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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 기별 – 서론 (The 1888 Message – An introduction)

제 2 장  참된 성령의 부으심

 

       때때로 학교 학생들이 최종 시험을 위하여 공부한 것 중에서 저들의 시험이 단 한 문제로 구성된 것을 발견하게 되면 어리둥절한 경험을 갖는다. 그러나 그 하나의 질문이 아주 엄밀히 조사하는 것이며 포괄적이어서 그 문제가 학생들의 기능(소질, 능력)을 긴장시킨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지는 최종 시험이 한문제로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참된 성령의 부으심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두 개의 실증이-즉 하나는 진짜 성령이요, 다른 하나는 지극히 영리한 위조(가짜)의 성령이-나란히 맞서게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하나의 “시험하는 질문”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말하라는 것이 될 것이다.

       1888년 늦은비의 시작 이전에 엘렌 화잇은 우리가 성령에 아주 가까운 위조를 만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고 이미 선언하였다. 양단간에 우리의 선택은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이 세상에 내리기 전에 하나님의 백성 중에는 사도시대 이래로 일찍이 보지 못한 초기의 경건의 부흥이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과 능력이 그 자녀들 위에 부어질 것이다.···그러나 영혼의 원수는 이 사업을 방해하려고 그러한 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이와 비슷한 일을 꾸며냄으로써(위조를 소개함으로) 이를 막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의 속이는 능력 아래 모이는 교회들 가운데는 마치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이 내린 것처럼 보여서 소위 큰 부흥이 일어난 듯이 일반에게 생각되도록 나타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볼 때에 그 실상은 전혀 다른 신의 공작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저들을 위하사 놀랄만한 일을 행하신다고 기뻐 날뛸 것이다. (GC 464, 각시대의 대쟁투 하권 251 참고).

 

       이 문구는 “현대적인 부흥”(국문: 신앙과 부흥과 참된 회개)이라고 표제가 붙은 장에 나타난다. 그런데 그것은 19세기 하반기에 유명한 부흥사들 중에 존재하였던 많은 거짓된 개념들을 폭로한다. 그러한 어떤 위조든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참으로 이해하는 아무 사람도 능히

속일 수 없다. 그런데 19세기에 많은 혼란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혼란이 더욱 심하다. 현대 “오순절”의 주관주의는 1888년 이전에 유명한 교회들을 휩쓸던 부흥운동에 그 근거를 두었다.

       현대 오순절 운동은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를 사로 잡기 위하여 용감한 노력을 들이고 있다. 하나의 실례를 인용한다.

 

       정결케 하고, 신선케 하고, 생명을 주는 공기를 호흡함이 오늘날 그리스도교를 건너 확산되고 있다. 모든 교파마다 어느 면으로 이 바람을 느끼고 있다……

       이 성령운동 혹은 부흥은, 이제까지 알고 있는 대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에 의하여 시작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진행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성령으로 말미암아 능력을 받는다. 그 성령은 사도 시대를 특징지었던 같은 능력과 선물들을 가지고 스스로 또 다시 나타내시고 있다(Full Gospel Business Men’s Fellowship Voice 1967,3월호).

 

       인싸이트 지에 보도된 대로 어느 한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 교인이 자기 이야기를 말한다.

 

2년 동안 나는 이 … 놀라운 성령의 침례를 위하여 기다렸습니다.···그러나 나는 나의 교회에서 그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가지신 모든 것을,—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기를 원하는 것을 나도 원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교파주의의 장벽을 깨뜨리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결국 부활절 날인 1970,3,29일에 다른 곳에 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당신의 영을 부으셨고 그분께서 약속하신 놀라운 증거를 나에게 주셨습니다. -성령께서 그들에게 방언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나에게 방언을 주신 것과도 같습니다. 나는 아름다운 하늘의 말로 노래하였습니다.

 

       이 기사를 써낸 그 저자는 그 환경들을 말하기 위하여 이 문구를 계속 인용한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 교인들은 “개종”되어야 한다.

