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사라지지 않을 이슈: 여자 목사 안수
저자: 콜린 스텐디쉬 박사
이 문제는 1973년 9월, 오하이오주의 모헤이븐에서 있었던 야영회에서 시작되었다. “교회 안에서의 여자의 역할”에 대한 주재로 회의가 개최되었는데, 그 회의는 어떤 대총회 지도자들의 건의에 따라 당시 성경연구기관(Biblical Rearch Institute)의 지도자들의 주관 아래 개최되었다. 여자들에 대한 안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기회의 문을 열어준 것은 신학자들이었다. 모헤이븐 야영회에서 신학자들은 “성경은 목사로서의 직무를 위한 여자 안수에 대해서 지지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이 문제는 교회의 정책과 행정에 달린 일이다.”(재림신도의 증언, 1989년 가을, 42)라고 보고하였다.
여자 안수의 이슈에 대한 결론은 1973년 10월에 있었던 대총회 연례 회의의 회의 안건으로 상정되었다. 로버트 피얼슨 대총회장, 그리고 대총회장과 함께 당시 리뷰지의 편집국장으로서 강력한 부흥과 개혁을 이끌고자 애썼던 케넷 우드가 재임했을 당시에 이 이슈가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그때에는 이 문제가 그다지 시선을 끌지 못했었다. 그 이후 여자 안수에 관한 안건은 계속적으로 대총회의 연례회의에 등장했는데, 1990년 미국 인디애나폴리스에서 개최된 세계 대총회의 때에는 가장 이목을 집중시켰던 안건으로 부상했다.
1975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있었던 세계 대총회에 나는 대표자로 참석하였는데, 당시에는 여자 안수에 관한 미미한 움직임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1975년 대총회에 참석하기 얼마 전에 나는 여자 안수에 대한 논쟁에 가담하게 되었다. 대총회가 열리기 전에 한 위원회가 만들어져서 그들이 중요한 이슈에 대한 사전 검토작업을 하게 되는데, 당시 나는 대총회 본부에서 불과 1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콜롬비아 삼육대학의 대학장으로 재임하고 있음으로 인해서 그 위원회에 선임되었다. 그 위원회는 부대총회장의 지휘하에 있는 기구로서 다수의 교단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약간의 평신도를 포함해서 약 40-50명의 숫자로 구성되었다. 회의가 시작되자 위원회의 의장인 부대총회장은 약간의 서론을 이야기 한 후, 곧 본론으로 들어가서 위원회가 다루어야 할 4가지 이슈를 지적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여자 목사 안수에 대한 문제였다.
나는 나의 임무가 그 이슈와 관련되지 않기를 희망하였다. 그러나 나는 여자 안수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 소위원회에 들어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부대총회장은 내게 “콜린, 당신이 이 소위원회의 의장직을 맡아주어야 겠소”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여러 번 그 직책을 사양했지만 부대총회장은 강경하게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주님,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기도하던 그 때를 기억한다. 내가 그 의장직을 맡았을 때, 내게 약 12명의 연구 위원들이 할당되었다.
나는 이 문제는 오직 영감적인 권면들을 연구함으로서만이 안전하고 정확한 결과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는데, 그 때 위원회는 모두 나의 제안에 동의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소위원회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한 그룹은 성경이 여자 안수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를 연구하게 했고, 다른 한 그룹은 예언의 신이 권면하고 있는 바를 조사하게 하였다. 나는 예언의 신을 조사하도록 위임 받은 그룹에게 화잇 부인의 모든 글을 보관하고 있는 화잇 재단에 가서 그들의 협조를 받고, 찾을 수 있는 모든 문헌들을 함께 찾아 보도록 제의하였다. 당시에는 화잇부인의 글이 컴퓨터에 입력되지 않았을 때였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매우 많은 양의 일이 부과된 것이었다. 장시간의 연구조사 후에 우리는 다시 모였다.
성경을 연구하였던 사람들은 성경에는 여자 안수에 대한 아무런 증거도 없다고 결론지었고, 예언의 신을 조사한 사람들은 우리들 앞에 오직 한 문장을 내놓았다. “자신의 시간 중 일부를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고자 하는 여자들은 아픈 자를 방문하고 어린아이와 가난한 자들의 필요를 보살피는 일에 지정되어야 한다. 그들은 이 일을 위해서 기도와 손을 얹어 놓음으로써 따로 떼어놓음 받아야 한다.” 리뷰 앤 헤랄드, 1859년 7월 9일자.
