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생활을 어떻게 시작하나요?
(한 통의 편지의 대한 회신)
날아온 편지
“강목사님이나 이 편지를 받는 견고한 토대의 어떤 분이던지 답장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최근 몇 달 전부터 견고한 토대 월간지가 저희 집에 배달된 이후, 저는 시골 생활에 대한 신앙적 근거와 필요성에 대한 많은 지식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에 대한 방법론적인 문제에 접근하게 될 때, 과연 어떻게 시작 되어지고, 어떻게 영위되는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계획할 수 없으니 제게 도움이 될 만한 실제적인 자료나 경험적인 의견이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시골 생활의 유익과 영적인 성장을 생각하면, 그 신앙적 근거와 필요성을 충분히 느끼고 인정하며 또한 그러한 단순한 생활을 동경하게 되지만, 시골 생활 중에 당면하게 될 경제 생활과 수입, 그리고 아이들의 교육 문제 등은 아직도 우리 가정으로 하여금 도시를 떠나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는 주요 장애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부디 시골생활에 대한 구체적으로 실제적인 정보를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의 믿음에 대한 새로운 토대를 세워주는 견고한 토대지에 감사를 드리며 이만 맺겠습니다.”
미 동북에 사는 K,Y
시골 생활에 대한 기사들을 다룰 때마다 주님께서 월간지를 편집하는 우리들에게 인상을 주시고 부담을 주시는 것은 글을 읽는 견고한 토대의 독자들에게 “우리 가정도 시골 생활을 할 수 있다”라는 용기를 불러일으킬 만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정보를 제공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사를 준비하는 우리의 손을 붙잡았던 두 가지의 음성과 생각이 있었는데, 하나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개인적으로 인도하신다는 음성이었는데 그 음성은 우리로 하여금 원칙과 표준 만을 제시하고 어떠한 실제적인 방법론에 대해서는 왠지 회피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어느 정도는 인간적인 것일지는 모르지만 “견고한 토대가 교인들을 빼앗아 간다”라는 도시 교회에 다니고 있는 형제 자매들의 부당한 항의(?)를 피하고 싶은 연약한 생각이 우리들의 마음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골 생활에 대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여 주의 종께서 촉구하시는 말씀을 대할 때마다, 도시의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범죄와 죄악을 날마다 신문 지상을 통하여 목격할 때마다, 그리고 주의 재림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예언의 성취를 보고 들을 때마다 우리들은 새로운 도전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들이 시골로 이주해 온 이후, 주님께서 실제적으로 시골이라는 환경과 공간을 통하여 우리의 자녀와 가정을 축복하시고 인도해 주신 손길에 대한 기억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더 이상 형제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와 책임을 뒤로 미루지 못하게 하는 주요 원동력이 되었다. 지난 5-6년 동안 우리들이 개인적으로 받았던 은밀한 축복과 은혜는 우리들로 하여금 이 기사를 월간지에 넣도록 강요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드리고 싶은 주의 사항은 우리들이 편집한 이번 기사가 현재 시골 생활을 하고 있거나 하려고 계획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표준과 원칙은 아니라는 점이며, 또한 시골 생활을 위한 어떠한 특별한 장소를 제시하려고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는 바이다. 우리의 원칙과 표준은 오직 영감의 글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지금 현재 우리들이 경험하고 있는 시골 생활을 소개함으로써 시골 생활에 대한 한 가지 예를 제시하고자 할 뿐이다.
시골 생활에 대한 큰 빛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20년 전, 30년 전의 한국 시골 생활에서의 쓰라린 실패 경험이 오늘날의 시골 생활을 반대하고 막는 무기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단순한 순종의 정신으로부터 배울 것을 찾아야 하며 그들의 부족한 실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오늘날에는 시골 생활에 대한 많은 예언의 신이 번역되어서 시골 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자녀 교육으로부터 경제 생활에까지 거의 모든 신앙 생활의 분야에 대해서 예언의 신은 우리들에게 원칙과 표준을 제시해 줌으로써 우리의 영적 생활의 방향을 실제적으로 설정해 주는 데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다.
