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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에 오셔서 사셨던 그리스도 (우리를 체휼 하셨던 분) (Touched with Our Feelings)

 

 

제 14장 역사적 진리를 찾아서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하여 두 모순적인 진리가 함께 공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 다른 점들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닌 것처럼, 이 두 가지 입장을 조화시키려고 시도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두 가지 입장이 서로를 강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제시하였다.

 

이러한 시도가 가치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성공할 가능성은 없다. 또한 교인들의 강한 반발과 몇 신학자들에 의한 계속적인 비판들은 이 대립의 종말이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쨌든, 1986년부터 1994년 사이의 기간은 전통적인 그리스도론이 활발했던 시대였다.

 

오늘날 많은 재림교인들이 이 문제에 관하여 교회가 취하였던 역사적인 입장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최근 사실을 기억나게 할 여러 연구들이 학자들에 의하여 이루셨다는 것도 사실이다.

 

(재림교회 그리스도론의 한 세기)

 

제일 첫번째 연구는 1986년에 출판된 랄프 랄슨이 쓴 말씀이 육신이 되심: 재림교회 그리스도론의 백년 역사 1852-1952이었다. (1) 이 책은 전적으로 역사가의 입장에서 본 연구들 중에 가장 총괄적인 책이다.

 

랄프 랄슨은 앤드류스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였으며, 보스톤의 앤도버 뉴톤 신학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40년간 그는 목사로서, 전도자로서, 부서기로서, 선교사로서, 또한 신학과 교수로서 재림교회에서 활동하였다. 그가 은퇴하기 바로 전에는 필리핀 신학대학의 학장으로 있었다.

 

여러 해 동안 랄슨은 1852년과 1952년 사이에 출판된 교회 공식적인 문헌들을 조직적으로 연구하였으며, 그리스도론에 대한 언급들을 조심스럽게 모아 정리하였다. 그래서 그는 1,200여개의 인용구들을 연대순으로 정리할 수 있었으며, 이 중에 400여개는 엘렌 화잇의 글로부터 인용되었다.. 이렇게 함으로 랄슨은 1852년과 1952년 사이에 재림교회가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하여 가지고 있었던 신조를 증명하고자 하였다.

 

랄슨의 목표는 성경적 또는 신학적인 연구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왜 그들이 그렇게 믿었는가 하는 것보다, 무엇을 재림교인들이 믿었었는가 하는 것을 정립하고자” 하였다.(2) 더 중요한 것은, 그는 그 논쟁에 관련된 주 문제와 주제가 무엇인지를 모든 사람이 이해하기를 원했다: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께서 아담의 타락하지 않은 인성을 가지고 오셨는가 아니면 타락한 인류의 인성을 가지고 오셨는가?”(3)

 

먼저, 랄슨은 선구자들 특히 엘렌 화잇이 사용한 “죗된 본성,” “타락한 본성,” “유전된 죗된 본성,”같은 주된 표현들을 확실히 정의하고자 하였으며, 또한 “정욕”과 “성향”이라는 단어들이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리스도의 본성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었는지에 관한 문제를 명확히 하려고 하였다.(5) 마지막으로 그는 W.H.L 베이커에 보내는 엘렌 화잇의 글을 문체적, 역사적 문맥에 맞추어 설명하려고 하였다.(6)

 

그가 수집한 인용문들에 의하여 랄슨은 “교회가 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기간(1852-1952)을 “순수시대”로 보았고, 1952년과 그 후를 “혼란의 시대” (4부)로 보았다. 마지막 세 부분은 그리스도론과 구원론(소테리올로지)의 긴밀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바쳐졌다.(7)

 

랄슨은 신신학에 관하여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8) 그는 미니스트리교리에 관한 질문들(Questions of Doctrine)과  Movement of Destiny에 고무된 글들은 세계적으로 재림교인들에게 큰 혼란을 가져온 “계산할 수 없을 만한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였다. 이것들은 엘렌 화잇이 모순된 말을 하였고, 역사적 재림주의는 구원론에 관하여 잘못된 생각을 하여 온 것처럼 나타냈다. 랄슨은 그의 신조를 다음과 같이 나타낸다: “그리스도론, 그리스도의 본성, 구원론, 그리스도의 구속사업들은 분리할 수 없게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어느 하나에 대하여 말할 때, 다른 것에 대하여도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하나를 바꾸면, 다른 것도 바꾸어야 한다.”(9)

 

랄슨의 연구는 비할 데 없는 막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의 역사적, 비판적 분석은 1852년과 1952년 사이의 통일된 교회의 가르침과 1950년대에 일어난 변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깨우침이 된다.

 

랄슨은 결론적으로 그의 독자들로 하여금 그의 연구를 개인적인 연구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거절하지 말고 자세히 검토해 볼 것을 권한다. 만약 해석적 오류가 있었다면, 교회는 그것들을 인정하고 교정할 용기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10)

 

(엘렌 화잇 유산협회가 입장을 밝혀줄 것이 요구함)

 

엘렌 화잇 유산협회의 이사의 중 하나로서,(11) 나는 커지고만 있는 분쟁에 관하여 무심한 채 남아있을 수는 없었다. 특별히, 이 문제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엘렌 화잇의 여러 언급들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엘렌 화잇의 글들을 관리하는 엘렌 화잇 유산협회가, 다른 여러 경우에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입장을 거리낌없이 말해야 한다고 믿었다.(12)

 

나는 1985년 9월 프랑스에 있는 재림교회 신학교에서 그리스도론에 관한 한 과목을 가르칠 것을 부탁 받았다. 나는 엘렌 화잇 유산협회가 엘렌 화잇의 그리스도론에 관한 문제들에 관하여 연구하여 그것들을 발표해야 한다고 느꼈다. 나는 그 협회 회장 케넷 우드에게 이 문제를 연중 행사의 하나로서 넣을 것을 제안하였다.(14)

 

나의 1986년 7월 9일자 편지는 엘렌 화잇의 언급에 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해야 한다는 제안도 아니었고, 또한 현재 행해지는 대립의 어느 한 쪽을 비판하자는 제안도 아니었다. 내가 한 제안은 엘렌 화잇의 개인적 입장과 그녀와의 동시대의 사람들(그녀가 인정하였던 와그너, 존스, 프레스코트, 하스켈의 입장)의 가르침에 대한 그녀의 평가를 좀 더 면밀히 연구하자는 것이었다.

 

케넷 우드는 그가 나의 제안에 동의한다는 것과 그 문제가 회의 안건 IV로 채택되었다는 것을 내게 알려주었다. 같은 시기에, 엘렌 화잇 유산협회 서기였던 로버트 올슨도 엘렌 화잇 유산협회가 이 문제의 해결을 시도해야 한다는 것은 거론할 여지가 없이 당연한 것이라고 내게 전해왔다.

 

“엘렌 화잇협회는 그리스도론에 관하여 한 번도 출판한 적이 없다. 나는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우리들 가운데 그 문제에 관하여 일치된 의견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들 가운데 두 다른 학파가 있으며, 나는 엘렌 화잇협회가 누가 옳고 누가 틀린지를 가름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못된다고 느꼈다. 우리가 이것을 하면, 우리는 우리들과 동의하지 않은 자들과 대립하는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15)

 

로버트 올슨은 안건 IV회의의 결과에 대하여 호의적이었지만, 그는 그 두 가지 견해 모두를 발표하고 싶었다. 그는 스스로 그의 견해를 표출하는 글을 쓰겠다고 제안하였다. 그는 회답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두 번의 편지를 통해서 그의 글의 요약을 보내왔다. 나는 그 편지들을 1986년 4월과 9월에 받았다.