이 글에서 “자기 시간 중의 일부를”이라는 말은 파트 타임(시간제) 봉사를 의미하며, 전 후 문맥으로 보아 평신도로서 어떻게 목사의 일을 도울 수 있는가를 언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글은 여자 목사로서의 안수를 설명하는 글이라고 결코 볼 수 없으며, “손을 얹어 놓음”이라는 표현이 항상 목사직을 위한 안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말은 오히려 자주 목사 안수와는 상관없이 병든 자에게 손을 얹어놓고 기도하는 것과 같은 행위를 의미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소위원회는 전체 위원회에게 여자 집사직을 위한 안수를 건의했다. 소위원회는 장노나 목사직을 위한 여자들의 안수를 지지하는 영감의 기록은 찾을 수 없다고 보고했다.
그와 같은 보고서가 서기에 의해서 위원회 앞에서 읽혀졌을 때, 전체 위원회의 의장인 부대총회장은 “그런 보고서를 읽으라고 당신을 위원회의 서기에 선임했던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강도 높은 단호함을 가지고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여자 장노직을 위한 안수를 해야 합니다.”
나는 우리가 세상에서 하는 관습을 따라가서는 안된다고 말했으며, 그것은 구약시대에 있었던 것으로, 남자 사제와 여자 사제를 안수하는 것은 중동에서 발생된 관습이라는 사실을 설명하였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주변 국가이었던 이집트와 가나안의 이방 종교에서 성행했었는데, 그들은 남성신과 여성 사제의 개념은 우주적인 힘의 균형을 이루는 것으로 믿었다. 여자 안수에 관한 신학은 완전히 이방 종교로부터 나온 것으로서 선과 악의 균형, 진리와 오류의 균형, 그리고 남성신과 여성 제사장의 균형을 믿은 이방인들의 관습이었다. 그러한 이교의 신학은 우주의 참 하나님께 저주와 혐오를 돌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총회의 목회부장이 “나는 여자 안수가 이교 사상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야 할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라는 말을 했을 때,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잠시 후에 여자 안수의 안건에 대한 투표가 실시되었다. 투표 결과에 대해서 나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나와 다른 한 사람을 제외한 위원회 전원이 여자 장노의 안수 문제를 계속해서 추진하는 데 동의했기 때문이다. 나의 소위원회가 불과 한 시간 전에 소위원회 전원이 성경적인 결론으로 동의했던 보고서의 내용은 어디로 가고, 나를 제외한 오직 한 사람만이 여자 안수에 대해서 반대했던 것이다. 그것도 아무 눈치 볼 필요도 없는 무기명 투표에서….
대총회의 두명의 고위 지도자들의 감정적인 말이 성경과 예언의 신이 증거하는 증언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투표가 끝난 그제서야 나는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라는 말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가장 실망시켰던 사실은 당시 대총회에서 가장 보수적이라고 손꼽히던 두 명의 지도자가 여자 장노 안수 문제를 비 성서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갔다는 사실이다. 그때의 사건과 일련의 일들은 여자 안수에 대한 이슈가 단순히 성경과 예언의 신에 대한 다른 각도의 이해가 아니라, 영감의 글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행습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 때 이후로 재림교회 안에서 여성해방주의(feminism:남녀 평등 주의, 여성 해방주의) 운동은 계속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나는 1990년 대총회 연례회의에 참석했는데, 그 때 회의 장소에서 남녀 동등 주의자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여자 안수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이슈에 대한 결정이 자신들의 십일금을 교단에 보내는 일을 결정하게 만들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한다. 바로 이러한 주장들이 지도자들로 하여금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일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영감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우리는 성경이 직접적으로 여자를 안수하는 일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의 직분을 남자에게 안수하셨다는 진리를 알고 있다. 남편이 가정의 머리인 것처럼, 남자가 교회의 회중들의 선천적인 지도자인 것이다.
“내가 너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둔 이유는 부족한 일을 바로잡고 나의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 하는 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딛 1:5,6.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고전11:3.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딤전 2:11-15.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창 3:16.
“창조하던 당시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아담과 동등하게 만드셨다. 그들이 하나님의 크신 율법에 일치되도록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었더라면 그들은 계속하여 피차에 일치됨을 유지하였을 것이나 죄악은 불화를 가져왔고 그리하여 이제는 다만 두 편 중에 어느 한편이 그 다른 편에 복종하는 방법으로만 그들의 연합과 조화는 유지될 수 있었다. 하와는 최초로 죄에 빠졌다. 그는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거역하고 자신의 배우자로부터 떠남으로 시험에 빠졌다. 아담의 범죄는 여인의 권유에 의한 것이었으며 그는 이제 남편의 지배 아래 있게 되었다.” 재림신도의 가정 영문, 115.