부디 이 글이 주의 재림을 위해 오늘을 준비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실제적이고 효과적인 시골 생활의 예증이 되기를 기원한다.
▶ 시골 생활도 여러 가지
오늘날 우리들이 말하는 시골 생활에는 각자의 상상과 취향에 따라 여러 가지의 종류가 있음을 볼 수 있다. 물론 각 개인의 개성과 형편에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모두가 천편일률적인 생활을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증언의 말씀에 분명히 나타나 있는 원칙을 무시하거나 등한히 하는 시골 생활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가 원칙과 표준에 대한 마음의 확신을 소유해야 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의 취향에 맞추는 시골 생활을 즐기다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안락과 게으름만을 추구하는 고급 별장 생활로 전락되기 쉬우며 도시에서 즐기던 모든 부절제와 방종과 세속적인 습관들을 장소만 시골로 옮기는 것을 시골 생활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우리의 정신과 마음과 육체를 모두 시골로 이주시킴으로써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복음의 원칙과 표준을 실천하고 준수하는 가운데 자신의 영혼을 시골의 먼지 나는 흙 속에 파묻는 겸손과 온유와 인내의 교훈을 배우는 교육의 터전을 시골생활이라고 부르고, 또 그렇게 계획해야 한다.
이제 미국 동남부에서 시작되고 지금까지 영위되고 있는 시골 생활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면서 독자들에게 시골 생활에 있어서 실제적으로 필요한 정보와 방법을 제시해 보기로 하겠다. 한 가지 편집인으로서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이 글이 한국에 계시는 독자들을 위한 현실적인 정보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독자들은 지역적이고 문화적인 차이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면들을 깊이 이해하면서 이 글을 참조하게 되기를 바란다.
▶ 장소
시골 생활의 장소는 시골이어야 한다. 미국 본토의 지도를 내려다 볼 때, 도시와 사막과 사람이 들어가서 살 수 없는 황무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시골임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우리들이 이곳 조지아 주를 시골 생활의 터전으로 삶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이곳 기후가 한국의 부산이나 제주도의 기후와 비슷하여 4계절이 있음으로 생활하는데 있어서 기후로 인한 어려움이 없으며 또한 농사 짓기에 유리하다는 점이다. (조지아, 테네시, 사우스 캐롤라니나 주는 한국과 기후가 비슷함) 특히 경제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 땅 값이 타 주와 비교해볼 때 매우 낮다는 것이 우리들에게는 경제적으로 큰 이점이 되었다. 또한 멀지 않은 곳 (약1시간 반 거리)에 애틀란타 라는 곳에 한국인들이 3-4만 살고 있는 대도시가 있어서 생활에 필요한 한국 식품을 구입할 수 있으며, 특히 도시 전도를 위한 외곽 전초 기지라는 개념에서 볼 때, 지금 우리들이 생활하고 있는 이 장소는 우리에게 있어서 적합하다고 생각하였다.
현재의 이 곳 땅 값은 땅의 크기와 위치에 따라서 차이가 있지만 대개 1 에이커(약 1200평) 당 약 천 불에서 2천불 사이로 보면 될 것이다. (단위 면적당 가격은 작은 땅일 경우 가격이 올라가고 큰 땅일 경우 가격은 내려감) 시골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불필요하게 큰 땅을 소유할 필요가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작아도 미국인 이웃이 너무 가깝게 살게 됨으로써 바람직한 시골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그 동안 우리들의 경험이다. 현재 이곳에 사는 교우들은 약 10 에이커 미만의 땅을 소유하는 것을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나성, 뉴욕, 시카고 등과 같은 초대형 도시에 살고 있는 어떤 교우들은 단지 경제적인 안정과 치솟는 범죄 만을 피하여 덴버, 시애틀, 애틀란타 같은 대형 도시들을 찾고 있는데 그들이 그곳에서 사업의 경쟁을 피하고 도시 사이 사이에 있는 숨어 있는 숲을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나 화잇 부인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진짜 시골 생활은 할 수 없다. 그들은 다만 조금 작은 대도시에서 또 다른 도시 생활을 다시 시작함으로써 자신들의 안락함과 세속에 대한 욕망을 만족시키는 가운데 불필요한 재출발의 노력과 수고 만을 낭비할 뿐이다.