 

(로버트 올슨의 견해)

 

1986년 4월 21일자 편지에서 로버트 올슨은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내게 피력하였다. “이 모든 문제에 관한 나의 견해는, 그리스도께서 죄에 대한 성향을 유전 받지 않았으나, 그는 나의 느낌들을 모두 경험하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는 내가 받는 시험들의 본질에 대하여 온전히 이해하신다는 것이다.”(16)

 

“개인적으로, 나는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실 때부터 우리들과는 달랐다고 생각한다. 누가복음 1:35 은 이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태어나실 때부터 거룩하였다. 그러나 나는 태어날 때부터 거룩하지 못하다. 그리스도께서는 개심의 경험이 필요 없었으나, 우리모두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이 문제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비밀들로 가득 차 있음을 안다. 그러나 나는 만약 그가 나의 죄들을 지실 수 있었고, 잃어버린바 된 영혼들의 마음을 십자가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면 그는 악한 성향을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나의 자연적인 죄에 대한 성향을 경험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17)

 

1986년 9월에 보낸 그의 두 번째 편지에서도 올슨은 다시 한번 그 문제의 핵심을 지적하였다:“나는 특별히 그리스도께서 죗된 성향을 그의 어머니로부터 유전 받았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고 있다. 우드 목사는 그가 죗된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그가 그의 삶의 특정 경우를 통하여 죗된 성향을 가지는 경험을, 우리를 대신하여, 하셨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그 하나를 설명할 수 있다면, 다른 것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우리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논하고 있는지 모른다.”(18)

 

올슨은 1986년 7월 14일부터 24일까지 앤드류스 대학에서 열린 세미나 기간동안 그의 견해를 출판하였다. 1985년 미니스트리 잡지에 대립되는 두 기사가 실리면서 발달된 비평들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문제는 불같이 타올랐다. 이에 대하여, 올슨은 이 문제에 관한 질문들을 신약 성서와 엘렌 화잇의 글로 대답한 3쪽으로 된 교서 요목을 준비하였다.

 

1989년 올슨은 그 교서요목과 같은 형태로 작성된 그리스도의 인성이라는, 좀 더 상세하게 준비된, 소책자를 발간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이 작은 책의 목표는 인성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정확한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엘렌 화잇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계시 속에서 그와 대화를 하였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녀의 글을, 전부는 아니지만, 많이 인용하였으며, 또한 성경도 인용하였다.”(20)

 

이 책자는 엘렌 화잇 유산협회의 이름으로 편찬된 것이므로 그 협회 서기는 가능한 한 중립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다. 이 소책자는 로버트 올슨의 질문들에 대한 엘렌 화잇의 대답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출처가 될 것이다. 하지만, 대답으로 주어진 그 인용구들을 누구든지 나름대로 달리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적인 문제는 없어지지 않는다.

 

(엘렌화잇 협회에서 논의된 그리스도론)

 

회의조항 IV는 버지니아에 있는 윌리암스버그에서 1987년 1월 23부터 25일까지 열리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폭설로 미국의 동부지역 도로가 마비됨에 따라서 그 회의는 메릴랜드에 있는 콜롬비아에서 열리게 되었다. 더욱이 이 회의는 1월 24일 안식일 하루로 단축되었다. 전 회의가 나의 발표를 바탕으로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문제를 다루었으며, 다른 발표는 할 수 없었다.

 

그 발표의 내용은 주로 이 연구의 두 번째 주제였던, 선구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그리스도론이었다.(21) 여기서도 신신학에 대한 비평이 이루어졌으며, 이 문제는 이 책의 제 5부에서 자세히 다루어졌다.(22)

 

다른 글들도 준비되어졌었지만 시간상 발표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이 회의의 기록 책들에 모두 기록되었다. 그 중 두 개가 이 문제와 직접 관계가 있으며 재심할 가치가 있다.(23)

 

(팀 포이리어와 엘렌 화잇의 그리스도론)

 

엘렌 화잇 유산협회의 부 서기이자 기록 보관인인 팀 포이리어는 엘렌 화잇의 그리스도론과 그녀가 분명히 빌려쓴 글들의 저자들의 그리스도론을 비교 연구하였다. 포이리어에 의하면, 이 출처들은 엘렌 화잇의 그리스도론을 밝히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24)

 

성공회 목사인 헨리 멜빌(1798-1871)은 엘렌 화잇이 1887년 7월 5일 리뷔우 엔 헤랄드에서 출판된 “그리스도, 인류의 모본”이라는 책을 쓸 때에 가장 많이 빌려쓴 출처였다. 화잇 유산협회는 엘렌 화잇의 개인 소유였던 책 “멜빌의 설교”를 아직까지 소장하고 있다.(25) 포이리어는 “인간 예수 그리스도의 굴욕당하심”이라는 멜빌의 설교를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엘렌 화잇의 표현들의 진정한 의미를 밝혀주는 것으로 여겼다.

 

멜빌의 의하면, 아담의 타락은 다음과 같은 두 근본적인 결과를 초래하였다: 1.“단순 연약성”(26) 2.“죗된 성향.” 멜빌은 “단순 연약성”에 배고픔, 고통, 연약함, 슬픔, 죽음 등을 포함시켰다. “죗된 성향”을 그는 “죄 짓고자 하는 성향”이라고 정의하였다. 멜빌은 그의 논쟁의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타락 전 아담은 ‘단순 연약성’이나 ‘죗된 성향’ 모두를 가지고 있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두를 가지고 태어나며, 그리스도께서는 첫 번째 것만을 가지고 태어나셨다.” (27)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인성은 아담의 인성이 아니었다. 즉 아담의 타락 전의 인성이 아니었다. 또한 타락한 인성, 즉 아담의 타락 후에 나타난 모든 결과를 포함한 인성도 아니었다. 아담의 인성이 아니었던 이유는 그가 타락한 인성의 단순 연약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며, 타락한 인성도 아닌 것은 그의 인성이 도덕적으로 타락된 상태에 한번도 내려가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자적으로, 죄가 없는 우리의 인성이었다.”(28)

 

포이리어는 성향, 불구, 경향 등의 말들이 같은 의미로 쓰였는지, 또한 이 단어들이 멜빌의 언어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보이기 위해서 엘렌 화잇의 언어를 옥타비우스 윈슬로(29)의 것과 비교하였다. 포이리어는 엘렌 화잇의 인용구절들을 윈슬로의 그리스도론에서 뽑은 구절들과 나란히 나열하였으며, 그 구절 안에서 엘렌 화잇은 단어들, 표현들, 심지어는 개념까지도 빌려쓰고 있다.

 

그렇다면 이 의미가 엘렌 화잇도 같은 생각을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는 말인가? 그러나, 이 증거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반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윌슨은 그의 논쟁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지었다: “그의 본성 안에는 어떠한 타락한 원칙들과 타락한 성향들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어떠한 타락된 욕망과 경향도 나타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이 지구로 내려오기 전까지는, 하늘의 어떠한 천사도 그 보다 더 순수하거나 결백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구세주의 영광, 129, 132-134쪽).”(31)

 

포이리어가 발표한 비교인용구 안에서 엘렌 화잇은 근본적으로 같은 언어를 구사하고 있지만, 그녀는 이것을 그리스도께 적용하지 않고 타락 전의 아담에게 적용하고 있다. “첫 아담 안에는 타락한 원칙들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타락한 경향과 죗된 성향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담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있던 천사들과 같이 흠이 없었다.” (32) 또한 윈슬로의 글과 대비된 선행하는 인용구에서 엘렌 화잇은 그리스도에 관하여 썼다: “여기서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시험은 아담과 하와의 것보다 더 강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타락된 그러나 부패되지 않은 인성을 취하였기 때문이며, 그의 인성은 그가 사단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하여 받아들이지 않는 한 타락되지 않을 것이었다.”(33)

 

엘렌 화잇이 다른 신학자들의 말과 표현방법을 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녀가 그 말을 같은 의미로 썼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예를 들어서, 윈슬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유혹에 노출된 우리 구주와, 그 유혹에 굴복 당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은 그의 완전한 인성에 기초된다.”(34) 엘렌 화잇은 이 같은 표현을 이렇게 사용하였다: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은 인간이 그리스도와 연결됨으로 가질 수 있는 그 인성이다.” (35) 다른 말로, 윈슬로는 그 표현을 태어남으로 유전받은 그리스도의 인성에 적용하였고, 엘렌 화잇은 그가 가지고 있었던 그 같은 “완전한 인성”을 우리도 가질 수 있다고 말하는데 적용하였다.

 

멜빌의 논쟁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단순한 연약성(innocent infirmities)”만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엘렌 화잇의 CD로 찾아보면, 그녀는 한번도 그 말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녀는 확실히 그리스도께서 태어나면서 가지셨던 “연약성”에 대하여 반복하여 말하였지만, 한번도 그 연약성을 “단순한(순수한)”이라고 정의하지 않았다. 또한 그와 반대로 그녀는 반복하여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는 낙후된 인성의 연약성을 취하셨다”(36) 또는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도우려고 이 땅에 오셨을 때의 인류가 가지고 있었던 죄와 연약성을 취하셨다”(37) 말하였다. 그러므로 말과 표현만을 비교하는 것만은 충분하지 않다. 사용된 방법들도 반드시 검증되어져야 한다.

