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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신학의 기만 (Deceptions of The New Theology)

제11장 예언의 신과 신신학

 

신 신학을 우리 교회에 도입하려는 자들은 그들이 전하는 기별이 예언의 신의 말씀과 일치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믿도록 하기 위하여 오랫 동안 분투 노력해 왔다. 화잇 부인의 글 중에 있는 구절들을 조심스럽고 선택적으로 뽑은 다음, 자신들이 마치 하나님의 참된 진리를 새로 발견한 것처럼 사람들을 설득하였다. 그러나 자세히 연구해보면 신신학을 신봉하는 자들의 모든 중요한 주장 하나 하나가 한결 같이 예언의 신의 말씀과 일치되지 않음을 알게 된다.
화잇 부인의 글은 성경의 위대한 기별들을 그대로 반사하고 있기 때문에 신신학을 따르는 사람들은 결국에 가서는 화잇 부인의 예언적 은사를 부인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지각이 있는 교인들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화잇 부인을 부인하는 일은 매우 교묘하게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화잇 부인은 엄청난 축복을 받은 분이며, 자기들의 생애에 큰 변화를 주었다고 증거하면서, 또한 화잇 부인은 “그녀의 사명을 위해 완전하였다”고 말했다. 그래서 화잇 부인의 기별의 사명이 무엇이냐고 질문했더니 그들은 “교회에 권면의 말씀을 주고 교회를 인도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자주 화잇 부인이 신학자가 아님을 강조했다. 그래서 역사적 사실이나 과학에 관해서는 틀릴 수도 있고, 그의 기별은 교리적인 것도 주석적인 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예언의 신은 경이로운 글이라고 강조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와같은 거짓 칭찬으로 자신들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감출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만적인 접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참 모습을 감추는데에는 시간의 한계가 있었고, 결국 그들이 화잇 부인의 예언적 은사를 부인하는 현실을 더 이상 감출 수가 없게 되었다.
오늘날 신신학의 가르침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은 화잇 부인에게 맡겨진 교회에서의 역할을 전면적으로 부인함으로서, 자신들이 이전에 화잇 부인에 대해서 칭찬하고 인용했던 예언의 신의 글들을 부인하는 모습을 드러내는 수치를 보이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화잇 부인의 저서들을 태우거나 버리는 일까지 자행하고 있다.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은 이제 예언의 신이 더 이상 필요없다고 말하면서 화잇부인의 저서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준다. 한 목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예언의 신을 팔아버리면서 이제 자신의 서재의 수준을 높혔다고 말했으며, 어떤 사람은 화잇 부인의 권면을 읽기를 중단함으로서 죄책감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안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황홀감은 마치 아담과 해와가 금지된 실과를 따 먹은 후의 느꼈던 감정과 흡사한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 신신학은 궁극적으로 슬픔과 참담함을 안겨줄 것이다.
예언의 신에 대한 공개적인 부인은 주로 화려한 화장과 금은 패물의 착용을 금하는 것과 같은 율법주의적 계율에 더 이상 구속당하지 않고 해방되었다는 사상을 가짐으로서 그들의 주장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나중에는 적당량의 음주는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사단의 간계에서 해방시키기 위하여 우리에게 주신 의의 원칙들로부터 한 발자국씩 멀어지게 되었다. 이런 무리들 중 많은 사람들이 후에 자신의 결혼 생활이 흔들리고 이혼 별거 등의 비극적인 경험을 하게 되었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맡겨주신 귀중한 자녀들의 정신에 부정적인 심리적 충격을 안겨줌으로서 비극에 비극을 더하게 되었다. 신성한 권면을 거절함으로서 이와 같이 처참한 종의 신세로 돌아가게 되었고, 성경과 화잇 부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의 권면을 식별할 수 없게 되었다.
이들은 또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가 하나님의 남은 교회임을 부정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예언의 신으로 축복받을 것이라는 성경의 확실한 증거를 부인한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요한계시록 12:17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 (Spirit of Prophecy) 이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19:10