▶ 집
현재 이곳에서 시골 생활을 하고 있는 거의 모든 교우들은 홈(mobil home)에서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모빌 홈과 모터 홈(motor home, RV)을 혼동하는데 모터 홈은 자동차 또는 대형 버스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꾸며 놓은 곳이고, 모빌 홈은 완전한 집인데 이동이 가능하도록 집 밑에 바퀴가 달려 있어서 필요에 따라 집을 옮길 수 있는 집으로서 자동차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외부에서 볼 때 일반 가옥과 구별이 쉽지 않을 정도이므로 보통 집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일반 가옥에 비해서 가격이 싸고, 편리하며 필요에 따라서는 쉽게 옮길 수 있다는 장점으로 인해서 이곳에 사는 많은 미국 사람들에게도 애용되고 있다. 모빌 홈의 종류는 방이 2개, 3개, 4개가 있는 크기에 따라서 다양하다. 가격은 새 모빌 홈일 경우 약 만 불에서 4만 불까지 여러 층이며, 중고 모빌 홈도 있으므로 형편에 따라서 선택할 수 있다.
시골로 이주할 것을 계획할 때 땅, 집(일반 가옥 또는 모빌 홈) 외에도 고려해야 할 것들이 있는데 (일반 가옥을 구입할 경우에는 해당이 안됨), 대개 중요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과 모빌 홈을 놓을 자리를 만드는 불도저 사용료, 전기 가설료, 셉틱 탱크 설치 비용(정화조 시설), 우물 설치 비용, 농사를 시작하는 데에 필요한 영농자금 그리고 길과 집 주변의 필요에 따라서 사용하게 되는 자갈 및 배수관 값 등이 부수적으로 추가 되는데, 모빌 홈 크기와 지형에 따라서 각기 다르지만 대체로 약 4천불에서 8천불 정도가 소요된다.
경제적인 형편이 어려웠던 교우들 및 가정은 땅과 집을 장만하여 시골로 이주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하여 아담하고 조용한 시골 아파트나 시골 집을 렌트(월세) 하여서 자신들의 형편에 맞는 시골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아파트나 가옥의 월세는 대도시의 1/2~ 1/3임).
▶교육
시골 생활을 계획할 때, 부모 된 우리들을 가장 염려케 하고 걱정스럽게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자녀들의 교육문제이다. 지금까지 도시에서 세속적이고 경쟁심을 자극하는 도시 학교에서 이기심의 극치를 배워오던 아이들에게 단순하고 영적인 면을 중요시 여기는 시골에서의 교육을 우리의 자녀들에게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의 아이들에게 하늘 왕을 맞을 수 있는 거룩한 생애를 가르쳐 줄 수 있을까? 이것이 자녀들을 가진 부모들의 공통된 고민이다.
우리도 지난 몇 년 동안 이 문제로 인하여 기도 하면서 여러 방면으로 아이들을 위한 교육 방안을 연구하던 중 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이제는 제법 틀이 잡힌 가정학교(Home school: 홈 스쿨) 시스템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가정 학교란 원래 우리들이 생각해 내고 개발해낸 것이 아니라 미국의 보수적인 개신교인들이 자녀들을 가정에서 교육시키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는 교육 과정이다. 미국 내에서 현재 가정 학교 (홈 스쿨)을 시키는 진실한 개신교인들의 숫자가 적지 않는 숫자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서 홈 스쿨의 교육과정을 지도하고 주관하는 기관도 여러 개로 늘어났다. 또한 현재 홈 스쿨을 시키고 있는 부모들 중의 많은 숫자가 현직 또는 전직 교사들이라는 점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곳에 사는 우리들은 적합한 교제를 선정하여 한 동안 가정에서 아이들을 교육시키다가 2년 전부터는 라보니아 교회에서 교회 학교를 설립하여 자녀들을 가정과 교회와 학교에서 함께 교육시킬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재림 기별을 잘 이해하고 진실하신 미국 선생님이 우리의 자녀들을 영어로 교육시킬 수 있게 되어서 언어로 인한 불편이 많이 해소 되었다.
