었는가? 바울의 가르침은 후세에 예언의 선물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글이나 가르침들에 대한 또 하나의 시험 기준이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바울의 글도 다른 신약 성경의 글들과 함께 예언의 선물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시험하는데에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예레미야나 이사야나 에스겔의 기별 역시 모세의 글에 의해서 시험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의 글이 시험에 통과되어야 성경의 일부가 될 수 있으며, 미래에 나타날 어떤 기별에 대한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이다. 이사야나 예레미야나 에스겔의 기별이 모세를 통해서 주어졌던 “큰 빛”을 밝혀주는 그 당시의 “작은 빛”들이 될 수 있을까? 그들 각 선지자들이 말을 하거나 글을 썼을 때, 그들의 말과 글은 이전에 존재했던 계시에 의해서 시험되었다. 그러나 일단 그들이 시험에 통과하고 받아들여졌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권위있는 기능을 행사하게 되었다. 엘렌 화잇의 글이 시험에 통과했을 때, 그녀의 글은 동일한 방법으로 기능을 행사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그녀가 시험을 통과할 경우, 그녀는 참 선지자이며, 성경에 나오는 다른 선지자들과 동일한 권위를 가지고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엘렌 화잇의 글을 표준으로 삼는 것은 안된다고 말하며 즉각적으로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표준을 추가하자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엘렌 화잇의 선지성과 그 권위가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선지자들보다 낮은 수준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나단, 엘리야, 엘리사, 그리고 침례 요한은 어떠한가? 그들은 표준이 되는 성경을 기록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권위는 인정받고 있는가? 선지자의 기별이 갖고 있는 권위는 계시와 영감성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지, 그들의 글이 성경에 포함되어 있는가의 여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기별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따라서 그들은 선지자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글이 성경에 포함되어서 오늘날 우리들에게 표준의 역할을 하고 있지는 않다. 우리에게 조금 극단적인 것처럼 보이는 중요한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권위가 있기 때문에 성경에 포함된 것도 사실이지만, 성경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권위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선지자의 글이 가지고 있는 권위는 그 글이 성경에 포함되기 이전에 이미 부여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진정으로 자문해 보아야 할 질문은 엘렌 화잇의 글이 표준이 될 수 있는가가 아니라, 화잇 부인의 글의 권위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권위에 대한 문제는 너무도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12 제자들 가운데 속하지 않았던 바울에 대해서 초기 그리스도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의문점들이 엘렌 화잇에 대해서 초기 재림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의문점들과 동일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초기 그리스도 교회는 이러한 식의 의문들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만일 계시의 충만함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존재한다면, 왜 우리가 이 사람 바울의 말에 귀를 귀울여야 한단 말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더 큰 빛이시며, 그분께서는 강력한 빛을 가지고 계신데, 이 바울이라는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자, 그러면 이제 오늘날 우리들 가운데서 들려오는 의문들을 들어보자: “더 큰 빛이 성경 속에 있는데, 왜 우리는 엘렌 화잇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계시의 충만함이 성경에서부터 나오고 있는데, 왜 우리는 그녀의 권면을 심각하게 들어야 하는가?” 질문이 동일했던 것처럼 대답도 동일한 것이 될 것이다.
나의 이러한 믿음과 논리가 성경을 부인하는 것이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성경 그 자체가 교회에서 예언이 계속될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증거하기를, 우리는 성경 속에 나오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기별들을 받았던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기별들을 계속해서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 성경과 예언의 신에 접근해야 되는가? 물론 성경이 우리의 첫째되는 연구 대상이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주제에 대해서 연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성경으로 가야만 한다. 그런 다음 우리의 연구 주제와 관련있는 화잇 부인의 글에 가서 하나님의 뜻을 찾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기별을 연구한 후에라야,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계신 바를 해석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감히 우리의 의견이나 사상을 성경이나 엘렌 화잇의 글보다 앞에 두어서는 안된다. 성경이 기별의 첫째가는 원천과 근본이어야 되며, 화잇 부인의 글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기별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 이런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교리와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책임에 대한 이해와 우리 자신의 견해를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화잇 부인 스스로가 자신의 글이 구원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들추어낸다. 다음에 나오는 글은 화잇 부인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만일 인간들이 아담이 그의 타락한 후에 받았고, 노아가 보존하였고,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준수된대로 하나님의 율법을 지켰더라면, 할례 의식에 대한 필요성은 없었을 것이다. 만일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할례로써 표를 삼는 언약을 지켰더라면, 저들은 우상 숭배에 유혹당하지 않았을 것이며, 애굽에서 노예 생활의 고통을 당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저들은 마음에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왔을 것이며, 시내산에서 율법을 선포하고 또한 돌비에 새길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백성이 십계명의 원칙을 실천하였더라면, 모세에게 주어진 부가적인 지시의 필요도 없었을 것이었다.” 부조와 선지자, 영문 364.
