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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업을 모든 사람에게
엘렌 지 화잇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올라가셨을 때 그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당신께서 남겨놓으신 복음 사업을 맡아서 완수하도록 명하셨습니다. 그 명령이 있은지 1,800년 이상이 지난 오늘날일지라도 그 명령은 계속 주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마지막 자비의 경고의 기별인 복음의 마지막 초청이 세상에 들려집니다. 위대한 사업은 아직 완수되어야 하며, 더욱 진지하고 결정적인 노력을 요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빛을 받은 모든 사람은 세상에 그 빛을 나누어주는데 조력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결국 의인이 받을 상급을 나눠받으려 한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의 시간을 현명하게 향상시켜야만 합니다. 순간들은 금보다도 더욱 귀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을 받았으며, 우리의 시간과 재능은 그분께 속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의 사업을 진전시키기 위한 모든 기회들을 향상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사업의 완수를 위해서 우리의 모든 힘의 충만한 정력을 보존해야 합니다. 육체적인 정력을 소모시키는 모든 것은 정신적인 노력을 약화시킵니다. 그런고로 몸의 건강을 손상시키는 모든 행습은 단호하게 멈춰야 합니다.

  위대한 사도는 말합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 9:27). 우리는 고의적으로 그릇된 습관에 방종함으로 우리의 건강을 해치는 동안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자아부정이 그리스도를 위한 봉사의 입문에나 그곳에서 지속적인 봉사를 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조건중 하나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되는 조건들을 실수함 없으신 언어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그러나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도 자아부정을 실천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지요? 얼마나 자주 어떤 악독한 방종을 사랑함이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마음을 향한 소원보다 강력하게 역사하고 있는지요! 보배로운 은혜의 시간들은 낭비되고, 하나님께서 주신 재정들은 눈을 즐겁게 하거나 식욕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소비됩니다. 관습은 수천의 사람들을 이세상적인 것들과 관능적인 것들에 사로잡히도록 붙잡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은 기꺼이 사로잡힌바 된 포로들이며, 더 나은 몫을 소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분명한 빛 가운데 걸으며, 날마다 자아극기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들의 자유를 향유하는 자들은 극소수입니다. 그러나 자아를 포기하는 이 사업에서 실패할 필요가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지하게 구하는 모든 자에게 도움을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마음의 의도와 목적을 읽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영혼의 투쟁을 기록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그분의 은혜를 진지하게 구한다면 우리의 생애는 우리가 하는 믿음의 고백과 일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빛은 선한 사업 가운데서 온 세상에 비칠 것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갈 6:7). 그분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온전히 그분을 위한 봉사에 바쳐지는지 아니면 세상의 사물들에 바쳐지는지를 아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할지 공언할 수도 있으나 우리의 생애가 우리가 공언하는 바와 일치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사도바울에 의해 주어진 법칙은 인생의 모든 의무에 있어서 우리를 지도하는 유일한 안전수칙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우리가 먹을 음식을 선택할 때 우리는 단지 우리의 미각을 즐겁게 할 것만을 찾지 말고 가장 건강적인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복장에 있어서 우리는 단순하고 편리하며, 단정하고 적합한 것을 선택하여 입어야 합니다.

  주님의 오심이 가까웠습니다. 우리는 준비해야 할 짧은 시간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소중한 기회들이 가볍게 여겨진다면 그것은 영원한 손실을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한 연결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성령에 의해 지도되고 다스림 받지 않는다면 한순가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업에 종사하는 동안일지라도 우리의 영혼을 종종 높이 들어 기도로 하나님과 연락해야 합니다. 이런 조용한 기도들은 은혜의 보좌 앞에 보배로운 향처럼 올라갑니다. 사단은 좌절합니다. 그는 그 마음이 하나님께 고정된 그리스도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어떠한 지옥의 계교라도 그의 평화를 파괴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모든 언약들, 하나님의 은혜의 모든 능력들, 여호와의 모든 자원들은 그의 구원을 보장하기 위해 서약을 합니다.

  만일 우리가 오류와 거짓에 의해 잘못 인도받지 않으려 한다면 마음은 진리에 의해 채워져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에 원수를 소멸시키기 위한 하늘의 능력의 무기들을 제공할 것입니다. 시험을 당할 때 성경 말씀의 지식으로 그 영혼을 풍성하게 채운 자, 하나님의 언약 아래 피난처를 찾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내가 주게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 119:11)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시련의 때를 통과하며 의무를 수행할 힘을 강하게 해 주는 조용하고도 확고한 믿음, 그리스도 외에 아무도 줄 수 없는 굽힐 줄 모르는 도덕적 용기를 이전의 어떤 때보다 지금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친구 그리스도인들이여, 우리는 하늘의 표준에서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우리의 사업은 우리가 가진 특권과 기회들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하나님을 위한 봉사에 자신들을 온전히 헌신하고 있습니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재능들을 지혜롭게 사용한다면 성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성취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드러누워 있음으로 고통당하는 힘들은 주님을 위한 활동적인 사업에 의해 강화되고 계발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즐겁게 활용될 수 있는 어떤 이들은 소심함과 자아불신에 의해 방해를 받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격려를 필요로 합니다. 많은 이들은 그들이 완전히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잠재적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능력을 사용하도록 일깨움 받아야 합니다. 많은 이들은 다른 어떤 이들이 하는 것처럼 큰 사업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추수밭으로 들어가기를 거절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모든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변명을 늘어놓으며 빠질 때 그 짐은 다른 사람들에게 더 무겁게 넘겨지게 됨으로 그 사람들은 자신들의 몫과 빠진 자의 몫 둘 다를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믿는 자들이 전진시켜야 할 사업을 이 세상에 남겨 두셨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사랑은 그분을 위해 일하고자 하는 소망 가운데 드러날 것입니다. 그분께 대한 사랑은 그분의 추종자들에 대한 사랑과 부드러운 친절과 동정으로 이끌려 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에 참여하는 자들은 어떠한 희생이라도 기꺼이 치르려 할 것이며, 그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다른 이들이 하늘의 선물(예수 그리스도)을 함께 나눠 갖도록 할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머무는 세상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영원한 순간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보이는 연약하고 무능력한 노력들, 우리의 무관심과 우물쭈물한 것을 불유쾌하게 여기십니다.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하든 그것이 마치 우리의 주의를 집중시켜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인 것처럼 열성과 헌신으로 수행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일하셨던 것과 같은 동일한 열성과 진지함을 가지고 일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노력들은 우리가 구하고 있는 목표인 영원한 생명의 중요함과 비례하여 강렬하고도 끈질긴 인내로 특징지어져야만 합니다.

