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 기별 – 서론 (The 1888 Message – An introduction)
참 고
역사적인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의 성소와 성소 정결의 교리와 와그너와의 관계를 생각할 때에 어떤 요인들은 중요하다.
1. 와그너가 하늘 성소 정결을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을 정결케 하는 것까지 관련시키는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다는 비난이 때때로 오게 되는데, 그것은 객관적인 진리를 내면화 하는 것이라고 한다. 와그너(나죤스)가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에 이 (정결케 하는)역사를 위하여 성소 정결을 제한하였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와그너는 마음을 정결케 하는 “일과 동시 사건”으로써 하늘 성소정결의 객관적인 일에 대하여 말하였다(비교하라 The Everlasting Covenant366, 367). 이것은 잘못된 입장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엘렌 화잇도 역시 이장에 표시한 인용구절대로 하늘 성소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의 정결로 향하는 사업을 말하였기 때문이다. 로마 천주교의
신비주의에서 빌려온 내면화한다(internalize)는 말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영광의 소망”이신 (골 1: 27) “하나님의 비밀”(계10: 7)을 마친다는 성경의 개념과 아무 상관도 없다. 어떤 교리를 내면화한다는 것은 죤스와 와그너의 관점에 반대인 순수히 자기 중심적인 관심에까지 교리를 타락시키기를 요할 것이다.
2. 1916, 5, 28일자의 와그너의 마지막 편지는 때때로 성소 정결에 대한 그의 가르침을 헐뜯기 위함에 기초가 된다. 그는 1916년에 자기가 사실상 “이십오 년” 더 일찍이 그러니까 1891년이 되는 그때에 성소에 대한 정통적인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의 관점을 포기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유감이지만 많은 입증들이 아무것도 판명하지 못한다. 다음 사항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
a. 1891년과 1902년 사이에 와그너의 기록들 중에 한 구절도 자기가 성소 교리를 포기 하였다거나 아니면 헐뜯었던 구절이 존재하지 않는다.
b. 1891과 1896년 사이에 우리는 그의 기별에 관하여 엘렌 화잇의 펜으로부터 계속 나가는 무수한 보증들을 발견한다. 그가 그때에 이 중대한 교리에 관한 믿음에서 이탈하고 있었다는 하나의 암시도 없다. 그 여인의 지대한 관심을 안다면 예언적인 선물을 활용하신 분이 그렇게 급진적으로 기별에서 이탈하는 것을 분간하지 못하였을까 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c. 와그너의 아마도 편집되지 않은 1916년의 언급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인다는 것은 우리를 아주 어려운 문제 속으로(와그너가 M.C.월각스 장노에게 사적으로 부친 편지 때문에 치명적인 심장마비가 예방되었다) 들여 보낸다. 그것은 우리가 와그너를 1891에서 1902년까지 부정직한 위선자로 간주하기를 요구할 것이다. 왜냐하면 문서상 증거는 그가 그 동안에 성소 교리를 공적으로 힘차게 가르쳤다는 것이 판명되기 때문이다(참고 예를 들면 영국 현대 진리 1901, 5, 23). 엘렌 화잇의 보증들과, 또한 그의 한창일 때에 그 생애의 사업의 전반적인 충격적인 관점으로 보아, 이것이 (위선자로 간주한다는 것) 너무 멀리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3. 이성은 우리로 하여금 와그너가, 엘렌 화잇이 그를 아주 열성적으로 지지 하였던 그 연한 동안에 비겁한 위선자가 된다고 하느니 보다는, 차라리 1916년의 그의 편지가 잘못된 것으로 간주하게 한다. 1916년에 그는 쓰라린 마음을 갖게 되었고, 패배 당하였고, 혼란된 사람이었다. 고독하고 형제들로부터의 반대 받던 그 동안의 수년은 그에게서 묻어 가는 것이 많았다. 그의 기별이 그의 형제들에 의하여 “대단한 정도로” 거절 당하였기 때문에(비교, 가려 뽑은 기별 [영문]제1권 234, 235) 와그너는 늦은비와 큰 외침의 그 시작 저편으로 결코 넘어갈 수 없었다. 그는 성소 정결에 대한 재림 신도의 교리의 의미 심장함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자기 영혼의 갈망을 결코 채울 수 없었다. 그가 1916년에 말하여야 하였던 것은 1891년 정도 일찍이 교리에 의심할 시험을 받기 시작 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공적으로 교리를 가르치고 있었던 그 동안 이 시험에 그가 양보 하였다고 말하는 것은 공정하다고 하기가 거의 어렵다. 그의 성격상 공개성과 솔직성은 그의 편에 그러한 부정직을 지시 한다고 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