갈라디아 3장28절에서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니라”는 말씀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에게 다른 역할을 주셨다. 이 세상의 사회는 어머니에게 자녀를 돌보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처럼 보이는 일을 줌으로서 어머니의 역할을 빼앗아 갔고, 또한 저하시켰다. 남자가 가정의 머리라고 해서 여자들을 남자들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하와는 그의 에덴 고향에서 남편 곁에 있을 때 완전히 행복하였으나 불안한 현대의 하와들처럼 하나님께서 그를 위하여 정하였던 것보다도 더욱 높은 영역으로 들어간다는 희망으로 우쭐하게 되었다. 본래의 지위보다 높이 되기를 꾀함으로 그는 그보다 훨씬 아래로 떨어졌다. 하나님의 계획과 일치되는 그들의 일상 생활의 의무들을 즐거이 이행하고자 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그와 같은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다. ― 부조와 선지자 상권, 58, 59.” 재림신도의 가정 영문, 115.
영감의 말씀은 여자가 영적인 우두머리가 되는 것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지만, 수많은 말씀들이 여자들에게 의료선교와 영적인 봉사에 있어서 남자와 함께 교회를 도울 것을 호소하고 있다.
재림 교회 안에 들어온 여성 운동의 비극적인 침입에 대한 저항이 있었다. 1987년에 창간호를 낸 재림신도의 증언(Adventist Affirm)은 여자 안수를 그 책의 기본 이슈로 다루었다. 창간호에서 성경을 근거로 해서 여자 안수에 대한 중요한 문제들을 잘 다루었다.
1989년 가을에는 그 책의 전체적인 주제를 여자 안수로 정하여 여러 기사를 실었는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멀빈 맥스웰, 게할드 하셀, 로렐 뎀스팃, 레이몬드 홈즈 등이 매우 성경적인 글들을 실었다. 그 중에서 뎀스팃 자매가 우리의 마음을 염려케 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그녀는 자신의 보고서에서 잘못된 결정과 정책이 이루어 놓은 타협들을 서술하였다.
그중에서 치명적인 타협이 1990년에 개최된 대총회의 회기 중에 투표되었는데 그 내용은 여자는 안수를 받지 않지만 목회자들과 동일한 기능을 부여 받을 수 있으며, 남자 목사들과 동일한 역할, 즉 침례식, 봉헌식, 결혼식, 장례식 등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자들에게 안수를 하지 않는 이유는 여자가 목회자의 역할과 기능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성경이 가르치기 때문인데, 안수만 주지 않고 남자 목사들의 모든 기능과 역할을 여자들에게 부여할 수 있다고 결정한 것이다. 그 안건에 찬성의 표를 던진 대다수의 위원들을 순진하다고 표현해야 할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무지하다고 해야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여성 해방 운동가들은 여성 안수가 통과될 때까지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번 대총회 때에 이뤄진 결정으로 인해서, 그들은 그들의 최종 목표를 향하여 한 걸음 전진한 것이다.
여자들에게도 목사의 역할을 허락하라는 압력이 주어지자, 안수만 주지 않는 대신 모든 역할을 허락하였다. 우리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다음 단계는 여자들이 실제적으로 목사들과 동일한 역할과 기능을 하고 있으니 안수를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올라올 것이다. 아마도 대다수의 지도자들은 한가지 타협으로 인해서 다음 단계로 계속해서 올라올 여성 운동가들의 비성경적인 주장들을 예상하지 못한 듯 하다.
몇 년 전에 나는 당시의 대총회장이었던 닐 윌슨 목사님께 교회 안에서의 여성 운동에 대한 나의 염려와 예고의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를 쓰기 얼마 전에 나는 어떤 개신교회의 지도자가 쓴 기사를 읽게 되었는데, 그 기사에서 그는 동성 연애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안수를 주어야 한다는 압력과 싸우고 있는 교회의 입장을 옹호하였다. 그러나 개신교회에 동성 연애자들에 대한 이슈가 들어오기 몇 년 전에 여자 안수의 이슈가 있었다. 교회가 여자 안수 문제에 대해서 굴복하자 그 다음으로 들어 온 것은 동성 연애자에 대한 안수 문제였다. 현재 그 개신교회는 레즈비언(여성끼리의 동성 연애자)과 게이(남성끼리의 동성 연애자)의 목사 안수의 가능성에 대해서 권고를 받고 있는 실정에 있다.
