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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신학의 기만 (Deceptions of The New Theology)

제3장 신신학을 허용함

 

신 신학이 교회 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불러 일으키게 되자 교회의 지도자들 사이에 큰 염려가 일어나게 된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호주에서 일어난 사건이 이렇듯 증대해지자, 호주와 미국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수많은 회의가 개최되었다. 그러는 중에 호주 문제의 가장 좋은 해결책은 신신학의 지도적인 신학자 데스몬드 포드 (Desmond Ford) 박사를 호주로부터 미국으로 전임시키는 것이라고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1977년, 포드 박사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PUC 대학 (Pacific Union College)의 종교학과 교수로 전임 발령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포드 박사를 잘 아는 몇사람의 주의를 고려하지 않았던 결정이었다. 우리 둘 (콜린 스텐디쉬와 럿셀 스텐디쉬) 도 당시 경고를 주었던 사람들 중의 하나이다. 일찌기 1975년에 콜린 스텐디쉬는 이미 PUC 대학장에게 포드 박사는 학교를 분열시킬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주었었다. 또한 콜린은 당시의 대총회 부회장에게도 충고를 하였는데, 그는 이 문제를 간단한 문제로 생각했다. 대총회 부회장은 포드 박사를 작은 연못에 있는 큰 고기로 생각하였다. 그리고 포드 박사가 미국으로 오게 되어서 우리 대학교와 대학원의 교수들과 의견이 서로 대립되었을 때도 그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그렇게 되자 당시 포드 박사는 큰 바다의 작은 고기가 되었고 분열에 대한 콜린의 경고가 결국 옳았음이 판명되었다.
그러나 대총회 부회장은 “그는 이제 큰 연못에서 큰고기가 될 것입니다. 그의 신학적 이론에 맞설만한 신학자가 미국 재림 교회 내에는 없지요.” 포드 박사에 대한 대총회 부회장의 신임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꼬리를 물고 일어난 사건들은 콜린의 예견을 더욱 확실하게 하였다.
럿셀 스텐디쉬 또한 호주를 방문 중이던 한 대총회 간부에게 비숫한 우려를 표명한 바 있었다. 많은 지도자들은 신신학이 이미 전 미국에 널리 퍼져있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고, 아울러 신신학의 진면목을 깊이 이해하지도 못한 상태였다. 그것은 포드 박사의 최면적이고 능란한 제시 하에서 표면만이 나타나게 되었을 뿐이었다. 배도적인 기독론을 가르치는 개신교 대학원에서 교육을 받은 신학자들이 이미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우리의 대학에서, 그가 가르친 오류들은 마치 하나님의 참된 진리인양 지지받게 되었고 그로 인해 수 많은 우리 교회의 젊은이들이 깊이 현혹되게 되었다.
우리는 신신학으로 인해서 수많은 목회자들과 사역자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의 교인들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크게 주의해야 할 것은 신신학을 신봉하는 수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교회 안에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수 많은 교우들은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단순한 복음의 선포를 받아들여서 자신을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에 바치기에는 이미 어려운 상태에 놓여있다.
1980년에 있었던 글레이셜 뷰우 (Glacier View) 회의는 이러한 모든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말았다. 백여명 이상의 교회의 지도자들과 학자들이 모인 가운데서, 포드 박사는 예언 해석에 있어서의 자신의 입장을 변호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고, 또한 곧 이어서 PUC 대학에서 아무런 의미없는 재림신도 회의가 개최되게 되었는데, 거기서 포드 박사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에서 주장하는 성소 기별에 관한 믿음을 부인하였다. 이들 집회를 위해 엄청난 경비가 소요되었으나, 슬프게도 글레이셜 뷰우 회의에 제출되었던 예언적 해석에 관한 문제는 실상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이었다. 복음,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구원, 인간의 본성, 그리스도의 인성, 죄의 본성 그리고 예언 해석에 관한 다른 빗나간 견해들은 직접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포드 박사가 예언 해석의 문제에 있어서는 정로에서 이탈되었을지라도 구원론, 복음,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교인들에게 탁월한 신학적 안목을 갖도록 해주었다고 일반적으로 결론짖게 된 것이다. 진리에 대한 아무런 진전도 생기지 않았다. 포드 박사의 전체 이론은 어거스틴적 오류와 함께 수수께끼와 같은 존재로 남아있게 되었다. 성소 기별을 부인한 상태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한 교리상의 진리를 올바로 역설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포드 박사를 사역에서 제명시키면서 태평양의 이 쪽과 저 쪽에서 구두와 문서로 이루어진 공개 발표는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재림 교인들에게 신망있는 목회지 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잡지도 포드 박사의 예언 해석에 대해서는 완강한 반대를 표명하였지만, 반면 글레이셜 뷰우 회의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한 문제는 제출되지 않았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가 복음에 관해서는 올바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그러나 포드 박사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한 왜곡된 견해야말로 예언 해석의 탈선을 일으킨 주요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감지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실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잡지는 포드 박사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문제에 관한한 우리 교회에 크게 기여한바 있다고 선언함으로써 더욱 결정적인 피해를 미치게 하였다. 