 

(D. A. 델라필드가 엘렌 화잇의 그리스도론에 대하여 증언하다)

 

회의 IV의 기록에 포함된 세 번째 글은 엘렌 화잇 협회에서 가장 오랫동안 일했던 사람들 중의 하나인 D. A. 델라필드가 썼다. 부 서기였던 그는 그가 지도하였던 예언의 신 세미나들과 엘렌 화잇의 글에 관련된 여러 기사들로 이름이 나있다. 특히 유럽에서는 그와 그의 부인이 예언의 선물에 관하여 교회들에서 가르쳤던 해와, 엘렌 화잇이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방문하였던 기록들을 담은 그의 책으로 이름이 나있다.(38)

 

윌리암스버그 회의를 위하여 그가 준비한 연구는 다음과 같은 제목을 가지고 있다: 참 선지자의 증거. 참 선지자의 증거들 중에서 델라필드는 요한일서 4:1-3절을 인용하였으며, 이 성경절을 그는 그리스도의 증인들의 인으로 여겼다. 델라필드에 의하면, 엘렌 화잇의 글들에 관한 색인에 언급한대로, 엘렌 화잇은 그리스도론을 그의 영원한 주제로 삼았었다. “‘그리스도’라는 단어 아래 87페이지나 되는 증언들이 있고, 이 증언들은 성육신 하시고, 죄 없으셨으며, 인류의 죄를 위하여 돌아가신 그리스도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39)

 

델라필드는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성육신에 대하여 연구할 때에, 우리는 마음 속 깊이 진정한 육신-타락한 상태이나 범죄하지 않은 육신-안에서 승리의 삶을 사신 예수의 이름을 명심해야 한다.”(40) 그리고, 엘렌 화잇의 증언에 대한 대답으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우리 구주께서는 인간이 시험받는 것처럼 시험 받으셨다. 그는 인간들처럼 시험에 굴복 당하실 수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떨어진, 그러나 타락하지 않은 육신을 취하셨고, 그가 하나님의 말씀대신 사단의 말을 듣지만 않는다면 타락되지 않을 육신을 취하셨으므로,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시험은 아담과 하와가 받았던 것보다 더 극심한 것이었다.”(41)

 

델라필드는 그리스도께서 “떨어진, 그러나 타락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베이커에게 보내는 다음의 글을 인용하였다: “어떠한 경우라도, 그리스도에게 타락의 흔적이나 경향이 있었다거나, 어떤 경로라도 그가 죄에 굴복하였다는 경미한 인상이라도 사람들 위에 남기지 말라… 모든 인류는 그리스도를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서 만들려고 하는 시도에 대한 경고를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될 수 없기 때문이다.”(SDA 성경주석 제5권 1128, 1129)(42)

 

델라필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수께서는 그가 오시기 전에 어느 누구도 행하지 않았던 일을 이룩하셨다: 죄와 흠이 없는 삶, 육체 안에서도 타락하지 않으신… 심지어는 그의 원수들도 그의 순결함을 인정했던 삶. 빌라도(누가복음 23:14), 빌라도의 부인(마태복음 27:19), 그리고 귀신들 (마가복음 1:24)까지도 그가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부르짖었었다.’” (43)

 

델라필드는 엘렌 화잇의 글로부터 다음과 같은 글을 인용함으로 끝을 맺었다: “‘그는 아담이 받았던 모든 시험들을 받으셨으나, 그는 육체 안에서도 거룩한 힘에 의지하셨으므로, 이 모든 시험들을 극복하셨다…. 그리스도의 삶은 타락한 인간이 거룩한 본성과 연합되고 교제함으로 이룩할 수 있는 상태를 보이신 것이다.’ (The Faith I Live By, p. 219).” (44) 델라필드는 바로 이것이 재림교회의 선구자들의 그리스도론이었다고 확신하였다.

 

(조지 R. 나이트가 선구자들의 그리스도론을 제시하다)

 

재림교회 그리스도론의 역사에 관한 글 중에서 조지 나이트의 글은 특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나이트는 미시간 주 앤드류스 대학의 교회역사 교수로서, 재림운동이 시작했을 때부터 재림교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신조들에 관하여 설명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45)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하여 쓰게 만들었던 요소는 바로 A. T. 존스의 문제가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한 장 전체가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한 존스의 가르침에 대한 분석으로 바쳐졌다.(46) 그러나 나이트가 가지고 있었던 전반적인 재림교회 그리스도론에 관한 그의 견해가 특별한 관심을 갖게 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와그너, 존스, 프레스코트…는 그리스도께서는 아담의 다른 모든 자녀들과 같았다는-죄에 대한 성향을 포함하여-것을 그들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교리의 기초로 삼았다.”(47)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지적한다: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그들의 견해는 1890년대 재림교회 안에서 아무런 저항을 일으키지 않았다. 이러한 사상은 신학적으로 아무런 문제없이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1950년대에, 이 두 가지 의견이 많은 재림교인들에게 신학적인 주제로 떠오르면서 양상이 바뀌게 되었다.”(48)

 

“1950년대에 재림교단 안에서 가장 명망이 높았던 신학자들 중 하나였던 M. L. 앤드리슨은 그리스도의 ‘죗된’인성 교리는 재림주의의 ‘주석이 되는’교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이러한 입장을 바꾸는 것은 단지 역사적 재림주의를 포기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엘렌 화잇의 증언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그러나 교회내의 다른 한편의 사람들은 죄에 대한 그리스도의 성향은 다른 사람들의 것과는 달랐다는 기독교 사상을 받아드려야 한다고 믿었다. 30년 동안 재림교단은 이 문제에 관한 논쟁을 치러야만 하였다.”(49)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한 문제는 재림교단 안에서 1950년까지는 아무런 분열을 일으키지 않았었다. 그 때까지는 교단 저자들이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아담의 것처럼 죄에 대한 모든 인류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오셨다는 존스, 와그너, 그리고 프레스코트의 사상에 거의 다 동의하고 있었다.”(50)

 

나이트에 의하면 1950년대에 두 가지 문제가 이러한 변화를 만들게 되었다. 첫 번째 것은 1955년에 발견된 W.L.H. 베이커에게 보내는 엘렌 화잇의 편지였다. 다른 하나는 “재림교회의 ‘죗된 성향’의 그리스도론은 올바른 것이 아니라는 특정 복음주의자들의 비판”에 대한 몇 교회지도자들의 민감성 때문이었다.(51)

 

그러나, 나이트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죗된 본성을 그가 취하셨다” 또 심지어는 “그는 타락한, 고통 당하는 인성, 죄로 인하여 낙후되고 더렵혀진 인성을 취하셨다”고 까지 확언하고 있는,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는 많은 엘렌 화잇의 증언들도 있음을 지적한다. 또한 “이러한 증언들은 고립된 증언들이 아니다.” 베이커에 보내는 편지가 쓰여진 그 해에 엘렌 화잇은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인성을” 취하셨다고 적고 있다. (52)

 

마지막으로 나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엘렌 화잇이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실 때에 타락한, 죗된 인성을 취하셨다고 믿었다는 것에 대하여는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어찌되었던지, 죄에 대한 악한 성향-즉 이기적이고, 자아를 사랑하는 것 등의 엉겅퀴와 가시들-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하다.” (53)

 

이 문제에 관한 나이트의 개인적인 견해를 확증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역사가로서 그의 객관적인 분석은 역사적 그리스도론이 언제나 주장하여온 것과 같은 것을 지지하고 있다. 그의 책의 목표는 그 자신이 무엇을 믿고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니었고 재림교회가 그 문제를 먼저 어떻게 믿었었으며, 1950년대에 들어오면서 어떠한 갑작스러운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제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믿음에 대한 성경적 제시…)

 

1980년 대총회 때에 한 새로운 신조가 만들어졌다. 1872년 첫 번째 발표 이후로, 재림교회 지도자들은 그 신조들을 더 확실히 표현하기 위하여 기초교리에 대한 개정안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여러 번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대총회 목회자협회는 “제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27개 기초교리에 대한 성경적 주해”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1988년에 책으로 출판되었고, 세계 주 언어들로 번역되었다.