 

       이 증언에 대하여 일반적이 아닌 유일하다는 점은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 교인에 의하여 증언이 주어졌다는 점이다. 그는 1972년 봄에 캘리포니아 리버싸이드에 있었으며, 그 도시에서 열리는 순복음 사업 국제 남성 교제(Full Gospel Business Men’s Fellowship International)의 집회에 참석하였다. 그 집회는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시작되었고 이적과 기사를 위한 것이었다. 그 집회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 교회를 향하여 방언의 선물을 포함하여 성령의 침례를 초래하는 계획으로 끝났다.

       그곳에 참석한 사업가들은 자기들의 단체에서 출간하는 음성(The Voice)을 은 세계 재림교회 목사들에게 보내도록 2,500불을 서약하였다. 그것은 주로 이적들-치료와, 알지 못하는 방언과, 성령운동의 특성을 나타내는

모든 현상들-로 된 출판물이다[인싸잇(Insight) 1973, 5, 15일자, 13, 14페이지].

 

       만일 이 “성령”이 위조라면 어디에 진짜가 있는가? 어딘가에 진짜가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약속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내 여종들에게 부어주리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행2: 17-21).

       “이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 지더라.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써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계18: 1-4).

 

       50여년 전에 전 대총회장은 고백하기를 자기는 1888년 기별로 “넷째천사”의 예언의 최초의 성취를 승인하였다고 하였다.

 

       1888년에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 교회에 아주 명확히 깨우치는 기별이 왔다. 그 당시에 그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라고 불리웠다. 그 기별 자체와 그 기별이 주어진 방법이 목사들과 백성들의 마음에 깊고도 영속적인 인상을 끼쳐 시간이 흘러가도 그 인상은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그 기별이 왔을 때 들었던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까지 그것을 깊이 관심 두고 그것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다. 이 오랜 연한 내내 그들은 굳은 확신을 유지하고 있으며, 언젠가 이 기별이 우리 중에 대단히 두드러지게 전파될 것과 교회를 정화시키고 변화시키는 일을 할 것이라고 확신하며 정다운 희망을 품어왔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교회 안에서 성취할 일을 위하여 주님께서 보내신 것으로 믿었다(A.G. 다니엘스 저, 그리스도 우리의 의 23페이지).

 

       에이 지. 다니엘스 장노는 부득이 부가하기로 생각하였다. “그 기별은 그 안에 쌓여 있는 측량 못할 축복들을 교회에 전달하기 위하여 마땅히 그랬어야 할 만큼 결코 받아들여지지도 않았고 전파되지도 않았으며, 순조롭게 제시되지도 않았다”(상동 47페이지).

       교단의 출판물들은 이 말의 진실을 증거한다. 예언의 신 기록에 내재하는 개념이 아니었더라면, 1926년 전후 수십 년 동안 1888년 기별 자체가 옛 베수비우스 화산의 밑에 깔린 폼페이 같이 잃어버리고 묻혀 버렸을 것을, 조사 연구가 지적한다. 우리는 소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많이 소유하고 있을지 모르나, 그것은 주님께서 이 백성에게 1888년 기별로 주신 빛에서 온 하나의 먼 부르짖음이다. 성령운동이 극단적인 주관적“복음” 을 통하여 남은 교회를 유혹하려고 노력할 뿐만 아니라, 순수하게 객관적인 칼빈적“복음”의 반대극단이 1888년 기별내용에 대한

우리의 광범위한 무지를 이용하고 있다.

       엘렌 화잇은 교회를 격려하여 그 1888년 기별로 참된 성령 부으심이 임하였다는 것을 믿도록 하였다.

