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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의 날과 일요일 휴업령

저자: 생애의 빛 (1989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재림 교회가 가지고 있는 진리와 기별을 교회 안과 세상에 전파하기 위하여 출판 사업과 테입과 T.V 방송을 해오고 있는 자영 선교 기관)

    성경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미리 알려주시지 아니하시고는 아무 일도 행하시는 것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외우고 있는 다음의 성경 절을 읽어 보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아모스 3:7).

참으로 그러하다. 우리는 이 지구 역사상 가장 밝고 많은 양의 빛을 받은 백성들이다. 우리들이 현 시대의 징조에 대하여 알지 못하여 졸고 있다면 전혀 핑계 할 수 없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다 하나님의 예언을 이해하거나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직 자기를 죄로부터 정결케 하며 성령의 지혜를 가진 자들만 예언에 관심을 가지며 또한 이해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다음의 다니엘서에 있는 말씀이 우리에게 그 사실을 말하여 주고 있다.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내가 가로되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삽나이까 그가 가로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대저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일천 이백 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기다려서 일천 삼백 삼십 오 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 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 (단 12:10-13).

마지막 날 사건의 예언들을 이해하는 자들이 따로 있다. 우리 주위에서 현재 중요한 예언들이 성취되어 가고 있는 와중에도 영원한 일들에 관해 관심이 없는 재림 교인들은 여전히 세상 일에 빠져서 시집가고 장가들며 집을 짓고 돈을 버는 일에만 치중하고 있다. 1844년도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예수님께서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조사심판을 시작하셨다는 놀라운 대속죄일에 관한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그리스도인들은 아주 극소수였다. 아직까지도 2300 주야 예언 속에 들어 있는 그 의미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재림교인들이 허다하다. 다니엘은 자기가 할 일을 한 후에 쉬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이 나중에 자기가 한 일의 업을 누리게 될 것이니 지금은 쉬라고 말씀하시었다. 그는 자기가 감당한 몫에 대한 보상을 마지막에 가서 얻을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 자신도 채 이해하지 못한 채 잠을 자고 있는 바로 그 예언을 이해하고 그 예언들의 성취를 보고 깨달으며, 세상에 나아가 외칠 자들이 마지막 시대에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정결의 경험을 하는, 그래서 예수의 믿음을 가지고 계명을 지키는 경험을 하는 자들이다.

지금 미국에서는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미국 사회의 타락한 도덕을 십계명의 표준으로 되 돌려야 한다는 보수주의 성향의 기독교인들의 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최근 미국 캔사스 주 의회에서는 공립 학교에서 창조설을 가르치라는 의제를 표결하였다. 그리고 죠지아 주 의회에서는 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쳐도 좋다고 인정하였다. 현재 미국 복음주의 파들은 공공 장소에 십계명을 새긴 돌비들을 부착하자는 주장으로 사회를 떠들석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는 마침내 올해 5월 7일을 십계명의 날로 제정하고 와싱톤 디씨 국회 의사당 앞에 모여 큰 시위를 벌이기로 결정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미리 말씀해 주시지 않으신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다음의 영감의 말씀을 읽어 보자.

“오늘날 미국에서는 교회의 제도와 관습에 있어서 국가의 지지를 받으려는 운동이 진행되고 있는바, 그것은 개신교가 로마교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는 일이다. 그뿐 아니라 개신교도들은 로마교가 유럽에서 잃어버린 최상권을 개신교 미국에서 회복하도록 문을 열어 주고 있다. 그리고 이 운동에 더욱 큰 의미를 주는 것은 일요일 준수, 곧 로마교가 만들어서 그의 권위의 표라고 주장하는 관습의 강요를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는 사실이다. 오늘날 개신교회들에 침투되어 그들로 하여금 일찍이 로마교가 그들 앞에서 한 그대로 일요일을 존중하는 동일한 일을 하게 하는 것은 로마교의 정신, 곧 세속적 관습과 일치되고, 하나님의 계명보다 사람의 유전을 존중하는 정신이다.
미구에 전개될 투쟁에 있어서 어떤 기관들이 이용될 것인지 이해하려면 로마교가 그와 동일한 목적을 위하여 과거에 어떤 수단을 이용했는지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된다. 법왕교와 개신교가 연합하여 그들의 교리를 반대하는 자들을 어떻게 취급할 것인지 알고자 하면 로마교가 안식일과 안식일 옹호자들에 대하여 나타냈던 정신을 알아보아야 한다” (대쟁투, 573).