 

10개의 세계 지회들로부터 선발된 194명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각 장을 비평 분석하고 있는 동안 여러 저자들이 기사를 쓰도록 선택되었다. 교회 목회자, 신학자, 지도자들로 구성된 27명의 소위원회가 이 책을 준비하는 것을 감독하였다.(55)

 

비록 그 책은 공식적인 선언이 될 것이었지만, 그 책에 관하여 저자들은 조심스럽게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비록 이 책은 공식적으로 의결된 문서는 아니지만-공식적 의결은 세계(대)총회 때에만 가능한 것이지만-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 제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가 간직하고 선포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에베소서 4:21)를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56)

 

견해의 차이 때문에, 1980년 대총회 때에 표결된 사항은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피하고 있다. 이것은 단지 예수께서 “영원한 진실 된 하나님”이시고 “진정한 인간”이셨다고 만 정의하고 있다. “그는 성령에 의하여 잉태되셨고, 동정녀 마리아에 의하여 태어나셨다. 그는 인간으로서 사셨고 시험들을 경험하셨다. 그러나 의와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하게 예시하셨다.”(57)

 

이와 관련된 제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신조 제 4장은 그리스도론의 여러 다른 면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기를 기피하고 있지 않다. 특히,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문제가 성경절들을 바탕으로 조직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여기서 예수는 “진정한 인간”으로서 표현되어졌다. “그는 그의 어머니에 의하여 진정한 인성을 물려받았다.” “그의 어린 시절을 통하여 그는 그의 부모의 지도아래 있었다(누가복음 2:51).” “인자라는 이름은 그가 인류와 성육신을 통하여 결속되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59)

 

논쟁되는 문제들이 명확하게 제시되었다: “어느 정도까지 그리스도께서 인간과 같이 되었는가? ‘죗된 육체의 형상’ 또는 죗된 인간이라는 말의 뜻이 올바로 해석되어져야 한다. 잘못된 견해들이 토론되어졌고, 이것은 기독교 역사 안에서 계속적인 불화를 일으켰다.”(60)

 

그 장은 재림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의 전형적인 표현방법을 쓰고 있다: “그는 그의 신성을 인성으로 옷 입히셨다. 그는 ‘죗된 육체의 형상’, 또는 ‘죗된 인성,’ 또는 ‘타락한 인성’ (로마서 8:3 참조)이 되셨다. 이 사실이 예수께서 죄가 있었다거나, 죗된 행동과 생각에 참여하셨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비록 죗된 육체의 형상으로 되셨지만, 그는 죄 없으셨고, 그의 결백함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61)

 

그리스도의 인성은 아담의 타락전의 인성과는 같지 않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담의 타락하지 않은 육체에 비하여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낙후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죄 짓지 않으셨다. 그리스도께서 죄의 결과를 가지고 있는 인성을 취하셨을 때에, 그도 다른 모든 사람들이 경험하는 연약성과 허약함 아래 구속되셨다. 그의 인성은 ‘연약함에 싸여 있었고’ ‘연약함을 담당하셨다’ (히브리서 5:2; 마태복음 8:17, 이사야 53:4).”(42)

 

성공회 감독 헨리 멜빌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아담의 인성 즉 아담이 타락하기 전의 인성이 아니었으며, 또한 타락한 인성, 즉 아담이 타락한 후의 인성과 모든 면에서 같은 것도 아니었다. 아담의 인성이 아니었던 이유는 그가 타락한 인성의 순수 연약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고, 또한 타락한 인성도 아니었던 이유는 그가 한번도 도덕적 불결함으로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문자적으로, 죄 없는 우리의 인성이었다.”(63)

 

마지막으로, 유혹에 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그가 시험 당하신 방법은 그가 진정한 인간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범사에 우리와 같이 되심’(히브리서 4:15)은 그가 우리 인성의 참여자라는 것을 보여준다. 유혹과, 죄 질 수 있는 가능성은 그리스도께 실제적인 것이었다. 만약 그가 죄 질 수 없었다면, 그는 인간이 아니었으며, 우리의 모본도 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시험에 굴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포함한 모든 연약성을 지닌 인성을 취하셨다.”(64)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시험의 실제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두 명망 있는 신학자들의 글을 인용하였다. “우리는 ‘만약 그(그리스도)가 처음부터 완전무결한, 또는 죄 질 수 없는 인성을 받으셨다면, 그는 진정한 인간이 되실 수 없으며, 우리가 모방할 수 있는 모본도 되실 수 없다: 그의 거룩함은, 후천적으로 습득된 행동과 공적으로서가 아니라, 우연한 또는 선물로 주어진 것이 될 것이며, 그가 받으신 시험은 하나의 쇼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카알 울만은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시험의 역사가 어떻게 설명되어지던지 상관없이 그 중요성을 잃게 될 것이며, “우리처럼 모든 면에서 시험받으셨다”고 말씀한 히브리서의 표현은 그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65)

 

이러한 언급에 의하여, 다음의 글을 읽으면 놀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죄 없는 것으로 그려졌다”; 즉 “예수께서는 모든 연약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인성을 취하셨다. 그러나 그는 유전적인 타락 또는 부패와 실제적인 죄로부터는 분리되어 있었다.”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는 악한 경향이나, 성향 또는 죗된 정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66)

 

물론,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것들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우리에게 “죄 없는 삶의 모본”을 주신다. (67) 그러나 이것은 “유전의 대 법칙의 효력”(69)아래 있는 “인간의 타락한 인성” (68)안에서 이루어졌다. 비록 그가 악한 성향을 가지고 있지 않았어도, “그는 자연적인 마음이 가지고 있는 성향이 얼마나 강한지 아신다.” (70) 또한, 엘렌 화잇이 “그리스도께서는 타락한 인성의 연약성을 취하셨다”고 선포하였음에도, 왜, 멜빌과 함께, “순수한 연약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가? (71)

 

좌우간에 제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신조에 나타난 그리스도론은, 타락 후의 입장이 지지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유전을 육체적 결과에만 적용함으로-“순수한 연약성”(72)이라고 말함으로, 저자들은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전통적인 입장을 떠났다. 이렇게 함으로 제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신조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하여 중간적인 입장을 설립하게 되었으며, 로이 아담스는 어드벤티스트 리뷔우와 그의 책 그리스도의 본성: 완전론에 관하여 분리된 교회들를 위하여 통하여 보급하려고 시도하였다.

 

(로이 아담스가 논쟁의 부활을 추구하다)

 

80년대의 논쟁 이후에 어드벤티스트 리뷔우는 “모본 또는 대리자, 우리가 예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중요한가?”와 “연합하기”라는 제목으로 놀만 R. 굴레이의 여섯 편의 글을 실었다. 이 글들은 “예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vicariously) 죄가 되셨다”; “예수께서는 우리와 달랐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시험을 경험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엘렌 화잇은 “그리스도의 사명을 두 가지 차원으로 보았다. 그녀는 타락 전과 타락 후의 차원을 모두 말하고 있다.”(73)라는 그가 개인적으로 만들어 낸 개념들을 포함하고 있다.

