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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교육

에드가 루프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한 아기가 태어난다. 그 후에 얼마 안 있어 부모들은 그 아이를 교회로 데리고 가 주님께 봉헌한다. 아이는 자라나고, 부모는 그가 주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자라나도록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하여 그를 교육시킨다. 아이는 인생에 대하여 배우며, 습관을 형성하게 되고, 학교에 가기까지 부모와 이웃들, 교인들에 의해서 교육받게 된다.

  아이는 지도를 받기 위해 자기 부모가 아닌 다른 교사들에게 맡겨지게 된다. 어떤 종류의 공과들을 그가 배우게 될까? 어떤 종류의 학교에 그가 다녀야 할까? 어떤 종류의 교사들이 그를 지도할 것인가?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를 등록시킨 학교에서 어떤 종류의 훈련을 시키는지 알고 있을까?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거의 모든 학교들(유치원을 포함한), 대학들이 제수잇의 교육제도를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러 세기 동안 그 제도는 서구 사회, 특별히 유럽인들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는 유럽과 다른 나라들에 범람해왔다.

  제수잇들에 의해 채택된 학교 교육의 방법은 로마의 교육제도를 본 딴 것이고, 로마의 교육 제도는 헬라의 교육제도(인본주의)를 흉내 낸 것이다. 헬라인들은 그 교육제도를 이교에 기원을 두고 있는 애굽인들(알렉산드리아 학교)로부터 교육적 “탁월함”을 추구했는데, 그것은 세속적이고, 신성모독적이며, 우상숭배적이고 사단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여러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자비와 친절로 하늘의 교육방법을 채택한 남은 무리를 두셨다. 그 예로서 우리는 16세기의 개혁 운동의 학교들과 1844년의 재림운동 이전 20년 동안 북미에서 일어났던 개신교의 개혁운동 학교들을 들어 본다. 이 면에 있어서 엘렌 화잇과 동시대의 사람이며 개척자인 교사, 써덜랜드의 기록을 살펴본다.

  “16세기의 위대한 개혁자들인 루터와 멜랑톤은 그리스도인 교육이 없이 영구적인 종교개혁을 이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이해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법왕교의 교리에 관심을 기울일 뿐만 아니라 강력한 그리스도인 교육제도를 계발하였다. 멜랑톤은 ‘우리 학교들에 있는 젊은이들을 소홀히 하는 것은 일년 중에서 봄을 없애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학교를 쇠퇴하도록 놓아두는 자들은 진정 일년 중 봄을 없애버리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인데, 이는 종교란 학교들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때문이다’고 말하였다. ‘멜랑톤은 교육사업의 진전과 훌륭한 그리스도인 학교들의 건설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였다……. 1525년 봄에 그는 루터의 도움을 받아 아이슬레벤과 매지버그의 학교들을 재조직하였다.’ 그는 ‘참된 교육사업은 하나님의 사업이다’라고 선언하였다.

  “‘1528년에 멜랑톤은 독일전역의 많은 학교들을 위한 조직의 근간으로서 「쌕소니 학교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은 「학과를 늘리는 것은 결실이 없게 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해롭기까지 하다…」는 문제를 다룬 것이다.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너무 많은 책들로 부담을 줘서는 안된다’ 이들 개혁자들은 법왕교회의 힘이 그 교육제도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교육제도의 급소를 쳐서 상하게 하여 법왕교로 그 무릎을 꿇게 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인 학교 제도를 설립하여 그 자녀들로 개신교도들이 되도록 하였다. 교육과 종교에 있어서 감행된 이 놀라운 혁명은 한 세대 즉 한 사람의 당대에 이루어지게 되었다.

  “루터와 멜랑톤의 사망 후, 그들이 하던 개혁사업을 이어받은 신학자들은 그리스도인 학교들을 증가시키는 대신 단지 신학적인 기교에만 몰두하여 당대에 이루어졌어야 할 위대한 사업이 지나쳐져 버렸다. 그들은 그들이 물려받은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렸다. 루터와 멜랑톤의 후계자들이 장래 선교사들이며 교회의 기둥들이 될 청년들을 교육하는 일에 실패했을 때 그들 안에는 내분이 들끓었다. 그들은 대단찮은 몇몇 신학적 문제들에 있어서 그들과 의견을 달리하는 몇몇 동료들의 견해를 비난하느라고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하여 그들의 사업은 건설적이라기보다는 파괴적인 것이 되었다. 그들은 교리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고, 그들이 가진 대부분의 정력을 정통적인 교리를 고수하느라고 소모시켰다. 그들이 그들의 신조를 구체화는 시켰으나 그들의 등잔에 기름이 되는 그리스도인 교육이념을 상실하였고, 발전은 중단되었다. 개신교주의는 죽은 정통 교리로 인해 쇠퇴하게 되었으며 들끓는 내분 속에서 파벌을 이루게까지 되었다. 그런 식으로 약화된 개신교회는 다시 원기를 회복한 법왕교의 교육제도의 큰 힘을 저항 할 수 없었다…….

