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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러들인 태풍 (Reaping The Whirlwind)

 

제11장 흔들려 떨어져 나가는 부주의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자들

    기드온이 가졌던 경험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업을 성취하시는데 있어서 많은 숫자의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32,OO0명의 군대는, 겁먹은 자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을 때 실제적으로 무용지물에 불과 했습니다. 22,OO0명이 자리를 떠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기드온이 목격했을 때 그의 마음은 분명히 상하였을 것임 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는 남아있는 10,000명의 군인들을 가지고 적군 과 대결한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숫자가 너무 많으니 다른 시험을 치르도록 명하였습니다 . 전장으로 가는 도중 모두가 물을 마시기 위해 강에서 멈추었습니다. 300명의 군인들 외의 나머지 군인들은 그들의 무릎을 땅에 대고 적군을 경계하지도 않고, 부주의하게 흐르는 물을 벌컥벌컥 마셔댔습니다. 반면에 300명의 정예군인들은 무릎을 땅에 대지 않고 손으로 물을 퍼서 재빨리 혀로 핥아 먹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그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삿 7:7)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한 적은 무리를 통하여 그날에 큰 승리를 거두신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횃불과 항아리, 그리고 나팔을 가지고 그들은 미디안의 큰 병력을 파쇄시킨 것입니다.
    오늘날 마지막 전쟁에서 구원을 받아야 할 우리들을 위한 어떤 교훈이 있습니까? 기드온이 가졌던 경험과 우리가 하는 경험과는 아주 아름다운 유사점이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우리들은 기드온의 군대가 흔들려 떨어져 나간 뒤에 소수가 남은 것과 마찬가지로 남은 자 중의 남은 자들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앞둔 전쟁을 위해서 겁쟁이들이나 부주의한 자들을 사용하실 수 없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엘리야와 침례 요한의 정신으로 죄를 취급할 담대하고도 용기 있는 추종자들을 원하신다는 명백한 증거들을 이 책에 제시 해 왔습니다. 늦은비 때에 큰 외침을 외칠 사람들은 사람이 자신들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바벨론의 죄악들을 폭로할 것이며, 또한 잠자고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곧 바른 증언을 설교할 것입니다. 그들은 “분명한” 나팔 소리를 낼 것입니다.

    전쟁의 날에, 부주의한 자들이 인 받은 자들의 일부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모든 증거들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원수는 미디안 군대가 아니라 세상입니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 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약 4:4)
    우리가 세상과 적절하게 보조를 맞추고 있으면서 큰 외침 때에 인을 받는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부주의하게 세상과 보조를 같이 하는 자들은 거짓 가르침에 속는 밥이 될 것인데, 이는 그들이 진리와 오류 사이를 분별하는 능력을 상실한 때문입니다.
    이제 기드온에게 주어졌던 시험이 남은 교회에도 적용되고 출애급이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참된 증인의 곧 바른 증언이 제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를 통하여 들려지기 시작할 때, 겁먹은 자들과 부주의한 자들은 저들이 어느 편에 섰는지를 보여야 할 때입니다. 이 기별은 교회 밖에 있는 자들에 의해 들려지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 사이에 있는 가증한 일을 인하여 울며 탄식하는 교회 안에 있는 자들에 의해 들려질 것입니다.
    기드온 당시의 300명의 군인들의 승리가 숫자나 장비에 있지 않았던 것을 결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항아리 안에 든 횃불과 나팔, 단지 두 가지만으로 무장되었습니다. 여기에 남아있는 적은 무리들을 위한 승리의 비결이 있습니다. 기름이 든 횃불은, 늦은비 때에 오직 완전히 순종하는, 인 받은 자들 위에만 떨어질 성령을 표상합니다. 나팔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세속적인 상태와 타협한 상태에 대항하여 담대하게 발하는 경고의 소리를 표상합니다. 아마 300과 32,OOO의 비율은 화잇 자매에 의해 묘사된 “적은 숫자”를 말하기에 좋은 비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안식일을 포기하지 않고 반대편에 가담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들이 바로 그 “적은 숫자”들이 될 것입니다. (1T. 608.)

    조직된 교회가, 회개하라는 요청과 지금까지 전개되도록 허용해왔던 배도에서 돌아서도록 하는 부르짖음을 받아들일까요? 1888년에 교회는 늦은비의 시작으로 묘사된 동일한 기별을 받아드리지 않으려 했습니다. 다시 높은 수준으로 올라선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과거에 했던 우리의 모든 경험은 계속적인 타락이 진행될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상했던 대로가 아니고 그 양상이 돌변할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의 전 조직과 구조가 무너질 것 같은 무시무시하고도 어마어마한 기로 점이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무너질 것처럼 보이나 교회는 결코 쓰러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그때를 위한 능력을 제공하십니다. 아무도 그 경험이 얼마나 고통스러울 것인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보아 온대로 하나님께서는 가장 총명한 빛들이 나갈 자리를 대신 하여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많은 백성들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업은 이 세상의 “인문기관들에서 받은 훈련”(GC,606) 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존할 사람들에 의해 신속하게 마쳐질 것입니다. 지금 우리 각자가 직면한 엄숙한 질문은 우리가 과연 회개와 개혁을 촉구하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을 받아드릴 특별한 적은 무리에 있게 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1888년에 그런 기별이 주어졌을 때 많은 사람이 거절했을지라도 과연 우리는 그러한 요청을 지금 받아들일 만큼 겸손합니까? 우리는 표준이 낮아진 것을 인식하고 교회가 점점 더 세상적으로 기우는 것에 대해 탄식하고 있습니까?