단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잘 일치하는 교육과정을 가지고 우리의 아이들을 단순하고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소원이다. 시골만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소박함 속에서 자녀들이 하나님께 마음을 바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부모 된 우리의 수고와 노고를 한 순간에 잊게 하기에 넉넉하며, 또한 천연계 가운데서 부모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녀들과 한 가정을 이루고 산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천국을 맛볼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고유한 특권이 아니겠는가?
오늘날 자녀들을 가지고 있는 수 많은 재림 교인들이 화잇 부인의 자녀 교육에 대한 말씀을 무시한 채 부모 된 자신의 인간적인 자존심과 이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주께서 선물로 위탁하신 자녀들을 바벨론의 신전 앞에 제물로 바치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가? 부모 된 우리 자신과 그리스도의 피로 산 바 된 우리의 자녀들을 위하여 시골생활을 오늘부터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준비하고, 기도하지 않으려는가?
“최고의 교육은 품성을 가장 훌륭하게 향상시키도록 이끌고, 영혼이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에 합당하게 만드는 지식과 훈련을 주는 교육이다. 우리는 우리의 생애로부터 영생을 쫓아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최고의 교육은 유년과 청소년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실험적인 지식을 그들에게 주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던 교훈들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새 자녀 지도 법, 276.
▶ 교회
우리가 시골 생활을 계획할 때, 우리 가정의 영적인 면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시골 생활을 하면서 우리 모두는 우리가 나가게 될 교회에서 진리의 말씀이 매 안식일마다 흘러나오기를 소원하게 되며, 그 교회에 나오는 교인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자녀다운 기품과 원칙 위에 굳건히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게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미국의 시골에 위치한 한인시골교회를 찾기도 싶지 않지만, 더욱이 매 안식일마다 교회 안에서 곧 바른 진리의 말씀과 실현되고 있는 시골 교회를 발견하기란 용이한 일이 아니다. 도시의 모든 세속적이고 물질만능주의적 환경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도시를 떠나 시골로 내려 온 우리들은 우리들의 자녀들이 주중에 텔레비전과 비디오에 몰입되어 있다가 안식일에 부모에 이끌려 교회에 나온 불쌍한 아이들과의 교제와 사귐을 원치 않게 된다. 왜냐하면 한 주일 동안 가정에서 잘 훈련시키고 교육시킨 원칙들이 안식일에 교회에 와서 무너지게 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골에서 우리가 바라고 소원하는 그러한 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가? 이 질문에 대한 해결책으로써 생기는 교회들이 오늘날 보수적인 미국인 재림교인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정 교회 (Home church)이다. 그들은 신앙과 기별을 존중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 자신의 신앙과 믿음을 요즘 교회 안에서 신신학과 구별하기 위하여 “역사적인 재림신앙”(Historic Adventism)을 부르고 있다. 그러한 재림 신자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그들 가정의 주변에서 그들의 신조와 믿음을 받아주고 인정해주는 교회를 찾는 일에 실패하게 되는데,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과 같은 기별과 신앙 가운데서 생활하고 또 그렇게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형제들과 함께 안식일 마다 예배를 함께 드림으로써 작은 교회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것을 그들은 가정 교회(home church)라고 부른다. 