  양심적이고도 열렬한 일꾼들이 필요 됩니다. 일할 시간은 짧습니다. 1886년의 달들이 신속히 지나가고 있습니다. 곧 올해도 그 짐의 기록과 함께 과거의 일로 계수될 것입니다. 남아있는 귀중한 달들이 우리 주님을 위한 진지한 영혼의 수고로 바쳐지도록 하십시다. 우리가 이미 지나간 달들을 보낸 것에 대한 충실한 기록들을 볼 때 만족할 수 있을런지요? 아무에게도 유익을 줄 수 없으며, 단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만족시키기 위해 수행되는 모든 행동을 멈춰버리십시오. 거기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즐거이 수행하는 봉사는 얼마나 적게 기록되어 있는지요! 그 기록은 참으로 놀랄만한 것이 아닙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판정을 최후 심판날에 맞이하게 될 것인지요! 얼마나 자주 우리는 우리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위해 할 수 있는 사업의 기회를 등한히 하는지요! 우리가 우리 힘의 모든 정력을 하나님께 바친다손 치더라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모든 것과 비교할 때 단지 작은 일만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우리가 갚기에는 무력한 그 크신 사랑에 대한 우리의 감사를 열성과 신실함으로 나타내며, 또한 나뉘지 않는 애정으로 그분께 드리도록 하십시다.

  하나님을 위한 봉사에 있어서 아무 중간 지점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마 12:30). 아무도 이 세상과 타협하면서도 주님의 축복을 즐길 수 있다고 기대하지 말게 하십시다. 하나님의 백성들로 이 세상에서 나와 분리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더욱 간절하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뜻을 알고 행하도록 하십시다. 우리에게 비춰져서 받아들인 진리의 광명한 빛이 우리에게서 세상으로 나가도록 하십시다. 믿지 않는 이들로 우리가 붙잡고 있는 믿음이 우리로 더 나은 남녀들로 만들며, 품성을 성화케 하고 생애를 변화시키는 살아있는 현실인 것을 보도록 하십시다. 우리의 대화가 하늘의 사물들에 대한 것이 되도록 하십시다. 우리 주위를 그리스도인 유쾌함의 분위기로 두르십시다. 우리의 신앙이 시련의 시험에 맞서서 설 수 있다는 것을 보이도록 하십시다. 우리의 친절과 용납과 사랑이 우리의 믿음의 능력을 세상에 증거하는 것이 되도록 하십시다.

  그리스도인 생애를 출범한 많은 이들이 헛되고 사소한 대화에 방종함으로 자신들을 원수의 세력 가운데 처하도록 하며 영적인 힘을 잃고 있습니다. 그들은 필요되는 힘을 구하기 위하여 거룩한 확신으로 하나님을 쳐다볼 수 없습니다. 그들의 비 신앙적인 노선에 의해 그들은 그리스도께 올 수 있는 영혼들의 길에 장애물을 놓습니다. 이들 부주의한 말장이들로 하여금 모든 말과 행동이 하늘 책들에 사진 찍힌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하십시다. 어떠한 인간의 손도 단 하나의 수치스러운 기록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인생은 그 놀라운 특권과 기회들과 함께 곧 끝마치게 될 것입니다. 품성을 향상시킬 시간은 지나가 버릴 것입니다. 우리의 죄들을 지금 회개하여 어린양의 보혈로 도말하지 않는다면 그 죄들은 다가오는 날에 하늘의 장부책에 여전히 기록되어 우리를 맞을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그리스도와 진리에 대한 지식을 갖지 않은 자들과 접촉하게 될 때 우리는 단지 우리의 농장, 우리의 장사, 우리의 이익과 손실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미래의 생애에 관련된 것들을 말하게 될 것인지요? 오, 의무를 등한히 한 것에 대한 수치스런 기록이 그리스도의 공언하는 추종자들을 맞서서 있게 되다니요! 우리 하나님의 말씀의 빛에 의하여 우리 자신을 검토하고, 품성의 모든 결점을 발견하려 하여 우리의 두루마기를 어린양의 보혈로 하얗게 씻도록 하십시다.

  인생은 짧은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그것들을 사용하는 자들과 함께 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지혜롭게 영원을 위해서 건설하십시다. 우리는 보배로운 순간들을 빈둥거리며 내어버릴 수 없으며, 영원을 위해서는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할 분주한 활동에 종사할 수도 없습니다. 이제 이후로 게으름과 경솔한 언동과 세속주의에 투신하였던 시간이 성경의 지식을 얻고, 우리의 생애를 아름답게 하며, 다른 이들의 생애와 품성에 축복이 되고 고상하게 하는데 바쳐지도록 하십시다. 이 사업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 하며, 우리로 하여금 하늘의 축복인 “잘하였도다”란 칭찬을 받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Review and Herald, vol. 2, 51, 52;(1886년 6월 15일).