화잇부인이 말하고자 하였던 바는,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필요에 따라서 기별을 주신다는 의미이었다. 만일 사람이 모세 시대 이전에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였더라면, 모세에게 주어진 바 된 수많은 특별한 지시들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의 그 기별은 필요에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부가적으로 주어진 것들이었다. 그렇다면 돌비에 적힌 상태로 받은 십계명은 중요하지 않은 것인가? 또한 모세에게 부가적으로 주어진 바 된 기별들은, 사실은 그것들이 주어질 필요가 없었다고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는가?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기별은, 모세의 글에서 표현된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데 있어서 불신실했었기 때문에 주어졌었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욱 타당하겠다. 사실 그들의 기별은 없었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실함으로 인해서 주어질 수 밖에 없었으며, 그 결과로 오늘날 우리들도 그 기별을 가지고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기별이 오늘날에는 덜 중요한 것인가? 그것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연구하고 따라가야 할 중요한 교훈이 아닌가?
이와 마찬가지로 엘렌 화잇의 글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경에 포함되어 있는 하나님의 기별에 대해서 신실하였더라면, 존재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별이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였고, 백성들이 성경의 기별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화잇 부인을 통해서 기별이 보내지게 된 것이다. 그 기별이 오늘날에는 덜 중요한 것으로 되었는가? 아니면 그 기별의 권위가 저하되었는가? 하나님께서 한번 말씀하실 때에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말씀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이 말씀하실 때마다 그분의 말씀을 경청해야 하는 것이다. 이사야나 예례미야가 하나님을 대변하여 기별을 전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기별을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깨어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분의 말씀을 발견할 때마다 우리는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교리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엘렌 화잇의 권위는 인정되어야 하는가?
화잇부인의 글 중에서 헌신적이고 영적인 면에 대한 권위는 인정되지만, 교리적인 면에 대한 권위는 어떠한가?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초기의 재림교회 경험을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저들이 ‘우리는 이 이상 할 수 없다’는 말을 하게 될 연구 지점에 이르게 될 때, 주님의 영께서는 나에게 임하셨으며 나는 계시를 받게 되었고 우리가 연구하던 성경절에 대한 뚜렷한 설명을 나에게 주셨고 이에 따라서 우리가 일해야 할 방법과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교훈의 말씀을 주셨다. 이처럼 빛을 주심으로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명과 제사 직분에 관한 성경절을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셨다. 그 때로부터 우리가 하늘 도성에 들어가게 될 때까지의 일련의 진리를 나에게 밝혀 주셨으며 또한 나는 주께서 나에게 주신 교훈을 전해 주었다.” 가려뽑은기별 1권, 259.
그들이 서로 상반이 되는 견해를 가짐으로써 그들의 연구가 막다른 길에 들어섰을 때, 주님의 영께서 엘렌 화잇에게 계시로서 임하심으로 그리스도와 그분의 직분과 제사장 직분에 관한 성경 구절을 설명해 주셨다. 그때 화잇 부인이 받았던 계시의 내용은 분명 교리적인 내용이었다. 그녀가 계시로부터 나와서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셨던 바를 그들에게 전했을 때, 그것은 매우 권위가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진리에 대한 화잇 부인의 기별에 따라서 자신들의 견해를 포기했어야 했었을 것이다. 예언의 선물이 가지고 있는 기능 중의 하나는 성경의 해석에 대해서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잘못된 것인지에 관하여 밝혀주는 일이다.