 

       주님께서 당신의 크신 자비로 와그너와 죤스 장로들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에게 가장 진귀한 기별을 보내셨다는 이 기별은 온 세상의 죄를 위한 희생물이 되신 높이 들리신 구세주를 세상 앞에 보다 탁월하게 제시하게 되어 있었다. 그것은 보장이신 분을 믿음으로 받는 의롭다하심(칭의)을 제시하였으며 백성을 초대하여 그리스도의 의를 받도록 하였는데, 그 의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순종으로 나타내게 되어 있다. … 그것은 큰 소리로 전파되어야 할 셋째 천사의 기별이며 대폭적으로 성령의 부으심이 따르게(수반하게) 되어 있는 기별이다(목사에게 보내는 권면 [영문] l895

년 판 91, 92).

 

       늦은 비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엘렌 화잇에게 가까운 자들의 일반적인 확신이었다. 여기에 한 실예가 있다(A. T. 죤스가 말하는 것임).

 

       나는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G.B.] 스타어 형제에게로부터 얼마 전에 한 편지를 받았다. 나는 두세 문장을 읽겠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우리 과목을 공부하는 이 장소에 잘 부합되기 때문이다. “화잇 누님은 우리가 [1888년]

미네아폴리스 집회이래 늦은 비 시대에 들어 있다고 말합니다”(대총회회보 1893. 377페이지).

 

       2년 전에 E. J. 와그너는 고백하였다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는, 굳센 믿음을 가질 때에 우리는 능력있게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러 나갈 수 있으며 하늘 천사들의 음성과 우리 음성이 연합되면 그 기별이 큰 외침으로 나아갈 것이다.·–

나는 이 저녁에 큰 외침이 이제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믿고 기뻐한다 (대총회 회보 1891년 245, 246페이지).

 

       1893년 대총회에 참석하였던 회중의 기록된 고백이 여기에 있다. 죤스는 질문하고 회중은 대답하고 있다.

 

이제 형제들이여 언제 그리스도의 의의 기별이 한 백성인 우리와 더불어 시작하였습니까?

[청중 중에 한두 명이: ‘3년 혹은 4년 전이예요’]3년 혹은 4년 전 중에 어느 것입니까? [회중 :‘4년이요’]

예, 4년 전에지요. 어디서요? [회중 :‘미네아폴리스에서’] 미네아폴리스에서 형제들이 거절하였던 것이 무엇이지요? [회중에서 어떤 이들이: ‘큰 외침’] 의의 기별이 무엇입니까? 증언은 그것이 무엇임을,-큰 외침-늦은 비가 무엇임을 우리에게 말하여 왔습니다. 그러면 미네아폴리스에서 저들이 취하였던 두려운 입장에서 형제들이 무엇을 거절하였습니까? 그들이 늦은비-즉 셋째 천사의 큰 외침을 거절하였습니다(대총회 회보 1893년, 183페이지).

 

       우리는 상상으로 그 저녁에 조용히 주의를 집중하여 듣는 회중과 합세합시다.

 

       그러나 형제들이여 우리가 거절하였던 것을 오늘 저녁에 포착할 시간이 왔습니다. 우리 중 한 영혼도 미네아폴리스에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가지셨던 놀라운 축복을 아직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마음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기별을 받을 준비가 되었다면 우리는 4년간 그 축복을 누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저녁 4년 앞섰을 것이며 큰 외침 자체의 경이 중에 있었을 것입니다(대총회 회보 1893년 183메이지).

 

       대총회장 0. A. 올슨은 이 발표로 인하여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그 다음날 모인 대표자들 앞에 자기 영혼을 노출시켰다.

 

       이 장소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점점 엄숙하여 집니다. 나는 이 시간에 우리가 가지는 것처럼 그렇게 조용한 집회는 우리 중에 아무도 일찍이 가져 본 적이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확실히 아주 가까이 오셔서 사건들 즉 우리가 종래 충분히 감사하게 여기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던 사건들을 점점 나타내시고 계십니다.

       나는 어제 저녁에 아주 엄숙함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가까이 오심 때문에-그리고 여기에서 우리에게 전한 그 엄숙한 증언 때문에 그 장소가 나에게는 두려웠습니다.

