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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덴스인의 타협과 최후

저자: 편집실

    “왈덴스인들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결정적인 태도로 로마교의 타락에 저항하였다. 오래 동안 계속된 박해로 인하여 더러는 신앙적인 타협을 하여 그 분명한 원칙을 차츰 버렸지만,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진리에 더욱 굳게 섰다. 암흑과 배교의 전 기간을 통하여 로마교의 최상권을 부인하고 우상숭배의 망령된 일을 거부하고 참 안식일을 지킨 소수의 왈덴스 교도들이 남아있었다.” 대쟁투, 103.
    증언의 말씀은 오래 동안 계속되는 로마교의 박해로 인해서 왈덴스인들 사이에 두 무리가 형성됨을 보여준다. 한 무리는 타협을 했고, 다른 무리는 끝까지 진리를 고수했다.

    왈덴스인들의 타협?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왈덴스인들을 연상할 때에 우리는 대개 그들의 끈질긴 인내와 순결한 신앙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사실 역사는 그들이 약 천년 이상을 로마교회의 권위와 잘못된 가르침을 부인하면서 알프스 산속 깊은 곳에서 살아왔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천년이라는 길고 긴 세월을 지나면서 그들은 로마교회와의 지루하고 긴 전쟁으로 지쳤으며, 궁핍과 시련으로 피로해졌고, 로마교회의 계속되는 냉대와 무시는 그들로 하여금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끼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로마교회의 인정과 많은 교인들과의 교제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로마 천주교회는 왈덴스인들에게 매우 회유적인 방법으로 접근했는데, 그 내용은 왈덴스인들에게 예배의 자유를 허락해주는 대신에 그들의 지도자들을 로마의 손으로 넘겨달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고민과 고통은 얼마나 컸겠는가? 그러나 결국 그들은 그들의 지도자들을 로마에게 넘기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그들의 그러한 결정을 타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비록 그들이 그들의 지도자들은 잃어버리지만 그들은 로마가 보장하는 평화와 안전 속에서 그들의 개인적인 신앙을 계속 고수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 이 얼마나 무서운 자기기만인가! 그들의 그러한 첫번째 타협 이후, 그들의 예상과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그들의 영성은 쇠약해지기 시작했으며 결국에는 그들에게서 아무런 신앙적 순결함을 찾지 못할 정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왈덴스인들이 사는 마을을 찾아가면 그들의 후예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그들의 예배는 냉랭하고 세상 교회와 전혀 다를 것이 없다고 한다. 왈덴스 후예들의 이러한 영적인 무력감과 쇠퇴함은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역사는 반복된다.” 16세기에 있었던 왈덴스인들의 타협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왈덴스인들에게 진리의 고수와 전승이라는 막중한 사명을 주셨으며 동시에 그러한 사명을 감당할 때 따르는 시련, 고통, 궁핍, 외로움 등도 허락하셨다. 천년 동안 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잘 이해하고 받들면서 살았다. 그러나 천년이 지나면서 그들이 지치고 외로워졌을 때, 그들 가운데에 이상한 영적인 혼돈이 생기게 되었다.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섭리로서 주어진 시련과 고통과 외로움을 이해하는데 실패했으며 그 결과로 그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인간의 꾀로 대치하게 되었다. 그들은 로마와 종교평화조약(?)을 맺음으로써 그들을 괴롭혔던 불필요한(?) 핍박과 박해로부터 해방되어서 좀더 안정된 분위기하에서 진리를 고수하며 나아가서는 로마인들에게 전도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을 희망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지도자를 잃어버릴지라도 로마와 손잡기로 결정하는 영적 혼돈 속으로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왈덴스인들에게 진리를 주셨고 또한 진리를 고수하기 위한 영적인 능력을 유지케 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고생과 궁핍과 외로움과 같은 쓰라린 경험을 허락하셨는데, 왈덴스인들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 중 진리만을 받아들이고 진리의 뒤에 따르게 되는 원치 않는 경험은 버렸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인간의 얄팍한 꾀이다. 역사를 통해 볼 때, 진리 특히 개혁의 기별에는 반드시 배척과 고통과 시련이 따른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가정과 교회에서 전하고 선포하는 진리로 인해서 받게 되는 쓰라린 경험들에 의해서 우리는 너무나 자주, 너무나 쉽게 당황하고 좌절하지는 않고 있는가? 만일 우리 중에 누가 개혁의 기별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기를 원한다면, 고통과 시련도 함께 받을 것을 기대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20세기의 왈덴스인들이 될 것을 소원하고 있다. 20세기의 왈덴스인들은 16세기의 왈덴스인들이 범했던 그러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된다. 예수께서 오시는 그날까지 진리와 개혁의 기별을 고수하고 전파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음의 세가지를 가슴속 깊이 간직해야 된다고 믿는다:

1. 우리는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생애를 살아야 한다. 매일 우리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전투에서 승리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마음 속의 투쟁과 시험에서 계속적인 승리의 경험을 쟁취하지 못한다면, 결국 우리는 교회 안에 들어온 배도와 세속과의 큰 전쟁에 대한 회의와 의심을 품게 되어 타협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 속에서 정복되지 않은 이기심, 불평, 불만, 시기, 질투, 게으름, 안일하고자 하는 정신 등이 우리의 영적인 분별력과 판단력을 흐리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2. 우리는 진리를 받음과 동시에 고난과 시련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하자. 그래서 진리는 고수하지만 핍박과 고립과 외로움은 피하겠다는 인간적인 꾀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주의하자.

3. 자기희생적인 그리스도의 봉사의 길을 뒤따르자.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인류의 구원과 봉사를 위하여 종으로서 오신 것처럼 우리도 가난하고 병든 이웃과 형제를 위하여 자원하여 종이 될 것을 선택하도록 하자. 그리하여 이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라고 명하신 그리스도의 명령을 대기하며 기다리는 주님의 일꾼이 되자.

    2003년을 맞이하면서 독자들은 어떤 사람이 될 것을 계획하고 있는가? 지금 걷고 있는 길의 끝은 하늘인가? 혹은 세상과 사람이 주는 허무한 안전감인가? 금년에도 우리 모두를 하늘가는 정로의 계단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하늘 아버지께 간구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