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의 신, 정말 믿을 만한 책인가?
저자: 데니스 프리비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에서 수년간 목회자로 시무. 前 PUC 삼육 대학 신학과 교수, 자영 선교 전도 기관인 어메이징 팩트 (Amazing Facts)의 전도 목사로 봉사하고 있음)
이러한 기사를 재림 교회 교인들을 위한 신앙지에서 다루어야 한다는 현실이 우리 모두를 서글프게 한다. 요즈음 남은 교회 안에서 예언의 신의 권위가 마땅히 차지해야 할 위치와 자리를 잃어가는 동시에 그 자리를 신신학이라고 불리우는 다른 복음들과 자유주의적 가르침과 신조들이 메꾸어 가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보고 있다. 화잇 부인이 남기고 간 글은 한 그리스도인 여성이 남기고 간 단순한 신앙적 권면인가? 아니면 하늘의 영감이 그 가운데 살아서 아직도 재림 교회를 인도하는 강력한 권위를 가지고 있는 예언의 신인가? 이 점에 있어서 분명한 믿음을 소유하지 못한 재림 교인마다 각종 오류의 바람에 날려가 버리고 말 것이다. 생애의 빛은 이번 기사가, 교회 안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예언의 신의 위치를 다시 확고부동하게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화잇 부인의 글은 확실하게 받아들여지든지, 아니면 버려져야만 된다. 만일 우리가 엘렌 화잇의 글을 진정 “예언의 신”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그녀의 권면과 가르침을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하나님의 사업에 적용시켜야 한다. 화잇 부인의 글을 자신과 가족의 생애에 적용시켜서 생애하는 그리스도인마다 그 글에 포함되어 있는 진리의 변화시키는 능력에 대해서 감사하게 될 것이다. 편집실
서론
근래에 교회 안에서는 엘렌 화잇의 글에 관련된 많은 질문들이 제기되고 있다. 화잇 여사의 글이 성경과 어떤 관계를 지니고 있는가? 그녀가 쓴 모든 것이 영감에 의한 것인가? 그녀의 글은 교리적인 권위를 지니고 있는가? 그녀의 글은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어떤 것은 사용하기에 부적당한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에서 엘렌 화잇의 글이 차지하고 있는 적당한 위치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거짓을 말하거나, 악령에 의해서 잘못 인도된 선지자는 온 백성을 미혹한다. 하나님께서는 같은 기별자를 통해 한 부분은 진리를 또 한 부분은 오류를 동시에 말씀하지 않으신다. 만일 그렇게 하신다면 기별들 중 어떤 부분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또 어떤 부분이 선지자 자신에게서 온 것인지를 분별하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별자들에게 현시하시는 내용에 대해서 매우 엄격한 통제를 하실 것을 믿는다. 기별자가 성경상의 가르침과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대해서 말하는 모든 것이 진리가 아니라면 그 선지자는 사단에 의해 조정되거나 또는 그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엘렌 화잇의 경우에 있어서 그녀의 계시와 기록은 특별한 육체적 현상 가운데서 이루어졌던 것이므로 그녀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만일 그녀의 이상들이 진짜가 아니라면 그것은 거짓의 걸작품으로서 사단에게서 온 것임으로 우리는 그것을 사용하지 말고 피해야 할 것이다. 실지로 그녀는 그녀의 이상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면 사단에게서 온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시의 기별들을 취급할때 그 기별을 전체적으로 인정하든지, 거절하든지 해야 한다.
모두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가?
우리는 먼저 화잇 여사 자신이 언급한 증언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로부터 기별을 받았다고 공언하는 사람에 의해서 제기된 주장들을 평가함으로써 그것의 진위를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지자의 사업에 대하여 평가할 때, 그것은 선지자 자신의 주장에 의하여 평가되어야 하며, 우리 자신들의 주장들을 펼쳐서는 안될 것이다. 화잇 여사는 스스로 어떤 주장을 하였는가?
“나는 단순히 내 자신의 사상을 나타내는 하나의 기사도 기록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이상 가운데 내 앞에 펼쳐주신 것 – 보좌에서 비치는 귀중한 광선 – 들이다.” 교회증언, 영문, 5권, 67.