  “법왕교는 자신들이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이 개신교회 학교들을 짓밟고 승리를 거두는데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법왕교의 교육자들이 공격을 가할 때 사용했던 기술과 기교,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도 신속하게 승리를 쟁취한 것을 인하여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와 같은 경험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교인들에게 영원히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하나의 실물교훈이 되어야 한다”(그리스도인을 위한 참교육, 12, 13).

  “개신교회 교사들은 법왕권의 제수잇(예수회) 창설자인 로욜라에 의해 도입된, 이전 것과는 상반된 교육제도를 통해 공격을 받음으로 약해지고 부적합하게 되고 말았다”(상동, 15).

  “‘제수잇의 교사들은 학생들의 모든 기능들을 계발시키는 것을 목적하지 않고, 잘 받아들여지고 재생산적인 기능들만을 계발시키고자 하였다’ 어떤 학생들이 훌륭한 기억력을 가지고 자신이 배운 바를 멋지게 발표할 때 그들은 그 학생을 그들이 이끌고자 하는 최고의 목표에 달하였다고 하였다. 제수잇의 제도는 마음의 독창성이나 독립심,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 진리를 사랑하는 것, 올바른 판단력을 나타내거나 형성하는 것 따위는 소홀히 할 뿐 아니라 오히려 억압하였다 제수잇의 교육제도는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으며, 일세기를 두고 그리스도교국에서 명성을 떨쳤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로 제수잇 학교에서 나왔다.”(상동, 16).

  “개신교회사에 대해 간략하게 연구한 결과에 의하며 1844년 당시에 저들이 영적으로 쇠퇴하게 된 원인은 저들이 「참된 교육에 대한 과학」을 이해하는데 실패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인 교육에 대한 이해와 그리스도인 교육의 원칙을 시행하는데 실패함으로 저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기별을 세상에 전하는데 부적합하게 되었다”(상동, 7).

  “1844년은 사도시대 이래 교회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수세기를 두고 예언의 손가락은 그때(1844년)를 지적해왔었다. 온 하늘은 당장 일어나려고 하는 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모든 천사들은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이라고 공언하는 자들로 세상에 증거해야 할 기별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일하였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역사에 의하면 개신교회가 법왕교에서 빌려온 교육제도에 집착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기별을 받아들이거나 전하기에 전혀 맞지 않았다고 증거한다. 결과적으로 저들이 그 기별을 증거할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1844년, ‘세상은 하늘 성소에서의 대속죄일을 향해 접근해 가고 있었다. 역사는 이때 이전에 있었던 가장 현저한 그리스도인 교육운동과 종교적 각성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인기 있는 교회들은 저들이 결정적인 시험을 향해 접근해 가고 있었다.’ 또한 하나님께서 저들이 ‘참된 교육계로 전향하기 전’에는, ‘저들이 교육에 대한 참된 과학을 분명히 이해하기 전’에는 저들이 마지막 기별을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하게 전파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셨다. 다음의 말씀은 저들에게 적용될만한 말씀이다. ‘과거 어느 때와는 달리 지금이야말로 교육에 대한 참된 과학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만약 우리가 이것을 이해하는데 실패한다면 하나님의 왕국에서 우리를 위한 자리를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UT, 1897, 7, 8; 상동, 21).

  주님께서는 크신 자비로 온 가족들로 하여금 그들의 자녀들이 제수잇의 교육제도에 따라 가르침을 받는 전통적인 학교들에 다니지 못하게 하며, 그 자녀들이 루터와 멜랑톤에 의해 설립된 교육제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 교사들에 의해 교육받도록 하기 위한 준비를 갖춰 놓으셨다. 그리하여 미국 전역을 통하여 첫째와 둘째 천사의 기별을 선포하는 한 백성이 준비되었다.

  오늘날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은 1844년 이전에 개신교인들이 직면했던 동일한 난점들을 직면하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곧 오심을 기다리고 있으며, 우리 자녀들의 교육에 결정적인 관심을 보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모든 열심을 다하여 그들이 제수잇의 교육제도를 따르는 세속적인 교육의 썩은 웅덩이로부터 자유케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세상 학교들의 특성들 몇 가지

* 그들은 학생들이 인생의 현실에 직면할 준비를 갖추도록 교육시키지 않는다. 이 학교들 대부분은 실제적인 기술을 가르치지 않는다.

* 그들의 주요한 관심은 학생들이 개념들과 정의들을 암기하고 반복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치를 분별하는 능력은 계발되지 않는다.

* 학생들의 개성이란 무시되는바 된다.

* 신령한 과목들은 무시되고, 하나님은 잊혀진바 된다.

* 진화론과 다른 이설들이 가르쳐지고, 하나님과 구원은 전격적으로 무시하는바 된다.