신신학자들은 예언의 신을 거절함으로 결국 성경을 부인하게 되었다. 예언의 신에 대해서 그들이 내린 평가와 동일한 평가를 성경 말씀에 대해서도 적용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에 대해서도 “그 사명에 있어서 완전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미 앞에서 말했던 바와 같이 성경 말씀의 사명은 구원의 길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역사나 과학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역사가 창조 이후 6,000년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위해 오랫 동안 애써왔고 노아 홍수에 대한 성경상의 사실에 대해 의문을 표시해 왔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나타난 많은 중요한 사건들의 의미가 왜곡되었다. 그들은 성경에 나와있는 여러가지 역사와 기사에 대해서 의심하고 부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구원의 원칙을 제시하는 면에 있어서는 영감이 부여된 책으로 본다. 그러나 결국에 가서는 이것 역시 거절하게 된다. 예를들면 하나님의 남은 백성에 대한 부인할 수 없는 진리를 부인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치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궤휼한 혀가 없으며 먹으며 누우나 놀라게할 자가 없으리라. 스바냐 3:13
나는 한 젊은 청년을 기억하고 있는데, 그는 재림교회 대학에서 공부하였으며 성경은 구속의 원칙을 나타내는데에 한해서만 완전한 책이라는 사상을 배웠다. 그는 일반 대학에서 의학 공부를 하기 전에 교회 대학에서 몇년 더 공부를 하기로 작정하였다. 그 동기는 진정한 크리스챤 의사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의 토대를 굳건히 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에 그는 자신의 신앙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 청년이 주장하는 바는 만일 성경이 역사나 과학에 있어서 정확하지 못한 것이라면 거기에 나타난 구원의 원칙 또한 정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만일 그가 확실히 조사할 수 있는 범주 내의 사실들이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면, 내가 직접 조사할 수 없는 주장들도 마찬가지로 믿을 수 없는 것이라는 그의 논리는 타당한 것이다. 이 젊은이는 결국 논리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불행하게도 그의 대학 시절이 그에게 하나님과 말씀에 대한 믿음을 굳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떠나게 하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이 사건의 과정에서 경건한 그의 부모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는 주님을 떠났으며 내가 알기로는 아직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영감의 차원과 정도에 대한 의문이 계속 제기되어 왔는데 사실 이러한 의문은 생소한 것이 아니다. 화잇 여사의 영감은 성경의 저자들의 영감보다 낮은 것이라는 이야기가 이따금씩 들리는데 이러한 견해는 화잇 여사의 권면에 대한 권위를 축소시키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사실상 그것이 그들이 의도하는 목적이다. 그들은 화잇 여사가 자신의 글은 성경의 위대한 빛으로 인도하는 작은 빛이라고 한 말씀으로 이러한 견해를 뒷바침 한다. 또한 화잇 여사는 자신의 글을 성경보다 높이는 일을 삼가하라고 권고하신다. 나아가 자신의 글은 성경의 일부분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말씀하셨다. 이러한 말씀들로 미루어 결국 화잇 여사의 증언들의 권위가 성경의 영감보다 낮은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또한 화잇 여사는 자신을 일컬어 선지자라고 부르지 않았으며, 기별자 (messenger) 라고 말한 사실을 들어 화잇 여사의 영감은 낮은 차원의 영감이라는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증거로 삼는다. 그러나 그들은 화잇 여사 자신의 역할을 선지자 이상의 것이라고 하신 화인 부인 자신의 증언을 무시한다. 이러한 그릇된 영향력들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언의 신을 거절하는 길로 들어가게 되었다.
더 나아가 그들은 화잇 여사가 계시나 꿈으로 기별을 받을 때에는 완전한 영감속으로 들어갔지만, 그렇지 않은 때에는 단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 것 뿐이라고 주장함으로서 화잇 여사의 권면의 권위를 추락시키려 한다. 화잇 여사에 대해서 그들이 말하는 그러한 기준을 적용한다면 성경에도 이와 같은 기준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기준이 받아들여진다면 대부분의 성경 기자들의 기록도 부인하게 될 것이다. 참으로 이것은 하늘이 주신 화잇 여사의 기별의 권위를 부인하는 자들이 걷게 되는 마지막 길이다.
남은 교회가 구별되는 독특한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예언의 신이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요한계시록 12:17
내가 그 발 앞에 업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Spirit of Prophecy) 하더라. 요한계시록 19:10
주님께서는 마지막 때를 위하여 예언의 선물을 약속하셨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요엘 2:28

화잇 여사는 성경을 저술한 선지자가 아니므로 그의 기별을 무시해도 상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결론은 예수님께서 침례 요한을 가리켜 여인이 낳은 자 중 제일 큰 자라고 하신 말씀을 고려하지 않은 결론이다. 침례 요한은 성경의 어떤 부분도 기록하지 않았지만, 그는 여전히 선지자이다.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작은 선지자에게 당신의 기별을 맡기시지 않으셨을 것으로 우리는 믿는다. 우리는 하늘 나라에서 화잇 여사는 참으로 큰 선지자였음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선지자에게 영감의 정도가 있다고 우리는 믿지 않는다. 화잇 선지자는 완전한 영감을 받은 하나님의 선지자이던가 아니면 사단의 영을 받은 거짓 선지자이던가 둘 중에 하나이다. 화잇 선지자의 예언적 은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준비시키는 일에 필수적일 뿐 아니라 성경 말씀을 영감의 책으로 받아들이는데 있어서도 필수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