“나는 몸이 연약하고 떨렸지만 그대들에게 편지를 쓰기 위하여 새벽 3시에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흙인 인간을 통하여 말씀하고 계셨다. 그대들은 이 교통이 다만 하나의 편지에 불과하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하나의 편지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된 것이다. 그 편지는 내게 나타난 것들을 그대들에게 제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내가 기록하는 이 편지들, 내가 전하는 증언들을 통하여 나는 주님께서 내게 제시하신 것을 그대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상동
이 증언들을 통하여 그녀는 그녀의 기사와 편지들 속에 포함된 기별들의 출처가 그녀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렇다고 이 사실이 그녀가 하나님께서 주신 기별들을 기록할 때 다른 저자들의 글들을 인용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들은 “자구 영감” (Verbal Inspiration) 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사상의 출처, 즉 그녀의 기별의 원천자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그 기별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가 혹은 그녀 자신의 생각일까? 아니면 다른 이들의 사상일까? 그녀는 그녀의 기별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그 원천자는 하나님이시라고 강력히 말했다. 그러므로 그녀의 주장이, 그녀가 쓴 기별이 하나님의 기별이며 그녀 자신의 기별이 아니라고 한 것을 기억하자!
하나님의 영 혹은 사단의 영
여하튼 그녀의 주장은 분명하며 구체적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가르치시며 저들의 잘못을 책망하시고 저들의 믿음을 강하게 하시든지 그렇지 않으면 당신께서는 그 일을 하지 않으신다. 이 사업은 하나님께로서 온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하나님께로서 온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단과 전혀 동역하지 아니하신다. 나의 사업도 하나님의 인침을 받고 있든지 혹은 사단의 인침을 받고 있는, 둘 중에 하나인 것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 중도는 없다. 이 증언들이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았든지 아니면 마귀의 영에 의한 것이다.” 교회증언, 영문, 4권, 230
나는 그녀의 솔직함에 대하여 감사드린다. 그녀는 그녀의 글에 관하여 우리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이 사업이 하나님의 사업이든지 아니면 사단의 사업임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사단이 어떤 선지자를 통해 역사하고 있을 경우 하나님은 그에게 더 이상 말씀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내 경험 가운데, 증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인정하면서도 이 문제 또는 저 문제는 나의 의견과 판단에 의한 것이라는 입장을 취하는 부류의 태도를 접하게 되는 경우가 여러번 있어 왔다. 이 기사는 책망과 징계를 좋아하지 않고 이것이 저들의 생각과 상반되는 때에는 이 기별에서 인간적인 것과 신성한 것을 구별하려고 하는 이들에게 적합하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고정관념이나 특별한 생각이 증언에 나타난 책망과 상반될 때 어떤 것은 화잇 여사 자신의 인간적 판단이며 어떤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구분하며 증언들을 분류하는 태도를 손쉽게 취한다. 저들이 집착하고 있는 생각을 지지하는 모든 것은 거룩한 것이고 저들의 실수를 책망하는 증언들은 인간의 것, 즉 화잇 여사 자신의 의견이라고 말한다. ” 가려뽑은 기별, 영문, 3권, 68.
엘렌 G. 화잇 여사가 제시한 어떤 특정한 증언에 접하게 될 때 많은 사람들은 “글쎄 그것은 그녀 자신의 의견이야, 그것은 그녀의 생각이야”라고 한다. 이 태도는 하나님의 권고를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화잇 여사는 지적하고 있다.
이 결정적 증언은 우리가 심각하게 다루어야 할 원칙을 재차 표현하고 있다. 만일 그녀의 기별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지만 동시에 그 기별들에 엘렌 화잇 여사의 개인적 의견이나 판단이 혼합되어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그녀의 글 가운데 어떤것이 영감에 의한 것이며 어떤 것이 영감에 의한 것이 아닌지 분류할 수 밖에 없게 되고 따라서 우리는 무엇이 그녀의 인간적 판단이며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인지를 구분하게 된다. 또 그녀의 글을 우리가 감정적으로 판단하든지 혹은 지적 기준에서 판단하든지 간에 우리는 엘렌 G. 화잇의 글 가운데 어떤 부분은 하나님께로서 온 기별이므로 권위가 있고, 어떤 부분의 글은 단순히 그녀 자신의 의견들이므로 가치가 없다고 구분짓게 된다.
