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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성소 기별의 결론

    왜 하나님께서 이 지구의 역사를 빨리 끝내시지 않고 계실까?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범죄들과 기근과 그리고 파괴와 그 슬픔들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러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루실 사업을 빨리 마치시고 재림하셔서 죄의 역사를 영원히 끝내시지 않으실까? 시간이 오래 계속되면 계속될수록 비율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멸망당하게 될 것이요, 더 적은 수가 구원의 반열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물론 한 명이라도 더 구원 받게 하려면 좀 더 지체하여야 한다고 느끼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그 적은 숫자를 구원하기 위하여서 훨씬 더 많은 숫자의 인간들이 고통과 슬픔 속에서 죽어가야만 한다는 말인가? 지구의 역사는 빨리 끝날수록 좋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 양편에서 다 그러하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빨리 역사를 끝내시지를 않고 계신가? 언젠가는 역사가 마쳐져야 하고, 어느 세대에 가서는 그 출생하는 일들이 끝마쳐야 되는 것이니 어느 세대에 끝나던지 그 결론은 마찬가지이다. 우리들의 눈에도 이렇듯 답답하고 슬픈데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오죽이나 답답하시고 가슴 에이는 듯한 고통을 느끼시겠는가? 결국은 모든 인류가 하나님 당신 자신의 자녀들이 아닌가. 사랑 그 자체이신 분께서 이렇게 고통스러우심을 참으시면서 기다리시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을 좀 더 자세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바로 하나님께서 무엇을, 왜 기다리고 계신지를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를 이 마지막 시대에 세우셨는지에 대한 그 목적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히브리서 11: 39,40.
위의 성경절은 마지막 세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같은 바울은 로마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피조물들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들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로마서 8:19-21.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세대 즉 14만4천, 참 영적 이스라엘, 곧 교회가 준비되지 않으면 이 세상 역사를 끝마치실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오래 기다리실 필요가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이제 곧 출현할 참 하나님의 교회의 현시를 눈 빠지게 기다리시고 계시다. 다음의 화잇 부인의 말씀은 우리의 이해의 폭을 넓게하기에 충분하다.
    “구속의 경륜에는 사람을 구원하는 일보다 더 넓고 깊은 목적이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단순한 사람의 구원이나, 이 작은 세계의 거민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마땅히 생각해야 할대로 생각하게 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온 우주 앞에 하나님의 품성을 옹호하시려는 것이다….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의 행위는 사람들을 하늘에 접근하게 할 뿐만 아니라, 온 우주 앞에 사단의 반역을 처리함에 있어서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이 정당하다고 옹호할 것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의 영원 불변성을 확립할 것이며, 죄의 성질과 그 결과들을 나타낼 것이었다. 대쟁투는 최초부터 하나님의 율법에 관한 것이었다. 사단은 하나님이 불공평하시며, 그분의 율법에 결함이 있고, 우주의 행복을 위하여서는 이것을 변경해야 한다고 증명하려 하였다.” 부조와 선지자 68-69.
    위의 말씀을 기초로 해서 우리는 하늘에서의 하나님과 사단사이의 대쟁투를 간단하게 요약하고 나서, 우리의 질문인 “왜 하나님께서 인간 역사를 빨리 끝내시지를 못하시는가?”에 대한 해답을 발견해 보기로 하자.
    루스벨은 우주에서 피조물들 중에 가장 아름답고 가장 영리한 존재이었다. 그는 항상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서 옹위하는 그룹 천사이었고 하늘 천사들의 찬양을 지휘하고 그들의 임무를 지도하는 천사장이었었다. 그가 지녔던 지혜와 아름다움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 선물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는 것이 그가 할 일이었다. 그러나 루스벨은 그 영광을 자기에게 돌리고 높아져서 교만하게 되었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에스겔 28: 14,15.

