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따라 가는 자들
저자: J.B.
“의인의 길은 빛나는 빛같이 점점 더 빛나 대낮에 이르거니와 악인의 길은 암흑과 같아서 사람이 무엇에 걸려 넘어지는지도 알지 못하느니라.” 잠언 4:18,19. 이 성경절이 의인의 방(room)이라고 쓰지 않고 의인의 길(path)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주목해 봅시다. 그리스도인은 그저 방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길을 걷는 것입니다. 우리가 길을 계속해서 걷는다면, 빛은 점점 더 밝아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해서 빛을 따라서 길을 걸어나가지 않는다면, 빛은 점점 더 어두워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빛은 항상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성경은 현대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어떤 가르침은 과거의 한 시대에만 적용되어 다른 시대에는 설교하고 가르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진리들은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고 영속적이지만, 어떤 것들은 오늘날을 위한 진리입니다. 오늘날을 위한 현대 진리는 무엇입니까?
오늘날의 우리들은 과거 그리스도 시대의 유대인들과 유사한 상황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메시야를 준비하기 위하여 가르침 받았던 것들을 통하여 메시야를 거절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그들은 일련의 표준과 규범을 만들었는데, 만일 그리스도께서 메시야로 인정 받으시려면, 그분도 그들이 세워놓은 표준과 틀을 만족시켜야 되었습니다. 그런데 매우 흥미로운 것은 그들의 메시야에 대한 기대가 구약 성경을 기준으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메시야를 거절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나오는 예언의 역사를 연구해 보면, 거의 모든 예언이 정확한 시간에 성취되었지만 당시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기대하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성취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두 번째 오심을 위해 준비한다고 공언하는 재림교인들은 화잇 부인의 다음과 같은 증언을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지금 진리를 믿는다고 공언하는 사람들 중 오직 적은 숫자만이 진리에 의해서 성화되어 구원 받을 것입니다.” 교회 증언, 1권 608. 대다수의 재림교인들은 교회로부터 재림 준비를 위한 가르침을 받고 있지만 그들은 그들이 지금 배우고 있는 가르침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을 지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속으로 마지막 기별이 들어올 때, 교회는 그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틀에 그 기별과 기별자를 맞추어 본 후, 그 틀에 맞지 않는 모든 것들을 거절하기로 결정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영적인 빛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으며, 그 빛을 따라서 계속해서 걷지 않는 사람들은 어두움에 속한 자라는 개념은 오늘날 우리를 혼돈 시키고 있는 여러 가지 영적인 현상들을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두 명의 재림교회 목회자가 나를 찾아와서 묻기를, “당신은 하나님께서 재림교회의 조직을 안수하셨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그 때 나는 그 질문에 직접 대답하는 대신에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그에게 던졌습니다. “당신은 유대교회를 하나님께서 조직하셨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유대 교회를 안수하셨습니까? 유대교회가 빛 가운데에서 걷던 적이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부르시고 당신의 특별한 백성으로서 그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들은 한 때 빛 가운데 있었고, 그들에게는 선지자와 예언의 신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모든 구약 성경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예언의 신이었습니다. 그러나 빛이 움직였을 때, 그들은 그것과 함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빛을 그들에게 주셨지만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신약의 빛을 주시고자 했을 때, 그들은 제자리에 멈추었고, 그 결과로 그들은 어두움 가운데에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입니다. 요한 계시록 14:4 절에는 144,000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 빛(예수)이 움직일 때, 144,000은 그 빛을 따라서 움직이는 자들입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서 쉽게 볼 수 있는 영적인 문제도 빛은 움직이는데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움직이지 않고 멈추어 서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어둠 가운데에 남아 있게 되었으며, 영적으로 눈먼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한 때 빛 가운데에 있었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빛이 움직였을 때,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을 위한 빛과 생명이 그리스도 시대의 교회 당국자들에 의해서 거절 당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 후 각 시대에 있어서도 거절 당해왔다.” 시대의 소망, 영문 232. 각 시대마다 빛과 생명은 교회 당국자들에 의해서 거절 당해왔다는 말을 주목해 봅시다. 화잇 부인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유다’에서 물러 나신 것과 같은 역사가 반복되고 또 다시 반복되었다. 개혁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그들은 기성 교회에서 자신들을 분리시킬 것을 생각지도 아니하였으나 종교적 지도자들이 그 빛을 용인하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그 빛을 전하던 자들은 진리를 사모하던 다른 계급의 사람들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자들과 어떤 모양으로든지 진리가 제시 될 때에 선뜻 받아들이는 자가 드물다. 개혁자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자들은 흔히 하나님의 말씀의 명료한 가르침을 선포하기 위하여 저들이 사랑하는 교회를 불가불 떠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상동.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흔들고 있는 어둠의 세력들을 보면서 광야에서 들리는 빛의 소리를 듣고자 애씁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매 안식일마다 교회에서 이상한 설교들을 듣고 있으면서도 어두움을 빛이라고 주장하며 스스로 기만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서 이 백성들을 위하여 준비하신 진리의 빛을 거절하였을 때, 그는 빛으로부터 등을 돌려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비록 그가 자신을 재림교인이라고 주장한다고 할지라도 그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완전히 순종할 수 있고, 해야 된다는 진리를 믿지 않는다면, 그는 지금 어두움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1844년에 시작된 대속죄일에 대한 진리를 인정할지라도 그가 자신의 영혼을 괴롭히는 대신에 지금은 교회에서 “축제”를 벌리며 춤을 출 때라고 말한다면, 그는 지금 어두움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설교자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우리는 죄를 범할 수 밖에 없다고 가르치면, 그는 사단이 던져준 치명적인 궤변을 붙잡고 어둠 속을 방황하고 있는 것
입니다.
형제들이시여,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인도를 따라서 전진하는 일에 실패하는 영혼마다 어두움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빛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움직일 것입니까? 아니면 제자리를 지키는 가운데 밀려오는 어둠에 속하여서 영적인 분별력을 잃고 방황하시겠습니까? 빛을 따라 걷는 길은 좁은 길입니다. 교회에서 빛을 따라가는 것은 좁은 길입니다. 사회에서 빛을 따라 사는 것은 좁은 길입니다. 지금 빛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걷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여행하고 있는 길은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점점 편안하고 넓어져가는 탄탄대로입니까? 좁은 길을 걷는 데에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믿음의 줄을 잡고 줄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그 줄에 우리의 온 몸을 의지하고 끝까지 따라가야 합니다. 그 줄은 때때로 우리를 거친 광야와 산과 계곡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항상 그 줄을 굳게 붙잡고 있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빛을 따라가는 자들이 되어 무사히 하늘에 도착할 것입니다. 빛을 따라 가는 자들은 결국 세상을 등지게 될 것이고 하늘을 향하여 자신의 온 마음과 영혼을 준비시키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