어떤 이들은 “어떤 것이 그녀 자신의 판단이며, 어떤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지에 관해 스스로 결정하고 있다”고 말한 다음 화잇 여사는 다음과 같이 결정적인 문장으로 그녀의 기사를 결론지었다.
“저들 (이러한 구분을 만드는 이들)은 저들의 관습으로 하나님의 권고를 무력하게 하고 있다.” 상동
이들은 증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고 있는 자들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저들은 “그렇지요, 화잇 여사는 하나님께로부터 영감을 입은 기별자지요. 나는 화잇여사의 영감을 믿습니다”라고 한다. 그러나 화잇 여사가 제시한 어떤 특정한 증언에 접하게 될 때 그런 많은 사람들이 “글쎄 그것은 그녀 자신의 의견이야. 그것은 그녀의 생각이야”라고 한다. 이 태도는 하나님의 권고를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화잇 여사는 지적하고 있다. 그대는 다음과 같은 증언을 기억하는가? “사단의 최후의 기만은 하나님의 영의 증언을 무력하게 만드는 바로 그러한 성질의 것이 될 것이다.” 가려뽑은 기별, 영문, 1권, 48.
전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것은 증언의 모든 효과를 제거해 버리므로 조심하자. 우리가 당면한 가장 큰 위험은 예언의 신의 영감을 부정하는 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화잇 여사의 영감을 믿는다고 공언하는 자들에 의하여 형성되고 있다.
특정한 사항들에 당면하게 될 때 저들은 이 글은 그녀의 판단이며 그녀 자신의 의견이라는 주장을 고집한다. 우리의 의견과 일치되는 부분만을 인정하고 다른 부분은 그녀의 개인의 의견으로 간주함으로 하나님의 증언의 효과를 제거해 버리는 것은 사단의 마지막 기만이다.
또 다시 그녀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경고를 주고 있다. “그대들의 비평을 통하여 증언들에서 오는 모든 힘, 모든 효과와 능력을 제거해 버리지 말라. 그대들 자신의 사상에 일치시키기 위하여 그대들이 그것들을 분석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무엇이 하늘에서 온 빛이며 무엇이 단순한 인간의 지혜의 표현인지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서 그대들에게 주셨다고 주장하지도 말라. 다만 증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되지 않거든 그것들을 거절하라. 그리스도와 벨리알 (사단 – 고후 6:15)은 연합할 수 없다” 교회증언, 5권, 691
인간의 의견이 첨가되지 않음
“어느 경우에도 나는 자신의 판단이나 견해를 기록하지 않았다” 가려뽑은 기별, 3권, 70
“어느 경우에도 나는 자신의 판단이나 견해를 기록하지 않았다”는 말씀에 유의하자.
선지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진리로 표명해서는 안되는 바 그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듣는 이들이 그의 의견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재차 언급하거니와 그녀는 주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을 때 침묵을 지켰다. 주께서 말씀 하셨을 때만 말할 수 있었다. 만약 선지자가 주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셨을때 선지자의 권위로 말한다면, 그는 거짓 선지자로서 거절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 아침 나는 숙고하여야 할 여지가 있는, 서신으로 제출된 몇가지 질의를 함께 의논하고 이 문제들에 조언을 주기 위하여 몇몇 선택된 사람들이 모인 회의에 참석하였다. 이 주제들 중 어떤 것들에 관하여 나는 말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것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간과 다양한 곳에서 여러 것들이 내게 이미 제시되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형제들이 서신 가운데서 선정된 것들을 읽었을 때 나는 그들에게 말할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 문제가 내게 여러번 제시되었기 때문이었다… 현재까지 이 문제를 써서 밝히는 것이 내키지 아니하였다.” 상동, 55-56. 그녀의 다음 구절에 유의하기 바란다. “이 주제들 중 어떤 것들에 관하여 나는 말할 수 있었다.” 그녀는 주께서 말씀하셨던 것만을 말할 수 있었다.
이 기사의 기본요지는 그녀의 글 가운데서 영감에 의한 것이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가려내고 나머지는 내버려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같은 원리가 성경 저자들에게도 적용된다. 요한과 바울이 영감을 받았다고 할 것 같으면 그들의 서신이 모두 영감에 의한 것이며 저들은 우리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직접적으로 기별을 전달한 것이다. 영감이나 계시의 어떤 것이든 등급이 있을 수 없다. 화잇 여사가 영감을 받았으면 그녀의 글은 모두 영감에 의한 것이며 따라서 그녀의 기별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온 것이다.
