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어떠한 분이셨을까?
저자: 강병국 목사
왜 화잇 선지자께서 수십 번이나 예수님께서는 죗된 본성(sinful nature)을 쓰시고 태어나셨다고 말하고 있을까요? “죗된 본성”이란 단어가 듣기에는 좀 거북스럽고 우리 주님과는 어울릴 수 없는 단어처럼 인식되어서 그렇지 실제로는 우리가 조상들로부터 유전법칙을 통하여 타고나는 육신적, 정신적, 도덕적 연약성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대화를 통해서 아니면 글과 지면을 통하여 예수님의 인성에 대한 토론들을 듣고 있노라면, 복잡하여 방향을 분간 할 수 없는, 얼기 설기된 지하 땅굴을 헤매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됩니다. 정말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꼭 같은 인성을 가지고 계셨는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이 다른가? 우리도 예수님께서 완전하셨던 것처럼 완전할 수가 있는가? 하는 질문들은 요즈음 재림교회 신학자들과 평신도들 사이에 깊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직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 문제에 대한 정의와 이해를 확실하게 다시 정립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하고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편 애매한 말들이나 글들을 듣고 읽으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지게 될 혼돈과 그들이 느끼는 실망들을 저도 가슴 속으로 느껴보게 됩니다.
우선 이러한 현대 재림교회가, 횡설수설하는 가르침들을 떠나 우리 재림교회의 선조들인 목사님들과 지도자들이 정의해 놓은, 원래 우리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가 믿고 가르쳤던 예수님의 인성문제에 대한 정의를 들어 보도록 합시다. 다음의 글은 우리 교회 대총회가 화잇 부인께서 돌아가신 같은 해인 1915년도에 펴낸 “가정을 위한 성경연구”(Bible Reading for the Home) 책 115 페이지에 실려 있는 글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인성을 입으실 때, 우리의 죗된 타락한 본성을 취하셨다. 그렇지 않으시다면 주께서는 당신의 형제들과 같이 되신 것이 아니요, 우리와 한결같이 모든 면에서 시험을 받지 않으신 분이라면, 또한 우리가 이겨야 하는 것처럼 승리하시지 않으신 분이라면 그분은 인간이 필요한 완전하고 온전한 구세주이실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죄의 본성이 없이는 어머니를 통하여 무염시태(죄의 본성이 없는 상태)로 나셨기 때문에 죄로 기울어지는 아무런 경향을 타고 태어나지 않으셨다고 말하는 것은 주님을 타락한 세상으로부터 제거하는 일이요, 우리가 꼭 필요한 바로 그 장소로부터 주님을 없애는 일이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인성면에 있어서는, 모든 아담의 자손들과 꼭 같이 죄의 본성을 타고서 태어나셨다. (죄의 본성이란 궁극적으로 연약성을 말하기 때문에 죄의 본성 자체가 죄가 아니라는 것을 주지하기 바람-필자 주). 그러나 그의 신성의 면에서는 그분께서 잉태되실 때부터 성령에 의하여 잉태되시고 출생하신 것이다. 이러한 모든 일들은 인간을 유리한 입장에 놓으시기 위하여 행하신 것이요, 그와 꼭 같은 방법으로 성령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들도, 주님께서 자신의 죗된 육체 가운데서 승리하신 것과 같이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하여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각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 같이 승리해야 하는 것이다(계 3:21). 이러한 거듭남이 없이는 유혹에 대한 승리가 있을 수 없고 죄로부터 구원이 없는 것이다.” Bible Reading for the Home p.115.
얼마나 시원하고 깨끗한 글입니까? 우리의 선조들이 강조한 점이 바로 “진정한 거듭남”에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자주 “어떠한 완전을 말하는가?”에 대하여 애매하고도 알쏭달쏭한 대화와 글들을 펴 내려고 애를 쓰곤 합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왜 화잇 선지자께서 수십 번이나 예수님께서는 죗된 본성(sinful nature)을 쓰시고 태어나셨다고 말하고 있을까요?