       어떤 이들은 미네아폴리스가 언급된다는 생각에 대하여 심문당한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나는 어떤 이들이 그 집회를 언급하고 거기 있었던 상황을 암암리에 알리는 것에 대하여 슬픔을 느끼며 심문당하는 느낌을 가질 줄로 압니다. 그러나 어떤 한 사람이 왜 그렇게 느끼는지 그 이유는 자기편에서 정신(영)을 양보하지 않는 이유임을 명심할 것입니다.—어느 한 사람이 슬퍼한다는 그 생각은 마음 가운데 반역의 씨를 즉시 보여줍니다 (대총회 회보 1893년 188페이지).

 

       1893년 거기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을 적어도 부분적으로 인정하였던 탁월한 대변인 중에 하나는 W.W. 푸레스캇트이었다.

 

       이제 우리가 늦은 비 시대에 4년 동안 접어들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을 부어 주시기를 원하여 이 선물들이 회복되게 하여 당신의 사업이 능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신다는 것과 그분은 우리에게 즐겨 연합하고 전심으로 당신과 더불어 협력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내가 생각할 때에 우리는 버티고 있는 손이며, 가고자 하지 않을 발이라는 생각이 났습니다. 전신이 조각 나는 것보다는 차라리 몸이 기다려 왔었습니다(대총회 회보 1893년 463페이지).

 

       절박한 늦은 비의 이 기대는 1893년 회보의 부서지기 쉬운 옛 지면에서 계속적으로 응하고 있다. 1844년 밤중소리의 영광스러운 날들이 있은 이래, 그러한 종말론적인 희망으로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들이 고동치던 때가 없었다!

 

       하나님의 의 즉-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 옳은 행동-이 하나님의 백성에 의하여 받아 들여지고 전파되도록 허용된다면, 지상에 하나님의 사업에 대하여 무슨 의미가 될까요? 만사가 이루어 지기까지는 오직 짧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지금은 사업을 단 시간에 끝내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지상 역사를 마감할 장면의 중간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늦은 비가 의의 교사(The teaching)입니다. 하나님의 의의 그 기별이 언제 한 백성인 우리에게 왔습니까?

[회중 : ‘4년 전에’] 어디서요?

[회중 : ‘미네아폴리스에서’] ·–

그런데 그리스도의 의의 그 기별이 큰 외침입니다. 그것이 늦은 비 입니다 (대총회 회보 1893년 243페이지).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부르심이 주의를 기울이는 바가 되기도 전에, 적어도 다른 한 세기의 대부분이 흘러가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것을 알고 그 밤에 그 회중은 간담이 서늘해지지 않았겠는가? 그때 이후로 많은 책들이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 역사에 관하여 기록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1971년에 출판된 엘.이. 후룸저 운명의 운동을 제외하고는 1888년 기별과 역사의 이 참된 중요성을 나타낸(노출시킨, 폭로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후룸은 용감하게 1888년 기별이 늦은비의 시작이라고 일치시킨다.

 

       이리하여 19세기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설명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의의 출현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장차 오게 되어 있는 큰 외침의 최고 절정의 능력에서 나오는 열심이었다. 그런데 그것의 견본이 그때에 제시 되었다. 화잇 부인은 일어났던 것이 실제로 늦은 비의 시작이었다고 명백히 말한다(운명의 운동 영문 345).

       미네아폴리스 기별은 [F.H.] 외스트팔의 마음에 가장 귀중하게 되었다. 그것은 나의 귀에 음악같았다고 그는 선언하였다. 그는 위스콘신 플레인 필드로 돌아와 늦은 비가 시작되던 교회를 말하였다. 그 결과 한 농부가 자기 농장을 팔아 많은 돈을 주님의 사업에 투자하고 문서 전도에 가담하였다가 마침내 목사 안수를 받았다(운명의 운동 영문 262).