성경 말씀이 시금석임
우리가 그녀의 글에서 성경 말씀과 모순되는 것을 발견한다면 그녀를 하나님의 기별자로서 인정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당연히 취할 태도이다. 그녀의 극적인 주장들을 고려할 때 그 증언들 중 일부가 성경의 가르침과 대치된다면 그녀를 진실한 인간으로서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에 나는 화잇 여사가 선지자이지마는 일련의 교리적 면에서 오류가 있다는 견해와 마주하게 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 스스로 오류와 진리를 식별할 수 있겠는가?
엘렌 G. 화잇 여사나 예언의 선물을 주장하는 어떤사람이 중요한 성경상의 교리에 관하여 오류를 가르치고 있다면 그 선지자에게는 아무런 빛이 없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야 할 것이다. 화잇 여사의 증언들은 성경 말씀과의 일치성, 즉 이전의 모든 예언과의 조화성에 근거하여 보존되든지 아니면 폐기되어야 할 것이다. 그녀의 가르침이 성경상의 교리와 모순된다면 어떤 교리상의 문제에 관하여라도 그녀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위험할 것이다. 또한 그녀의 기별들이 하나님께로부터가 아니라면 우리는 그녀의 증언들을 거절해야 할 것이다.
의심의 위험
그녀의 기별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에도 그 증언들을 거절한다면 그것은 큰 위험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별이며 이 사업의 기초를 세우는데 도움을 준 기별인 동시에 견책, 경고, 교정, 격려의 말씀으로 현재까지 사업을 지탱하게 한 이 기별들에 대한 신뢰심을 흔들어 놓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의 정신에 독소 작용을 할 의혹의 말을 여기 저기 늘어 놓는 것은 어느 누구도 해서는 안된다. 나는 증언의 길을 가로막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기별을 주셨으며 그대들이 듣든지 안 듣든지 그분의 음성이 울려 퍼질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대들의 반대는 나에게 손상을 입힌 것이 아니며, 다만 그대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경고와 교훈의 말씀을 주신 하늘의 하나님께 답변해야만 한다. 그대들 자신의 무지함을 하나님께 답변해야 할 것이다.” 가려뽑은 기별, 1권, 43
“나는 현대 진리를 주장하면서도 계시들을 무시하는 자들의 상태에 대해서 보았는데 여기서 말하는 계시들이란 하나님께서 진리에서 벗어난 자들을 가르치는 방법들을 보여 주신 것이다. 나는 저들이 계시들을 반대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연약한 도구로 사용하신 벌레같은 인간을 대항하는 것이 성령을 거역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되었다. 따라서 나는 그 도구에 대하여 반대하는 말을 하는 것은 사소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것이므로 위험한 것임을 보았다. 나는 저들이 오류에 빠지는 경우 하나님께서 계시들을 통하여 저들의 오류를 보여 주시기로 하셨으나 저들은 계시들을 통하여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교훈들을 무시하고 저들 멋대로 길을 택하도록 버린 바 되며 오류의 길로 달려 마침내 돌아설 수 없는 지점에 이를 때까지 저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할 것에 대하여 보았다.” 가려뽑은 기별, 1권, 40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의 말씀을 경시한다면 그것은 그 선지자를 경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다.
“당신의 경고와 책망을 내버리고, 하나님의 영의 증언들을 인간의 지혜 이상의 근원에서 나온 것으로 여기지 않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무슨 여력을 가지시고 접근하실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이 그 일 속에 계셨음을 그대에게 증거해 주신 것들로부터 뒤돌아선 것에 대해, 심판 때에 그대는 하나님께 어떻게 변명할 수 있겠는가?” 목사와 복음사역자들에게 보내는 증언, 465
엘렌 지 화잇 여사의 도전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만약 그녀의 기별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사자로 자인하는 그녀의 주장을 믿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녀의 기별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매우 주의 깊게 경청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의 기별을 거절하는 것은 하나님의 기별을 거절하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빛의 의미
그녀의 글은 우리를 성경으로 이끌어 성구에 포함된 기별들을 더 밝히 이해시키는데 있다. 그녀는 그녀의 역할을 백성들로 더 “큰 빛”에 이끄는 “작은 빛”으로 특징짓고 있다 (문서 전도인 봉사, 125 참조).