“죗된 본성”이란 단어가 듣기에는 좀 거북스럽고 우리 주님과는 어울릴 수 없는 단어처럼 인식되어서 그렇지 실제로는 우리가 조상들로부터 유전법칙을 통하여 타고 나는 육신적, 정신적, 도덕적 연약성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한번도 죄를 지어 본 일이 없으셨고 그리하여 악으로 기울어지는 죄의 경향(sinful propensity)을 가지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태어나실 때부터 거듭나신 분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본이 되시는 것이지 거듭난 경험이 없는 모든 사람들의 표준은 아닌 것입니다. 그들은 하려고 해도 도저히 이룰 수 없는 타락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재림 교인들이 계속적으로, 성경이 말하고 있는 우리들의 거듭나기 이전의 비 영적인 마음의 상태에 대한, 또한 거듭난 경험이 없는 일반적인 인간들에 대한, 도저히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없는 상태들에 대한 언급들에만 집착함으로 스스로 혼돈에 빠져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죗된 경향을 가지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화잇 부인께서는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 우리도 그러한 단 하나의 죗된 경향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배워야만 한다. 우리는 주님께서 당신이 구속하시는 자들에게 어떠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우리는 그분을 믿음으로 신의 본성에 참여하여 정욕으로 인하여 썩어져 가는 세상의 부패함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특권을 이해하여야만 한다. 그 때에 우리는 모든 죄로부터 깨끗하게 되고, 모든 성품의 흠으로부터 정결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단 하나의 죗된 경향(sinful propensity)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짊어지신 분이시다.” R&H, 4-24-1900.
그러므로 위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죗된 경향이란 우리의 타락한 마음의 상태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다음의 화잇 부인의 놀라운 말씀을 여러 번 읽고 되씹어보도록 합시다. “하나님의 율법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또한 굴복 할 수도 없는 육에 속한 마음이 영적인 마음이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다음과 같이 부르짖게 된다. ‘오 나의 하나님이시여, 내가 당신의 뜻 행하기를 즐거워하나이다. 당신의 법이 내 마음에 있나이다’ 라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말 그러한가? 그들은 과연 영적인 마음 곧 그리스도의 마음, 즉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영문 시조, ST 11-24-1887.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단지 그리스도의 이름만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음 곧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그러한 마음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That I may know Him 174.
“자신들을 성령께 굴복시키는 모든 자들 속에 새로운 생애의 원칙이 심어지고 하나님의 잃어버렸던 형상이 인간 속에 재생되는 것이다.” 실물교훈 영문, 96.
예수님의 인성을 우리와 다른 것으로 자꾸 정의하려고 애를 쓰면서 우리도 결국에 가서는 그분처럼 승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큰 모순입니까? 물론 우리는 하늘에 가서도 계속적으로 발전하고 더욱 더 완전을 향하여 자라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완전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힘으로 우리의 모든 죄와 유혹들에서 완전히 승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해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매일의 생애에서 있는 죄와의 싸움에서 완전한 승리를 주실 수 있는 능력의 구세주이십니다. 주님께 감사 드리며 그분의 이름을 찬양합시다!
성경이 말하는 완전은 죄의 본성을 가지지 않은 천사들의 완전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강조하고 또한 요구하고 있는 완전은 죄의 본성을 가지고도 성령의 거듭남으로 신의 본성에 참여하여 죄와 자기와 세상을 이기는 성품의 완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성의 완전이 아니라 바로 성품의 완전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에 가면 본성까지도 죄 없는 천사와 같은 본성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죄의 본성을 지닌 이러한 상태에서라도 모든 죄를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생애였고 타고나신 본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히브리 2장에서 예수께서는 천사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씨로 태어나셨다고 강조하였고, 1장 첫 부분에서도 주께서 다윗의 혈통(피와 살)으로 태어나셨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인성문제와 우리의 완전문제를 “참된 거듭남”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어 이해해 보도록 해봅시다. 그러면 훨씬 문제가 간단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새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새 생각, 새 목적, 새 동기를 갖는 것이다. 새 마음을 가졌다는 표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변화된 생애이다” 청년에게 보내는 기별 66.
끝으로 다음의 영감의 글을 읽고 깊이 명상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있어서도, 인간들이 자기들의 낮아진 타락한 본성에서부터 올라가 신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일이 힘들었던 것처럼, 인간의 수준에 머무르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었다. … 사단은 인간의 마음의 약점들을 잘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었고, 인간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취하신 그 인간성의 약점들을 이용하여 승리하려고 발악을 하였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순종을 마치 그분께서 인간을 대신한 대체물로서 유혹을 받으시고 사람들의 대리자로서 하나님 앞에 서시기 위하여서, 자기의 특별한 신성의 본성에 의하여 대처(적응)된 어떤 것으로 생각지 말아야 한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가질 수 없는 어떤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계셨더라면 사단은 그것을 큰일로 만들어 떠들어 댓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업은 사단이 인간을 주관할 권한이 있다는 그의 주장을 취하여 버리시려는 것으로서, 곧 그렇게 하시기 위하여서는 그분께서 한 인간으로서 유혹을 받으시고, 한 인간으로서 순종을 돌리심으로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본 교회 성경주석 7권 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