 

1990년 봄, 리뷔우의 부 편집인이었던 로이 아담스는 “아담처럼 아니면 우리처럼”(74)이라는 제목으로 그리스도께서 아담과 같으셨는지 (타락 전) 아니면 죄인들과 같으셨는지에 관한 현행하는 문제들에 관한 세 편의 편집인 사설을 실음으로 논쟁을 부활시켰다. “우리가 큰 문제들을 연구할 때에,” 아담스는 엘렌 화잇의 글을 인용한다: “우리의 마음을 이 땅과 하늘에서 일어난 가장 놀라운 사건, 즉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 하심에 집중하자.” (75) “이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의 중심교리이다. 이것이 없으면,” 아담스는 말한다: “성경의 모든 케논은 의미 없는 기록, 즉 비상식적인 것이 되고 말것이다.”(76)

 

“여기서 우리가 맞고 있는 문제는 바로 우리 기독교회 선구자들이 금세기 초에 맞았던 것과 비슷한 종류의 것이다. 즉 확실한 성경적 언급이 없다는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림교인들은 이 문제에 관하여 엘렌 화잇의 글에 전적으로 의존하였던 것이다.”(77)

 

아담스는 엘렌 화잇이 한 쪽으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모든 면에서 같았다고 말하고 있으나, 다른 쪽으로는 “우리와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어려움은 바로 이 분명한 모순에 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인간이 되셨다면, 그가 우주적인 죄의 감염을 피할 수 있었겠는가?”(78)

 

이러한 역설을 설명하기 위하여 아담스는, 죄의 두 근본적인 결과가 (1) “순수한 연약성”과 (2) “죗된 성향”이라고 주장했던 성공회 감독이었던 헨리 멕빌의 글을 인용한다. 멕빌은 “타락하기 전 아담은 ‘순수한 연약성’이나 ‘죗된 성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모두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그 첫 번째 것을 취하셨으나 두 번째 것을 취하시지는 않았다”고 설명한다.(79) 멜빌처럼, 아담스는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께서는 타락하기 전의 아담과도 같지 않았으며, 또한 우리와도 같지 않았다. 그는 특별하셨다”고 결론 짓는다. (80)

 

이것이 1994년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한 그의 책에 제시한 해결점이었다. (81) 그는 존스와 와그너의 전통을 이은 몇 “반역한 형제들”과 또한 신신학에 대한 앤드리슨의 날카로운 반응 등 몇 그리스도론을 비판하면서, 그는 그가 편집인 사설에 기록한 생각들을 발전시켰다. (83) 특별히 그는 멜빌의 설명을 자세히 다시 언급하였다. 그리고 포이리어처럼 그는 엘렌 화잇이 같은 표현방법을 썼기 때문에 그 의미도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84)

 

그 전에 있었던 사람들처럼, 아담스도 베이커에게 보내는 엘렌 화잇의 편지를 집중적으로 인용하였다. 더욱이, 그는 그의 해석이 그의 신학교 선생들의 의견과 동일하다고 지적하였다. (85)

 

우리는 로이 아담스의 해석이 오늘날 많은 재림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입장을 대변해주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이 전 세계 재림교인들의 다수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유럽의 상황)

 

지금까지 설명한대로 (86) 1950년대까지 남 유럽지회에 속한 나라들은 재림교회 그리스도론에 대하여 대부분 교회의 가르침과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 후에도, 영어를 쓰는 재림교인들의 저서들에서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중요한 문제점들이 다루어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서양 다른 쪽에서는 그러한 문제가 분쟁을 일으키지 않고 있었다. 몇 특별한 사람들만을 제외하고는 영어로 된 신학서적을 읽는 경우는 드물었다. 게다가, 문제를 일으킨 요소들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있는 학자들도 거의 없었다. 1969년 Revue Adventiste의 편집인이었던 진 카세욱스가 신신학에 대하여 처음 언급한 사람이었다. (87)

 

프랑스어를 쓰는 재림교회 신학자들의 아버지였던 알프레드 바우처는 “그리스도의 신-인 본성에”에 관하여 한 글을 썼다. 이 글을 통하여 그는 재림교회 안의 여러 경향들에 관한 분석을 하였다. (89) 이 글에서 그가 개인적으로 언급한 것은 오직 “형상 likeness”이라는 단어인데, 그는 이 단어를 “동질성을 나타내는 동의어가” 아닌 것으로 해석하였다. “그리고 만약 어떤 사람이 예수께서 죗된 본성을 취하셨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시험과 죄 지을 수 있는 가능성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였다. (90) 그리스도께서 아담의 죄 짓기 전 또는 후의 인성을 취하셨는가 하는 것은 알프레드 바우처에게 문제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의 훌륭한 저서인 Histoire du Salut (History of Salvation)에서도 그는 그리스도의 인성과 받으신 시험의 실제성을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91)

 

유럽의 교회인들과 목사들에게 언제 신신학이 소개되었는지를 판가름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92) 여러 나라들로부터 온 목사들을 교육시키는 Adventist Seminary of Collonges에서 이 두 사상이 다음의 연결되어지는 선생들에 의하여 발표되어졌다: Raoul Dederen(그가 1963년 앤드류스 대학으로 떠나기 전까지); Georges Ste’veny(1967-1980); 나(저자)(1960-1970, 1985-1998).

 

내가 그와 최근 연락이 되었을 때에, 라울 데데른(Raoul Dederen)은 나에게 확실히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그의 견해는 에드워드 헤펜스터의 견해와 실질적으로 완전히 같다고 하였다. 다른 말로, 그리스도께서는 아담의 타락 후의 인성을 취하셨으나, 죄에 대한 자연적인 성향에는 참여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자연적인 성향: 죄와 동질의 것은 아니나, 죄와 비슷한 육체). (94) 이제 우리는 Georges Steveny의 견해가 자세히 담긴 그의 저서를 가지고 있다. 그의 최근 저서 A la dcouverte du Christ (Seeking the Discovery of Christ)에 감사한다.(94)

 

(Georges Steveny가 선구자들의 사상을 일깨우다)

 

조지 스티브니는 Collonges-sous-Saleve 재림교회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였으며, 제네바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였다. 다년간의 교수생활 이후에 그는 18년 동안 선교 목사로서 프랑스와 벨지움의 안식일 교회에서 일을 하였다. 유능한 웅변가로서 그는 철학과 신학에 대하여 강연할 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67년 그는 Collonges-sous-Saleve 신학대학의 교수가 되었으며, 1970년부터 1980년까지 그는 그 신학대학의 학장으로서 일하였다. 1985년부터 1990년까지 그는 제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유로 아프리카 지회의 일반 서기로서 또한 스위스-프랑스 합회 합회장으로서 일하였다.

 

비록 그는 여러 글들을 썼으며, 여러 출판된 책들을 편집하였으나, 자신의 책인 A la decouverte du Christ는 그가 은퇴한 후에야 쓰게 되었으며, 이 책은 그의 전 생애를 통하여 얻은 지식과 철학을 대표하고 있다. 이 책은 그리스도론 형식을 띠고 있으며, 두 단계로 나뉘어져 쓰여졌다. 첫 단계는 “낮은 그리스도론”으로서, 역사 가운데 기록된 이 땅에 살았던 그리스도를 발견케 한다. 두 번째 단계는 “높은 그리스도론”으로서 우리 믿음의 구주를 계시하는 단계이다. 이 부분은 성육신의 함축적 의미와 결과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특히 중요하다. (96)

 

그가 사용한 방법은 요한 복음의 서론으로 시작하여 바울 서신 가운데 나타난 중요한 부분들을 통하여 각 그리스도론적 원문들을 조직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이었다. 이것은 전적으로 성경적 계시를 중심으로 연구되어진 그리스도론이었다. 이 연구는 여러 예증들을 통하여 “예수께서는 성육신 하시기 전에 하나님이셨으며” “그는 그의 굴욕 하심까지 하나님이심을 유지하였다”(97)고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자신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하여 오셨다. 그는 인간이 되셨으며, 둘째이면서도 마지막 아담이 되셨다. 그러므로 한 가지 정당한, 그러나 민감한 질문이 일어난다: 예수와 우리의 동일성이 어느 정도까지인가? 그가 아담의 타락전의 인성을 취하셨는가 아니면 타락 후의 인성을 취하셨는가?” (98)

 

조지 스티브니는 예수께서 아담의 타락전의 인성을 취하였다는 사상을 단호히 거절하였다. “죗된 육신의 형상”이라는 바울의 표현이 타락전의 아담에게 적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아담이 가지고 있었던, 아주 분명한, 두 다른 상황과 경험들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 같은 육체 안에 살지 않았었고, 같은 본성 안에 있지도 않았다는 것이다.”(99)

 

“그러므로 예수께서 아담이 타락하기 전의 것과 같은 육체 안에 살았었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말씀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아담의 타락 후의 인성과 같았다고 말하는 것은 또 다른 실수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하여 단순히 타락 전과 후의 아담의 인성에만 연결하려는 잘못된 선택사항에 자신들을 국한시키고 있다. 존재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죄인이 되신 그리스도와 인간사이에는 근본적이고 큰 다른 점이 존재한다.” (100) “예수께서는 신만이 아니셨으며, 인간만도 아니셨다. 그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될 때에 다른 장소에서 다른 지위를 가지시게 된다.”(101)

 

