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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성소 뜰에서 – 칭의의 경험

B. 화목제

    “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희생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거든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문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그는 또 그 화목제의 희생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할 것이요, 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단 윗불 위에 있는 나무 위 번제물 위에 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레위기 3:1-4
레위기에 나타난 성소 뜰에서 드리는 제사의 순서대로 다음은 위에 인용한 화목제의 의미에 대하여 공부해 보기로 하자. 이 화목제 역시 우리에게, 하나님과 화목하는 방법을 말해주는 의미심장한 경험을 제시해 주고 있다. 다시 부언해서, 이 성소제도는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 옛날의 우리의 상태로 회복할 수 있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하여 주고 있다. 얼마나 고마우신 그리고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우리 하나님 이신가!

    화목제는 감사제인 동시에 하나님께 대한 자기의 서원(서약)을 드리는 제사이기도 하다. 이 화목제는 번제와는 달리 성만찬의 의미를 가진, 즉 그 제사에 포함된 인물들이 그 희생제물의 고기를 같이 나누는 제사이다. 번제는 그 희생의 제물 전체를 번제단 위에 올려 놓고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불태워 버리는 반면에, 화목제는 그 희생양의 고기중 하나님께 드리는 부분은 단 위에서 불태워 버리고, 제일 많은 부분을 희생을 드리는 사람에게 돌려 주며, 제사장에게는 그 양의 가슴과 오른쪽 어깨와 두 뺨을 주게 되어 있었다(레위기 7장 참조). 하나님께 드리는 부분은 희생제물의 기름만 잘라내어 번제단 위에서 태우게 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성소제도에서 동물의 기름은 죄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시편 37:2은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다. “악인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는 어린양의 기름같이 타서 연기되어 없어지리로다.”

    화목제를 드리는 사람은 제물의 고기의 일부분을 먹되 그날 온 식구들이 함께 모여 나누어야 하였다. 남은 것은 그 이튿날까지는 먹을 수 있었으나 삼 일째는 먹지 못하였으니 그 이유는 예수께서 삼 일에는 부활하실 것을 상징하기 때문이었다. 온 식구들은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의 죽음을 통하여서, 그의 살을 먹고 그의 희생에 동참함으로 살게 되었다는 사실을 가르침 받기 위하여 이 예식을 행하는 것인데, 그러므로 화목제는 그들에게 무엇 때문에 그들이 다시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바 되었는지를 깨닫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이 제사에서 한가지 특이한 사실이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제사장에게 돌아가는 분깃이었다. 화목제에 있어서만 그들은 그 예식을 집행하는 제사장에게 세 부분, 즉 앞 가슴과 오른쪽 어깨 (한국어 성경에는 오른쪽 뒷다리로 번역되었으나 실상은 오른쪽 어깨가 더 올바른 번역임), 그리고 양쪽 뺨을 도려 내어 드리게 되어 있었다 (레위기 7:28-32; 신명기 18:7 을 참조). 그것은 과연 무엇을 상징하는 것이었을까? 먼저 앞 가슴 부분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당신께로 회개하며 나아갈 때에 두 손을 벌리시고 당신의 가슴 안으로 우리를 끌어 안으시며 환영 하신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가슴 속에 있는 자들이다. 어찌 우리를 잊으시겠는가. “그는 목자같이 양 무리를 먹이시며 어린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이사야 40:11. 그러나 한가지 알고 지나가야 할 것이 있다. 예수께서 마지막 성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다락 방에서 잡수실 때에 사랑하는 제자 요한은 예수님의 왼편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비스듬이 식탁에 앉는 그들의 습관에 따르면 요한의 머리가 예수님의 가슴에 가서 있었다. 그때 예수께서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고 말씀하시자 베드로의 손짓을 받고 요한은 예수께 물었다.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오니이까?” 요한복음 13:25. 그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해 맑고 꿰뚫는 듯한 눈동자 앞에 자기의 눈을 가져다 대고 쳐다보면서 물은 것이다. 예수님의 눈과 요한의 눈이 가까이에서 마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가 그러한 상황 속에서 거짓을 말할 수 있겠는가? 마음에 없는 말을 꾸며서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 용납받는 자는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다음에 오른쪽 어깨를 떼어 드리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한 이후에는 우리의 모든 생애가 하나님의 어깨에 메달려 있는 것으로서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일들을 책임지신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서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이사야9:6. 우리가 어렸을 때에 아버지가 우리를 자기의 어깨에 얹고 목마를 태워줄 때에 우리는 얼마나 든든하고 안전감을 느꼈는가? 우리의 생애는 예수님의 어깨위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하자. 그 다음은 제물의 양쪽 뺨을 도려내어 드리도록 하였는데,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생애를 바치고 헌신한 후에는 하나님의 성품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주지시켜 주는 것이라 하겠다. 우리가 한쪽 뺨을 얻어 맞을 때에 다른 쪽 뺨을 돌려 대라는 주님의 가르침처럼 말이다.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사야 5O:6. 화목제는 참으로 우리에게 하나님과 화목하는 자의 경험을 너무나 잘 요약하여 묘사하여 주고 있다. 우리에게 구원의 경륜을 이렇게 자세하고도 실제적으로 실물교훈을 통하여 가르쳐 주고 계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리도록 하자.
    한가지 언급하고 지나가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성소뜰 안에서 죄를 정결케 하는 것으로서 세가지의 것들이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곧 피와 불과 물이다. 피로서는 죄를 그 원천인 마음과 동기부터 씻어 주고, 불은 그 죄를 태워 없애며, 물은 그 죄의 생애와 행동을 씻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특별히 레위기는 생명이 그 피에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피는 우리의 혈관을 따라 돌면서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해 주고 있는 반면에, 저 끝 말초 신경에 이르기까지 쌓여있는 불순물들을 다 받아 내와서 걸러내는 역할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명력과 복음의 능력이 임할 때에는 우리의 죄가 나가게 되는 사실을 확신하도록 하자. 그런데, 성소 뜰에서 행해지는 제사들 중에서 희생제물의 피가 성소 안으로 들어가 제사장에 의하여 뿌려지는 것은 속죄제 때에만 이루어진다. 피가 성소의 휘장 앞에 뿌려지는 것은 영적으로 우리의 고백한 죄가 하늘 성소의 기록책으로 옮겨진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죄가 하늘의 성소로 옮겨지지 아니하면 중보 기도를 통한 죄의 용서가 있을 수가 없으며, 우리가 용서를 받는다고 해도 우리의 죄의 기록은 우리가 죄의 도말을 받을 때까지 하늘 성소에 남아있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이 중요한 사실은 대속죄일에 대하여 연구할 때에 더 자세하게 살펴 보도록 하자. 이제는 피를 성소로 옮기게 하는 속죄제에 대하여 공부해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