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인성 -서론-
저자: 편집실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가르침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어렵고 혼돈되는 교리로 인식되고 있다. 어떤 면에 있어서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가르침이 재림 교회 안에서 이토록 화두로 떠오르는 이유는 이것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구원론)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인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어떻게 구원 받게 되는가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인성은 타락한 우리 인간의 본성과는 다른, 아담이 타락하기 이전의 본성을 취하셨다”고 믿는다면 그 사람은 예수께서 죄를 승리하셨던 것처럼 그의 모본을 따라 우리도 승리할 수 있다는 성화의 가르침을 거절하게 된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인성은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승리하실 수 있어도 우리는 승리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이 범하는 죄에 대하여 분명한 핑계거리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의 인성은 우리와 같은, 즉 아담이 타락한 이후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라고 믿는 사람은 “예수께서 죄에 대하여 승리하셨으므로 우리도 승리할 수 있다”는 성화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되고, 또한 그러한 가르침에 일치하는 생애 곧 죄를 승리하는 생애를 살기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최선을 다하게 된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죄에 대한 어떠한 핑계도 있을 수 없다.
이 두 가르침 중에서 어떤 가르침이 성서적이고 예언의 신과 조화를 이루는 가르침일까?
연구에 들어가기 전에 잠깐 요약해본다면, 먼저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의 인성은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와 같으나 죄는 없으시다”이다.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 2:17, 4:15)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인성이 우리와 같다면 어떤 면에서 같다는 말일까?” 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성경과 예언의 신은 예수님을 “거룩한 구세주”로 표현하지만, 죄를 극복하고 승리하는 인간 예수의 모습을 묘사할 경우에는 항상 “우리와 같은” “죄로 인하여 타락한 인성을 취하신” 등과 같은 표현을 함으로써, 유혹과 죄에 대하여 저항하고 이기는 면에 있어서는 타락한 우리 인간과 다를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인성에 우리의 타락한 본성을 취하셨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면, 주께서는 그 형제들과 같이 되실 수도, 우리와 같이 모든 일에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실 수도 없으셨을 것이다. 또한 우리가 이기는 것처럼 이기신 것도 아니었을 것이요 인간이 필요한 그러한 온전하신 구세주가 아니셨을 것이다…그리스도께서는 인성으로서 아담의 모든 자손들처럼 죗된 본성을 물려받으셨다. 신성의 편에서는 잉태되실 때부터 성령으로 탄생하시었다. 이 일로 인하여 인간은 더 나은 고지로 올려 놓아지게 되었고, 성령으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승리해야 한다. ”
1946년도 판 Bible reading for the home (대총회 발간 – 이것은 화잇 선지자가 살아있던 당시 우리 교회가 믿던 신조였음 ): 195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것이 대총회가 공인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이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연구를 할 때, 그리스도의 인성이 유혹과 죄를 극복하고 저항하는 면에 있어서 우리 인간과 같았는가 라는 면에 초점을 맞추어야만 많은 오해와 혼돈을 피할 수 있게 된다. 만일 그리스도의 인성이 죄를 이기는 면에 있어서 우리와 달랐다면, 어떻게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길 수 있었겠는가!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 3:21)
자세한 연구로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가지 꼭 언급되어야 할 사실은, 만일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가르침이 흔들릴 경우, 죄를 승리하는 생애에 대한 가르침이 무너지게 되며, 또한 성화에 대한 가르침이 재림 교회에서 사라지게 되어 결과적으로 “구원은 칭의로만 가능하며 성화는 필요 없게 된다”는 신신학의 위험한 교리가 재림 교회에서 깊은 뿌리를 내리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될 때, 재림 교회는 늦은 비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늦은 비 성령을 받는 조건이 바로 죄에 대한 완전한 순종이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이 그들 편에서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그들에게 늦은비가 임하여 그들의 과오를 제거해주고 그들의 잘못을 시정해주기를 기다리고만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그들에게서 육체와 정신의 모든 더러움을 제거하고 셋째 천사의 큰 외침에 가담하기에 적합하게 만들어 주기를 기대한다면, 그들은 부족함이 발견될 것을 나는 보았다. 유쾌함 또는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명하신 일 곧 육체와 정신의 모든 더러움을 제거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중에 거룩함을 완성하는 일을 행함으로써 그것을 받을 준비를 갖춘 자들에게만 임하는 것이다. ” 1T 619
“만일 누구든지 진리를 순종하므로 순결해 지지 않고 그들의 이기심과 교만 그리고 악한 욕망들을 승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천사들은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그들은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그대로 두어라.’ 그리고는 그들의 정복하지 못한 악한 습성들과 함께 그들을 악한 천사들의 조정에 버려둔 채 다른 일을 위하여 떠날 것이다. 모든 점을 극복하고 모든 시험에 이기고 어떤 결과가 생기더라도 참된 증인의 권면에 따르고 극복한 자들은 늦은비를 받고 변화되어 승천하기 위하여 준비될 것이다. ” 1T 187
유대 교회가 그리스도의 초림과 이른비를 위하여 세워진 교회였던 것처럼, 재림 교회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늦은 비를 위하여 세워진 교회이다. 그러나 늦은 비를 가져오는 가르침인 죄에 대한 완전한 승리의 가르침이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신신학적 오류로 인하여 흔들리고 무너지게 될 경우, 재림 교회는 그 존재 이유와 목적을 잃어버리게 되고 만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남은 교회의 일원으로서, 재림 교회 안에서 그토록 많은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그리스도의 인성 문제를 반드시 이해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연구가 영적으로 큰 축복을 가져오게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