일요일 휴업령을 만들려고 시도하는 세력은 이미 사회의 관습이 되어버린 휴일제도인 일요일에 시민들을 쉬게 하자는 제의를 아주 쉽게 달성 할 수 가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국가의 헌법의 지지를 받아 강요하는 일만 하면 되는 것이다. 옛날 콘스탄틴 황제 때에 내린 일요일 휴업령도 그 당시 이교도들의 휴일이었던 일요일을 쉬게 하는 법령을 내림으로 아주 손 쉽게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였다. 옛날의 헌법은 국가의 왕이나 황제의 명령이었다. 또한 일요일 법령이 내린 이후에 거짓 소문들이 퍼지기 시작하였다. 일요일에 떡 방앗간에서 일하던 한 사람이 그 반죽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보았다는 등의 괴 소문들이 퍼지며 일요일을 지키게 하는 일에 박차를 가하게 해 주었고, 더 나아가서는 죽은 영들이 꿈에 나타나 일요일을 신성시 해야 한다는 이상한 거짓 기적들도 꼬리를 물면서 발생하면서 일요일 휴업령은 성공을 거두었던 것이다. 대쟁투 책은 그러한 일들이 우리 시대에도 반복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사단은 두 큰 오류, 영혼 불멸설과 일요일 신성설을 통하여 사람들을 그의 기만 아래 들어오게 할 것이다. 영혼 불멸설은 강신술의 기초가 되고 일요일 신성설은 로마교회에 대한 공명심을 일으킨다. 미국의 개신교도들은 솔선하여 강신술과 손을 잡기 위하여 심연(深淵)을 넘어 그들의 손을 내밀고 또 그들은 큰 구렁텅이를 넘어서 로마교회의 세력과 악수하기 위하여 손을 뻗칠 것이다. 그와 같은 삼중 연합의 세력 아래 이 나라는 양심의 권리를 유린하는 일에 로마의 발차취를 따르게 될 것이다.

강신술이 오늘날의 유명 무실한 그리스도교를 더욱 잘 모방하면 할 수록 그는 더욱 큰 기만과 유혹의 세력을 갖게 된다. 사단은 현대의 감각에 맞추어서 스스로 변장한다. 그는 빛나는 천사의 모양으로 나타날 것이다. 강신술의 매개체를 통하여 이적들이 행해지고 병 고침을 받게 되고 부인할 수 없는 많은 기사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그 영들은 성경을 믿는 그들의 믿음을 고백하고 교회의 제도들에 대한 존중심을 표명할 것이므로 그들의 활동은 마치 하나님의 능력의 표현처럼 인정될 것이다.

오늘날의 소위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과 불신자들과의 한계를 거의 구별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교회의 교인들은 세상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있고 그들과 연합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사단은 그들을 하나의 단체로 연합시켜 강신술의 대열에 쓸어 넣음으로써 그의 사업을 강화시키고자 결심하고 있다. 이적이 참 교회의 분명한 표라고 자랑하는 법왕교도들은 이적을 행하는 이 능력에 쉽게 기만당할 것이며 진리의 방패를 버린 개신교도들 역시 미혹당할 것이다. 법왕 교도들과 개신교도들과 세속인들은 한결같이 경건의 능은 버리고 경건의 모양만 받아들일 것이다. 그들은 이 연합을 온 세계를 교화시키는 큰 운동이요, 오랫동안 고대했던 복천년을 도래케 하는 운동이라고 볼 것이다.

사단은 강신술을 통하여 인류에게 은혜를 베푸는 자처럼 나타나서 사람들의 질병을 고쳐 주고 새롭고 더욱 고상한 종교적 신앙을 제시해 주는 것처럼 공언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파괴자로서 활동하게 된다. 그의 유혹은 무수한 무리를 멸망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부절제는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켜 버리고 방종과 투쟁과 유혈이 따르게 된다. 사단은 전쟁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전쟁은 사람의 가장 악한 감정을 자극하며 전쟁의 희생자들을 죄악과 유혈 속으로 영원히 쓸어넣어 버리기 때문이다. 나라가 다른 나라를 대적하여 싸우도록 자극하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다. 그렇게 함으로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날에 설 준비를 갖추는 사업에서 떠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구에 하늘에는 이적을 행하는 마귀의 능력을 알려 주는 증거로서 초자연적인 무서운 광경이 나타날 것이다. 마귀의 영은 땅의 왕들과 온 세상 사람들에게 나아가서 속임수로 그들을 얽어매어 하늘 정부를 대적하는 그의 마지막 투쟁에 사단과 연합하도록 그들을 강요할 것이다. 그 악한 영들로 말미암아 통치자들과 백성들은 다 같이 속을 것이다. 사람들이 일어나서 그리스도라고 자칭할 것이며 구주께 속한 칭호와 예배를 요구할 것이다. 그들은 병을 고치는 놀라운 이적을 행하고 성경의 증거와 반대되는 계시를 하늘로부터 받았노라고 공언할 것이다” (대쟁투, 588, 623).

