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선교 사업을 위한 시금석
W. D. 후레이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삽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막 8:34).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참된 선교사에 대한 정의를 연구하라.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막 8:34). 이 말씀에 언급된 것과 같이 그리스도를 따라간다는 것은 하나의 가면이나 익살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이 그의 발걸음을 가까이 따르며, 그가 참으신 것을 참으며, 그가 고통당하신 것을 경험하며, 그가 이기신 것처럼 이기기를 바라신다. 그는 그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제자들이 자기희생의 정신을 나타내기를 애태우시며 기다리신다.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그의 고통에 동참하기로 선택하며, 자기부정의 생애인 그의 생애를 살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수욕을 참고자 하는 자들은 참된 의료 선교사가 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를 이해할 것이다”(CH, 511).
“의료 선교사업은 아직 그 요람시대에 있다. 참된 의료 선교사업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왜 그런가? 그것은 구세주께서 계획하신 사업을 따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CME, 11).
“참된 의료 선교사업”이 무엇입니까? “참된 의료 선교사”가 누구입니까?
이 세상에는 인간의 유익을 추구하는 수많은 운동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뜻하는 바에 대하여 공감을 느끼며 그들의 훌륭한 사업에 있어서 그들을 격려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에게 몸과 마음을 동등하게 취급하는 생명과 건강에 관한 사업을 맡겨 주셨습니다.
“참된 의료 선교 사업은 하늘에 근거를 둔다. 그것은 어떤 인생에 의하여 고안된 것이 아니었다”(MM, 24).
파스퇴르, 뜨루도,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그리고 클라라 바르톤과 같은 고상한 인물들이 이루어 놓은 위대한 사업들을 높이 평가하는 바이지만 우리가 우리에게 위임된 의료 선교사업의 창시자나 대표자로써 그들을 추앙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건강 기별은 우리의 교리적 기별과 같이 독특한 것입니다.
“의료 선교사업”을 세 가지 큰 원칙의 빛을 따라 살펴보도록 하지요. 아마 우리는 그 원칙들을 세 가지 체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일들은 하나의 체를 통과할 수 있을 것이요, 다른 일들은 두 가지를 통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를 모두 다 통과하는 것만이 “참된 의료 선교사업”입니다.
시금석 1 : 동기(Motive)
참된 의료 선교사업은 사랑의 봉사정신에 의하여 움직이게 됩니다. “전문적 자만심이나 돈에 대한 욕심으로 행한 일이 아닙니다. 참된 의료 선교사업은 희생적입니다. 서두에 인용한 성경말씀을 다시 한 번 깊이 음미해 보십시오. 위대한 의료 선교사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모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누가 그의 모본을 따라 돈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그의 이름으로 봉사하겠습니까?
물론 의료 선교사업의 경제면에도 경영방식을 따라 처리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분야에 있어서도 귀중한 교훈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중에 어느 것도 사랑, 곧 진실되고 사심 없는 사랑이 우리의 모든 사업의 동기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바꾸어 놓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또한 희생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실물교훈, 40).
이 원칙들은 한 기관의 사역자들 개개인의 마음에 가득하게 될 때에 그것들이 드러나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자문해 보도록 합시다. “나는 참된 의료 선교사인가? 나는 돈이나 명성이 아니라 바로 사랑을 인하여 그분의 희생 봉사적 생애를 그분과 함께 나누라는 구세주의 부르심을 받아들였는가?”
여기에서 우리의 목적은 세상 사람들 곧 병자 보호가 그저 공언 뿐이거나 또는 돈을 버는 수단으로 그치고 마는 자들을 비평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런 사업은 “참된 의료 선교사업”이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모본을 따르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첫 번째 체를 통과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자비를 이기심으로 덮고 이를 가리켜 의료 선교사업이라고 부르지 말아야 한다”(MM, 131).
하나님께서 자아희생적인 그의 사랑을 나타내도록 우리에게 주셨던 그 기관이 가장 큰 돈벌이 활동들 중의 하나로 변모되어야만 한다는 것은 얼마나 애석한 일입니까? 하늘 성소로부터 사랑의 황금 기름을 받아 전달하라는 한 가지 과업을 위하여 봉헌되었던 거룩한 통로들이 어찌 자아 봉사에 악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한 봉사라고 말하면서 재물을 축적하기 위하여 세상 정책을 따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헌물들을 받지 않으신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나는 번제를 위하여 도적질하는 것을 미워하노라’고 하신다”(MM, 125).
“온 하늘은 열렬한 관심을 가지고 인간들의 감독 아래 의료 선교사업이 어떠한 특징을 나타낼 것인가를 보려고 응시하고 있다. 인간들이 지상의 어두운 곳에 하나님의 자비를 나타내는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고안하신 계획을 상품화 할 것인가?”(MM, 131).
시금석 2 : 방법(Method)
의료 선교사는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인간 생활을 천연 법칙에 조화시키는 일에 더욱 큰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는 건강 법칙이 십계명과 같이 참으로 율법이라고 깨닫습니다. 그로므로 그는 주님께서 고통을 제거하도록 준비해주신 단순한 치료제를 사용함과 아울러 그는 병자의 마음을 이끌어 하나님의 생활방식을 인지하도록 하며 순종의 축복을 깨닫도록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는 단순히 나쁜 증상을 감소시켜 주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게 됩니다.
유혹자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섭리가 그렇게 명하신다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범죄하기보다는 오히려 순종의 결과로 고통당하는 것이 더 좋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순종하도록 이끄는 교육은 눈에 보이는 어떤 결과보다도 더욱 중요합니다.