    그는 하나님 곧 전능자들의 집회에 자기도 일원이 되어 포함되기를 바랄 정도까지 스스로 교만하게 되었다. 그는 마침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시기하는데까지 이르게 되었고 마침내 우주의 엄청난 반역과 죄악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게 되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묻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이사야 14:12-14.
    그러나 문제는 루스벨 자신이 아무리 높아졌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경배해 줄 대상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자기가 스스로 경배할 대상들을 창조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께로부터 예배자들을 빼앗아 오는 것이었다. 예배자들을 훔쳐오기 위하여서는 자기 자신이 세울 정부가 하나님의 정부보다 훨씬 더 좋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알려야 하게 되었다. 그래서 루스벨은 자기의 정부를 높이기 위하여서 하나님의 정부를 끌어 내리는 일을 하기에 이르렀고 하나님의 정부를 끌어 내리기 위하여서는 하나님의 법을 공격하여야 하기 때문에 루스벨은 하나님의 정부의 기초인 율법을 비난함으로 그의 반역의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그의 악랄한 수법은 많은 천사들의 마음을 동요시키기에 충분하였다. 그의 하나님을 향한 고소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첫째로, 천사들은 완전한 존재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어떠한 법조항으로 지배를 받거나 묶일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법으로 구속을 받고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노예로 얽어매려고 하는 속셈이라고 하는 비난이었다.
    둘째로, 하나님 자기 자신은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우리에게만 강요하는 것은 그가 이기적인 하나님이라는 것을 나타낸다는 고소이었다.
    세번째로는, 피조물 가운데서 아무도 하나님의 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있는 자가 없다는 것이었는데, 피조물 중에서 제일 으뜸인 자기 자신이 지킬 수 없는데 누가 과연 그 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가 있겠느냐고 반문한 것이었다.
위의 세가지 고소는 하나님께 치명적인 고소가 아닐 수 없었다. 이 교만하여진 그룹 천사는 하늘 궁정을 다니면서 천사들의 마음 속에 의심들을 넣어주면서 그들의 사랑과 충성들을 흔들어 놓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천사들의 거의 반수가 그에게 귀를 기울이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아들께서 그들에게 호소하신 후에도 여전히 천사들의 삼분지 일은 루스벨의 편에 가담하게 되었다. 그 많은 천사들이 속임당하여 흔들려 나가서 사단의 편에 가담한 것을 보았을 때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하였겠는가!
    루스벨은 천사들 사이를 왕래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너희들은 잘 모를 꺼야. 하나님이 정말 어떠한 존재인지를. 나는 항상 그분 곁에 있거든. 너희들이 볼 수 없는 면들을 나는 항상 보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하나님은 너희가 생각하는 그러한 존재가 아니야. 우리에게 큰 개혁이 필요하단 말이야.” 넌지시 던지는 그러한 의심의 말들은 어떤 천사들의 충성심을 흔들어 놓는데 충분하였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성품과 율법을 대항하는 반역 운동이 하늘에서부터 시작되게 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것은, 왜 하나님께서 마귀를 처음부터 죽여 버리시고 다른 존재를 창조하셔서 미리부터 사전에 반역을 막지 않으셨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셨더라면, 천사들과 우주 거민들 마음 가운데 커다란 해결되지 않은 의문이 남게 될 것이었다. 왜 하나님께서 루스벨을 그렇게 빨리 없애 버리셨지? 하나님께서 뭐, 두려운것이 있으신게 아닐까? 아직 우리가 루스벨에게서 별 나쁜 것을 본 것이 없잖아…? 그러한 마음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무서워하여 두려움에서 섬길 가능성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수가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들에게 자유의지와 선택권을 주셨다. 이것이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사랑의 유대를 굳게 맺어주는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주에 더 이상 의심과 죄의 세력이 영원히 존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이 반역 운동이 그 최악의 결과를 스스로 우주 앞에 폭로하여 보일 때까지 존재하도록 허용하실 수 밖에 없게 되신 것이다.