우리가 시골로 이주 해 갔을 때, 우리 주변에 우리 가정의 신앙과 영적인 표준을 진리 안에서 성장시키는 일에 함께 협력할 수 있는 교회가 없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가정 교회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화잇 부인께서 권면하신 것처럼 시골 생활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진리에 대한 동일한 사랑과 헌신을 소유하고 있는 두 세 가정이 함께 시골 생활을 시작하는 것을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함께 시골 생활을 계획하는 가정이 아무리 형제이고, 친척이고, 절친한 교우일지라도 마지막 기별에 대한 이해가 다르며, 자녀 교육에 대한 개념이 다를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교회관에 대한 믿음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시골에서 함께 동거 동락하면서 하나님의 사업을 추진하는 거룩한 사업에 연합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시골 생활을 계획한다는 것은 지극히 영적인 일이다. 이 일을 계획하는 일에 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환경, 내가 좋아하는 친구나 형제, 내가 좋아하는 어떤 것들 같은 인간적인 요소들은 반드시 배제되어야 하며, 나의 인간적인 감정과 안일함을 만족시키기 위한 시골 생활의 장소와 동참자를 찾을 것이 아니라 우리 가정의 거룩함을 이루는 하나님의 역사에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고, 또한 하나님의 뜻을 펼치기에 가장 적합한 시골 생활이 될 수 있도록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간절히 간구해야 한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교회가 중요한 이유는 그곳에 진리의 말씀이 있고, 그곳에 성도의 사랑의 교제가 있으며, 진리 안에서 연합하여 성취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사업이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곳에서 우리들이 어떻게 교회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도록 하겠다. 이곳에 교회가 생기기전에, 미국의 여러 곳으로부터 교우들이 시골 생활을 위해 내려오기 전에 견고한 토대가 먼저 자리를 잡고 미니스트리를 시작했었다. 6년 전에 견고한 토대는 월간지를 만들고 한국과 미국의 여러 곳에서 부흥 집회 및 야영 집회를 개최하기 시작하였다. 미국과 한국의 재림 교인들에게 견고한 토대의 글과 테잎이 전해지기 시작하자, 이곳 저곳에서 교우들이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단순한 심령으로 주의 재림을 사모하며, 자녀들의 교육과 가정의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마음으로 시골 생활을 계획하기 시작 하였다. 그리하여 여러 가정들이 테네시, 사우스 케롤라이나, 노스 케롤라이나, 조지아 주로 이주해 오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견고한 토대의 직원들만 모여서 안식일에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던 것이 나중에는 한 가정씩, 두 가정씩 교우들이 조지아 주와 근방의 주로 이주해 옴에 따라 교회가 생기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 지금의 라보니아 교회이다. 라보니아 교회에 나오는 교우들은 교회 근처에서 생활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대개는 30분에서 2시간 반을 운전하고 와서 함께 예배 드리고 교제를 나누고 있다. 같은 기별을 듣고, 같은 목적과 동기를 가지고 시골 생활을 시작했으며, 그러한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를 이루었기 때문에 라보니아 교회의 목적과 사명과 방향은 처음부터 견고한 토대의 그것과 조화를 이룬 채 출발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라보니아 교회와 견고한 토대는 서로 긴밀한 유대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사업을 진척시켜 왔으며, 견고한 토대와 교회가 연합하여 사업을 함으로 우리는 더욱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었다.
▶ 가정 경제
어떻게 시골에 가서 가족들을 경제적으로 부양하면서 신실하게 생활할 수 있을까? 이것은 오늘날 시골 생활을 계획하는 진실한 재림신자들의 질문이며, 동시에 시골 생활에 대해서 반대하고 빈정거리는 사람들이 던지는 조소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을 구하기 전에 먼저 시골 생활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유익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치러야 할 희생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얻게 될 유익은 무엇이며, 그러한 유익을 얻기 위해서 지불해야 되는 대가는 무엇인가?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와 희생은 우리가 얻게 될 유익에 비해서 너무나 큰 것일까? 많은 경우에 있어서 우리는 세속과 욕심과 명예를 버리는 것을 희생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러한 것들을 버리는 일이 정말 우리에게 있어서 희생이 되는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귀중한 축복을 가져오는 영적 결단이다.