당신 자신의 마음은 어떠하십니까? 생애를 더 정결하게 하고 더 깊은 헌신을 하라는 부르심을 환영하십니까?

    “만일 하나님의 공언하는 백성들이 자신들의 마음이 이 곧 바른 사업을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리고 자신들이 토하여 내침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면 그들 자신 속에 극복해야 할 사업이 있다는 것을 확신시켜야 한다……모든 점과 모든 시험에 있어서 어떠한 대가를 치르고라도 극복한 자들은 참된 증인의 권면에 유의해왔으므로 늦은비를 받을 것이다. ” (1T, 187).

    “교회는 라오디게아 상태에 있다. 하나님의 임재가 그들 가운데 있지 않다…그리스도를 그분 자신의 전에서 쫓아내는 것이 얼마나 소름 끼치는 일인가! 주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한 증거를 발할 당신의 사자들을 보내신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분을 거절하는데, 이는 그분이 너무 값비싼 손님이 되는 것과 그분이 무언가를 요구하실 것을 그들이 두려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냥 지나가신다. 그분은 그들에게 그분이 가지고 계신 축복들 주시기 원하시나 그들은 거절 한다.” (Brown Leaflet Series, Education. No. 6, 1898)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은 격려로 가득 찬 것이다. 왜냐하면 타락한 교회가 아직 믿음과 사랑의 금을 사고 그리스도의 의의 흰옷을 소유하여, 저들의 벌거벗은 생애를 특징 지우는 그들의 품성의 옷을 어린 양의 피로 하얗게 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주어진 기별이기 때문이다.” (본교 성경주석 7권, 966)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는 하나님의 의도하신 뜻을 무시하고 성화되지 못한 사람들의 지도를 따라 자신들의 길을 추구한 데 있었다. 현대 이스라엘은 신속하게 그들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으며 주님의 불쾌히 여기심은 그들 위에 머물게 될 것이 확실하다.” (5T. 94)

    고대 이스라엘과 현대 이스라엘 사이에 아주 큰 유사점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이 종종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유대 민족이 결국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 못하고 거절 당하도록 한, 그들이 추구했던 길을 따를 큰 위험에 대해 경고 받아 왔습니다. 그들에게 일어났던 일은 모두 ” 말세를 당한 우리의 경계로”(고전 10:11)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들 주위에 있는 나라들로부터 분리되어 나와 바알 숭배와의 어떠한 타협도 거절하도록 자주 탄원하셨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은 잃어버린 양떼로다 그 목자들이 그들을 곁길로 가게 하여 산으로 돌이키게 하였으므로 그들이 산에서 작은 산으로 돌아다니며 쉴 곳을 잊었도다.” (햄 50:6)

    예레미야 선지자는 주님께서 쉴 곳을 잊은 당신의 가련한 백성들을 보시고 슬퍼하시는 모습을 그립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들의 목사들에 의해 이상야릇한 길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그때 다시 그를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 (렘 6:16)

    오늘날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진리의 이정표로 돌아와 옛적 길 곧 선한 길을 회복할 때까지 그들은 그들의 영혼을 위한 쉴 곳을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요약해 볼 때, 우리는 우리 교회 안에 존재하는 교리적 혼란의 원인이 크게는 세속적인 타협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 타협은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관계를 게을리한 것 때문에 조장된, 라오디게아의 뜨뜻미지근한 상태에 의해 형성되어온 것입니다. 배도의 고리마다 물려 넘어지는 것은 기도와 성경연구의 시간을 갖지 않고, 생애에 있어서 예수님을 첫 번째로 모시지 않는 중대하고도 기본적인 문제점들 때문에 초래됩니다. 그런고로 라오디게아인들을 위한 진정한 치료제는 진정한 개인적 신앙의 요소들을 표상하는 금과 흰옷과 안약입니다 . 믿음, 성령, 그리고 그리스도의 의는 라오디게아를 꼭대기에서부터 바닥까지 아주 말끔하고 정결하게 할 수 있는 개별적인 부흥을 발동시킬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전망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형상을 온전하게 반영할 한 백성을 가지실 것입니다. 이 기별은 승리의 영광스러운 곡조로 마쳐지게 될 것입니다. 지옥의 모든 권세라도 온갖 시험을 견딘, 진리의 반석 위에 건설된 교회를 대항하지 못할 것입니다. 외로움과 배척과 핍박의 모진 시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품성을 우주 앞에서 옹호할 충실한 남은 자들을 산출해 내실 것입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결점을 통하여 교훈을 얻으며, 인간보다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확신을 버리지 않을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야말로 교회라는 배가 격렬하게 흔들린다고 할지라도 그 배를 떠나지 않을 충성스러운 자들입니다 . 나침반의 바늘이 틀림없이 남북을 가리키듯이 진실한 양심을 가진 그들은 불어오는 타협의 바람이나 흔들리는 교리의 바람에 머리를 숙이지 않을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은 믿음의 눈으로 유리 바닷가 위에 빛나는 무리들과 함께 선 여러분 자신을 볼 수 있으십니까? 우리가 그 보배로운 남은 자들의 무리의 한 일원이 되도록 하나님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