    바로 이 시점에서 이 작은 지구가 창조되었던 것이다. 이 지구는 온 우주의 관심을 모으는 시험대가 될 것이었다. 하늘 거민들을 위한 교과서가 될 것이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사단의 유혹에 너무 쉽게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하와가 했어야 했던 일은 뱀에게 “아니요!”라는 한마디의 말이었다. 뱀과 대화를 나누었더라도 그녀는 이미 천사들에게 경고를 받고 있었던 터라 남편에게 달려와 물어 보았으면 될 것이었다. 뱀이 따 준 선악과를 손에 받아들고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가서 다시 물었으면 될 일이었다. 다시 말해서 아담과 하와의 시험은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둘째 아담 예수님께서 당하신 시험은 커다란 고통을 수반하는 시험이었다. 마지막 세대가 보여야 할 시험도 커다란 고통을 수반하는 시련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자. 주님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그들도 승리할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에 왜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해 주시고 없었던 일처럼 취급하고 넘어 가실 수가 없었단 말인가? 그러나 그렇게 하실 수가 없으셨다. 그 이유는, 무조건의 용서가 우주 거민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 그렇게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만들 것이었기 때문이다. 죄는 아주 무서운 것이라는 사실로 받아들여져야만 한다. 그러므로 죄를 짓는 자는 그 결과를 반드시 거두어야 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한가지 질문이 대두되는데, 그것은 천사가 구세주가 될 수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죄없는 존재가 대신 죽어 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율법을 범한 자를 위하여 대신 죄값을 치르기 위해서는 물론 율법을 제정하신 하나님께서만이 대속주가 되실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중요한 점은, 만일 천사가 죄인을 위하여 대신 죄값을 치르어 준다면 그 율법의 요구가 천사의 수준까지만 중요한 것으로 인정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 자신까지도 묶는 법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 대한 당신의 사랑의 크기를 나타내시고 아울러 죄의 흉악성을 직접 보이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임하시었다. 또한 어떠한 환경에서 일지라도 죄는 승리하고 극복될 수 있다는 모본을 남기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임하시었다. 주님보다 더 인간을 사랑하는 천사가 과연 누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단과의 이 선악간의 대쟁투에서 두 가지가 꼭 필요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곧, 사단의 기만을 폭로하기 위한 시간과, 하나님의 율법과 당신의 성품을 변호하며, 또한 율법을 누구나 다 지킬 수가 있다고 옹호하며 증명하여 줄 증인들이 필요하게 되신 것이다. 바로 이 두 가지가 하나님께서 이렇게 오래도록 참으시면서 이 지구의 역사를 연장시키시는 이유인 것이다.
    여기에서 또 한가지 묻고 지나가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왜 예수님께서 인간이 범죄한 후에 4,OO0년이나 지나서야 지구에 오셨는가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인간을 구원하는 일은 용서 이상의 일이 요구된다. 그것은 용서받은 인간이 거룩한 생애를 살 수 있다는 사실과 어떻게 그러한 생애를 살기 위한 능력을 받을 수 있는지를 사람들이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애초부터 하나님께서 그냥 용서해 주시고 말았을 것이지 무엇 때문에 이러한 대쟁투의 역사를 전개 하셨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하실 수가 있으시다. 그러나 인간들이 그것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 것인지를 알 필요가 있었다. 인간이 모든 죄와 유혹들을 이기고 거룩한 생애를 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신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셔야만 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인간이 받는 모든 유전 법칙을 통한 연약성과 타락한 죄의 본성을 가지시고 이 땅에 임하실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인간 역사 중에 가장 어두웠던 장면인 로마의 시대, 곧 사람들이 서로 죽이는 일을 바라보며 즐거워할 정도로 타락했으며, 사람들을 야수와 싸워서 죽게 만드는 일들을 오락삼아 바라볼 정도로 악해졌던 시대까지 기다리셨다가, 바로 그러한 정도까지 타락한 인간성을 유전으로 다 받아 쓰시고 이 땅에 임하시어, 