나는 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나의 염려를 서술하였다. “본인은 예언가는 아니지만 역사를 연구한 학도로서, 여자 안수에 대한 전쟁은 결국 그것을 추진하는 자들이 교회 안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의 전쟁은 동성 연애자들에 대한 목사 안수 문제가 될 것입니다. 대총회장께서는 ‘절대 그럴리가 없습니다.’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본인은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입니다’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재림교회 안에 있는 흐름을 살펴본다면, 우리 교회는 항상 실패하지 않고 다른 개신교회의 조류를 뒤쫓아 왔던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20년 뒤떨어져서 그들의 뒤를 쫓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본인은 이 문제를 하나님께서 처리해 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문제의 줄을 잡아당겨야 합니다. 부분적으로만 진리 위에 서있는 것은 진실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신학적인 변론과 사회학적인 논쟁이 “주께서 가라사대”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여자 안수의 이슈가 흘러가고 있는 방향에 하나님의 말씀을 비추어야 합니다.
“세상의 각 분야에서 수많은 여자들이 완전한 목회자의 권위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재림 교회에서 울려나올 수 있는 소리가 아닙니다. 현 상황에서 그런 말이 신임 받아서는 안됩니다.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우리는 현재의 방향에서 돌이켜야만 합니다.” 닐 윌슨 대총회장에게 보낸 서신에서, 1988. 5. 30.
나는 지금도, 만일 여자 목사들의 안수가 허용된다면, 그 다음의 전쟁은 매우 활동적인 동성연애가들의 로비 활동이 재림교회 안에서 전개될 것을 확신한다. 그리하여 재림 신앙의 가운데로 자신들의 부류를 이끌고 들어오고자 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여자 안수 문제는 교회가 용납했을 지라도 동성 연애자들의 안수 문제는 어림없습니다.” 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을 생각해 보라. 그 당시 축제식 예배 형식이나 여자 안수의 문제를 생각할 수조차 있었는가? 개신교회보다 조금 늦게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지 언제나 그들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으로 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만이 이러한 국면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990년 대총회 이후 지금까지 발생된 일들을 요약해 보자. 지난 대총회에서 여자 안수는 부결되었지만, 북미 지회의 대표자들의 추진에 의해서 여자에게 남자 목사와 동일한 직무 수행을 허용하게 되었다. 사실에 있어서 미국의 교회들은 1990년 대총회가 개최되기 이전에 이미 여자들에게 목사로서의 직능을 부여해 왔다.
캘리포니아의 한 대회에서는 여자 목사의 안수를 실행하므로서 전면적인 반역의 조치를 취할뻔 했었다. 만일 태평양 연합회의 탐 모스털트 연합회장의 반대가 없었다면, 대총회의 부결 결정에도 불구하고 여자 목사의 안수는 그대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만일 그들의 결정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서 전면적인 반역을 한 것이다.
호소
이미 우리 교회는 너무 멀리 빗나가고 있다. 진리로부터 한 발자국 옆으로 놓으면, 그곳은 사단의 영역이다. 우리가 교회의 장로로서 여자를 안수할 때, 빗나간 방향은 더욱 굳어질 것이다. 우리가 여자에게 목사의 모든 기능을 허용하기로 동의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대적하는 입장에 놓은 것이다. 만일 교회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부하신 비젼과 사업을 다시 붙잡고자 한다면 모든 발걸음의 방향을 하늘의 원칙대로 돌이켜야 한다.
남태평양지회와 북미지회가 이 문제에 대해서 교인들을 무감각하게 만들고 여자들에 관한 안건을 추진하는 일을 즉각 중지해야 한다. 만일 지도자들이 이 문제에 관해서 영적인 통찰력이 없고, 대항하여 일어설 만큼 곧바르지 못하다면, 평신도들은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되”를 따르는 지도자들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도덕적으로 겉잡을 수 없는 일련의 행습들이 교회 안으로 밀려들어 올 것이다. 주의 종은 마지막 오메가 배도는 가장 놀라운 성격을 뛸 것이라고 지적하셨다.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것은 배도의 일부분이다. 화잇 부인은 진리가 파손될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지적하셨다. 우리는 지금 은혜의 시기의 끝으로 접근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 모두를 향한 부르심은 지금 우리의 입장과 선택을 분명히 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때이다.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따라가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재림을 우리의 눈으로 목도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