그렇다면, “정확하게 어떤 육신과 내적 경향들을 그리스도께서 지녔었는가? 어느 정도까지 그가 우리와 같아지셨는가?”(102) 인간의 상태를 회복하기 위하여 그는 온전한 인간이 되셔야만 하였다. 단순한 외적인 닮음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죗된 육신의 형상” (로마서 8:3)안에 보내셨다고 말한 바울의 선언에 합당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인하여 죄를 정 한 그 육체를 가리킨다. 사도 바울의 논증은 예수께서 우리와 같은 상태 안에 거하셨다는 조건아래서만 충족될 수 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모든 논증은 거짓된 것이고, 결론은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 된다: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8:4).” (103)

 

“만약 예수께서 우리와 같은 상황 아래서 유혹을 만나지 않았다면,” 스티브니는 주장한다, “그 고투는 동등하지 않으며, 그의 모본은 부적당하게 된다.” (104)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죄를 육체에 정하실 때 사용하셨던 성령의 능력은 그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자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위하여 행하셨던 그 같은 사업을 성령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하시고 계신다. 바로 여기에 복음의 핵심이 있다…. 인류의 선두주자였던 아담으로 인하여 손상된 인성이, 모든 것들을 새롭게 만드시는 그리스도안에서, 회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인가.” (115)

 

(윌리엄 G. 존슨이 화합을 시도하다)

 

Adventist Review의 편집장이었던 윌리엄 G. 존슨은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논쟁을 식히기 위하여 “우리의 비길 데 없는 구세주”(106)라는 제목의 글을  Review의 편집인 사설에 다섯 번 연재하였다. “이 편집인 사설을 실은 목적은 단순히 ‘어느 쪽이 옳고 그른가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각 진영의 관심사를 공정히 나타내고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공통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임으로 우리 모두를 한 곳에 모으고자 한다… 나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확신을 가지고 있는 우리 백성들의 지혜와 상식에 호소하고자 한다.” (107)

 

재림교회가 공언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완전하고 영원한 신성을 지적한 후, 존슨은 그의 인성도 같은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바로 그곳에 현대 재림교인들의 논쟁점이 놓여있다. 존슨은 객관적으로 양쪽의 견해들을 재설명한 후, 이렇게 질문하였다: “성경은 예수의 인성에 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108) 그의 대답은 그가 히브리서에 관하여 썼던 책의 내용과 똑 같았다. (109) “이 문제에 대하여 신약성경은 깊은 침묵을 하고 있다. 나의 판단으로는, 우리가 하나의 교회로서 우리의 기본교리를 통하여 성경이 말하는 것보다 더 가까이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하여 판단하려고 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110)

 

“그러나 엘렌 화잇은 그리스도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증언하고 있는가?” (111) 존슨은 묻는다. 그녀는 그의 신성과 인성을 똑 같이 강조하였고, 이 둘의 기적적인 융합에 대하여 말하였다. “그는 슬픔과, 고통과, 시험을 당하셨다; 그의 시험받으심은 실제적이었다.-그는 실패와 영원히 잃어버림을 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완전히 죄 없음을 유지하셨다. 그는 우리의 비할 데 없는 구세주이시다.”(112)

 

엘렌 화잇이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하여 연구할 것을 장려하였다고 했다면, 또한 이 문제에 대하여 세심한 주의를 기할 것도 심각하게 요구하였다: “조심하라, 당신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하여 생각할지 아주 조심하라.” 그러나 그의 인성이 아담의 타락 전의 것이었는지 아니면 타락 후의 것이었는지에 관하여 그녀는 무엇이라고 말하였는가?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녀가 무엇을 썼으며, 무엇을 쓰지 않았는지를 알아야 한다.” (113)

 

재림교회의 기별의 “토대” 또는 “기둥”이 되는 많은 증언들을 언급한 엘렌 화잇은 한번도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하여 어느 한 편을 들지 않았다. 더욱이, 엘렌 화잇이 양쪽 모두의 견해를 취하고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사실, 존슨은 적기를 엘렌 화잇은 “예수께서 진정한 인간이 되셨으며 우리들의 경험을 통과하셨지만, 그는 핵심적인 문제에서 우리와는 달랐다”고 주장하였고, “그는 신-인간이셨다. 또한 그는 우리의 정욕을 나누시지 않았고, 악에 기울어짐, 죗된 성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우리와 같으셨으나, 또한 그는 우리와 달랐다. 오직 이 두 가지 사실을 균형 있게 붙드는 것만이 그녀에 관하여 정당한 판결을 내리게 한다”고 생각하였다.(114)

 

존슨은 여러 번 말하기를 그 논쟁들은 실제적인 문제인 죄의 본질에 관하여는 말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 문제 뒤에 숨어있는 문제는 바로 죄에 대한 개념이다.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하여 더 알기 원하는 자들이 만약 그리스도께서 타락하기 전 또는 후의 어떤 인성을 취하셨는가 하는 논쟁을 그치고 성경이 죄에 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를 연구하는데 시간을 바친다면 더 진전이 있을 것이다.” (115)

 

존슨은 성경이 죄의 정의를 불법이상의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통찰력 있는 분석에 의하면, 바울은 죄를 힘으로서, 거주하는 원칙, 한 상태-내 안에 있는 죄 (로마서 7:14-20)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단지 우리의 행동이 죗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본성 자체가 하나님과 적대되고 있다.” (116)

 

“예수께서 그러한 본성을 가지고 있었는가? 그렇지 않다. 만약 그가 그러하였다면 그는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는 악한 성향, 즉 그로 하여금 유혹에 쉽게 빠져들게 하는 도덕적인 성향은 없었다. 그는 절대적으로 죄 없는 분이셨으며, 또한 내적으로 더욱 그러하였다. 그는 ‘거룩하고, 결백하고, 순수하고, 죄인들과 분리되어져’ (히브리서 7:26) 있었다.” (117) “그러나 나는 우리들과는 다른, 죄 문제의 한 부분이 되지 않고, 스스로는 구세주가 필요하지 않는 구세주가 필요하다. 그리고 나의 구세주는 죄의 흔적으로부터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어야 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죄를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118)

 

존슨이 이 문제를 풀기 위하여 노력한 것은 분명히 가치 있는 일이었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당연히 죄의 개념에 대한 성경적 정의를 밝혀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취하신 타락한, 고통 당하는, 낙후된 인성과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그리스도의 순결하고, 거룩하고, 죄 없는 인성사이에 존재하는 분명한 차이에서 나타나는 두 정 반대적 견해는 이러한 방법이 아니고는 화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어떤 존재이고 어떤 존재가 아닌지 만을 밝히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119) 모든 재림교인들이 그리스도께서 죄 없었음과 악한 성향이 그에게 없었음을 믿으며, 그렇지 않고는 우리의 구세주가 될 수 없음을 믿고 있다. 그러므로 어떻게 그가 우리와 같은 죗된 육체 속에서 죄 범함 없이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이 시험을 당하였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 문제의 핵심인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가 풀린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진정한 우리의 비할 데 없는 구세주로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Jack Sequeira와 죄의 문제)

 

그의 책 Beyond Belief(120)에서 그는 죄의 정의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문제를 풀고자 하였다. 제목에 나타난 것처럼, 저자는 독자들로 하여금 “영원한 복음의 약속, 능력 그리고 실제성”을 향한 “믿음 저편”을 보게 하고자 하였다.