그러한 연약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성령에 충만한 생애를 사심으로 단 한번도 마귀에게 져서 죄를 범하지 않으신 생애를 보여 주심으로 아무도 핑계할 여지가 없도록 우리에게 그 가능성을 설득시키신 것이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어서 완전한 승리의 생애를 사심으로 마귀와 우주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시고 의문들을 다 풀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왜 또 다시 2000년이란 세월을 또 이렇게 기다리셔야만 하셨는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때에 사단을 죽이셨다면 우주의 존재들이, “자, 그것 봐! 하나님께서는 사단이 존재하는 한 인간들이 승리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를 없애버리신 것이야”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 한가지 더 중요한 이유는, 사단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십자가로 승리하시자, 예수님의 승리의 생애는 법정 싸움에서 실격이라고 주장한 것이었다. 예수께서 신성을 사용하여 이기셨는지 누가 아느냐는 비난이었다. 인간의 몸을 가지고 오셨지마는 어쨌던 당신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실격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에녹, 엘리야, 요셉같은 완전히 승리한 생애를 살므로 증명한 자들이 있었지 않느냐는 하나님의 반문에, 사단은 다시 이렇게 고소하고 나서는 것이다. “하나님, 당신이 그들을 너무 지나치게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마음 놓고 그들에게 접근하여 일할 수가 없었지 않습니까? 내가 그들에게 내가 할 일을 다 할 수 있게 해 주었더라면 그들은 분명히 내 밥이 되었을 것이오! 당신은 그들을 너무 지나치게 막아주고 있었단 말이오. 불공평 합니다.” 추호도 의심을 남기지 않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마귀의 이 고소를 향한 마지막 한가지 최후의 전시를 준비하시고 계신데 그것이 바로 마지막 세대의 현시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한 교회를 준비하시고 계신다. 이 교회야말로 참 영적 이스라엘이 될 것이다. 이 14만4천들은 최후로 마귀의 비난을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침묵시킬 것이다. 12×12=144이다. 1,OOO 이란 숫자는 항상 “많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는 숫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12사도들의 가르침을 기초하여 생긴 많은 숫자의 참된 12지파, 곧 이스라엘이라는 뜻이다. 만일 열 아들들을 가진 아버지가 있는데, 그 아들들에게 어떠한 일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때 그 아들들이 다 그 일은 너무 힘들어서 우리 중에 아무도 그 일을 할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때에 어떻게 하면 이 아버지가 그 모든 아들에게 누구나 다 그 일을 할 수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여줄 수가 있겠는가? 그 일은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가 있다. 만일 그 아버지가 열 아들 중에 가장 약한 막내동이 아들을 데리고 가서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훈련시킨 다음에 다른 모든 아들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막내가 그 일을 해 내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다른 나머지 아들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과연 그래도 그들이 그 일을 하기에 불가능 하다고 우길 수가 있겠는가?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 아니 이 우주에서 막둥이로 태어난 우리를 곧, 가장 마지막 세대, 유전 법칙에 의하여 가장 연약한 몸과 마음을 타고 태어난 마지막 세대를 훈련 시키시어, 성령님께 온전히 굴복하여 지배를 받는 인간은 누구나 모든 죄를 승리하는 생애를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의 생애의 전시를 통하여 우주 앞에 증명하여 보여주려고 하시는 것이다. 그때에 그들 앞에서 누가 과연,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순종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하며 나설 수가 있겠는가? 드디어 하나님께서는 144,000 을 통하여서 사단의 모든 비난과 거짓 주장들을 침묵시키고 하나님의 율법과 당신의 품성을 온 세상 앞에 변호하시게 되는 것이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또한 얼마나 큰 특권인가! 그러므로 세천사의 기별 중 셋째 천사의 기별은 다음과 같이 끝을 맺고 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라고 (요한계시록 14:I2).