그녀가 그녀의 증언과 성경의 관계에 대해 그녀의 글을 “작은 빛”이라고 표현한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기록된 증언들은 새 빛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고, 이미 계시된 영감의 진리를 마음에 생생하게 새겨 주기 위해서 주어진다. 하나님과 그의 동료 인간에 대한 의무는 하나님의 말씀에 분명하게 상술되어 있지만, 받은 바 빛에 순종하는 자는 그대들 가운데 별로 없다. 추가된 빛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주어진 위대한 진리들과 증언들을 통하여 단순하게 하셨고, 또한 당신의 택하신 방법을 통하여 그 진리로 마음을 각성시키고 감명시키기 위하여 그것들을 백성들 앞에 제시하셔서 아무도 변명의 여지를 갖지 못하게 하신다.” 교회증언, 5권, 665
화잇 여사는 그의 역할을 이미 성경에 포함된 진리를 더욱 분명하게 하며 이미 주어진 진리를 단순하게 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녀의 목적은 성경을 모든 진리의 기초로 삼는데 있다.
그러나 그녀는 또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옛날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와 사도들의 입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오늘날은 그분께서 당신의 영의 증언들을 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분께서 그분의 뜻과 그분의 백성들이 따르기를 바라시는 길에 관하여 지금보다 열렬히 그들을 가르치신 시대는 결코 없었다.” 상동, 661.
그러므로 “작은 빛”은 덜 중요한 빛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심에 있어서 예전보다 진지함을 낮추시지 않는다. 이 사실은 우리가 조심스럽게 “작은 빛”, 그리고 더 “큰 빛”을 규명함으로써 그 용어들이 의미하는 것과 의미하지 않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을 시사한다.
“작은 빛”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교통하심에 있어서 덜 진지하심을 뜻하지 않는다. “작은 빛”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덜 분명하게 말씀하심의 의미도 아니다. “작은 빛”이란 희미한 빛, 신빙성이 없는 빛, 중요하지 않은 빛도, 믿을 가치가 없는 빛이란 뜻도 아니다.
“작은 빛”은 열등한 영감성을 가르켜 말하는 것도 아니다. 엘렌 화잇 여사를 통하여 온 기별은 이사야나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온 기별과 마찬가지로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나 그 목적이 다를 뿐이다.
증언을 받아들임이 성경을 거절하는 것인가?
성경의 목적은 사람에게 구속의 계획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당신 자신을 나타내려 하시며 또한 하나님의 회복하심의 계획인 구속의 도를 보여 주려고 하신다. 엘렌 화잇 여사의 목적은 이미 성경에 함유된 구속의 계획을 더 분명하게 나타내는 것이다. 그녀는 새로운 구속의 계획을 우리에게 제시하지 않았다. 그녀는 우리에게 하늘로 가는 다른 길을 보여주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온 인류와 모든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모두 성경에 개괄되어 있다. 엘렌 화잇 여사는 성경에서 우리의 시대와 필요에 직결되는 영역들을 더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와같이 그녀의 빛은 더 “큰 빛”을 반사하고 있기 때문에 작은 것이다.
이에 대한 적절한 예가 제칠일 안식일 재림교회의 오랜 지도자였던 스미스 장노에 의해 다음과 같이 기술되고 있다.