“주님께서 나에게 일년 전에 계시를 보여 주셨는데, 크로지얼 형제는 성소 정결에 대한 참 빛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그의 견해를 1846년 2월 7일자 데이스타 지에 쓰는 것은 주님의 뜻이었다. 내가 모든 성도들에게 그 글을 읽도록 권고하는 일은 주님께서 충분히 인정하시는 것으로 느낀다.” “작은 무리”에게 보내는 글, 12.
우리는 이 글에서 화잇 부인이 교리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당시, 1845년에 또 다른 시기의 정함이 있었는데, 그 정한 시기의 몇일 전에 있었던 일을 살펴보자. “엘렌 화잇이 메사츄세츠 주의 카벌에서 한 군중과 함께 있을 때에 그녀는 계시를 보았다. 그 계시의 내용은 우리를 실망시키는 것으로서 성도들은 장래에 있을 ‘야곱의 환란’ 때를 통과해야만 된다는 것이었다. ‘야곱의 환란’에 관한 그녀의 견해는 그녀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상동, 22. ‘야곱의 환란’의 시기에 관한 것은 분명 교리적인 문제이다.
“나는 그대가 서술한 이 문제들에 관한 계시에서 보여진 바 된 … 상태에서 그대가 떠나게 되기를 호소한다. 나는, 1,000년을 간격으로 해서 두가지의 부활이 있을 것이라는 그대의 견해에 충분히 동의하는 바이다. 또한 새 하늘과 새 땅은 악인이 죽고 다시 부활하여 멸망당하게 될 때인 천년기의 끝에 이를 때까지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그대의 견해에 동의한다 … 그대는 요한계시록 3:9에 있는 성도의 발 아래 절하는 사람들은 결국에 가서는 구원받게 될 자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 나는 그대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야만 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 부류의 사람들은 재림교인들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이라고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 (계시록 3:9 에 나오는) ‘시험의 때’에 … 그들은 그들이 영원히 잃어버린 바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며, 영혼의 번뇌와 고통으로 인해서 압도되어 성도들의 발 아래 절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또한 미가엘이 일어설 것이며, 환란의 시기가 1844년의 봄에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내게 보여주신 계시는 다니엘 12장 1절에서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일어서는 미가엘은 장래에 있을 사건이라는 것이다.” 상동 11-12. 여기서도 그녀는 교리적인 문제에 관한 분명한 견해를 권위를 가지고 말하고 있다.
이제, 재림 교회 초기의 대회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회상해 보도록 하자. “우리의 첫번째 회의는 볼니에 있는 아놀드 형제의 곡간에서 가지게 되었다. 35명이 참석하였는데, 그들은 각 주의 지역에서 선출된 자들이었다. 두 그룹으로 나뉘어 서로 동의할 수 없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각 무리는 자신들의 견해가 성경에 일치하는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아놀드 형제는 요한 계시록 20장에 나오는 천년은 과거에 있었던 것으로 주장했으며, 144,000은 그리스도의 부활시에 함께 일어났던 자들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우리들 앞에 죽어가는 주님의 상징을 놓고 그분의 고통을 기념하려고 했을 때, 아놀드 형제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신은 우리가 하려고 하는 바에 대해서 아무런 믿음도 가질 수 없다고 말하였으며, 성찬 예식은 유월절의 계속이고, 일년에 한번 씩 준수되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러한 이상한 견해 차이는 나를 중압감을 가지고 압박하였는데, 특별히 아놀드 형제가 1000년기는 과거에 지나간 것이라고 말하였을 때 더욱 그러하였다. 나는 그가 오류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그로 인해서 나의 영혼은 큰 슬픔 속에 있었다…. 하늘의 빛이 나에게 임하였다. 나는 곧 세속적인 것들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나를 동반하는 천사는 내 앞에 어떤 오류들을 제시하여 주었으며, 또한 그 오류에 상반되는 진리를 보여 주었다. 이러한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 상이한 견해들에 있어서 그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성경과 일치하도록 해야 했으며, 그들이 가지고 있던 오류들은 버려져야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세째 천사의 기별과 연합하게 되었다. 우리의 회의는 승리로 종결되었고, 진리가 승리를 얻었다.” 영적 선물 2권, 97-99.