    하나님께 사단은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라고 고소하였다(욥기 1: 9,10).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너무 지나치시게 보호함으로 그들에게 내가 마음대로 공격하여 이길 수가 없었다는 비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사단을 영원히 잠잠케 하시기 위하여 144,OOO들을 훈련시키시고 다시는 죄와 유혹에 넘어지지 않을 성품을 준비시키신 후에 이 세상에 은혜의 문을 닫으시는 것이다. 그 후에는 더 이상 중보의 기도가 없을 것이다. 더 이상 용서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고는 욥을 시험하도록 사단에게 내어 주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세대를 사단에게 내어 주실 것이다. 마귀에게 그들의 목숨만 건드리지 말고 마음대로 시험하도록 허용하실 것이다. 그러나 144,OOO은 승리할 것이다. 그들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충성과 그리고 완전한 순종을 위하여 경험한 모든 훈련들이 그들로 하여금 사단의 고소를 영원히 침묵시킬 수 있게 만들 것이다. 그들은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하나님께 욕을 돌릴 수 없다는 지극한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의 마음을 가진 자들일 것이다.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144,000은 예수님께서 재림날 의인들을 무덤에서 부활시키실 권한을 갖도록 해 드리는 자들이라고. 이상한 생각이라고 말할지는 모르지마는 독자들은 다음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항상 고소하는 일을 일삼아 왔던 마귀가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크라이막스에서 과연 가만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막 부활시켜 올리시는 의인들을 보면서 다음과 같이 최후의 고소의 말들을 퍼부을 것이다. “하나님, 불공평합니다. 이것은 불법이요. 내가 이들의 과거를 너무나 잘 압니다. 이사람은 죽기 얼마 전에 화를 내면서 범죄 했다구요. 저 사람은 일요일을 지켰던 자 아닙니까? 그 사람은 안돼요. 그사람은 돼지 고기를 먹고 맥주를 마시던 자가 아닙니까? 이들은 완전히 당신의 율법을 지킨자들이 아니지 않소!” 그때에 예수님께서는사단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 하실 것이다. “참, 아직까지 자네는 그 고소하는 버릇을 고치지 못했구만! 자! 사단아! 저기에 서 있는 살아있는 성도들, l44,OOO을 보느냐! 그래, 자네가 저들을 유혹하고 시험했을 때에 과연 이길 수가 있었던가?” 그때에 사단은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못하는 것이다. 그는 저들 중 단 한명도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게 하는 일에 성공하지 못한 것을 잘 아는 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우주를 향하여 말씀하시는 소리가 하늘을 울리며 퍼져 나간다. “자, 이 144,OOO들과 지금 내가 부활시키고 있는 이 의인들과 성품들을 대조해 보아라. 그들의 성품이 동질의 성품들이 아닌가! 만일 내가 지금 부활시키고 있는 이 의인들에게, 내가 144,OOO인들에게 주었던 같은 온전한 진리의 빛들과 또한 같은 기회들을 주었더라면 그들도 이들과 같이 꼭같은 품성의 장성한 분량을 소유했을 것이 아닌가! 이 마지막 세대가 바로 그 증거가 되는 것이 아닌가!” 이 때에 온 우주는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이전에 들어 보지 못한 찬송이 하늘을 치솟을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공의롭도다. 할렐루야. 그에게 영광과 존귀를 세세토록 돌릴 지어다 아멘.” 드디어 사단의 고소는 침묵되었다. 드디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온 천하에 드러나 증명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죄와 반역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서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네 생물들과 24장로와 144,OOO들의 간증은 다시는 우주에 죄와 반역이 일어나지 못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들은 어린양이 어디를 인도하던지 따라가는 자들이다. 그들은 이 땅에서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라갔던 자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마지막 세대를 기다리고 계신다. 지금 그 숫자가 차가고 있다. 때가 얼마 남지 아니하였다. 주님께서 속히 오시고 있다. 144,OOO 이 준비되고 있다.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이시여, 지금 고개 숙여 기도하지 않겠는가.

“주여 나를 그 무리 가운데 있게 하시옵소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