“우리가 항해를 시작하려고 하는 입장에 있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그 선박의 소유주가 우리에게 항해 지침서를 주면서 우리의 여행을 위한 충분한 설명이 그 책에 있으므로 그것에 유의한다면 우리는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자. 이윽고 배가 출범하자 그 책을 펴서 내용을 보게된다. 그 저자는 항해시에 우리가 준수해야 할 전체적 규칙들을 나열하고 최종까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여러가지 우발사고들을 망라하여 실제적인 모든 것들을 설명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동시에 해안의 상태가 폭풍우에 의해서 항상 변하기 때문에 여행의 말기가 특별히 위험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때에 안내자를 만나게 될 것인데 그가 주변의 여건들과 위험들에 대해 필요한 지도와 설명을 우리들에게 해줄 것이므로 그를 청종하라고 하였다 하자. 이 지침서에 따라서 우리가 명시된 위험한 곳에 도착하자 약속된 대로 안내자가 나타난다. 그러나 그가 도와주려할 때 어떤 승무원들은 그를 반대하여 일어난다. “우리는 항해 지침서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것으로 충분해. 우리는 그것에만 의존할 뿐이지 당신은 우리가 필요로 하지 않소”라고 저들은 말한다. 자 그렇다면 누가 항해 지침서를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가? 안내자를 거절한 부류인가? 아니면 지침서의 지시대로 그를 받아들인 사람들인가?……
우리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성령의 선물이 이 위험한 시대에 우리의 안내자로 주어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참된 성령의 선물을 수여받은 사람이 어디에 있든지 또는 누구이든 간에 막론하고 저들의 기별을 존중하여야 하는데, 만약 거절한다면 저들을 받아들이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 된다. 누가 과연 성경, 오직 성경만을 의존하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지침서에 따라 안내자를 받아들인 자이다. 증언을 받아들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지 말고 받아들이자. 증언을 거절하고 불순종한다면 우리의 위안과 교육및 완전을 위해 마련된 대비책을 받기를 거절하는 것이다.” 우라이아 스미스, ‘증언을 받아 들임이 성경을 거절하는 것인가’ 리뷰엔 헤랄드, 1863년 1월 13일자.
아마 이것이 “작은 빛”과 “큰 빛”의 차이를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항해를 묘사하는 지침서의 권위와 안내자의 권위는 같은 출처에 근거하므로 “작은 빛” 이란 권위에 관계되는 것이 아니다. 안내자가 항해의 끝에 승선하는 것과 같이 “작은 빛”은 말세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특별한 길잡이의 역할을 할 것이다.
어떠한 선지자의 사업이 그보다 앞서 갔던 선지자들의 “큰 빛”을 비추어 주는 “작은 빛”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만일 수많은 선지자들의 사업의 근원이 동일하다면, 모든 선지자들의 권위도 동일한 것으로 보아야 되지 않겠는가? “큰 빛”이라는 말은 성경에 포함되어 있는 축적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는 것인데, 다시 말하자면 “큰 빛”인 성경은 동일한 영감하에서 기록한 수많은 선지자들의 기별의 결합체이다. 그러나 화잇 부인은 세상의 종말이 가까웠을 때, 하나님의 기별을 전한 한 명의 선지자이다. “작은 빛”이라는 말은 “작은 빛”이 가지고 있는 영감의 권위나 질(quality)에 적용해서는 안되며, 단지 화잇 부인의 글이 가지고 있는 기능과 목적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성경에 의해서 시험된다는 것의 의미
우리는 언제나 화잇 부인의 글도 성경에 의해서 시험되어야 한다고 가르쳐야만 한다. 그런데 성경에 의해서 시험되어야 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었던 바울이 성도들에게 서신을 보냈을 때,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바울의 편지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를 확신할 수 있었을까? 바울은 성경을 연구하는 성도들에게 자신의 가르침이 진리인가를 확인하도록 권면했다. 그들은 바울의 기별을 시험하기 위해서 무엇을 연구하였겠는가? 물론 당시에 그들의 성경이었던 구약 성서를 연구하였을 것이다. 만일 그들이 바울의 서신을 구약 성서와 비교 검토하여 그 일치성을 발견한다면, 그들은 바울의 서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이었다. 우리는 바울이 당시의 일반적인 가르침과 상반되는 듯한 새로운 가르침을 제시했던 것을 기억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질문은 그가 구약 성서가 증거하고 있는 것과 어긋나는 것을 가르쳤는가 하는 것이다. 바울의 가르침이 성경과 어긋나지 않는한, 그는 새로운 방향들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에 의해서 우리는 바울의 서신을 이전에 계시되었던 영감의 글, 즉 구약 성서에 비추어 시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바울의 글이 시험을 통과하여 그들에게 받아들여진 다음, 어떻게 되었는가? 바울의 가르침은 후세에 예언의 선물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글이나 가르침들에 대한 또 하나의 시험 기준이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바울의 글도 다른 신약 성경의 글들과 함께 예언의 선물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시험하는 데에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12 제자들 가운데 속하지 않았던 바울에 대해서 초기 그리스도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의문점들과, 엘렌 화잇에 대해서 초기 재림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의문점들이 동일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초기 그리스도 교회는 이러한 식의 의문들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만일 계시의 충만함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존재한다면, 왜 우리가 이 사람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단 말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더 큰 빛이시며, 그분께서는 강력한 빛을 가지고 계신데, 이 바울이라는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자, 그러면 이제 오늘날 우리들 가운데서 들려오는 의문들을 들어보자: “더 큰 빛이 성경 속에 있는데, 왜 우리는 엘렌 화잇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계시의 충만함이 성경에서부터 나오고 있는데, 왜 우리는 그녀의 권면을 심각하게 들어야 하는가?” 