화잇 부인은 그 회의에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교리적인 오류에 대한 특별한 가르침을 받았으며, 그것에 대한 진리를 받았다. 그녀는 어느 것이 진리이고 어느 것이 오류라는 명백한 가르침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 그 당시 형제들의 회의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기별을 받았으며,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던 오류를 굴복해야만 하였다.
“그 당시, 한 오류에 이어서 또 다른 오류가 계속해서 우리들 앞을 지나갔다. 목사들과 의사들은 새로운 가르침을 가지고 왔다. 우리는 많은 기도로써 성경을 탐구하였고, 성령께서는 우리들 마음에 진리를 가지고 오셨다. 어떤 때는 온 밤을 지새우며, 성경을 연구하는 일에 헌신하였고, 하나님께 인도하심을 간구하였다. 헌신한 남녀들의 무리가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집회를 가졌다.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임하였을 때, 나는 명백하게 진리가 무엇이고, 오류가 무엇인지를 정의할 수 있었다.
“우리의 믿음의 요점들이 이렇게 세워졌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발을 확고한 반석 위에 세울 수 있었다. 우리는 진리를 성령의 임재하에서 하나씩 하나씩 받아들였다. 나는 계시 가운데로 옮기워졌으며, 하늘의 사물과 성소의 장면을 보았고, 우리에게 분명하고 확실한 광선이 비추고 있었다.” 복음 사역자, 영문 302. 여기서 다시 한번 그녀는 계시 중의 기별에 의해서, 교리적인 문제에 있어서의 진리와 오류를 정의하고 있다.
“믿음의 기초는 … 계시와, 많은 기도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함으로써 우리의 사업의 시초에 놓여지게 되었다.” 상동, 307. 다음의 두 구절을 주목해보자. “계시와, 많은 기도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함.” 당신의 기별자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영은 우리의 믿음의 기초를 놓는 일을 도우셨다. “교리와 행습 상의 심각한 오류들이 사랑받고 있으며 …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계시 가운데 이러한 문제들을 보여 주셔서 당신의 실수하는 자녀들에게 그것들을 선포하라고 나를 보내셨다.” 교회증언, 5권, 영문 655-656. 엘렌 화잇이 교리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완전한 권위를 가지고 자신의 증언의 글을 남겼다는 증거들을 이곳 저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많은 빛을 주셨는데, 나는 백성들이 그것들을 소유하게 되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주께서 나에게 주신 가르침들이 있기 때문이다…. 빛이 백성들 앞으로 이르러 왔다. 왜냐하면 어떤 오류들을 교정하고 진리를 명백하게 하려 함이다. 주님께서는 진리를 지적하심으로써 많은 것들을 드러내셨다.” 가려뽑은기별, 3권, 32.
“나는 잘못된 교리들을 견책하기 위해서 이곳 저곳으로 보내심 받았다.” 복음전도, 영문 610.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는, 엘렌 화잇이 교리적인 문제를 언급했는가 또는 목회적인 문제를 언급했는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전적으로 주님을 위해서 증언했는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나의 저서(부조와 선지자, 대쟁투, 시대의 소망)에는 진리가 서술되어 있으며, ‘주께서 말씀하시기를’로 경계를 에워 쌌다. 하나님의 손가락에 의해서 법이 돌비에 기록되어 졌듯이 나의 마음과 정신 속에 지울 수 없는 진리를 성령께서 남겨 놓으셨다.” 가려뽑은기별 3권, 122.
“내가 기록한 글 가운데는 단 하나의 이설적인 문장도 없이 진리로서 연결된 하나의 곧바른 사슬이 존재한다.” 상동, 52.
그녀는 기록하기를 “주님께서 화잇 자매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주신 기별을 믿는 모든 자들은 마지막 날들에 이르러 올 많은 미혹으로부터 안전하게 될 것이다.” 상동, 84. 아,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인가! 만약 우리가 그 증언들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생애에 그 신선한 충격을 수용하기만 한다면, 그녀의 기별은 우리에게 엄청난 축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 역사의 마지막 시대에 당신의 백성들에게 명백하고도 권위있는 말씀을 주시기로 결정하셨던 것이다. 그분의 이름을 찬송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