교회 증언 5권에 있는 말씀을 읽어 보자.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하여 내리게 될 조서는 에스더 시대에 유대인에 대하여 아하수에로가 내린 조서와 매우 유사할 것이다. 페르시아의 칙령은 모르드개에 대한 하만의 적의에서 생겼다. 모르드개는 그를 해치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께만 속하는 경외심을 그에게 보여 주기를 거절했다. 유대인에 대한 왕의 결정은 그 독특한 백성에 대한 오전(誤傳)을 통한 거짓 구실 아래 이루어졌다. 사단은 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보존한 자들을 세상에서 제거해 버리기 위하여 그 계략을 획책했다…

지나간 시대에 성실한 자들에 대하여 모략을 꾸민 똑같은 능숙한 마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율법을 순종하는 자들을 지상에서 제거해 버리기 위하여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 사단은, 양심적으로 인기 있는 관습과 전통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겸손한 소수에 대하여 분노할 것이다…

인기와 후원을 얻기 위하여 입법자들은 일요일 법령을 제정하라는 요구에 굴복할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십계명의 조항들을 깨뜨리는 제도를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싸움터에서 진리와 오류간의 대쟁투의 마지막 큰 싸움이 전개된다. 그런데 우리는 그 싸움의 결과에 대하여 확실히 모르도록 버려져 있지 않다. 모르드개의 시대에서처럼 이제 주님께서는 그분의 진리와 그분의 백성들을 옹호하실 것이다…

로마 군대의 접근이 제자들에게 있어서 임박한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징조가 되었던 것처럼 이 배교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의 한계가 이르렀고, 우리 나라의 죄악의 잔이 찼고, 자비의 천사가 바야흐로 날아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징조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때에 선지자들이 야곱의 환난의 때로 묘사한 그 고통과 난관의 장면으로 돌입할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일을 하고 계신다. 온 하늘은 움직이고 있다. 온 땅의 재판장께서는 미구에 일어나셔서 그분의 모욕당한 권위를 옹호하실 것이다. 구원의 표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의 율법을 존중하는 자들과 짐승의 표나 그의 우상을 거절하는 자들에게 찍혀 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을 보여 주시므로 그분의 백성들이 반대와 분노의 폭풍을 대항하여 설 준비를 갖출 수 있게 하신다. 그들 앞에 놓여 있는 사건들에 대하여 경고를 받은 자들은 다가오는 폭풍을 조용히 기다리면서 주님께서 환난의 날에 그분의 성실한 백성들을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게으르게 기다림으로써가 아니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열렬히 활동함으로 주님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처럼 되어야 한다. 지금은 우리의 마음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얽히도록 허용할 때가 아니다. 사람들이 자고 있는 동안, 사단은 주님의 백성들이 자비나 공의를 입지 못하도록 일들을 그렇게 추진하고 있다. 일요일 운동은, 오늘날 암암리에 그 길을 마련하고 있다. 지도자들은 문제의 진상을 숨기고 있으며, 그 운동에 연합하는 많은 사람들은 저류(低流)가 어디로 향해 흐르고 있는지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그 공언은 부드럽고 그리스도인답게 보이지만 그것을 말할 때는 용의 정신이 나타날 것이다. 그 무서운 위험을 피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여 일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는 사람들은 그들 앞에 중요한 사업이 있다. 지금은 우리의 능력의 팔을 붙들 때이다. 다윗의 기도는 목사들과 평신도들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 “저희가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의 일하실 때니이다”(시 119:126). 주님의 종들은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며,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으로 욕되게 하여 열국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욜 2:17)라고 부르짖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멸망을 피할 희망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일 때, 그들의 가장 심한 곤경에서 언제나 그분의 백성을 위하여 역사하셨다…

기도는 전능하신 분의 팔을 움직인다. 하늘에서 별들을 질서 있게 움직이게 하시는 분, 말씀으로 큰 깊음의 물결을 제어하시는 분, 그 동일한 창조주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이 믿음으로 부르짖기만 하면 그들을 위하여 역사하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경고가 세상에 주어져서 그 경고에 유의하는 모든 사람들이 싸움을 위하여 준비될 때까지 흑암의 세력을 제어하실 것이다.