의료 선교사는 교사이므로 건강 생활의 원칙들에 있어서 교훈을 전하며 “모든 교육적 노력의 기초”가 되는 “생리학과 위생”에 대한 지식을 활용합니다(교육, 253).
첫 번째 큰 원칙에서와 같이 여기에서도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본이 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병자를 치료하셨을 때 그는 수많은 병자들에게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라고 경고하셨다. 이와 같이 그는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함으로 말미암아 그들 자신들에게 질병을 가져왔으며 그리고 건강은 순종에 의해서만 보존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셨다”(MH, 113).
만일 천연법칙에 관한 지식에 근거한 순종이 증상처리보다 더욱 중요하다면 순종을 가르치는 일이 없이 어떻게 우리가 질병치료나 고통제거를 약속하는 어떤 방법을 이야기 하겠습니까? 사람들이 구미에 당기는 대로 먹고, 일면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면서 여전히 건강법칙을 배우거나 순종하지 않고 치료하는 방법만 찾는다면 과연 누가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고 있는 것일까요?
이것이 우리가 최후의 투쟁에 접하면서 증가할 것으로 생각하는 치유에 대한 거짓 이적들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신체보다 마음에 더 많은 해를 주며 증상처리에 그치고 마는 약품치료에 나타나는 근본적인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이런 문제가 소위 “무약치료”에 관련되어 나타나는 여러 가지 우려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심지어 주님께서 명하신 치료제들이 사용함에 있어서도 우리는 순종으로 인도하는 교육이 지극히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금석 3 : 목표(Goal)
참된 의료 선교사는 신체를 다루는 봉사에서만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그의 우선적인 문제는 결코 망각될 수 없는 것으로 그가 위하여 수고하는 자들의 영혼 구원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지극히 타당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사랑이 만일 그로 하여금 최선을 다하여 환자를 돕게 하여 환자의 건강이 회복되고 그의 생명이 수년 동안 연장이 되도록 하였다면 그 동일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가 환자의 생명이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지도록 지극히 열렬한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를 몹시 사랑하기 때문에 그의 현세적 생명을 구하려고 노력한다고 하면 그의 내세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무관심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영혼구원은 모든 참된 의료 선교사업의 목표가 됩니다. “우리가 언제나 명심해야 할 것은 의료 선교사업의 목적은 병든 남녀들을 세상 죄를 지신 갈바리의 사람에게로 이끄는 것이다”(MH, 144).
그리고 또다시 구세주께서 우리의 크신 모본으로 나타나십니다. “예수께서는 단순히 신체의 질병을 고쳐주는 치료자나 이적을 행하는 자로써 자신에게 주의를 끄는 것으로 만족해 하지 않으셨다. 그는 사람들이 그를 구세주로 바라보도록 그들을 이끌고자 애쓰셨다”(MH, 31).
여러 해 전에 예언의 신은 의료 선교사업의 한 국면에서 이 큰 목적을 잃어버릴 위험을 지적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인용문을 다시 읽으면서 이 원칙이 다른 모든 국면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해야 합니다. “식당을 설립함에 있어서 이 사업이 가장 필요로 하는 일에 대하여 눈멀게 될 위험이 있다. 사역자들이 사업의 경영면을 밀고 나갈 때 영혼 구원사업에 대하여 눈 멀게 될 위험이 있다. 이 사업의 경영면이 영적인 면을 혼미하게 할 위험이 있다.
“건강 식당 사업으로 말미암아 일부 훌륭한 일들이 수행되고 있다. 남녀들이 교육을 받아 고기나 다른 해로운 음식물들을 내어버리고 있다. 그러나 누가 생명의 떡을 먹이고 있는가? 이 사업이 개심자를 한 사람도 내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고 있는가? 지금은 우리가 주의 오심을 위하여 백성들을 준비시키는 일을 거의 하지 못하는 사업 설립에는 우리의 정력을 소모하지 않도록 소위 정지기간이라고 불리우는 시대이다.
“식당 설립의 유일한 목적은 남녀들의 마음에서 편견을 제거하여 그들도 진리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여러 종류의 음식들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한 영혼도 개심시키는 일이 없이 일하는 자들의 마음이 기쁨을 얻지 못한다면 이 사업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우리의 식당 사업이 바람직한 영적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 한 세상 사람들을 그들 나름대로 준비한 식탁에 앉게 할 것이다”(MM, 306, 307).
거듭 말하는 바이지만 이 원칙은 건강 식당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의료 선교사업의 다른 모든 분야에도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의 기별에 영혼들이 이끌림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의 노력이 어떠하든지 우리는 만족할 수 있을만한 입장이 아닙니다.
이제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고 성령의 통찰력을 간구하면서 우리가 종사하고 있는 사업이 어떤 것이든지 그것이 참된 의료 선교사업인가를 검토해보기로 합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우리 각인이 자신을 시험해 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1. 내가 하는 일은 온전히 사랑의 동기에서 행하고 있는가? 무아적이고 자아희생적 사랑에 의하여 일하고 있는가?
2. 나는 단순히 증상처리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에게 천연법칙을 순종하도록 인도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내가 사용하는 방법이 원인제거의 결과를 성취하는 것들인가?
3. 나의 모든 사업에서 나의 최고의 목적이 영혼들을 그리스도와 그의 기별에 인도하는 일인가? 내가 추진하는 계획이나 수행하는 사업이 예수께서 오실 때에 영혼들을 그에게 드릴 수 있는 것들인가?
*현대 노아 방주(삼육대학 출간, 김평안 역), 129-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