질문이 동일했던 것처럼 대답도 동일한 것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전개해 온 나의 이러한 믿음과 논리가 성경을 부인하는 것이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성경 그 자체가 교회에서 예언이 계속될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증거하기를, 우리는 성경 속에 나오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기별들을 받았던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기별들을 계속해서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언의 신의 접근 방법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 성경과 예언의 신에 접근해야 되는가? 물론 성경이 우리의 첫째되는 연구 대상이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주제에 대해서 연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성경으로 가야만 한다. 그런 다음 우리의 연구 주제와 관련있는 화잇 부인의 글에 가서 하나님의 뜻을 찾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기별을 연구한 후에라야,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계신 바를 해석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감히 우리의 의견이나 사상을 성경이나 엘렌 화잇의 글보다 앞에 두어서는 안 된다. 성경이 기별의 첫째가는 원천과 근본이어야 되며, 화잇 부인의 글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기별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 이런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교리와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책임에 대한 이해와 우리 자신의 견해를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화잇 부인 스스로가 자신의 글이 구원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들추어 낸다. 다음에 나오는 글은 화잇 부인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만일 인간들이, 아담이 그의 타락한 후에 받았고, 노아가 보존하였고,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준수된 하나님의 율법을 지켰더라면, 할례 의식에 대한 필요성은 없었을 것이다. 만일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할례로써 표를 삼는 언약을 지켰더라면, 저들은 우상 숭배에 유혹당하지 않았을 것이며, 애굽에서 노예 생활의 고통을 당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저들은 마음에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왔을 것이며, 시내산에서 율법을 선포하고 또한 돌비에 새길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백성이 십계명의 원칙을 실천하였더라면, 모세에게 주어진 부가적인 지시의 필요도 없었을 것이었다.” 부조와 선지자, 영문 364.
화잇 부인이 말하고자 하였던 바는,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필요에 따라서 기별을 주신다는 의미이었다. 만일 사람이 모세 시대 이전에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였더라면, 모세에게 주어진 바 된 수많은 특별한 지시들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의 그 기별은 필요에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부가적으로 주어진 것들이었다. 그렇다면 돌비에 적힌 상태로 받은 십계명은 중요하지 않은 것인가? 또한 모세에게 부가적으로 주어진 바 된 기별들은, 사실은 그것들이 주어질 필요가 없었다고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는가?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기별은, 모세의 글에서 표현된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데 있어서 불신실했기 때문에 주어졌었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욱 타당하겠다. 사실 그들의 기별은 없었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실함으로 인해서 주어질 수 밖에 없었으며, 그 결과로 오늘날 우리들도 그 기별을 가지고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기별이 오늘날에는 덜 중요한 것인가? 그것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연구하고 따라가야 할 중요한 교훈이 아닌가?
이와 마찬가지로 엘렌 화잇의 글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경에 포함되어 있는 하나님의 기별에 대해서 신실하였더라면, 존재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별이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였고, 백성들이 성경의 기별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화잇 부인을 통해서 기별이 보내지게 된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기록했다. “주님께서 화잇 자매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주신 기별을 믿는 모든 자들은 마지막 날들에 이르러 올 많은 미혹으로부터 안전하게 될 것이다.” 상동, 84. 아,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인가! 만약 우리가 그 증언들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생애에 그 신선한 충격을 수용하기만 한다면, 그녀의 기별은 우리에게 엄청난 축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 역사의 마지막 시대에 당신의 백성들에게 명백하고도 권위있는 말씀을 주시기로 결정하셨던 것이다. 그분의 이름을 찬송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