시편 기자는, “진실로 사람의 노는 장차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는 주께서 금하시리이다”(시 76:10)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시험하는 진리가 모욕을 통해서 일지라도 앞에 제시되어 검토와 논의의 대상이 되도록 의도하신다. 사람들의 마음은 동요되어야 한다. 모든 투쟁과 모든 비방과, 모든 중상은 의문을 일으키고 달리는 깨울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깨우는 하나님의 수단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의 과거의 역사에서도 그러했다. 느부갓네살이 세운 큰 금신상에 경배하기를 거절하므로 세 히브리인들은 불타는 풀무 속에 던져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종들을 불꽃 속에서 보호하셨고, 우상숭배를 강요하기 위한 시도는 참 하나님을 알려 주는 지식을 모인 방백들과 넓은 바벨론 나라의 위대한 사람들 앞에 제시해 주는 결과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율법의 보존자로 삼으신 백성은 그들의 빛이 숨기어지도록 해서는 안 된다. 진리는 지상의 어두운 곳들에서 선포되어야 한다. 장애들을 대항하여 극복해야 한다. 큰 사업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 사업은 진리를 아는 자들에게 위탁되었다. 그들은 지금 도움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과 더불어 크게 화목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들의 마음 속에서 빛을 발하여야 한다. 그리스도의 영이 그들에게 부어져야 하고, 그들은 심판에 설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그들이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고 있는 동안, 하나의 설득력 있는 능력이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제시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에 따를 것이며, 그 빛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접근할 길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는 사단의 마술에 걸린 땅에서 더 이상 자지 말고, 우리의 모든 자원을 일깨우고 하나님의 섭리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재능을 이용해야 한다” (5T, 450-452, 다가오는 위기).

5월 7일 – 십계명의 날

미국의 복음주의 파 기독교인들이 우리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한가지 일을 최근에 행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우리의 뒤통수를 친 일인데, 십계명을 기념하자는 “십계명의 날”을 제정한 일이다. 미국의 사회의 도덕을 개선하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막자는 의도에서 기인된 운동으로서 마치 대쟁투 책에 기록된 장면들을 영화의 한편처럼 직접 눈으로 보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런데 흥미 있는 일은 하나님의 계명 중 하나를 로마 교회의 제시에 따라 변경하여 지켜오는 개신교회는 성경의 권위와 하나님의 계명의 권위를 지킬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계명을 폐하는 일에 있어서 천주교회를 따라 왔는데, 성경의 진리에 대한 서로의 차이들은 제쳐 놓고 연합하자는 천주교회의 제의에 어떻게 대항할 수 있단 말인가?

십계명의 날! 정말로 기가 막힌 아이디어다. 누가 감히 그 좋은 제안에 반대 할 수 있겠는가?

미국의 도덕의 타락과 낙태의 죄와, 십계명을 공공 장소에 걸지 못하게 하는 자유주의자들을 향한 미국 복음주의 파 기독교인들의 반기를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국가를 위한 이 경건한 도덕 운동을 누가 감히 정죄 할 것인가? 개신교회와 천주교인들이 연합한 이 운동에 유대교회도 감히 반대하지 못하고 연합하였다. 미국의 유명한 모든 목사들이 다 연합되어 있는데 어떻게 평신도들이 반대 할 수 있겠는가? 물론 십계명을 지키게 하자는 데는 하자가 없다. 너무나 당연하고 옳은 말씀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운동의 목표가 하나님의 계명을 폐하는 일을 국가적으로 만들려고 하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안식일을 바꾼 사람들이 헌법의 힘으로 넷 째 계명을 범 국민적으로 바꾸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그들은 십계명의 정신을 심어주기 위하여 어떤 외형적인 표와 수단을 만들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외형적인 수단이란 십계명을 공공 장소에 거는 것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안식일로 불리워지고 있는 일요일에 모든 국민을 쉬게 하자는 일요일 휴업령이 되는 것이다.