* 교사들은 재림교인들이 아니다. 많은 교사들은 대담한 무신론자들이며, 그리스도인이라 자칭하는 교사들마저 실제로는 강신술을 신봉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영혼의 불멸을 가르치고 일요일을 예배일로 준수한다.

* 많은 교사들은 단지 봉급에만 신경을 쓰지 학생들의 교육과 계발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학생들은 가르침을 받는 것이지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다.

* 대부분의 학생들은 재림교인이 아닌 가정에서 온다. 그 부모들은 흡연과 음주, 부도덕적이고 방종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많은 부모들은 상스러운 말과 속어를 사용한다.

* 어떤 학생들은 동료들이 부도덕적인 습관들(수음, 동성연애 등)을 배우도록 영향을 끼친다.

* 아이들은 심지어 그들의 교사들에 의해 흡연과 음주 마약과 도적질을 하도록 영향을 받는다.

* 학생들이 먹는 음식은 거의 늘 비건강적인 것이며 심지어는 부정한 음식들이다.

* 학생들은 경쟁과 속임수를 쓰며, 학생들 간에는 불화, 교사들과 교육적 권위에 대해 존경을 표하지 않는 사회로 들어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 이 학교들에서 사용하는 교과서들은 영혼불멸설과 일요일준수와 같은 이설적인 교리들을 담고 있다. 많은 책들은 단순히 가공적인 이야기들과 로맨스들이며, 동물과 채소들이 말하고 요술을 부리고 속임수를 쓰는 이야기 등 그리스도의 이적들을 경시하거나 부적합하게 보이도록 하는 초인간적인 세력들을 다룬 것이다. 그것들은 학생들로 하늘의 사물들과 영원한 진리들을 배우지 못하게 만든다.

* 예술 과목들은 주로 신성모독적인 음악이 들어있는 무대연출 같은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 체육 과목은 경쟁적인 정신을 유발시키는 것이여, 종종 상스러운 말과 폭행적인 말, 학생들 간의 싸움을 유발시킨다.

  우리는 이러한 목록들을 더 나열할 필요가 없다. 위에 열거한 이 세상 교육의 특성들은 우리로 하여금 결정적인 위치에 서서 우리 자녀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 교회 학교들을 설립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우리는 날마다 우리 자녀들을 보호해 주시도록 하늘 아버지께 기도한다. 그러나 우리는 가정에서 가족 예배(만일 우리가 가족 예배를 드린다면) 때에 신앙을 거의 가르치지 않으며, 우리 자녀들을 불경건한 자들에 의해 교육받도록 세상 학교들에 보낸다. 우리는 과거에 부모들이 그들의 자녀들을 산 채로 몰렉에게 불태워 드린 사실을 보며 치를 떤다. 그러나 역사는 주님의 어린양들이 세상 학교들에 보내질 때 그것이 몰렉에게 산 채로 불태워 제사 드리는 사실과 유사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학교 분위기에서 우리의 자녀들은 영적으로 죽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동료들이 헤매도록 하는 대리자들로서 일하게 만들어 “사망에서 사망에 이르게 하는 향기”가 되도록 할 것이다.

  왜 사업의 진전이 이렇게도 느릴까? 왜 많은 우리의 자녀들이 믿음을 포기하고 교회를 떠날까?
  그 교단 자체의 학교들을 가지고 있는 어떤 교단은 최근에 다음과 같은 통계를 펴냈다. “우리 교회 학교들을 졸업한 학생들 10명 중 9명이 교인으로서 남아있는 반면 세상 학교들을 졸업한 학생들은 10명 중 2명만이 교인으로서 남아 있다.”

  친애하는 형제들이시여, 많은 경우 우리는 단 한명의 영혼을 얻기 위해 선교사업으로 여러 날 혹은 여러 달을 보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우리는 우리의 친 자녀들에 대한 우리의 선교적 임무를 잊어버린다. 잃어버린 은전의 비유를 잊지 말도록 하자.

  우리는 친애하는 여러분 형제들이 예언의 신의 다음과 같은 호소를 듣도록 호소한다.
  “몇 명의 안식일 준수자들이 있는 곳은 어디에서나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과 청소년들이 지도받을 수 있는 학교를 위한 장소를 제공하는데 연합해야 한다”(Counsels on Education, 198).

  대총회나 연합회나 지회가 그 일을 시작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부모들은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길 모본적이고도 신앙적인 교사를 채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그들의 자녀들의 회심을 위해 열렬하게 일하면서 교사와 협력해야 한다”(상동, 198, 199).

  부모들과 장로들, 성경교사들과 지도자들과 집사님들과 목사님들이시여, 함께 모여 여러분 자신의 교회나 그룹 안에 초등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함께 모여서 우리 신자들의 자녀들이 적어도 하루에 4시간씩 신앙이 돈독한 교사의 지도하에 있을 수 있도록 하라.

  우리의 소망과 기도는 우리 주 하나님과 성령님과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로 말라기 4장에 예언된 사업을 수행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그분의 교훈들이 받아들여져서 우리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드린다.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을!”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