 

세퀘이라는 그리스도론보다는 구원론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는 “새로운 빛 가운데 있는 구속의 경륜”(121)을 세우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개성을 설명하지 않고는 그리스도의 사업에 관하여 설명할 수 없으므로 세퀘이라는 그리스도의 인성과 죄의 본질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게 “복음은 죄 문제에 관한 하나님의 해결책이었다. 그러므로 복음에 관하여 연구할 때에 먼저 죄를 이해해야 하는 것은 중요하다. 너무나 많은 경우에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준비되어진 해결책(복음)을 그 문제의 모든 분야를 생각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오직 우리가 본성과 행동에 존재하는 죗됨을 완전히 이해할 때에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해결책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죄의 저열한 본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우리의 오직 한 의이신 그리스도께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죄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할 때만 복음은 의미 있게 되는 것이다.”(122)

 

세퀘이라는 이제 죄의 근원과 발전의 경로를 추적하여 보았다. “아담과 하와의 자손으로서 우리 모두는 죄의 노예이다. 우리는 자아 중심적으로 태어나며, 우리의 본성은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여 살려는 경향으로 흘러간다 (요한복음 8:34; 로마서 1:20-23; 6:17).”(123) 구약성서는 죄에 대하여 12가지 다른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하였다. 그러나 시편 51:2,3절에서는 핵심적인 세 단어로 기본개념이 표현되었다: 죄악, 죄, 범법: “a. 죄악(Iniquity): 이것은 죗된 행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죗된 상태를 가리킨다. 본성에 의하여, 우리는 영적으로 ‘구부려진’ (시편 51:5; 이사야 53: 6; 64:6)상태에 있다. b. 죄(sin): 문자적으로, ‘표적에 빗나가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상에 빗나간 우리 상태를 가리킨다 (로마서 3:23; 7:15-24; 이사야 1:4-6). c. 범죄(Transgression): 이것은 하나님의 법을 고의적으로 범하는 것이다. 즉 의도적인 불순종을 가리킨다 (요한1서 3:4; 로마서 7:7-13).” (124)

 

이사야 53장 6절을 설명하면서 세퀘이라는 이렇게 쓴다: “먼저, 모든 사람들은 타락된 길로 나아갔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길’로 기울어진 본성을 따랐기 때문이다. 둘째로, 이 우리의 길을 따르려는 성향, 곧, 자아 중심적인 성향이 바로 우리의 죄를 지신 그리스도께 지워졌다. 그가 십자가에서 ‘육신에 죄를 정하실 때에’ (로마서 8:3), 그가 지셨던 것은 바로 죄에 대한 성향이었다.” (125)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에게 그들도 하나님의 법에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또는 한 모본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그의 아들을 죗된 육체 안에 보내신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도론의 핵심적인 교리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의 구세주가 되시기 위하여 인성을 취하셨다는 영광스러운 진리에 있다. 오직 그를 구세주로서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만 그가 모본이 될 수 있다.” (126)

 

성육신 하셨는가에 관하여 세퀘이라는 어떻게 성육신 하셨는가를 논한다: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그의 인성 안에서 인류를 구원하셨는가?” 이것이 대리적으로(vicariously), 즉 인류를 대신하여 행동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인가, 아니면 실제적으로, 즉 타락한 인성을 실제로 취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인가? 세퀘이라는 후자를 선택한다. 그는 대리적으로(vicariously) 대신하는 이론을 거절한다. 그는 이러한 이론을 “복음을 비윤리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백한 자가 죄인을 위하여 죽는 것은 받아드려질 수 없다. 더욱이, 이것은 복음을 “값싼 은혜”로 전락시킨다. (127)

 

세퀘이라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인성 안에서 남녀들을 실제적으로 구원하셨다-대리적으로가 아니라. 이러한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아담의 타락한 인성을 취하셨다고 가르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려 오셨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을 필요로 하는 자들의 인성을 취하셔야 한다고 논증한다. 이러한 이유로 그리스도께서는 타락한 인류와 하나의 공동체가 될 수 있고, 둘째 아담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되고, 우리의 대속주(substitute)가 될 수 있는 법적인 권리를 갖게 된다.” (128)

 

이 뜻이 그리스도께서 그의 인성 속에서 우리의 타락한 인성과 똑 같았다고 세퀘이라가 믿었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성경은 우리가 아는 대로 그리스도께서 실제적으로 우리의 정죄 당한 죗된 인성을 취하셨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그는 죗된 본성 안에 존재하는 ‘죄의 법과 죽음’ (로마서 8:2)을 패배시켰으며, 이것을 십자가 위에서 완성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심지어 생각만으로도 그가 취하신 죗된 본성의 욕망에 동의하였다면 그도 구세주를 필요로 하는 죄인이 되셨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인성의 문제를 다룰 때에는 그리스도의 마음과 선택을 죄로 끌어내리지 않도록 극심한 주의를 해야 하며 그가 죗된 본성을 ‘가졌었다고’ 말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129)

 

죄의 문제에 대하여 세퀘이라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가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아담을 통하여 모든 인류가 그의 죄(guilt)를 물려받는다고 가르쳐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어거스틴이 도입하고 로마 천주교회가 받아들인 ‘원죄’설이다. 죄는, 법적인 측면으로, 언제나 개인적인 의지와 책임을 수반하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을 우리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으신다. 오직 우리가 개인적으로,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계속적으로, 강하게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영원한 생명의 선물을 거절할 때만 그 죄의 책임(guilt and responsibility)을 지게되며, 두 번째 죽음이 우리에게 이르게 된다 (요한복음 3:18. 36; 마가복음16:15; 히브리서 2:1-4; 10:14, 26-29).” (130)

 

세퀘이라의 그리스도론은 어떻게 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는가 하는 그의 신학적 사상의 기초에 불과하다. 대리적 속죄에 반하여 그가 가지고 있는 비전통적인 입장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분명하게 전통적인 그리스도론을 지지하였으며 그의 논쟁은 엘렌 화잇에 의지한 것이 아니라 오직 성경에만 의존하였다.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엘렌 화잇의 마지막 증언들)

 

우리는 엘렌 화잇의 초기 증언에 관한 언급으로 재림교회 그리스도론의 150년 역사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우리는 그의 후기 증언을 더함으로 마지막 끝내기 작업을 할 것이다. 이 흥미로운 증언은 가장 최근에 발견된 것으로서, 그리스도께서 모든 “죗된 성향”아래 있었는지 아니면 이것으로부터 면제 당하였는지에 관한 가장 대립적인 문제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

 

우리의 연구에 의하면, 조지 나이트는 엘렌 화잇이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하여 한번도 “죗된 성향”이라는 말을 쓴 적이 없다고 했음을 규명하였다. 나이트에 의하면, 이것은 “프레스코트, 와그너, 그리고 존스의 그리스도의 인성에 속한 성향에 대한 가르침”속에 나온 것이며, 이러한 사상은 “90년대 중반의 재림교회 안에 스며들어왔다.” (131) 그러나 새로 발견된 편지는 엘렌 화잇이 이보다 더 강한 표현을 썼었는가 하는 의문을 야기 시킨다.

 

1994년 2월 17일 Adventist Review는 전에 출판된 적이 없는 엘렌 화잇의 새로운 편지가 발견되었다고 발표하였다. (132) 이 편지는 1903년 8월 29일에 캘리포니아 세인트 헬레나에 있는 엠스해븐에서 쓰인 것으로 수신인은 켈로그 의사로 되어있다. (133)  이 편지는, 다른 여러 편지들처럼, 실제로 보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여지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엘렌 화잇이 켈로그 분쟁이 1902년과 1908년 사이에 어떻게 진전될 것이지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유가 어떻든지 간에 이 편지, 또는 그 편지 사본은 올바로 챙겨지지 않았다. 이 편지는 기록 보관인 팀 포이리어에 의하여 1993년 12월에 우연히 발견되었다. 이 발견이 발표되어 진 후 엘렌 화인 협회는 이 편지의 복사 본을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들에게 공급해 주었다.

 

엘렌 화잇의 다른 편지들처럼, 이 편지도 여러 실제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중 한 문구가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하여 중요한 언급을 하고 있다. 이 편지를 보면 엘렌 화잇은 그리스도께서 취하신 타락한 인성에 대하여 자신이 쓴 글을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타이프라이터로 친 글의 몇 곳을 손으로 수정했음을 볼 수 있다. 이 손으로 수정된 부분을 아래 인용구에 이탤릭체로 표시하였다. 이렇게 수정된 글은 특별히 민감한 부분과 잘못 오해되기 쉬운 문제들에 대한 그녀의 우려를 잘 나타내고 있다. 여기 그 문제되는 문구가 있다:

 

“그리스도께서 하늘 거민들에게 세상에서의 그의 사명과 사업에 관하여 처음 선포하였을 때에, 그리고 그가 실제로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었을 때에, 그는 그의 숭고한 자리를 떠날 것이며, 그의 거룩한 사명을 인간의 형상을 취함으로서 가리울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정한 시간이 이르자, 그는 가장 놓은 하늘의 보좌에서 내려오셨고, 그의 왕복과 왕관을 벗으셨으며, 그의 신성을 인성으로 옷 입히셨고, 인류가 원수를 정복하고 보좌에 앉으신 아버지와 함께 앉을 수 있게 되기 위하여 꼭 해야될 것과, 이룩해야 될 상태가 무엇인지를 보이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그는 인간으로서, 인간이 유전 받은 악한 성향(evil tendencies) 즉, 그(그리스도)의 믿음을 파괴시키기 위하여 모든 가능한 방법을 다 동원하여 일하는 악한 성향을 만나 그 영향아래 처하기 위하여 오심으로, 그는 하늘에서 쫓겨난 반역자 사단에 의하여 조정 받는 인류가 자신을 치는 것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134)

 

이것은 엘렌 화잇이 초기문집에 말한 것과 병행된다. (135) 초기문집에서 엘렌 화잇은 그리스도께서 취하신 인성을 설명하기 위하여 “인간의 타락한 인성”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였었다. 그리고 1903년 언급에서 그녀는 이 문제를 더욱 더 자세히 설명하고자 하였다. 먼저 그녀는 이렇게 적었다: “그는 인간으로서 인간이 유전 받은 모든 악한 성향들을 가지고 오심으로, 그는 하늘에서 쫓겨난 반역자 사단에 의하여 조정 받는 인류가 자신을 치는 것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이 언급은 “모든 악한 성향아래 있는” 인성을 분명히 지지하고 있지만, 그러나 예수께서는 한번도 굴복하지는 않으셨다.