대쟁투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종교 지도자들의 가르침이 불신에 대하여, 강신술에 대하여, 그리고 하나심의 거룩한 율법을 멸시하는 일에 대하여 문을 열어 놓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계에 있는 죄악에 대한 무서운 책임이 지도자들에게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부류에 속한 사람들은 급속히 퍼져가는 타락적 풍조가 소위 “그리스도인 안식일”(일요일을 가리킴)을 모독하는 데서 기인된다는 것과 일요일 준수를 강요함으로 사회의 도덕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참된 안식일의 교리가 가장 널리 전파된 미국에서 특별히 강조된다. 미국에서는 도덕적 개혁 운동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중요한 운동 중 하나인 금주 운동이 흔히 일요일 휴업 운동과 병행해서 이루어지며 또한 일요일 휴업 운동자들은 그들 사회의 가장 큰 복리를 촉진시키기 위하여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스스로 자처한다. 그리고 그들과 연합하기를 거절하는 자들은 마치 금주와 개혁 운동의 원수처럼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오류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어떤 운동이, 본질적으로 선량한 어떤 다른 운동과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오류를 좋은 것으로 만들어 준다는 이론은 성립될 수 없다. 우리가 독소를 건전한 음식물에 혼합시킴으로 그 정체를 가장할 수는 있을지라도 그 독성 자체를 변하게 할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그 독성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그만큼 위험은 더욱 심하다. 거짓 것과 혼합시켜 그것을 참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사단의 계책이다. 일요일 휴업 운동의 지도자들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개혁 사업과 성경과 일치되는 원칙들을 강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기에 하나님의 율법과 반대되는 요구가 포함되어 있을 것 같으면 하나님의 종들은 그들과 연합할 수 없다. 사람의 계몽을 위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제외하는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대쟁투, 587,588).

위의 말씀 중에 금주 운동이 일요일 휴업령과 함께 병행되어 개혁 운동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는데, 금주 운동은 1888년도를 전후로 생겨난 일요일 휴업령 운동 당시에 미국에 있었던 도덕 개혁 운동이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을 뒤 흔들고 있는 도덕 개혁 운동은 낙태 금지 법안이다. 미국의 기독교인들은 미국 국민들이 수많은 애기들을 낙태를 통해 죽임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이 나라에 임하게 하고 있다고 소리치며 도덕 개혁 운동의 일환으로 낙태 금지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려고 힘쓰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시대에는 금주 운동을 대치하여 바로 이 낙태 금지법 운동이 일요일 휴업령에 박차를 가해 주고 있는 것이다.

마라나타에 있는 말씀을 읽어 보자.

“사람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나감에 따라 사단이 불순종의 자녀들을 지배하도록 허락 되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파멸을 쏟아 놓는다. 바다와 육지에서는 재난이 일어난다. 재산과 인명이 화재와 홍수로 파멸된다. 사단은 자기가 세운 우상에게 절하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에게 재난에 대한 책임을 지우기로 결심한다. 사단의 대리자들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도들을 그 재난을 초래한 사람들로 지적한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사람들은 법을 무시하고 있다. 그들은 일요일 신성성을 더럽힌다. 만일 그들이 일요일 준수를 위한 법령에 복종하도록 강요된다면 이 무서운 심판이 그칠 것이다.’

재난들, 가장 두렵고 가장 예측하지 못했던 재난들이 일어날 것인데, 이들 파멸은 꼬리를 물고 일어 날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주신 경고에 유의하고 교회들이 회개하고 돌이켜 충성한다면 다른 도시들은 얼마 동안 그런 재난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만을 당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고 사람들 앞에 거짓을 나타냄으로 여전히 같은 행위를 계속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분별력을 깨우치시기 위하여 재난을 당하도록 하실 것이다.

심판은 사람들의 죄악과 그들이 받은 빛에 따라 내려질 것이다. 만일 그들이 진리를 갖고 있다면 그 빛에 따라서 심판은 내려질 것이다.
사단은 이러한 일들에 대하여 해석할 때 과거에 그러했던 것처럼 그들(지도자)로 하여금 땅에 가득한 재난들은 일요일을 범한 결과라고 생각하도록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유력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시킬 길을 생각하면서 일요일 준수를 강요하는 법령을 제정한다. 그들은 가짜 안식일인 일요일 법령에 대한 복종을 강요하고, 거짓 안식일을 더욱 높임으로, 하나님의 사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에덴에서 시작된 안식일을 짓밟고 있기 때문에 실상은 자신들이 불충성한 사람들이면서도 참된 안식일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 불충성하는 사람들로 간주한다” (마라나타, 176).