이것은 신학적 일관성에 대한 연구의 부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교회의 지도자들이 신신학의 구조와 또 그것이 안고 있는 모든 신학적 문제 하나 하나에 대한 인식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의심할 것 없이 부지중에 진리와 오류의 혼합을 허용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재삼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성소 기별에 대한 오류를 붙잡고 있는 사람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을 성경적으로 올바로 믿고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둘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지도자들은 포드 박사의 신신학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분명하게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 문제들을 심각하고 치명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포드 박사와의 개인적인 대화 가운데서, 포드 박사는 만일 자신의 예언 해석이 올바르지 못한 것이라면, 그의 구원에 관한 견해 역시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솔직하게 동의하였다. 적어도 그는 이 둘이 가지는 중요한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소경이 아니었다. 글레이셜 뷰우 회의 이후에도, 예언 해석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성소 기별을 각각 따로 분리하여 생각하는 경향은 수정되지 않았다. 그 결과로 인해서 포드 박사의 신신학적 견해들이 아무런 경계심 없이 대다수의 목사들과 신자들의 사상과 신앙 구조에 침투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가장 참담한 비극은 신신학을 따라가고 있는 사람들이, 위험한 상황을 알아 차리지 못한 가운데, 자신들이 신신학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데에 있다. 이 말은 그들의 신앙이 모든 관점에서 어거스틴의 신학에 의해 혼동되어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실상, 아무도 실제에 있어서 어거스틴의 모든 주장들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보면, 유아 세례나 영원히 타는 지옥설 등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예정설, 한번 구원얻으면 영원히 구원받게 된다는 주장, 원죄, 그리스도의 타락하지 않은 본성, 그리고 구원에 대한 거짓된 안전을 가르치는 교리 등에 관한 수 많은 신신학의 표적들이 오늘날의 재림교회 내의 사상과 가르침 속에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견해들은 진리를 크게 왜곡시키고 있으며, 서방 국가의 그리스도교가 현재 처해 있는 무기력 상태의 근본 원인이 되는 것이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포드 박사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면서, 동시에 재림교회를 떠난 다른 호주인 로버트 브린스미드 (Robert Brinsmead) 의 가르침에 대해서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그는 소위 각성의 기별 (Awakening Message) 이라고 불리우는 것을 50년대 후반에서 60대에 걸쳐 가르치던 사람이었다. 그의 기별은 그리스도의 하늘 성소에서의 사업과 인치는 사업에 중심을 둔 기별이었다.
1970년대 초반, 로버트 브린스미드는 그의 기별의 진로를 전격적이고 극적으로 바꾸었다. 그는 종전의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완전히 떠나서 복음주의적 개신교의 많은 가르침을 받아들이면서 포드 박사가 신봉하는 어거스틴의 사상과 점점 가까워지게 되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포드 박사의 가르침을 전면적으로 반대하기 어렵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까지 브린스미드의 가르침을 대항하기 위해 10년 이상이나 포드 박사의 가르침을 사용해 왔기 때문이었다. 브린스미드는 그의 인격과 분위기에 있어서 사람들을 이끌지 못하는 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더욱 더 빨리 배척을 당하게 되었다.
물론 1970년 후반에 브린스미드는 고의적으로 자기의 주장과 포드 박사의 주장의 폭을 넓히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재림교회의 핵심적인 교리들, 즉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과 안식일 준수 등과 같은 교리에 대해서 더욱 거침 없이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브린스미드는 포드 박사가 주장하는 신학적 입장을 지나서 더 멀리 가게 되었다.
글레이셜 뷰우 회의 이후 십여년이 지나가도 교회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한 문제를 올바르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1888년 기별에 대한 출판물에서, 그리고 제시되고 있는 설교나 강의에서 모두 1888년 기별에 대한 진정한 이해의 부족이 염려스러울 정도로 나타나고 있다. 어떤 저자들은 1888년의 기별을 승리할 수 없는 생애, 그리스도의 타락하지 않은 본성 등과 같은 신신학적 개념에 맞추는 일을 시도하기 위해서 위험스러운 역사의 수정을 꾀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분명 최악의 지능적인 속임수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은 어떤 그리스도를 섬기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또한 하나님은 죄를 이길수 있는 능력을 주실 수 있는 분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조차 확실치가 않다. 더 나아가 무엇이 죄인지 조차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성소 기별이나 조사심판의 의미가 그저 막연할 뿐이다. 안식일 준수와 그 참된 목적을 거의 잃어버리고 있다. 일반적인 막연함이 많은 교우들 사이에 뿌리를 내리었고, 그로 인해 세상을 향한 마지막 기별의 독특함과 유일성이 흐려지게 되었다. 이런 중에라도 1970년 중옆, 부흥과 개혁을 위한 성서적 바탕을 마련하기 위한 몇몇 기념비적 노력을 우리는 인정해 주어야 할 것이다. 당시 대총회장이던 로버트 피얼슨 (Robert Pierson) 목사의 주도하에 1973년과 1974년 연례 회의에서 고귀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원칙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이 획기적인 기별은 당시 리뷰 앤 헤럴드 (Review and Herald)의 편집인인 케넷 우드(Kenneth Wood) 목사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았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에 대한 특집을 발간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최적시에 제시된 그리스도 중심의 기별에 대항하여 일어났다.
우리가 정직하고 신실하게 이 주제를 제시할 때까지 교인들은 계속해서 혼돈 속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진리 안에서의 연합과 성화의 경험 가운데로 들어가기 어렵게 될 것이다. 성경이 지지하는 진리만이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를 다시 굳게 세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