시골 생활을 위해서 준비할 때, 가장 먼저 없애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빚이다. 도시를 떠나서 시골로 내려 올 때에 부채를 어깨에 메고서 내려오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도시에 살던지, 시골에 살던지 부채를 등에 잔뜩 짊어진 마지막 시대의 그리스도인이 그들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을까? 부채를 문둥병처럼 두려워하자. 부채의 무게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위축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시골 생활을 해보지도 않고서 미리부터 패배 의식과 좌절감에 사로잡혀 있다. 형제들이시여, 용기를 냅시다. 시골은 도시처럼 많은 돈을 벌어야 한 달을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시골은 적은 돈이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시골에서의 경제 생활에 대해서 어떻게 상세히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점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목자들의 이해를 위해서 지금 이곳의 라보니아 교회의 교인들이 어떻게 그들의 가정 경제를 꾸려나가고 있는가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현재 조지아, 사우스 캐롤라이나, 노스 캐롤라이나 등지에 살고 있는 라보니아 교우들의 직업 분포를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다. 농업(3), 건축업(4), 일반직장(4) 치과 기공사(3), 인쇄 기술직(1) 간호사(4), 정부 공무원(2), 치과기공 자영(2), 일반 자영업(1), 건강 식품업(2), 양로원 경영(1), 은퇴노인(7), 요양중인 환자(1).
지난 몇 년 동안 경제 문제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은 교우들도 있었지만, 경제 문제 때문에 시골을 떠나 도시로 돌아간 교우들이 한 명도 없었다. 하나님께서 필요한 때마다 베풀어 주셨던 은혜와 축복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신뢰를 더욱 굳건하게 해주었고, 어려움과 곤경 속에서도 그분의 섭리를 기다리는 인내를 가르쳐 주었다. “가난한 자에게 축복이 되는 시골 생활- 도시에 모여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시골에서 생활하였을 것 같으면 그들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이 지금까지 누리지 못했던 건강과 행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치료봉사, 영문 190
▶ 결론의 글
하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유일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가정을 위해서 어떠한 생활의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생활 방식을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권대사로 이 땅에 오셨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를 위하여 택하신 생활 조건들은 어떠한 것들 이었는가? 갈바리 산지의 한적한 가정, 정직하며 자중하여 노동 함으로서 유지하게 되는 가정 경제, 검소한 생애, 날마다의 곤란과 역경을 극복하는 것, 자이 희생, 절약, 그리고 인내, 즐겁게 하는 봉사, 어머니의 곁에서 성경을 펴놓고 공부하는 시간, 푸른 골짜기의 고요한 새벽과 황혼, 천연계의 신성한 봉사, 창조와 하나님의 섭리의 연구, 그리고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 이모든 것들은 예수님의 유년 시대의 환경과 기회이었다.” 재림신도의 가정, 128
우리는 우리의 인간적인 계산과 안일하고자 하는 육체의 속삭임을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위해서 결정하셨던 그 선택을 신뢰할 것인가? 2000년 전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에게 불가능한 시골 생활을 선택하여 주시지 않으셨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골 생활은 불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시골은 도시가 제공하는 그러한 종류의 안락함과 편리함과 물질적인 부유함의 기회가 약속되는 곳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복음의 길을 걷기 위하여 조그맣고 부끄러운 희생을 각오하기만 한다면, 그리고 적은 것에서 만족을 찾고, 적은 것에서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드릴 것을 찾는 소박한 마음만 있다면, 시골 생활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이다. 시골 생활은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막연한 이상론적인 신기루가 아니며, 어떠한 극단을 달리는 사람들의 도피 방법도 아니다. 시골 생활은 라오디게아 교회가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단번에 해결 할 수 있는 실제적인 열쇠가 될 수 있다.
부디 성령님께서 우리 모두의 육체와 영혼을 개인적으로 시골로 인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