십계명의 날을 5월 7일로 제정한 이유는 오순절과 가장 가까운 일요일이기 때문인데, 오순절은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받은 날이기도 하다. 첫 번째 기념일은 미국에서 거행하지마는 이제 곧 세계적인 십계명의 날을 선포하겠다고 그들은 포부를 밝히고 있다.

십계명의 날을 선포하는 목적을 주최측은 다음과 같이 발표하고 있다.

십계명의 날의 목표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십계명 속에 들어 있는 원칙들과 법칙들, 그리고 그 내용들의 최고적인 권위를 회복하기 위하여.
2. 십계명 가운데서 발견되는 가치관에 우리의 굴복과 헌신을 나타내는 상징을 제공하기 위하여.
3. 법을 어기는 일 없이 평화적으로 사회의 모든 전반에 걸쳐서 하나님의 말씀을 회복하게 만드는 하나의 구조 장치를 만들
어 내기 위하여.
4. 최고의 권위인 하나님의 우주적인 계명에 충성하는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그들의 견해를 나타내는 기회를 주기 위하여.

우리는 지금 해야 할 사업이 있다. 밖으로는 진리를 전하며 안으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깨우는 일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내적으로는 다가오는 환란을 위하여 준비하는 일에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겠다.

다음의 성경절들을 잘 음미하여 보자. 계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하여 다시 재 음미해 볼 때가 되었다.

시편 119:123-127
“내 눈이 주의 구원과 주의 의로운 말씀을 사모하기에 피곤하니이다 주의 인자하신 대로 주의 종에게 행하사 주의 율례로 내게 가르치소서 나는 주의 종이오니 깨닫게 하사 주의 증거를 알게 하소서 저희가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의 일하실 때니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을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시편 119:147,148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계명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

시편 119:10,11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계명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끝으로, 하나님의 종은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는 재림교인들의 준비는 다음과 같은 경험이 되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대쟁투에 있는 다음의 말씀을 잘 음미하며 읽어 보도록 하자.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의 때가 곧 우리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경험하고 있지 못한 경험 즉 사람들이 얻기를 너무도 게을리하고 있는 한 가지 경험을 얻어야 할 필요가 있다. 예상했던 것보다 실제로 당하는 환난이 가벼운 것이 상례이지만 우리 앞에 있는 위기는 그렇지 않다. 가장 자세하게 묘사하여도 그 시련의 크기를 여실하게 표현할 수 없다. 그 환난의 때에 각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겔 14:20).

우리의 대제사장께서 우리를 위하여 속죄하고 계시는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여지고자 노력해야 한다. 우리 구주께서는 비록 생각으로라도 유혹의 힘에 굴복 당하지 않으셨다. 사단은 사람의 마음 가운데 그가 발을 붙일 어떤 곳이 있는지 찾는다. 그러던 중 어떤 죄된 욕망을 품게 되면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유혹의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요 14:30)라고 친히 말씀하셨다. 사단은 하나님의 아들에게 승리를 얻을 수 있는 길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셨다. 그러므로 그분에게는 사단이 이용할 수 있는 죄가 전혀 없었다. 그것은 환난의 때에 서게 될 사람들에게 반드시 나타나야 할 상태이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죄와 분리되어야 한다. 우리의 귀하신 구주께서는 우리 자신을 당신께 연합시키도록 초청하시되 우리의 연약함을 당신의 능력에, 우리의 무지를 당신의 지혜에, 우리의 무가치함을 당신의 공로에 연합시키기를 간청하신다. 하나님의 섭리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경험들은 우리가 마땅히 배워야 할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가르쳐 주는 학교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앞에 더욱 안이하고 즐거워 보이는 길, 곧 우리가 택하기를 좋아할 그런 길이 아니라 생애의 진정한 목적이 되는 길을 제시해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품성을 그 거룩하신 모본을 따라 이루는 사업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대리자들과 협력하는 일이 우리에게 부과되어 있다. 이 일을 게을리하거나 지연시키는 자들은 누구나 그들의 영혼을 가장 무서운 위험에 빠뜨릴 수밖에 없다.

사도 요한은 계시 중에 하늘에서 큰 음성으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 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계 12:12)고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하늘의 음성으로 이와 같이 크게 부르짖는 장면은 얼마나 두려운가. 사단의 분노는 그의 시간이 단축되어 감에 따라 격렬해진다. 그리하여 그의 기만과 파괴 행위는 환난의 때에 그 절정에 이를 것이다” (대쟁투, 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