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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

저자: 강병국 목사

수년 전에 들은 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아주 아주 가난한 한 가족이 그 가난을 면해 보기 위하여 보석들이 많이 난다는 곳을 향하여 여행을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자기집 뒷 뜰에서 주워 온 돌 다섯개를 가지고 공기를 하며 따라가던 그 집 조그마한 딸 아이가 그 공기 돌 중 네개를 잃어버릴 때까지 여행을 하던 그 가족은 드디어 보석이 난다는 고장까지 이르게 되고, 거기에서 그 소문은 한갓 허황된 꿈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기진맥진하여 털썩 주저 앉게 됩니다.

그 옆을 지나가던 한 보석상 주인이 그 집 아이가 가지고 놀고 있는 돌을 바라보더니 눈이 둥그래집니다. 감정 결과 그것이 바로 값이 많이 나가는 보석 중 보석이었습니다. 이 돌이 어디서 났느냐는 질문에 이런 돌은 우리 집 뒷 마당에 가득 굴러다니고 있다고 대답하고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알아차린 그 가족은 부리나케 자기 집으로 달려와 보았으나 벌써 다른 사람들이 와서 그 보석들을 다 가져가 버린 후였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오늘날 우리 재림교회의 형편을 얼마나 실감나게 묘사해 주는 이야기 입니까?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고, 영적으로, 아니 더 나아가서 세상에서도 부하게 되고자 다른 교회들과 심지어는 세상 학자들의 사무실들 문전을 여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계 12:17)

우리는 우리의 뒷 마당에 보석을 잔뜩 가지고 있는 백성들 입니다. 그러나 이 하늘의 보석인 “예언의 신”은 오랫동안 하찮은 돌처럼 취급을 당하였고 이제는 팽개쳐 거의 버려짐을 당하는 것처럼 되어가고 있습니다. 여자의 남은 자손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교파에 가서 배워와야 하며 세상에서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생각되어지고 있습니다. 세상에게 빛이 되라는 사실과, 세상에서 인정을 받으라는 것은 전혀 다른 별개의 사고방식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왜 예언의 신이 여자의 남은 자손의 특징인 “예수의 증거”가 되는 줄 아십니까? 알듯 하면서도 아직 확신이 없으시다구요? 무시하거나 등한시 하는 것은 거절하는 것과 꼭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계시록 19:10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니라 하더라.” 자 그러면 이제, 이 대언의 영(예언의 신)이란 무엇이며 누구에게 주어지는 것인지를 살펴보도록 하십시다. 계시를 보며 너무 놀라고 감동한 사도 요한은 빛나는 존재인 천사 앞에 넙죽 엎드려 절을 합니다. 그 때에 천사는 민망히 여기며 “나에게 경배하지 마시오, 나는 당신과 그리고 예수의 증거를 받은 당신의 형제들과 같은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하나님의 종이요”라고 말하였습니다.

계시록 22:8,9절에서 다시 같은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것은 깊이 감동하고 인상을 받은 사도 요한이 다시 빛나는 존재인 천사 앞에 엎드려 절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때 천사는 좀 더 자세하게 이렇게 설명하여 줍니다. “이것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저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이 말씀에서 천사는 또 하나의 힌트를 주는데, 그것은 사도 요한의 형제들은 사도 요한과 같은 경험을 하는 선지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네 형제 선지자들과”라고 한 설명은 우리에게 빛을 제공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의 증거” 곧, “대언의 영”은 계시를 받는 선지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계1:2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자 그러면 “예수의 증거”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도 요한이 계시 가운데서, 장래의 사건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의 앞길을 비추어 주는 세상의 앞날들을 본 것은 물론, 그들의 영적인 여행 길에 위험들과 교훈들에 관하여 계시를 통하여 본 것처럼,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그 선지자의 시대 이후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앞날을 비추어 주기 위하여 받은 “계시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계시록 12장의 예언으로 돌아가서, 그 역사적 배경을 살펴 보면, 여자의 남은 무리가 나오는 시기는 1260년 중세의 종교 핍박을 끝마치면서 미국 신대륙 곧, 땅이 교회(여자)를 도와 청교도들이 이주하게 되는 시점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로 그 시점에 미
국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앞날을 계시 가운데 보고 알려준 선지자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은 무리의 특징인 예수의 증거는 화잇 부인을 통하여 주신 “예언의 신”이라고 확증 지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서 이러한 확신이 흔들릴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이제는 예언의 신을 너무 많이 읽지 말라고,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상이 팽배하고 있으니 이 어찌된 일입니까?

 우리집 뒷 뜰에 널려 있는 보석들을 등한히 하고 먼 곳으로 돌아다니며 보물들을 구하고 있는 자들은, 그들이 뒤 늦게 깨닫고 돌아 왔을 때에는 때가 너무 늦어서 다른 이들이 그 보석들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며 울며 통곡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여자의 남은 자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