       1888년에 울리기 시작한 큰 외침을 부인한 사람은 예언의 신의 진실성을 배격한다. 늦은 비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그 당시에 우리에게 새로이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기별의 성실성에 이의를 제기 하는데 쏠리지 않았다

(운명의 운동 영문 667).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모든 학생들은 1888년의 이 진리들이 아직 그 만조에 이르지 않은 것을 알고 있는 고로 그 후에 그 진리들은 반드시 우리에게 들려야 하며 들려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을 향한 우리 증거의 최후 장면에 들어간다. 하지만 그래도 그 진리들은 세상을 향한 우리의 최종적인 기별 제시의 고동치며, 온통 스며드는 심장부가 되고야 말 것이다. 그“최후운동”을 성령이 충만하고, 그리스도 중심적이며, 완전한 기별이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 과도 충전된 운동들로,‘급속한 것들’이 될 것이다. ·–1888년의 영광스러운 기별들은 승리할 것이다(운명의 운동 영문 521).

 

       재림 선구자들을 지지하여 준‘복스러운 소망’은 그분이 돌아 오실 때에 죽지 않고 예수님을 직접 보고 승천하는 소망이었다. 1888년 기별은 이 승천할 소망을 다시 불 붙여 준다. 에이.티. 죤스는 교회증언 제1권 187페이지를 인용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말하기를:“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할 수 있는 한도의 지점에 올라오며 모든 시험에 견디며 이긴 자들은 참된 증인의 권고를 주의하며 그들은 늦은 비를 받을 것이요, 이리하여 승천을 위하여 적합하게 될 것이다.” 이제 끝맺는 말로;

 

       형제들이여, 그것이 우리가 위치한 곳입니다. 그와 같이 행동합시다. 우리를 승천하도록 우리의 그릇됨에서 구원하시고 위험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며 그릇된 노선에서 돌이켜 보호하시며, 여기까지 한결같이 대하여 주신 주님께 감사 드립시다. 승천 그것이 그대와 나에게 그 기별이 뜻하는 것입니다(대총회 회보 1893년, 185페이지).

 

       며칠 후에 그들은 같은 주제로 다시 되돌아 왔다.

 

       형제들이여 늦은 비가 승천을 준비시키는 것임을 생각하면 적지 않은 격려가 되지 않습니까? ·–

       그러면 늦은 비가 어디에 내리며, 언제 내릴까요? 지금이 늦은 비 때입니다. 큰 외침을 위한 시기는 언제 입니까? [음성:‘지금이요’]늦은 비가 우리로 무엇을 위하여 준비하게 하는 것입니까? —[음성:‘승천을 위하여’]. 주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주시는 그 시험이 우리로 승천을 위하여 적합하게 한다는 것은 나에게 용기를 줍니다. 그리고 그분이 오셔서 여러분과 나에게 말씀하신다면, 우리를 승천하도록 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죄를 승천시킬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분이 우리에게 죄의 깊이와 넓이를 보여 주시는 유일한 목적은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위하심이며, 우리를 승천할 수 있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그분께서 우리에게 죄를 보여 주실 때에 낙심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그분이 우리를 승천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며, 너무도 원하시므로, 할 수 있는 대로 빨리 우리 죄를 버리시기를 원하시는 그분께 감사드립시다(대총회 회보 1893년, 205페이지).

 

       승천 준비에 대한 생각과 밀접하게 연결된 것은 건강 기별에 대한 더욱 분명한 이해이었다.

 

       “이제 다른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한 두려운 사실을 앞에 놓고 살고 있습니다. 즉 그것은, 만일 우리가 지금 제시하는 그 기별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받을 것이라는 두려운 결과가

거기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기록된 대로 그 사실과 직면하게 될 그 사업이 지금 시작 됩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건강개혁에 아직 소유하지 못한 어떤 능력을 주지 않겠습니까? 건강 개혁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바 되었을 때에 그것은 승천을 위하여 백성을 적합하게 하는 것으로써 정의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승천하기 전에 7재앙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니까 만일 사람의 피가 불결하고 혼탁한 물질로 가득하면, 공기가 역병으로 오염 되었을 때에 그가 통과 할 수 있을까요? 참으로 그는(통과) 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