 

그러나 분명히 엘렌 화잇은 타이프라이터로 친 자신의 글이 자신이 표현하고자 의도한 그 생각을 충분히 나타내지 않고 있음을 느꼈다. 그래서 엘렌 화잇은 손으로 그 위에 두 문구를 더했으며, 이것은 위에 이탤릭체로 나타내었다. 이렇게 더해진 글과 합치면 다음과 같이 된다: “그는 인간으로서, 인간이 유전 받은 악한 성향 즉, 그(그리스도)의 믿음을 파괴시키기 위하여 모든 가능한 방법을 다 동원하여 일하는 악한 성향을 만나 그 영향아래 처하기 위하여 오심으로, 사단에 의하여 조정 받는 인류가 자신을 치는 것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개정이 그 의미를 크게 바꾸었고, 비록 논쟁할 여지가 있는 것이지만, 악한 성향이 그리스도를 대항하였던 다른 모든 것들과 같이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이 중요한 편지를 출판하면서, 어드벤티스트 리뷔우의 편집인은 다음과 같이 썼다: “엘렌 화잇의 글을 연구하는 학생들은 이 글의 마지막 구절을 매우 흥미 있게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이 글이 잘못 이해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타이프로 쳐진 자신의 글을 읽으면서 그 글의 의미를 더 정확히 표현하기 위하여 손으로 직접 고치기까지 한 엘렌 화잇의 노력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그녀가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하여 쓴 다른 글들과 함께 중요한 위치에 서게될 것이다.” (136)

 

그때 당시 엘렌 화잇 유산협회장이었던 펄 골든에 의하면, “어떤 새롭게 발견된 편지나 편지들도 엘렌 화잇의 가르침에 대한 재림교인들의 이해를 크게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많은 양의 그녀의 책들과 편지들, 일기들, 기록들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녀가 무엇을 믿고 있었는가 하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137)

 

다음 문구에서 엘렌 화잇은 “악한 성향”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의 비결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인류의 머리로서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서 하늘 아버지의 의지에 일치되는 완전하고, 지속적인 삶을 사셨다. 그가 하늘 궁전을 떠나셨을 때, 그는 자신이 이루어야 할 사명에 대하여 설명하셨다. ‘보라, 내가 온다,’ 그는 이렇게 공포하셨다: ‘이 책이 바로 나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오 하나님이시여 나는 당신의 의지 행하기를 즐겨하나이다.’ 그의 마음과 생각은 ‘나의 인간의 의지가 아닌 당신의 의지가 이루어지기를 원하였다.’ 이것이 바로 그를, 그의 모든 말씀과 행동 안에서 거하게 한 절대적인 원칙이었으며, 이것이 그의 성품을 형성하였다.” (138)

 

그러므로, “인간이 물려받은 모든 악한 성향들을” 정복하심으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남녀가, 만약 그들이 그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그들이 처음 가지고 있었던 믿음을 끝까지 지킨다면, 반드시 이루어야 할 상태를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139) “이 땅에서 사셨던 33년 동안 경험하신 경험들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인류 가족이 시험받는 모든 시험들에 의하여 에워싸이셨으나, 그는 죄의 흔적도 없으셨다.” (140)

 

150년간의 재림교회 그리스도론의 역사에 대한 연구를 마치면서, 우리는 지금까지 축적된 지식을 통합하고, 여러 다른 입장들을 평가하기 위한 기초를 놓으려 한다. 궁극적으로는 성경의 가르침과 어울리는 그리스도론을 제시함으로 서로 다른 입장들 간의 화해를 이루려 한다.

 

(참고 문헌)

1Ralph Larson, The Word Was Made Flesh.

2Ibid., p. 7.

3Ibid.

4Ibid., pp. 15-21.

5Ibid., pp. 22-28.

6Ibid., pp. 29-31.

7See Ministry, June 1989, for two book reviews of Ralph Larson’s book, by Herbert E. Douglass and Eric C. Webster.

8Larson, pp. 224-264.

9Ibid., p. 281.

10Ibid., pp. 297-300.

11The Ellen G. White Estate was created by Ellen White herself in 1912. She designated five trustees. In 1950 the number was increased to seven, and in 1958 to nine, one of whom represented South America and one Europe. I was honored to be selected as the nominee from Europe for 20 years, from 1970 to 1990.

12See “Documents Available,” from the Ellen G. White Estate, Washington, D.C., May 1982. This brochure suggests that different publications be prepared to correct certain erroneous interpretations of Ellen White writings: on the sanctuary, on the investigative ju~ent, on health reform, or against the charge of plagiarism.

13This syllabus, The History of Adventist Christology, made up of some 120 polygraph pages, was prepared for the benefit of students enrolled in a course on Christology .

14The consultations of the Ellen G. White Estate are annual meetings of the trustees, along with members of the White Estate staff; to study problems related to Ellen White’s wtitin~, and to lay plans for extending their influence.

15Robert W. Olson, letter of April 21, 1986.

16Ibid.

17Ibid.

18Bruno W. Steinweg, supplement to his typescript study “The Doctrine of the Human Nature of Christ-Among Adventists Since 1950.”

19Robert W. Olson, The Humanity of Christ (Washington, D.C.: Ellen G. White Estate, 1986).

20Ibid., p. 3.

21Document of Consultation IV of Ellen G. White Estate. This study has been published in the French magazine Senlir, second quarter 1989, under the title “La nature humaine du Christ,” pp. 13-30.

22See our chapters 15 and 16.

23See Document of Consultation IV under the title “Christ’s Humanity .”

24Ibid. Tim Poirier, A Comparison of the Christology of Ellen G. White and Her Literary Sources, pp. 99-104. See also Ministry, December 1989.

25Henry Melvill, Sermons (New York: Stanford and Swords, 1844). See White Estate Consultation IV, pp. 105-115.

26poirier, p. 100.

27Ibid., p. 101.

28Ibid.

29Octavius Winslow, The Glory of the Redeemer (London: John Farquhar Shaw, 1855). Ellen White possessed this book in her personal library .

30Ibid., pp. 129, 132-134. Quoted by Poirier, pp. 101, 102.

31poirier, p. 102.

32Ellen G. White letter 191, 1899, in The Seventh-day Adventist Bible Commentary, Ellen G. White Comments, vol. 1, p. 1083. Quoted by Poirier, p. 103.

33Ellen G. White manuscript 57, 1890. Quoted by Poirier, p. 103. In several other con- texts Ellen White established the same contrast between the two Adams. See our chapter 3.

34Winslow. Quoted by Poirier, p. 102. (Italics supplied.)

35E. G. White manuscript 57, 1890. Quoted by Poirier, p. 103.

36Ellen G. White, The Desire of Ages, p. 117.

37_, Selected Messages, book 1, pp. 267, 268.

38D. A. Delafield, Ellen White in Europe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Pub. Assn.,1975).

39_, in Document of Consultation IV of the Ellen G. White Estate (typescript).

40Ibid., p. 130 (Ellen G. White manuscript 57, 1890).

41_, in Documen of Consultation IV.

42Ibid., p. 131.

43Ibid.

44Ibid., pp. 131, 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